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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문화
 
혼자서 스물세명 상대했지만
[홍범도 실명소설: 저격 13]




(서울=오마이뉴스) 방현석(소설가)

2장

내 오빠 백무현은 나를 지키기 위해 악과 싸웠다.
나는 악과 싸우면서 점점 악을 닮아가는 오빠가 싫고 두려웠다.
깡패 오빠의 동생을 하지 않겠다, 나는 선언했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에게만 약했던 오빠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군대였다.
내 오빠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내 남자는 나도 몰랐던 내 오빠를 알려주었다.
- 백무아 <비망록>

1

군병시험은 누가 보아도 공정하지 않았다.
오전에 행해진 근력시험은 아주 드러내놓고 불공정했다. 근력시험장에 놓인 맷돌은 얼핏 보아도 크기가 제각기 달랐다. 어느 맷돌 앞에 서는가는 전적으로 시험관에게 달려 있었다. 순서대로 자리를 채워나가는 것도 아니었다.

"홍범."
"넵!

시험관은 내 얼굴과 명부를 번갈아 쳐다보고는 네 번째 자리를 가리켰다. 세 번째 자리를 채울 차례였는데 네 번째 자리로 가라는 것이었다. 네 번째 자리의 맷돌은 세 번째는 물론이고 다섯 번째 자리의 맷돌에 비해서도 훨씬 컸다. 나는 작은 맷돌이 놓인 세 번째 자리에 섰다. 그게 빈자리 순서대로였다.

"야, 임마."
시험관은 손가락으로 네 번째 자리를 가리켰다.

"그 옆으로 가라구."
죽을힘을 다해 머리위로 맷돌을 치켜들었지만 열세 번이 끝이었다. 겨우 중간을 했다. 근력시험장에서 물러나오며 맷돌이 불공평하다고 시험관에게 들리지 않게 욕설을 해대던 지원자들이 점심시간에 돈 먹일 줄을 찾아다녔다.

다행히 오후 첫 시험은 주력이었다. 열두 명씩 한 조로 달리는 것인데 몸이 실해 보이는 조에 들어가면 손해를 봤지만 그래도 다른 시험에 비하면 아주 공정한 편이었다. 앞 조가 군영마당 둘레를 세 바퀴씩 달리는 동안 나머지 지원자들은 마당 가운데 앉아 대기했다.

병정 시험에마저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신포수도 떠나버렸을 포수막으로 혼자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막막했다. 머리를 무릎에 박고 있던 나는 사람들의 갑작스런 환성에 고개를 들었다. 마당을 돌고 있는 무리들 중에서 한 사람만 한참 뒤쳐져 있었다. 환성이 터져 나올 상황이 아니었다. 뭔가? 달리는 사람들을 지켜보던 나는 깜짝 놀랐다. 한 명이 무리들에서 많이 뒤떨어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한 바퀴를 거의 앞서가고 있는 것이었다. 곧 앞선, 아니 뒤떨어진 무리를 제치고 완전히 한 바퀴를 앞 설 상황이 되었다. 내가 더욱 놀란 것은 그 달리기의 주인공이었다. 어딘가 익숙해보이던 그가 내 앞을 지나갈 때 나는 그의 정체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달음아!"

나는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녀석의 이름을 불렀다. 녀석은 이제 두 바퀴째 돌고 있는 무리들을 제치고 결승선에 들어갔다. 시험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경악했다.

나는 우리 조에서 겨우 2등을 했다. 산악지형에서는 자신이 있었는데 평지에서는 마음만큼 발이 빨리 나가주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낙방이 뻔했다.

주력시험에 이은 격기시험은 장교시험인 마상무예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군영마당에서 진행된 마상무예는 무예라고 하기 민망한 수준이었다. 종이 고삐를 잡아주는 말을 행세용으로나 타고 다니던 양반집 도련님들이 활과 창을 들고 군영 마당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나마 말 잔등에서 떨어질 것 같아 보는 사람이 조마조마했다. 문과도 무과도 들지 못한 지방 양반의 자제들은 그렇게 장교가 되는 모양이었다.

달음이를 다시 본 건 격기시험장에서였다. 격기시험은 일대일 겨루기와 결련택견이었는데 일대일 겨루기는 편파적이었다. 일대일 겨루기의 맞잡이가 같은 지원자가 아닌 격기의 고수들이었기 때문에 겨루기의 맞잡이가 거칠게 다루면 금방 나가떨어졌고, 부드럽게 다뤄주면 어렵지 않게 통과했다.

달음이도 시험관에게 먹인 게 없는 모양이었다. 서너 합 만에 맥없이 나가떨어졌다. 나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제 자리로 돌아가는 녀석에게 다가가 아는 체를 하려다 그만두었다. 방금 창피하게 당한 녀석이 민망스러워할 것 같았다.

나의 맞잡이도 먹인 돈이 없는 나에게 시작부터 거칠게 나왔다. 하지만 나는 맞잡이의 공격을 피하며 헛손질을 유도했고, 약이 올라 더 거칠게 덤벼드는 순간 돌려차기로 급소에 일격을 가했다. 일발필격. 나를 너무 쉽게 보고 덤벼들었다 여섯 합 만에 나가떨어진 맞잡이는 험악하게 인상을 쓰며 일어섰지만 이미 늦은 다음이었다. 어디서든 싸움에서 져본 적이 없는 나였다. 싸움도 사격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정확한 일격이었다.

달음이와 인사를 한 것은 결련택견 시험장에서였다.

"잘 지냈어?"
내가 어깨를 치자 녀석은 깜짝 놀랐다. 삐쩍 마르고 큰 키에 자신 없는 눈동자는 여전했다.

"여기에 어떻게?"
"내 진짜 나이는 열일곱 살이야."
"그래..."

녀석도 뜻밖이었는지 말을 더듬으며 제 자리로 갔다. 결련택견은 일대일 겨루기처럼 시험관이 장난을 칠 여지가 적었다. 일대일로 붙는 개인격기지만 선수를 두 편으로 나눠서 차례대로 나가 싸우는 집단형 격기이기도 한 결련택견은 한 명만 따로 봐주기 어려웠다. 아무런 보호장구 없이 온 몸을 무제한으로 사용해서 상대를 제압하는 싸움이었기 때문에 결련택견 시험장은 긴장이 감돌았다.

그래도 시험관들이 수를 쓰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봐주고 싶은 놈은 센 팀에 넣어주고, 그렇지 않는 놈을 약한 팀에 넣는 방법이었다. 봐주지 않을 놈이라도 완력이 세 보이는 놈은 봐줄 놈들과 한 편으로 묶었다. 그래야 봐줘야 할 놈이 센 놈을 만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시험관은 지원자들을 청군과 홍군, 둘로 재편성하여 결련택견장 양편에 앉혔다. 한 눈에 봐도 청군은 비리비리해보였고 홍군은 완력깨나 쓰게 보였다. 달음이는 청군 나는 홍군이었다. 내가 봐줘야 할 놈들의 편에 들어갔다는 걸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나는 홍군의 3번이었고, 달음이는 청군의 40번도 넘어보였다. 다행히 맞붙을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예상대로 처음부터 청군은 홍군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홍군 1번은 5합을 넘기지 않고 청군 1번을 주저앉혔다. 뒤이어 올라온 청군의 2번은 단 3합만에 나가떨어졌다. 3번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4번은 보기와 달리 제법 투지가 있었고, 30합 넘게 버텼지만 결국 무릎을 꿇었다. 홍군 1번이 처리한 청군이 열한 명이었다. 홍군 2번도 일곱 명을 처리하고 내려왔다.

3번인 나는 결련택견장에 올라가며 맞은편에 순서대로 앉아 있는 청군을 빠르게 눈으로 훑었다. 달음이 앞으로 앉은 지원자가 스물두 명이었다. 홍군 2번을 꺾고 기다리는 상대가 청군 19번, 달음이는 42번이었다. 첫 상대를 포함해서 스물세 명을 꺾으면 달음이와 붙게 되어 있었다. 거기까지는 벅차보였다. 청군 37까지를 목표로 정했다. 홍군 1번과 2번, 두 명이 제압한 상대가 18명이었다. 두 명이 제압한 상대를 합한 숫자만큼 내가 제압하면 마지막이 37번이었다. 그 정도면 아무리 불공정한 시험이라도 나를 떨어뜨리지는 못할 것 같았다.

홍군 2번을 꺾은 청군 19번은 완력이 만만치 않았다. 멧돼지처럼 저돌적으로 치고 들어왔지만 손발이 정확하지는 않았다. 첫 상대인 19번은 열 합을 넘기지 않고 주저앉혔다. 여덟 번째 상대와 열세 번째 상대는 제법 격기를 해본 녀석들이었다. 여덟 번째에게는 옆구리를 허용했고 열세 번째인 청군 31번에게는 내려찍기를 당했다. 31번의 기습적인 내려찍기는 어깨에 타격을 입혔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다른 상대들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래도 갈수록 체력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목표로 했던 37번은 덩치도 나보다 조금 더 큰데다 손도 매서웠다. 이미 열여덟 명을 상대한 체력으로는 주먹으로 이기기 버거운 상대였다. 이십 합이 넘도록 상체의 허점을 치고 들어갈 기회를 잡지 못했다. 나는 마주 팔을 뻗으며 일부러 내 상체의 허점을 내주었다. 두 대를 맞아주자 녀석은 내 상체를 향해 주먹을 집중했고, 나는 하체를 노렸다. 내가 몰리듯 한 걸음 물러서자 녀석은 어깨에 체중을 실어 오른쪽 주먹을 크게 휘둘렀다. 녀석의 중심이 앞으로 기우는 틈을 놓치지 않고 나는 오른발로 녀석의 종아리를 후렸다. 중심을 빼앗긴 녀석은 앞으로 나뒹굴며 종아리를 싸잡았다. 뼈가 시리게 아팠겠지만 부러뜨리진 않았기 때문에 며칠이면 풀릴 타격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시험관들의 반응을 살펴봤다. 무시하지 못하는 눈빛들이었다. 내 다음에 나오기 위해 한참 전부터 몸을 풀고 있는 홍군 4번을 확인한 다음 대기 중인 청군을 훑어보았다. 달음이의 겁먹은 눈과 마주쳤다. 체력이 완전히 바닥나기 전에 여기서 물러서려고 했던 나는 잠시 망설이다 네 명을 더 상대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38번, 39번, 40번은 다 워낙 부실한 청군들이었지만 갈수록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호랑이가 토끼를 사냥할 때도 방심하지 않는다, 신포수의 말을 떠올리며 나는 상대에게 집중했다. 문제는 41번이었다. 녀석만 주저앉히면 달음이 차례였는데 간단치가 않았다. 완력도 있는데다 발까지 빨랐다.

이미 스물두 명을 상대한 내가 지칠 대로 지쳤다는 걸 눈치 챈 녀석은 최대한 시간을 끌며 내 힘을 더 빼려고 들었다. 내가 빈틈을 노려 몇 차례 발을 날렸지만 재빨리 옆으로 피해 제대로 타격을 주지 못했다. 다행히 요리조리 도망 다니며 내 체력을 소모시키던 녀석이 내 발이 느려진 것을 확신하고 공격 태세로 전환했다. 녀석은 계속 도망 다닐 것 같이 움직였지만 나는 곧 반격해올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녀석의 발이 그것을 예고했다.

'맹수를 상대할 때는 눈이 아닌 발을 봐. 마지막까지 발에서 눈을 떼면 안 돼. 무엇으로 공격하던 제일 먼저 움직이는 건 발이야.'

탄환을 맞은 채 역습해오는 멧돼지의 심장에 단검을 박아 넣어 쓰러뜨린 다음 신포수가 한 말이 귓전을 울렸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이 두 주먹을 번갈아 날리며 역습해왔다. 나는 신포수가 앞발을 치켜들고 달려드는 멧돼지를 마주 껴안으며 심장에 단검을 박아 넣던 장면을 떠올렸다. 나는 마주 달려 나가며 왼손으로 녀석의 허리를 감고 오른손으로 옆구리를 가격했다. 불의의 일격을 당한 녀석이 내 몸에서 떨어지며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급소를 피해 가격했기 때문에 오래 가지 않을 타격이었다.

잔뜩 얼어서 나온 달음이에게 나는 세 대를 맞아주고 내려왔다. 달음이는 내 다음인 홍군 4번한테도 한참을 버텨냈다. 공격력은 형편없었지만 워낙 발이 빨랐다. 오래 가지 못해 상대의 찔러차기에 당했지만 청군에서 1승이라도 거둔 것은 42번까지 가는 동안 달음이를 포함해서 세 명뿐이었다.

2

감영 밖 담에 붙은 방에 내 이름 두 자는 없었다. 붙으리라고 믿었는데 아니었다. 결련택견에서 23명을 쓰러뜨린 건 나뿐이 없었다. 군병에게 가장 중요한 게 전투력이었다.
설마, 했는데 막상 떨어지고 나니 막막했다.

달음이가 찾아온 것은 늦은 저녁이었다. 주막에 돌아와 봉놋방 천정만 바라보며 이불에 기대 비스듬히 누웠는데 녀석이 문을 열었다. 나를 보고 쭈뼛거리고만 있는 녀석에게 내가 먼저 인사를 했다.

"축하해."
달음이의 이름은 선발자 명단에 있었다.

"미안해."
녀석은 내 눈을 피했다.

"뭐가 미안해? 달리기를 그렇게 잘했는데 당연히 붙어야지."
"결연택견에서 한 명도 못 이기면 과락이었잖아."
"뭐, 내가 져준 줄 알아? 힘이 떨어져서 진 거야."

녀석의 얼굴은 웃는 것도 같고 우는 것도 같았다.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녀석은 더는 말이 없었다. 나도 더 말을 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너무나 썩은 세상에 화도 나고, 내일 당장 어디로 가야할 지 막막하기도 했다.

"너 코코수라도 하면 어때?"
"나발수?"
"응, 그거 불 사람이 아무도 없대."
"포수도 아니고 살수도 아니고 코코수? 나 그거 불어본 적도 없어."
"저거보다 훨씬 쉽대."

달음이는 봉놋방 머리맡에 놓인 내 바랑을 손으로 가리켰다. 퉁소가 위로 튀어나와 있었다.

"군영에서 밥 얻어먹는 건 어차피 다 마찬가지잖아. 난 네가 했으면 좋겠다..."
달음이는 말끝을 흐리며 방문을 열고 나섰다. 문밖은 온통 어둠이었다. 시월 그믐의 밤바람이 쌀쌀했다.

"잘 데는 있어?"
"응, 이십오 리 밖에 먼 친척이 있어."
"이 어두운 밤중에, 그 먼 길을?"
"나 빠르잖아."
"들어와. 저녁은 먹은 거야?"
"일 없어."

나는 자는 주모를 깨워 국밥을 말아달라고 했다. 녀석은 국밥 한 그릇을 게 눈 감추듯 비웠다. 국물 한 방울 남지 않은 뚝배기 바닥을 보고 녀석이 비시시 웃었다.

"점심은 먹었어?"
"아침은 먹었어."
국밥 한 그릇을 더 시켰다. 술도 한 병 시키자 녀석이 뜨악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 너랑 같은 열일곱 살이라고."
술을 몇 잔 마신 달음이는 눈물을 찔끔거렸다.

"너한테 정말 미안해."
"져준 거 아니라고 했잖아."
"그것도 미안하고, 산삼도 미안하고..."
"무슨 산삼... 너, 이 새끼 너였어?"
"우리 아버지도 일러바치려고 그런 건 아니었어."

달음이가 가지고 간 산삼을 그의 아버지는 마름에게 가져가 양식으로 바꿨고, 작료가 줄어 자리를 빼앗길까 마음 졸이던 마름은 그것을 장진사에게 가져다 바친 걸 비로소 나는 알았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1년 11월 15일, 월 6:09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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