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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문화
 
보수로 살지 않으면 바보라는 중년, '자본'을 읽다
[오늘날의 책읽기] 자본 1권 해설서 '북클럽 자본' 읽기, 그 6개월의 대장정을 마치며

(서울=오마이뉴스) 이창희 기자 = 장장 6개월 동안 이어졌던 '자본 읽기 모임'이 드디어 끝났다. 11월 말 뒷풀이를 겸한 마지막 모임이 진짜 마지막이겠지만. 모두가 혁명을 꿈꾼다는 이십대에는 두려움에 피했던 칼 마르크스의 <자본>을, 보수로 살지 않으면 바보라는 중년이 되어서야 읽기 시작했다. 그것도 150여년 전 마르크스의 원본이 아니라, 철학자 고병권이 자본 1권의 해설서로 펴낸 열두 권짜리 <북클럽 자본> 시리즈를 통해서였다.

<북클럽 자본>의 완간을 기념하며, 출판사인 '천년의 상상'은 전국 열 세개의 동네 책방과 함께 '자본 읽기 모임'을 기획했고, 나는 포항의 달팽이 책방에서 마르크스 읽기에 참여했다.

<북클럽 자본> 시리즈는 2018년 8월에 발행된 1권 <다시 자본을 읽자>를 시작으로, 10월에 2권 <마르크스라는 특별한 눈>을 발행하고 2021년 4월 마지막 12권 <포겔프라이 프롤레타리아>을 내면서 3년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열두 권으로 분할된 이야기는 마르크스의 <자본> 1권에 대한 해설이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자본이라는 욕망으로 어떻게 작동하게 되었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자본을 가능하면 쉽게 설명하여, 독자에게 더 다가가고 싶었다'는 저자의 의도가, 충분히 담긴 열두 권이었다.

2주에 한 권씩... 책읽기보다 힘들었던 것


▲ <북클럽 자본>의 자본에 대한 읽기를 끝냈습니다. 고병권 작가는 자본이 대중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가기를 기대하며, 열두 권짜리 <자본>에 대한 해설서를 펴냈습니다. 3년 가까운 대장정을 기념하며, 전국 열 세곳의 동네책방에서 100명이 넘는 동지들과 장장 6개월동안 함께 읽었습니다. 뿌듯해요! ⓒ 이창희

달팽이 책방의 자본 읽기가 시작된 것은 6월의 첫날이었다. '북클럽 자본'의 첫 모임이 아직도 생생하다.

"마르크스는 읽어본 적도 없는데, 평생을 '빨갱이'라고 비난받았으니, 억울해서라도 한 번 읽어보려고요."

지금 와서 생각하면 거칠고 오해 가득한 발언이었지만, '마르크스'가 공산주의 혁명의 이념으로 작동하면서 '자본론'에 덧씌워진 편견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고 변명하고 싶다.

모임은 매주 화요일이었고, 격주마다 저자인 고병권 작가의 수업이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2주에 한 권씩 책을 읽어나가야 하는 일정이라 쉽지는 않았지만, 책을 읽을수록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갖게 되는 비참한 마음이 더 큰 문제였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세상의 규칙이 당연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배신감까지 더해지니, 한 권씩 끝나가는 독서는 책 이상의 무게로 다가왔다. 여기 일부를 옮긴다.

"1862년 소위 '불량 빵' 문제로 런던이 난리가 난 적이 있습니다. 빵을 만들 때 밀가루만 넣은 게 아니고 명반, 비누, 탄산칼륨, 석회, 돌가루 등등을 넣은 빵집들이 있었거든요. 당국의 조사에 따르면 이런 빵집이 전체의 3/4에 달했습니다. 모두 저렴한 빵을 파는 곳들이었습니다. 아마 빵 속에 이런 이물질이 들어 있다는 걸 노동자들도 알고 있었을 겁니다. 먹으면서 매일 확인할 테니까요. 그런데도 왜 이런 빵을 샀을까요. 부자들은 이 바보짓을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빵은 살기 위해 먹는 것인데 건강을 해치는 빵을 먹다니요.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압니다. 알면서도 이런 빵을 먹을 수밖에 없다는 걸, 이런 빵을 먹으면 수명이 단축되겠지만 먹지 않으면 당장 굶어 죽을 테니까요." - <북클럽 자본> 4권 135~136p "성부와 성자_자본은 어떻게 자본이 되는가" 중 발췌

마르크스가 '자본'을 썼던 19세기는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의 불길이 유럽을 휩쓸고 있던 대전환기였다. 지금부터 150년 전의 세상을 지켜보며 그가 가졌던 문제의식은,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 '현재형'이었다.

1862년의 '불량 빵'으로 대표되는 노동자의 결핍은 2021년의 대한민국에서 '부정식품을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대선주자의 발언으로 현재가 되었고, 18시간의 고된 노동에 시달리던 산업혁명기 영국의 소년공에 대한 이야기는 산업 연수생의 비극으로 그대로 이어졌다. 자본의 크기가 커지면서 착취의 정도도 극심해졌으니, 풍요가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궁금할 뿐이다.

"관료제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요, 막스 베버도 관료제를 기계라고 불렀습니다.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그는 관료제를 인간들로 이루어진 '인간 장치 (머신)'라고 했는데요. 그는 이 기계가 국가 행정만이 아니라 정당, 기업, 시민단체 등에서도 작동한다고 이해했습니다. 관료화가 이루어지면 합리성과 효율성이 증대하지만 그 안에서 인간은 자율성을 잃습니다. 하나의 부품으로서 기계 시스템의 내적 논리에 따라 굴러갈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지요." - <북클럽 자본> 8권 27~28p "자본의 꿈 기계의 꿈" 중 발췌


자본에서 깨닫게 된 것은 반복되는 150년의 시간만이 아니다. 자본이 강해질수록 노동은 효율을 추구하는 시스템의 부속품으로만 작동하게 변질되고, 노동자는 인간으로서의 자율성을 잃어간다. 시스템이 요구하는 대로만 행동하는 것이 가장 큰 미덕인 체제이니, 자본의 세상에서 빛을 발하는 것은 '창의적인 인간'이 아니라 '말을 잘 듣는' 인간이라는 설명은, 지금의 수많은 인간이 겪는 소외와 피로의 원인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겉보기에 자본주의는 대단히 절약하는 체제인 것 같지만 실은 엄청난 낭비의 체제입니다. 돈만 된다면 무조건 뛰어들지요. "생산수단을 무한정 낭비하며", 자본주의가 아니었다면 "아무런 쓸모도 없는 무수한 기능들"을 만들어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자본주의에서는 잉여가치 생산에 도움이 안 되거나 성능이나 능력이 모자란다고 판단되어, 생산에서 아예 배제되거나 폐기되는 자원과 인력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훌륭한 재능을 입증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혹은 쓸모없는 재능으로 판정되어 폐기 처분되는 것도 사회 전체적으로는 엄청난 낭비지요." - <북클럽 자본> 9권 129p "임금에 관한 온갖 헛소리" 중 발췌

이런 문장들을 만날 때마다, 지금의 우리 세상에서 벌이는 싸움은 진보나 보수의 이념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자본,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잉여가치를 극대화 할 수 있는 기능들만을 필요로 할 뿐, 자본의 증식에 도움이 되지 않는 수많은 가치들은 너무도 쉽게 버려진다.

평균 이상의 정상적인 노동력 이외에는 필요가 없다는 자본의 세상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돌봄과 공동체의 가치를 얘기하는 것이, 얼마나 허황되었는지를 깨닫는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껏 엉뚱한 곳에서 싸웠던 것이다. 우리의 진짜 적은 인간을 도구로만 사용하는, 탐욕스러운 자본이다.

그렇게 자본은 모든 것을 지배하는 규칙이 되었고, 맬서스의 <인구론>을 덮어쓴 채 '종교'가 되었다. 자본을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현실을 보자면, 맬서스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이 날카롭고 냉정할 수밖에 없는지 이해가 된다.

"맬서스는 <인구론>을 통해 빈민들의 공격 방향을 정부가 아닌 빈민들 스스로를 향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빈민들에게 순응과 절제를 가르치자고, 그게 어렵다면 '최소한 자책'이라도 가르치자는 것이지요. 결혼에 대한 빈민들의 태도를 바꾸지 못할지라도, 그들이 혁명에 나서는 것은 막을 수 있다, 이것이 <인구론>의 진정한 목적입니다. ...... 맬서스 같은 프로테스탄트 목사들이 개입하면서 정치경제학은 과학이 아니라 신앙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인구법칙과 더불어 자본의 세계에서 목사들의 시대가 열린 겁니다." - <북클럽 자본> 11권 114~115p "노동자의 운명" 중 발췌


자본을 읽기 전후, 나는 달라졌고 다르게 살 것이다


▲ 달팽이 책방의 자본읽기 모임입니다. 지난 10월 26일, <북클럽 자본>의 저자인 고병권 작가와의 대화가 열렸습니다. 자본읽기 모임의 6개월을 이어가며 쌓였던 질문들이, 폭포처럼 쏟아지던 날이었네요. 두 시간을 꽉 채웠음에도, 반가웠습니다! ⓒ 김미현

<북클럽 자본>을 읽어가는 것은 150년 전 마르크스의 '비판적인 눈'을 조금이라도 느껴보는 과정이었다. 책을 한 권씩 읽어가는 순간은 '읽어냈다'는 성취감보다는 짓눌리는 무게가 힘겨웠지만, 50년을 살아오면서 궁금했던 불합리에 대한 질문들은 조금씩 답을 보여줬다.

책 읽기 모임이 진행될수록, 달팽이 책방에 모인 동지들의 날카로운 비판과 세상에 대한 질문은 깊어졌고, 열띠게 이어지는 토론은 두 시간의 모임이 아쉬울 정도였다. 물론, 가장 아쉬움이 컸던 순간은 고병권 작가가 달팽이 책방을 찾았던 10월 말이었지만 말이다.

마지막 기차 시간까지의 두 시간으로 제안되었던 시한부 토론은 쉴 틈이 없었고, 그때까지 읽었던 열 권의 '북클럽 자본'에서 떠올린 질문들에 대한 작가의 답변은 진지했다.

"세상을 혁명적으로 한 번에 바꾸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처럼 생각하는 수 많은 동지들과의 연대할 수만 있다면, 지금의 세상이 어느 순간 무너지더라도 그 충격을 최소화 할 수 있지 않을까요? 21세기의 혁명은 그런 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요. 여러분께서 '언젠가' 살고 싶은 삶이 있다면, 그 삶을 '지금' 살아 보세요. 세상은 지금을 행복하게 만드는 우리들을 통해서만 바뀌지 않겠어요?" - 고병권 작가와의 대화 중 발췌

1980~1990년대의 대한민국에서 <자본>은 위험한 책이었다. 나도 그들이 <자본>에 붙여놓은 '불온함'에 동의하며 이십대를 보냈다. 하지만 너무 늦지 않은 2021년, 자본을 읽을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느낀다.

자본 읽기 모임을 끝낸 나는, 결코 자본을 읽기 전과는 같을 수 없다. 동의할 수 없던 세상의 규칙에 휩쓸리며 스스로를 괴롭히던 지금까지의 삶이 부끄러워졌고, 연대를 포기하지 않는 것만이 '냉혹하고 탐욕적인' 자본의 세계에서 '인간다움'을 지켜내는 유일한 방법임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나는 앞으로도, 자본이 만든 세상에서 계속 실패할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실패에 부끄러워 숨어들지 않고, 친구들을 만들어 나갈 생각이다. 자본이 삼켜버린 거대한 탐욕의 세상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본의 규칙을 거부하는 동지를 더 많이 만드는 것뿐이니까.

그리고 우리의 교육 현장에서도 좀 더 많은 <자본>에 대한 논의가 수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한 번쯤 혁명을 꿈꾸게 되는 이십대의 젊음에게 분명히 유용한 무기가 될 테니 말이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1년 11월 29일, 월 3:42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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