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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기고
 
민주변호사 28명으로 변호인단 구성
[김재규 평전 제26회] 민주화투쟁에 앞장선 걸출한 변호사들


▲ 김재규와 박선호 철모를 쓴 군인 사이에 앉아 있는 사람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이고, 포승줄에 묶인 채 김재규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의전과장 박선호다. ⓒ 국가기록원

(서울=오마이뉴스) 김삼웅 기자 =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는 사건 발생 18일 만인 11월 13일 김재규를 비롯 김계원ㆍ박성호ㆍ박흥주ㆍ이기주ㆍ유성옥ㆍ김태원ㆍ유석술 등 8명을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미수 혐의로 육군본부 계엄보통군법회의 검찰부로 송치했다.

기소된 지 8일 만인 12월 4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뒤편 육군본부 계엄보통군법회의 대법정에서 첫 공판이 열렸다.

공판이 열리기 전에 김재규와 피의자들은 이미 국가원수를 시해한 극악무도한 살인범으로 매도되고, 비상계엄과 함께 통제된 언론은 합수부의 발표를 대문짝처럼 실어서 피의자들을 난자하였다.

합수부가 12월 8일 발표한 「김재규의 파렴치한 사생활」이라는 보도문이다. 대부분의 신문ㆍ방송이 그대로 보도하였다.

김재규는 정보부장 재직 시 10억여 원의 공금을 횡령하여 땅 2만 평을 매입했고,(…) 권력기관에 있으면서 공사(公私)를 분명히 하여야 할 입장임에도 친인척에 대하여 무조건 특혜조치를 하여줌으로써 많은 비난을 받았고(…) 1968년경 D요정 주인 유부녀 J를 이혼케 하여 소실로 삼고 공금을 유용하여 축첩에 탕진했으며(…) 중정부장 공관 건물을 빌려 쓰던 중 각종 압력을 가하여 반값에 강압적으로 탈취코자 하였으나 이번 사건으로 좌절되었다.

합수부는 김재규의 인격과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히는 내용을 덧붙히고 언론은 그대로 보도하였다.

값비싼 자기류, 고서화가 1백여 점에 달하여 진열이 곤란하자 그대로 창고에 방치해둔 상태였고, 주방 냉동실 등에는 각종 고기류가 즐비하게 쌓여 있음에도, 신변보호차 평소 한집에서 근무하고 있는 경비요원들이나 운전사들에게는 먹이지 않고 고기가 남아 썩어서 내다버리면서도 김재규가 먹다 남은 음식이나마 어쩌다 이들 요원이 먹는 것을 보면 힐책하는 등 너무나 비인간적인 처사에 주위 사람들의 빈축이 그칠 날이 없었다.

계엄사의 합수부는 재판을 시작하기 전에 김재규를 파렴치한으로 만들었다. 최소한의 인권도 보장되지 않았다.

언론이 합수부의 발표문을 그대로 보도한 것만도 아니었다. 『조선일보』는 「만물상」이라는 고정칼럼에서 "그런 자는 재판할 필요조차 없지 않을까.……그는 은혜를 원수로 갚고, 신뢰를 배반으로 보답했을 뿐이다. 그 한 가지로써 그는 인간 이하로 떨어진 것이며, 개만도 못한 인간이 된 것이다. 왜냐하면 개도 주인은 물지 않는 법이니까……" (주석 1) 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변호인들에게 자중자애 할 것을 주문했다.

5ㆍ16쿠데타를 육사생도 시절에 앞장서서 지지했던, 박정희의 충직한 '정치사생아' 전두환의 합수부는 김재규를 체포하여 가혹하게 고문, 취조하고 불법적으로 재산을 탈취하는 등 온갖 폭거를 서슴지 않았다.

전두환이 책임자로 있었던 계엄사 합수부는 김재규를 1979년 새벽 연행하자마자, 군 작업복으로 갈아입히고, 전신을 각목으로 구타, 심지어 EFS 전화선을 손가락에 감고, 전기고문을 감행한다. 김재규가 여러 차례 졸도했음은 물론이다.

간경변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지혈이 안 돼 출혈로 온 몸이 시뻘겋게 되었으며, 그런 가운데 그들은 재산 포기와 헌납을 강요했다. 뒤에 김재규는 변호인을 통하여 "거기 포함된 피아노는 내가 하나 밖에 없는 자식인 외동딸에게 오래 전에 사 준 것이니, 나의 모든 재산을 빼앗아도 좋지만, 그 피아노만은 제발 환수조치에서 면하게 해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고 한다. (주석 2)

재판부는 재판장 김영선 육군중장(당시 3군사관학교 교장), 심판관 유범상 육군소장(육군본부 감찰감), 이호봉 육군소장(육군본부 예비군차장), 오철 육군소장(육군보병학교 교장), 법무사(현재 명칭은 군판사) 신복현 육군준장(육군본부 법무감)으로 구성되었다.

검찰측은 전창렬 육군중령(검찰부장), 이병옥 육군소령, 차한성 육군대위였다. 변호인단은 28명으로 당시까지 우리나라에서 단일사건으로는 최대 인원이 포진하였다.

"재석한 변호사들은 대한변호사협회장, 대법관 등을 역임하였거나 민주화투쟁에 앞장선 반체제 변호사들로서 명실공히 재야 법조계를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걸출한 인물들이었다." (주석 3)

공판조서에 서명한 변호사들의 면면이다.

공판 조서에는 "변호사 안동일, 신호양, 신선길, 정상용(피고인 김재규, 박홍주, 이기주, 유성옥을 위한 국선), 변호사 김제형, 김정두, 소중영, 강봉제, 민병훈, 태윤기, 이돈명, 류택형, 나석호, 안명기, 이세중, 김교창, 박두환, 강진옥, 조준희, 하경철, 이돈희, 홍성우, 황인철, 계창업(피고인 김재규를 위한 사선), 변호사 김수룡, 이병용(피고인 김계원을 위한 사선), 변호사 강신옥(피고인 박선호를 위한 사선), 변호사 태윤기(피고인 박흥주를 위한 사선), 변호사 김홍수(피고인 김태원을 위한 사선), 변호사 김성엽(피고인 유석술을 위한 사선)은 각 출석, 변호사 홍남순(피고인 김재규를 위한 사선)은 불출석"으로 기재되었다. (주석 4)

차분하고 겸손ㆍ당당한 법정태도


▲ 김재규 재판 박정희 대통령 ‘시해’ 혐의로 재판정에 선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혹자는 김재규가 박정희를 쏜 후 ‘육본’이 아닌 ‘남산’ 중앙정보부로 갔으면 역사가 바뀌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 국가기록원

재판은 초장부터 검찰과 변호인단의 팽팽한 대결 속에 진행되었다.

변호인단은 먼저 10월 27일 4시를 기해 선포된 비상계엄은 헌법과 계엄법에 명기된 비상계엄 선포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비상계엄선포가 유효함을 전제로 설치된 계엄군법회의에서 피고인 김재규에 대한 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과, 김재규는 군인(또는 군속)이 아니며 또한 그에 대한 공소 사실은 비상계엄이 선포되기 전에 이루어진 것이므로 계엄선포 이전의 민간인 행위에 대해 군법회의가 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주장을 폈다.

변호인단의 합리적인 문제 제기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재판정에는 비밀 녹화장치가 되어 건건마다 합수부의 지침에 따라 진행되었다. 심지어 변호인들의 '김재규 장군'이란 호칭도 법무사가 나서 "경고한다"고 으름장을 놓을만큼 '기울어진 법정'이었다.

재판 자체도 보안사를 중심으로 구성된 합동수사본부의 지침에 따라 진행됐다. 군사법정의 진행상황은 유신체제 아래서 중정에 파견됐던 공안검사들에 의해 면밀히 청취되고 시나리오가 짜여졌다. 이들이 재판정의 막사 뒤에서 그때 그때 지침을 적은 쪽지를 보냈다. 그래서 이 군사재판에 대해 '쪽지재판'이라는 비아냥이 나돌기도 했다.

이는 10ㆍ26사건의 군사재판이 구체제 타도자에 대한 체제수호세력의 단죄를 위한 각본에 불과한 것이었다는 증거였다. 역사적 전환기를 가져온 사건의 원인과 의미를 가리는 순수한 재판이 될 수가 없었다. (주석 5)

김재규는 검찰의 무례한 언사나 재판부의 고압적인 행동에도 불구하고 시종 차분하고 당당하게 진술했다. 처음에는 국선변호인으로 지정되었다가 김재규의 담당변호인으로 10ㆍ26 사건의 역사적 재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던 안동일 변호사의 목격담이다.

4차 공판에 이르기까지 김재규의 법정 태도는 매우 차분하고 겸손하면서도 무척 당당하게 보였다. 모든 진술에 있어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논리적이고 장내를 압도하는 힘이 있었다. 검찰관과 재판부로부터 한쪽으로만 몰아붙이는 듯한 신문을 받아도 자세 한 번 흩트리지 않고, 용어 하나하나에 신경 쓰면서 준비된 설교처럼 대응하였다. 특히 범행 동기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조금도 주저하거나 위축됨이 없이 더더욱 소신껏 진술하였고, 그의 입에서 쏟아지는 말들은 어느 것이나 우리를 경악시키기에 충분하였다. (주석 6)

기울어진 재판정에서 1심재판이 진행중이던 12월 12일 '박정희의 사생아'로 불리는 전두환 일당이 군의 하극상사태를 일으키고 군권을 장악했다.

박정희 정권 시대에 청와대 경호실, 보안사, 수경사, 특전단 등 수도권 핵심 부서에서 독재자의 비호 아래 세력을 키워온 육사 11기 출신의 '정치군인'들은 10ㆍ26사태 이후 군부 일각에서 "차제에 정치군인을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정승화 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에 취임하면서 곧바로 수도권지역 군부 주요 지휘관을 자파 세력으로 개편하자, 이에 불만을 품은 국군보안사령관 겸 합동수사본부장인 전두환 소장을 중심으로 쿠데타를 모의하기 시작했다.

전두환 중심의 '하나회' 출신인 이들 정치군인들은 11월 14일 전두환이 공석 중이던 중앙정보부장 서리에 취임해 내각에 합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쿠데타를 모의하는 한편, 그 전 단계로 12월 12일 정승화를 체포함으로써 군권을 장악했다.

12ㆍ12 하극상을 통해 군권을 탈취한 신군부 세력은 13일 새벽부터 국방부, 육군본부, 수경사 등 국방 중추부를 차례로 장악하고, 각 방송국, 신문사ㆍ통신사를 점거해 자신들의 통제하에 두었다. 이들은 정승화를 비롯, 그의 추종 세력인 3군사령관 이건영, 특전사령관 정병주,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 등을 1980년 1월 20일자로 모두 예편시키고, 정승화에게는 징역 10년형을 선고했다.

군권을 장악한 전두환 세력은 거칠 것이 없었다.

주석
1> 『조선일보』, 1979년 12월 11일자.
2> 「패륜인가, 혁명인가 김재규」, 김성태 엮음, 『의사 김재규』, 48쪽.
3> 안동일, 앞의 책, 40쪽.
4> 앞과 같음.
5> 김재홍, 앞의 책, 29쪽.
6> 안동일, 앞의 책, 35쪽.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2년 1월 03일, 월 10:18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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