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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종교
 
"길고 지루한 설교 끝에 모래알 같은 한 그릇 밥"
[인터뷰] <어느 노숙인과 함께한 시, 이야기> 저자 정석현·권영종


▲ 노숙인 정석현 씨(사진 왼쪽)와 권영종 목사가 시집을 펴냈다. 권 목사는 시집을 내기 위해 정 씨를 3년간 설득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서울=뉴스앤조이) 이용필 기자

그의 집엔
가족도 웃음도 없다
덩그라니
걱정 가득한 보따리와
싸늘한 냉기만 있을 뿐.
저녁이면 만들고
새벽에 부수는 집은
그의 희망 만큼이나 짧은
가건물이다
문패에는
"화남 화광기업"이라고
쓰여 있다"
- House of Box

부끄러움도 이기는
배고픔은
그를 거리에
내몰아 세운다
배낭 하나에
깡통 하나
부끄러움을 깔고
가난을 팔아
뜨거운 컵라면
하나를 산다
- 깡통

불을 토하는
길고 지루한 설교 끝에
모래알 같은
한 그릇 밥은
한 그릇 부끄러움
가난은 여전히
복이 되지 못하고
삶은 여전히
죽음이 되지 못하고
상처는 아직도
무늬가 되지 못한다
- 급식소에서


가난한 직장인이었던 중년의 남성은 힘들게 돈을 모아 장사를 했다가 크게 실패하고 가진 것 없이 거리로 내몰렸다.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서울역 거리를 배회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갈 곳도 돈도 없었다. 배가 고팠다. 무료 급식소는 차마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사람들 시선이 부담되고 두려웠다. 두려움은 공복을 이기지 못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급식 줄에 서서 음식을 기다렸다. 배를 채우고 밤이 되면 종이 박스를 가져다가 '집'을 짓고 잠을 청하고 다음 날 집을 무너뜨렸다. 그렇게 4년을 길에서 먹고 자고를 반복했다. '노숙인 시인' 정석현 씨(58) 이야기다.

정석현 씨는 지난 12월, 자신의 노숙 생활 경험을 담은 시집 <어느 노숙인과 함께한 시, 이야기>(우리와누리)를 펴냈다. 'House of Box', '깡통', '급식소에서' 등 시 10편을 썼다. 경험하지 않고서는 표현하기 어려운 시구절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시집에는 정 씨에게 시 쓰기를 권하고 노숙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움을 준 권영종 목사(68·이수교회)의 시 11편도 실려 있다.

두 사람은 노숙인을 위한 예배를 통해 처음 알게 됐다. 하루는 권영종 목사가 정석현 씨에게 기도를 부탁했는데, 감동과 은혜가 넘치는 기도에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권 목사는 정 씨 내면에 전달의 힘이 있다고 보고 시를 써 보라고 권유했다. 정 씨는 단칼에 거절했다. 글 쓰는 재주나 능력도 없고, 실패한 삶을 남들에게 드러내는 게 두려워 못 하겠다고 말했다. 권 목사는 3년간 꾸준히 설득했고, 결국 시집이 세상에 나왔다. 1월 5일 서울 방배동 이수교회에서 만난 정석현 씨는 "오랫동안 기다려 주신 목사님께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내가 쓴 시가 '누군가에게 희망과 위로를 줄 수 있다'는 목사님 말에 결국 시를 쓰게 됐다"고 말했다.

정석현 씨가 쓴 시를 보면 보통의 추위를 넘어선 '한기'가 느껴진다. 동시에 배고픔·외로움·그리움·부끄러움 등 인간이 남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을 만한 감정이 묻어 있다. '모래알' 같은 밥을 얻기 위해 '지루한 설교'를 들어야 한다는 대목을 읊을 때는 인간적·신앙적 회의감마저 들기도 했다.

정석현 씨는 시를 설명하며 매우 조심스럽고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어렸을 때부터 기독교 신앙을 지녀 왔는데,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거리에서 살 때 쓰레기통을 뒤지고 남이 버린 것 주워 먹으면서 나 자신을 미워하고 혐오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나를 귀하게 여긴다'는 믿음만은 마음속에 있었다. 내가 이룬 성과나 내가 어떤 사람인가와는 관계없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고 믿었다. 그래서 버틸 수 있었고 어느 극단에 서지 않게 됐다. 아마… 신앙과 믿음이 없었다면 내 삶은 한없이 내려갔을 것이다."

노숙인 자활·자립·자생 돕는 '성빈의집'
정기적으로 거리 노숙인 찾아 케어
노숙인이 노숙인 밥 짓는 '옹달샘' 식당 오픈 예정



▲ 어느 순간 자기 자신도 모르게 노숙인이 됐다는 정석현 씨. 4년간 길에서 생활하다, 권영종 목사의 도움을 받아 성빈의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정석현 씨는 인터뷰 중간중간 자신을 '노숙인'이라고 소개했는데, 모르고 만났다면 눈치채기 어려울 것 같았다. 말끔한 옷차림과 왼쪽 귀에 있는 피어싱(!),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까지… 예술인처럼 보였다. 기자가 조심스럽게 정 씨의 첫인상을 언급하자, 정 씨는 소리 없이 웃음 지었다. 그는 주거 환경이 바뀌면서 삶도 확 바뀌었다고 했다.

현재 정 씨는 서울 영등포 노숙인 공동체 (사)성빈의집에서 지내고 있다. 성빈의집은 권영종 목사가 노숙인의 자활·자립·자생을 위해 만든 일종의 주거 공간이다. 연립주택을 임대해 노숙인이 이곳에서 생활할 수 있게 돕고 있다. 성빈의집은 2곳이 있고 총 8명이 거주하고 있다. 숙소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자활 근로 사업 등을 하며 지낸다.

정석현 씨가 성빈의집에서 지낸 지는 1년 6개월 정도 됐다. 그전에는 서울역 지하도 내지 철거촌에서 생활했다. 정 씨는 "가끔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이면 '내가 거기서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몸을 추스르고 가다듬고 새로운 변화나 성장의 기회를 찾기 위해 준비하는 중이다. 이곳 생활은 희망적이고 굉장히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성빈의집에서 지내는 노숙인들은 정기적으로 권영종 목사와 함께 서울역·청량리역 등 거리에 있는 노숙인을 찾아 음식과 용돈 등을 나눠 주고 있다. 그때그때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노숙인이 있으면 진료소나 병원을 연결해 주기도 한다. 정 씨는 "나도 경험했는데, 대다수 노숙인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한다. 그래서 무료 진료소가 있어도 가지 않는다. 그런 분들을 설득해서 데려가는 일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빈의집 살림을 실질적으로 도맡고 있는 권영종 목사는, 이제는 성빈의집 근처에서 노숙인을 위한 식당도 운영하려고 한다고 했다. '옹달샘'이라는 이름도 지어 놨다. 단순히 음식만 제공하고 끝내는 식당이 아니다. 노숙인이 노숙인을 위해 직접 밥과 음식을 준비하고 설거지와 청소 등도 노숙인이 직접 하는 시스템이다. 권 목사는 "코로나 때문에 옹달샘 개장이 미뤄졌다. 3월에 오픈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 권영종 목사는 노숙인을 불쌍한 존재나 시혜의 대상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시혜적 자선사업 한계 있어, 노숙인과 직접 소통하거나 공동체 통해 자립·자활 도와야"

연말연시가 되면 교계 단체와 교회에서 노숙인 등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들에게 쌀과 반찬, 방한 용품 등을 전달하면서, 교인들에게도 '예수님은 낮은 자, 가난한 자와 함께하셨다. 믿는 자들도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교계 단체와 교회의 단발성 행사가 선교적 차원에서 효과가 있는지 물었다. 정석현 씨는 "때가 되면 음식과 물품을 주는 것에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다. 다만 교회에서 전달하는 메시지(예수님은 낮은 자, 가난한 자와 함께하셨다 - 기자 주)로는 노숙인의 어려움이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초창기 국가가 전 국민 재난 지원금을 줄 때, 주민등록이 말소되거나 타 지역에 등록된 노숙인들은 지원금을 받지 못했다. 정석현 씨는 "우리가 파악하기로 많은 노숙인이 재난 지원금을 받지 못했다. 정보력도 부족하고, 알아도 신청할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진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은 사회제도에서 비껴 있는 자들이라고 본다. 이런 사람들은 혜택을 받으려면 자기가 얼마나 가난하고 무능한지 남에게 증명해야 한다. 단발성 행사도 감사하지만, 교회가 사회구조 개선에 힘을 실어 주면 더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권영종 목사도 불쌍한 사람 도와주는 식의 시혜적 자선사업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숙인 사역을 하는 단체들을 후원하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권 목사는 "노숙인과 직접 소통하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거나, 아니면 성빈의집 같은 공동체를 만들어 자립·자활을 돕는 방식을 고민해 봤으면 한다. 나아가 석현 씨 말처럼,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을 보듬을 수 있게 구조 개선을 위한 목소리도 냈으면 한다"고 말했다.

*성빈의집 후원 계좌 / 우체국 103358-02-009249(권영종)


▲ <어느 노숙인과 함께한 시, 이야기>(우리와누리)에는 정석현 씨의 시 10편과 권영종 목사의 시 11편이 담겨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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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려짐: 2022년 1월 10일, 월 5:2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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