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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생활 에세이
 
"씨*, *년"이라니... 깡소주 2병 마시고 사표 냈습니다
[프로골퍼의 좌충우돌 마을기업 도전기] 민원 처리 과정에서 생긴 일


▲ 반사경 ⓒ 노일영

(서울=오마이뉴스) 노일영 기자 = 가로등과 보안등뿐만 아니라 반사경의 설치 수요를 파악하는 것 역시 이장의 업무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런 시설물들의 설치를 이장이 건의한다고 면사무소에서 곧바로 공사를 시작하는 건 아니다. 일단은 기다려 봐야 한다.

한 항목에 대해 예산은 정해져 있고 이런 종류의 시설물을 필요로 하는 마을은 많다 보니, 경쟁이 치열해서 면사무소의 최종적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 여하튼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이장이 해야 할 일은 많았다.

"저 이장인데요..."

이른 아침이지만 면사무소에는 몇몇 이장이 의자에 앉아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공무원들에게도 객쩍은 농담을 쉽사리 던지는 모습을 보니 그들은 상당히 친숙해 보였다. 솔직히 부러웠다. 이장들에게 어색한 인사를 하고 민원계로 다가가서 민원계장에게 말을 붙였다.

"계장님, 안녕하세요. 저 음천마을 이장인데요. 반사경 때문에 왔거든요."
"아이고, 이장님이신 거 잘 압니다. 그런데 반사경은 총무계 소관이라서···."

아, 참! 반사경은 총무계 담당이었지! 업무 파악도 제대로 못 한 '신삥' 이장이라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전날 전임 박 이장에게 전화해 반사경 문제는 총무계가 맡고 있다는 걸 확인해놓고서도 긴장해서 민원계로 가버린 것이다. 이런 제기랄!

등 뒤에서 이장들이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그들은 실제로는 웃음을 터트리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나를 측은하게 여겼을 수도 있다. 그건 환청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이 만들어 낸 그 웃음소리는 실재의 비웃음보다 오히려 더 나를 위축시켰다.

총무계장에게 다가가서 합천댁의 밭을 휘감고 내려오는 농어촌도로의 굴곡이 너무 심해서 위험하니 반사경이 꼭 필요하다는 말을 두서없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주눅이 든 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반작용으로 목소리는 커지고 말은 빨라졌다. 총무계장은 인내심을 가지고 내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이장님, 그 문제는 제가 아니라 저기 홍 주사와 상의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온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총무계장을 상대로 3분이나 열변을 토했는데, 이번에도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나를 배려해서 중간에 말을 끊지 않은 것이겠지만, 이런 경우에는 차라리 말을 잘라주는 게 예의 아닌가? 갑자기 기분이 더러워지면서 목구멍이 간질간질해졌다. 여태까지는 잘 감춰왔던 내면의 난폭한 짐승 한 마리가 목구멍까지 기어 올라온 듯한 느낌이었다.

홍 주무관 자리 옆에 놓인 의자에 털썩 앉았다. 컴퓨터 모니터를 보고 있던 홍 주무관이 자세를 고쳐 앉으면서 무슨 일이세요, 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내가 총무계장에게 한 말을 다 들었으면서도 능청을 떠는 거라는 생각이 들자, 목구멍에서 기어 나온 야수 한 마리가 홍 주무관을 상대하도록 그냥 내버려 뒀다.

"합천댁 아줌마가 예전부터 여기 와서 반사경을 설치해달라고 했고, 담당자가 그렇게 해주기로 했다는데, 지금까지 거기에 반사경이 없는 이유가 대체 뭡니까?"
"이장님, 합천댁이 누구신지···?"
"제가 음천마을 이장인 거는 알죠?"
"네, 이장님."

"음천마을에 합천댁은 한 사람뿐이구요, 이름은 박순자씨라구요."
"아! 그분! 죄송합니다. 반사경 설치 요청이 많은데요, 이장님들 통해서 들어오는 것만 해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라서, 개인이 요청하는 건 후순위로 좀 밀릴 수밖에 없어서···."

"전임 박 이장이 재임하는 동안 면사무소에서 우리 동네에 아무런 사업도 안 해준 건 잘 아시죠? 마을에서는 그것 때문에 사실 면사무소에 불만이 엄청 많거든요. 합천댁 밭 앞에 반사경이 설치 안 되면, 서로 피곤해질 일밖에는 없을 겁니다."

그날 오후, 문제의 그 밭 앞에 합천댁·나·총무계장·홍 주무관이 서 있었다. 아직까지 사고가 없었던 게 다행일 정도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합천댁 밭 앞에 큼직한 반사경이 떡하니 세워졌다.

합천댁은 평생의 한을 풀었다며 고마워했다. 그리곤 타작마당 뒤에 있는 논에다 농로 포장해달라는 걸 내가 거절한 일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합천댁이 농로 포장과 관련해서 계속 나를 씹고 다닌다는 얘기를 들었다. 당연히 그럴 줄 알았고, 그러거나 말거나 그곳에 반사경이 설치된 건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숙원사업

합천댁의 밭 앞에 반사경을 세우는 과정을 거치면서 주민들에게 설문 조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의 숙원 사업과 마을의 숙원 사업에 관한 설문 조사가 꼭 필요한 것 같았다. 그래서 마을 숙원 사업 현황 조사서라는 질문지를 45장 만들어서 집집마다 돌렸다.


▲ 음천내천마을 숙원 사업 질문지 ⓒ 노일영

내가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의견들이 모였다. 폭우 대비 배수로 공사, 도로포장과 가드레일, 영농 폐비닐 수거장, 가로등, 버스 승강장, 과속 방지 턱, 상수도 공사 등 주로 토목과 시설물 설치에 관한 의견들이 많았다. 도대체 이렇게 많은 불편을 감수하며 이제까지는 어떻게 살았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시급해 보이는 몇 가지 사안들을 우선순위로 정한 뒤, 쥐가 곳간 드나들 듯이 면사무소를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곧 농번기가 시작될 것이라, 내 판단으로는 영농 폐비닐 수거장이 급했다. 모종을 이식하기 전에 두둑(밭을 갈아 골을 타서 두두룩하게 흙을 쌓아 만든 것)을 만들려면 작년에 사용했던 밭의 비닐을 걷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 비닐 멀칭 전 두둑 ⓒ 노일영

두둑에다 비닐을 덮는 이유는 흙이 마르는 것과 퇴비·비료가 유실되는 것, 병충해, 잡초 따위를 막기 위해서고, 이걸 '멀칭'이라고 부른다. 아무튼 영농 폐비닐 수거장이 없어서 이렇게 멀칭에 사용된 비닐들이 우리 마을과 주변 하천을 온통 뒤덮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영농 폐비닐 수거장과 엇비슷한 시기에 버스 승강장도 설치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전 해에 한 주민이 계속해서 버스 승강장 설치와 관련해서 민원을 넣었기 때문이다. 버스 승강장 설치는 생각보다 빨리 끝이 났다.

버스 승강장 완제품을 싣고 와서 수평을 맞춰 둔 곳에다 크레인으로 내려놓고, 레미콘 차가 버스 승강장 근처에다 콘크리트를 쏟아 부으며 주변 정리를 하면 작업 종료였다. 레미콘 차 작업이 진행될 때 나는 다른 일이 있어서 면사무소로 향했다.

욕바가지

그날 오후, 몸이 좀 안 좋아서 누워 있다 보니 낮잠에 빠져들었다. 꿈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액정에는 천산댁의 이름이 찍혀 있었다. 벨소리가 워낙에 끈질겨서 전화를 받았다.

"씨*, 니가 이장이여? 고따우로 이장질 할라 카믄 때리치아뿌라 마! 놀믄서 돈만 받아 처묵는 *이네. 공사를 하믄 시작부터 끝날 때꺼정 돌덩거리매로 꼼짝 말고 지키고 있어뿌야지, 니가 머하는 이장이여! 씨*, 이장질을 할라 카믄 쫌 대국적으로 해뿌야지."

내 꿈에서 천산댁이 내게 욕을 하는 것인지, 천산댁이 자신의 꿈에서 내게 욕을 하는 것인지 도무지 분간할 수 없었다. '매트릭스'의 세계라면 몰라도, 천산댁이 현실 세계에서 내게 지저분한 욕지거리를 늘어놓을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크레인이 버스 승강장을 땅에 내려놓을 때만 해도 천산댁은 내게 찬탄사를 연발했다.

잠에서 깼다. 핸드폰을 보니 천산댁과의 통화 시간은 무려 20분이었다. 나는 나였고 천산댁은 천산댁이었으며 나비는 나비였다. 나와 대상 사이에 구별은 명확했다. 나는 천산댁이 될 수도 없고, 천산댁이 나비로 변할 수도 없고, 나비가 내가 될 수도 없었다.

천산댁에게 전화를 걸자, '씨*'이라는 단어부터 시작해서 10분 동안 내게 욕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내가 말을 할 틈도 주지 않았다. 천산댁의 욕설이 거의 다 바닥을 드러낼 때쯤 한마디만 던지고 나는 전화를 끊었다.

"어머머, 아줌마, 완전 미친 시X年이네요! 평소에 욕쟁이인 건 알았지만, 진면목은 또라이구요."

천산댁이 내게 지랄을 떤 이유는 이랬다. 레미콘 차가 버스 승강장 주변에다 타설 작업을 한 후에 믹서에 콘크리트가 좀 남은 것이 문제였다. 레미콘 차의 기사가 공사를 지켜보던 주민들에게 필요한 곳에다 남은 콘크리트를 부어주겠다고 제안했고, 우 이사가 집 근처의 주차장에다 그걸 좀 부어달라고 한 것이다.


▲ 문제의 버스 승강장 ⓒ 노일영

떠올리고 싶지도 않지만, 다시 천산댁의 말을 한번 들어보자.

"니가 이장질을 고따우로 하이까네, 피 거튼 세금으로 맹그러진(만들어진) 공구리가 우 이사 고노무 새끼 집의 주차장 바닥이 돼뿐 거 아이가. 요게 다 니가 이장질을 개거치(같이) 해가꼬 국가에다가 해를 입힌 기라꼬."

일단은 천산댁의 숭고하고 투철한 준법정신과 애국심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준법정신을 따지기 전에, 천산댁과 우 이사가 오래전부터 견원지간이란 걸 모르는 주민은 없다. 모든 면에서 반듯한 우 이사가 욕을 입에 달고 다니는 천산댁을 싫어할 수밖에 없고, 천산댁은 우 이사의 언행을 위선이라고 여기고 있으니, 두 사람 중 누가 개 혹은 원숭이의 역할을 맡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날 밤 10시, 나는 '깡소주' 2병을 까고 마을 전체 주민을 대상으로 핸드폰 문자를 작성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보내기 버튼을 눌러 버렸다. 내가 보낸 문자의 첫 문장은 이러하다.

"저는 이제 이장 때려치웁니다, 이장 수당에 관심 있으시고 욕심나는 분이 이장질 하세요!"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2년 4월 05일, 화 7:12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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