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밑 세력 다지기, 강연 입심 대결... '남북경제공동체 vs 경제복지선순환' 비전 차별화

여권의 대권주자인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의 정치 복귀를 위한 행보가 눈에 띄게 빨라지고 있다.

청와대 직할 체제(문희상 전 의장 체제)의 예봉을 꺾어 조기 전당대회를 이끌어낸 김 장관측은 공개적으로 세 확산에 나서는가 하면, 복귀 시기와 방법에 신중한 태도를 보여온 정 장관 역시 정면돌파 의지를 보이며 '정중동'의 행보를 하고 있다.

특히 10·26 재선거 이후 꾸려진 당 비상집행위 체제가 한 달째를 접어들면서 그동안 '표정관리'를 해온 양대 주자는 조직을 정비하는 것으로 몸을 풀고 있다. GT(김근태)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한 국민정치연대는 26일 광화문에 위치한 사회복지 공동모금회 대강당에서 창립대회를 갖고 공식 출범했다.

정봉주·유선호·이기우·우원식 의원 등 '재야파'가 주축이 된 이 모임은 열린우리당 당원들을 대상으로 한 전국조직으로 35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내년 2월 18일로 예정된 전당대회 때까지 김근태 장관 지지 세력 결집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의지다.

동시에 정동영 장관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25일 정동영 장관측의 싱크탱크인 '나라비전연구소'는 경기도 용인 모처에서 1박 2일로 당원 연수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김한길 김현미 김낙순 박상돈 등 DY(정동영)계로 분류되는 의원들을 비롯해 300여명의 당원들이 참석했다. 이날 행사는 사실상 "전국적으로 포진한 DY 조직특보단들의 모임"으로 정 장관도 밤늦게 합류해 격려했다.

김 장관과 달리 '의원 배지'가 없는 정 장관은 최근 당내 전주고 출신 의원 모임 등의 회합에 참석하는 등 원내와의 접촉 빈도를 넓히고 있다.

정동영 "공무원 보다 정치인이 더 좋아"

물밑 경쟁과 아울러 수면 위 기싸움도 시작됐다. 이날 열린우리당 서울시당 여성위원회가 주최한 특별강연('참여정부의 통일정책과 복지정책)에 정 장관과 김 장관이 나란히 참석해 '입' 대결을 벌였다.

특히 이들은 각각 '남북경제 공동체'과 '경제복지 선순환'을 나라 비전으로 제시하며 열린우리당의 재집권을 주창했다.

첫 주자로 나선 정 장관은 본격 강연에 앞서 "공무원 보다 정치인이라는 게 더 좋은 거구나라는 느낌이 든다"고 뼈 있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이후 정 장관은 미리 배포된 강연문을 무시하고 부드러운 입말을 섞어가며 정치적 야망에 대한 강한 여운을 남겼다.

정 장관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들인 비용을 경제적 이득으로 치환해야 한다며 2020년을 목표로 남북경제공동체 건설을 주장했다.

정 장관은 "세계자유무역 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7천만 경제권을 묶어 새로운 시장인 북방 경제를 개척하는 것"이라며 "헤어진 부부가 만나고 북의 아픈 사람이 남한으로 오고 남한의 투자가들이 북에 가는 자유로운 왕래가 이뤄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정 장관은 "과거 냉전체제로 돌아가면 앞으로 15년 안에 남북경제공동체를 달성하지 못한다"며 "2020년의 비전을 달성하는데 당원 여러분이 핵심일꾼이 되어달라"고 호소했다.

"냉전의 덫에 갇혀있다"며 한나라당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던졌다. 정 장관은 "대안이 있으면 말해달라, 야당도 이제 냉전 잔재 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열린우리당이야말로 민족 통합의 중심 세력"이라고 재집권을 자신했다.

김근태, 한나라당에 강한 대립각 "역사의 배신자"

반면 김근태 장관은 한나라당에 대해 더욱 '각'을 세웠다. 김 장관은 노 대통령이 제안한 국민통합 연석회의를 거부한 점을 들어 "한나라당은 역사의 배신자, 위선자"라며 "정략적으로만 바라보고 시대를 못 읽고 있다"고 성토했다.

김 장관은 또 한나라당의 감세 주장에 대해 "작년 하반기 한나라당이 주장해 소득세 1%, 법인세 2%를 내린 결과 올해 조세 수입이 2조5천억원 줄었다"며 "이 부담은 결국 서민, 중산층에 돌아갈 돈이 깎이는 것으로 돌아간다"고 주장했다.

당에도 쓴소리를 던졌다. 김 장관은 "당 간부들과 당원들을 볼 때 중산층과 서민들을 위해 살고 있는지 간혹 의문을 갖게 된다"며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 개혁정당, 국민 통합을 위해 기득권을 버려야 한다"고 정체성 회복을 주문했다.

김 장관은 "저와 함께 따뜻한 경제, 경제와 복지가 선순환하는 그날을 앞당기자"며 통합을 내세워 당원들의 박수를 이끌어냈다.

대중성 확보를 통한 외연 확대가 관건인 김 장관은 이날 강연을 끝내면서 참석자들을 향해 "진짜 사랑합니다"를 연발하며 하트 모양의 제스처를 취해 눈길을 끌었다. 또한 김 장관은 '국민과 연애' '보건복지는 사랑' '따뜻한 경제' 등 부드러운 표현을 구사하며 경제와 복지가 결합된 '사람입국'의 모토를 내세웠다.

한편 이날 강연은 정 장관과 김 장관에게 각각 1시간이 할애되었는데 첫 번째 강연이 끝난 뒤 예정에 없던 두 장관의 '랑데부'가 연출되기도 했다. 서영교 서울시당 여성위원장의 주선으로 두 장관이 나란히 무대 위에서 손을 맞잡자 사진 세례가 터졌다.

하지만 입퇴장시 양측의 신경전도 엿보였다. 김 장관이 입장하자 일부 당원들은 '김근태 김근태'를 연호하며 장내 분위기를 띄웠다. 하지만 퇴장하는 정 장관에게 당원들이 몰려 악수와 사진 촬영을 요청하는 바람에 장내가 일순간 어수선해 졌고, 김 장관의 강연은 예정 시간을 넘겨 시작되었다. 김 장관측의 한 인사는 "(정 장관이) 빨리 나가줘야지…"라며 주최측에 불만을 터뜨렸다. / 박형숙 기자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