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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스페셜리포트
 
"꺼져라, 대법원!"
[웰컴 투 아메리카] 미 대법원이 뒤엎은 낙태 판결과 뉴욕의 다이크 행진

(뉴욕=오마이뉴스) 최현정 기자 = 학창 시절 몸서리쳐지는 악몽 중 하나는 낙태와 관련된 비디오였다. 자신감이 넘치던 40대 성교육 강사는 전교생들을 TV 앞으로 모아 앉힌 후 흑백의 비디오를 틀어줬다. 아무런 주의사항이나 경고는 없었다.

눈 못 뜬 병아리 같기도 하고 꼬물꼬물 강아지 같지도 한 '무언가'를 한참 동안 보여주더니 이윽고 기분 나쁜 소리를 내는 기다란 막대기가 등장해 주변 것들을 무서운 기세로 빨아 삼켰다. 석션을 피하려 이리저리 비틀어보던 그 '무언가'는 곧 팔이 떨어져 나가고 다리가 딸려 나간 후 머리와 몸 전체가 막대기 속으로 사라졌다.

무방비로 TV를 지켜보던 어린 여고생들은 소리를 지르고 토했다. 누군가는 기절을 했다. 충격적인 영상에 나도 귀를 막고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지금도 청소기 소리나 치과의 석션 소리는 내게 트라우마다. 학생들의 요란한 반응을 흡족해 바라보던 강사는 비디오를 끄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몸을 함부로 놀리면 여러분도 살인자가 되는 겁니다, 아셨죠?"

총보다 못한 여성의 몸


▲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연방대법원 앞에서 한 낙태권 옹호론자가 낙태권 폐지 판결을 주도한 보수 성향 대법관들을 규탄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전날 여성의 낙태를 합법화한 지난 1973년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공식 폐기했다. ⓒ 연합뉴스

"여성이 자기 몸에 대해 스스로 결정하는 기본적인 권리를 뺏기는 모습을 보는 것,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당혹스럽습니다."

지난 25일, 모든 여성들에게 큰 손실이라며 뉴질랜드 여성 총리 저신다 아던이 분노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전 세계인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칠 이번 결정을 큰 후퇴라고 말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끔찍한 뉴스가 미국에서 전해졌다며 수많은 시험대와 씨름해야 할 문제 속에서 우리는 전진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 대법원에 의해 자유를 도전받은 모든 여성에게 연대를 표시한다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말처럼 지난 24일 미국 대법원은 전 세계를 놀라게 만든 판결을 했다. 낙태에 대한 헌법상의 권리를 파기하고 1973년 낙태에 대한 여성의 헌법적 권리를 인정했던 '로 대 웨이드' 사건을 뒤집는다는 내용으로 임신 15주 후 낙태를 금지하는 미시시피 법을 헌법과 합치한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최소 미국 26개 주가 낙태를 금지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몰 역사적인 미 대법원의 이번 결정에 대해 세계 각국 정부들의 우려도 크다.

"법원은 이전엔 결코 하지 않았을 일을 했습니다. 많은 미국인들에게 너무나 근본적인 헌법상의 권리를 빼앗아 갔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미국 대법원이 극단적이고 위험한 길을 택했다고 비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여러 번에 걸쳐 이번 판결이 모든 사람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더 넓은 권리를 위태롭게 한다고 우려했다. 건강을 위해 최선의 결정을 내릴 권리나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한 권리, 부부가 침실에 가는 권리 같은 것 말이다.

같은 대법원은 뉴욕주의 총기 소유 면허에 대해선 위헌이라 판결했다. 일반인은 집 밖에서 절대 총기를 소유할 수 없고, 필요시 면허를 받도록 1913년 제정된 뉴욕주의 총기 규제법이었다. 대법원은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할 수 있는 국민의 권리를 침해해 수정헌법 2조를 위반한 것이라고 했다. 이 판결도 6:3 보수 성향 대법관과 진보성향 대법관 숫자 그대로의 결과였다.

연방 대법원에 대한 분노와 조롱


▲ 지난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제30회 다이크 행진(Dyke march)을 위해 모인 사람들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은 대법원에 항의하며 행진하고 있다. ⓒ 최현정

토요일이었던 지난 25일, 미국 뉴욕의 도서관 밖에서 웅장한 북소리와 함성소리가 들렸다. 늘 차량으로 붐비던 5번가 대로가 시위대로 가득 차 있다. 이날 어디선가 시위대와 맞닥뜨릴 줄 알았다.

자리를 정리하고 내려가 슬쩍 그들의 대오에 끼어들었다. 올해로 30번째인 뉴욕시 레즈비언, 트랜스젠더들의 다이크 행진(Dyke march) 대오였다. 5월이 아시안 문화유산의 달이었듯 6월엔 곳곳에 무지개 깃발을 든 성소수자(LGBTQ) 행사가 많은 달이다.

참가자 각자가 만들어온 각양각색의 팻말이 화려했다. 그 대부분은 연방 대법원에 대한 분노와 조롱의 내용이었다.


▲ 대법원 판결에 항의하는 시위대 ⓒ 최현정

"꺼져라, 대법원!"
"낙태는 인간의 권리"
"지긋지긋한 가부장제"
"우리는 그들보다 오래 살 것이다"
"복음주의자들은 여자를 사랑하지 않지만 난 사랑해!"

미국인의 2/3가 낙태권을 지지한다는 최신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거나 중국 공산당과 다름없는 미국을 비꼬기도 했다. 엄마 손을 잡고 온 어린 소녀는 우리를 짓밟지 말라고 외쳤고 다름을 수용하는 것은 바로 생명을 구하는 일이라고 호소하는 이도 있었다.


▲ 집회에 등장한 다양한 팻말들. "연방대법원의 1/3은 미국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한 남자가 임명했다"(왼쪽) "출산을 강요하는 미국= 낙태를 강요하는 중국"(오른쪽) ⓒ 최현정

불법 시술을 위해 선택의 여지가 없던 가난한 여성들이 이용했던 옷걸이에 앨런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은 6명의 대법관의 이름을 써넣었다. 토마스, 알리토, 고서치, 바렛, 캐버너, 로버츠. 그는 없어져야 할 건 낙태가 아니라 바로 이런 멍청한 판결을 내린 법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가난한 여성들이 낙태에 이용했던 옷걸이에 앨런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은 6명의 대법관의 이름을 써넣었다. 토마스, 알리토, 고서치, 바렛, 캐버너, 로버츠 (왼쪽) "언젠간 여성들도 총과 같은 권리를 갖게 되겠지."(오른쪽) ⓒ 최현정

미셸은 소수의 권리가 다수의 변덕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지금 연방대법원 구성원의 1/3은 미국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한 남자가 임명했다며 분개했다. 임기 중 총 9명 중 3명의 대법관을 임명해 사법부의 지형을 보수로 바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얘기다.

역사는 진보하는가


▲ '여성이 있어야 할 곳은 혁명의 한가운데' ⓒ 최현정

"세상에서 가장 큰일이 뭔 줄 아나? 바로 판사들이야."

2020년 밥 우드워드 기자의 트럼프 녹취록 폭로처럼 트럼프 재임 4년간 미국 사법부의 지형은 완전히 바뀌었다. 이는 미국 사회에 향후 30년간 영향을 줄 것이라는 분석이고 이번 판결은 그 시작을 알리는 요란한 서막일 수 있다는 불길함을 얘기한다.

아직 최종 결정이 나오지 않았던 지난 4일, 9명의 대법관 중 가장 보수적이라 평가받는 클래런스 토마스 대법관이 의견서를 발표했다. 1948년생으로 아버지 부시 대통령 때 임명된 현 미 대법원 최장수 재판관이다. 그는 대법원이 피임 권리 보호와 동성결혼을 합법화, 동성애를 금지하는 주법을 무효화하는 과거의 여러 판결을 재고할 것을 촉구했다.

이번 판결이 나온 근거가 계속 인정되면 부부간 피임에서부터 동성 관련 여러 의제들이 다시 도마에 오를 수 있다는 우려이다. 가난한 이들, 여성, 유색인종, 성 정체성이 다른 이들은 음지로 몰리고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다.

내가 살던 노스다코타주엔 낙태 시술이 가능한 병원이 딱 하나 있었다.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이 매일같이 항의 시위를 하고 테러를 가해 늘 무거운 철문을 닫아걸고 운영했다.

그곳은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한 가난한 유색인종 여성들이 주 고객이었다. 비행기나 운전으로 다른 주까지 갈 수 없는 그 여성들에게 그곳은 어느 교회보다 신성한 곳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대법원의 판결로 그 병원도 문을 닫아야 할 것 같다. 노스다코타는 낙태가 불법인 16개 주 중 하나다.

어린 고등학생들에게 낙태는 살인이라고 당당히 얘기하던 성교육 강사와 강간이나 근친상간으로 인한 임신도 신의 뜻이라며 무조건 낳아야 한다고 선언한 대법관들. 그들은 어딘가 공통점이 있어 보인다.

과연, 역사는 진보하는 걸까?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2년 7월 06일, 수 10:39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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