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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문화
 
징역 5년부터 17년까지, '전직 간첩 7명'의 숨은 이야기
류변의 급진적 책 읽기 12회 <폭력과 존엄 사이 / 은유>


▲ 북한과 남한 모두에게 이용당하고 간첩이 된 어부들 ⓒ 속초문화원

(서울=오마이뉴스) 유제성 기자 = 필자는 납북귀환어부 김용태씨의 재심사건 변론을 맡고 있다. 김씨는 1971년 14살의 나이에 생계를 위해 오징어잡이 배를 탔다가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됐다.

북한에서 1여년 억류당하면서 시찰을 다니고 교육을 받은 후 다음 해 남한으로 귀환했다. 당시에는 이런 일이 흔했다. 한국전쟁 이후 1987년까지 북한에 납치되었다가 돌아온 선박과 선원은 대략 460여 척, 3600여 명에 이른다.

납북된 것만 해도 억울한데 북한으로부터 국민을 지키지 못한 남한 정부는 오히려 귀환한 어부들을 간첩으로 취급했다. 고의 월선 혐의로 영장 없이 가두고 고문을 자행했다. 대개 집행유예로 풀려나왔지만, 출소 후에도 감시는 계속되었고 간첩이라는 낙인은 평생 뒤따라 다녔다.

10여 년 뒤 다시 보안대나 중정에 의해 느닷없이 끌려가 고문을 견디지 못해, 북한에서 교육과 지령을 받고 남한에 돌아와 간첩행위를 했다는 허위자백을 한 후 오랜 기간 수감생활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김씨도 고의 월선 혐의로는 집행유예를 받았지만 나중에 간첩죄로 무려 13년을 복역했다. 김씨를 포함한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7명을 인터뷰해서 쓴 <폭력과 존엄 사이>는 이처럼 평범하게 살다 어느 날 느닷없이 간첩이 되어 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문에 못 이겨 간첩이 된 이들


▲ 1967년 납북 어부 간첩 조작 사건을 다룬 영화 <파도치는 땅> ⓒ 투영2필름

납북귀환어부 김춘삼씨는 김용태씨처럼 고의 월선 혐의로 조사를 받고 풀려났다가 14년 뒤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고문, 회유, 기망 등으로 간첩이 되어 12년을 복역했다.

그의 아내 오음전은 자식만은 고등학교까지 보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갈치 '다라이'를 머리에 이고 그 세월을 악착같이 버텨냈다. 남자는 고문 후유증으로 여자는 골병으로 약 없이 못사는 형편이 되었지만, 부부는 서로를 끔찍이 아끼고 위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김순자씨는 분단으로 헤어진 친척이 공작원으로 내려와 잠시 은거하는 바람에 일가족 30명 중 12명이 '삼척고정간첩단'으로 엮여 아버지는 사형, 동생은 무기징역, 어머니는 징역 3년 6개월, 본인은 5년형을 선고받았다.

교도소에서 세상으로 나온 그녀는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을 만나 세상에 눈뜨고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느끼게 되었다.

동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전북대 수의학과 교수와 교무처장을 맡아 출세가도를 달리며 생의 행복이 정점에 이른 때, 이성희씨는 '울릉도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17년을 복역했다.

1926년생으로 남과 북이 갈라지기 이전 하나의 조선일 때를 산 그에게 북한은 그냥 자연스럽게 오가는 국토의 일부였지만, 남한 정부는 그에게 기어이 간첩죄를 뒤집어 씌웠다.

그는 수감생활 중 감옥에 있는 힘없고 병든 이들을 위해 두 팔 걷어붙였다. '광주교도소 슈바이처'로 존경받았지만 출소한 이후 그는 전직 교수가 아닌 늙은 간첩으로 가난하고 쓸쓸한 노년을 보내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잘 나갈 때 지은 죄업을 씻어내고 있다.

1930년생 부잣집 딸로 변호사가 될 거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법대생 박순애씨는 전쟁으로 가족과 생이별을 하고, 생계를 위해 나이 많고 자식 있는 남자와 결혼을 해야 했다. 새 출발을 위해 남편과 함께 일본으로 떠났지만 갖은 고생을 하다 서로 살뜰히 아끼는 배필을 새로 만났다.

행복도 잠시, 조총련 사람을 만난 것이 화근이 되어 불법체류자로 걸렸다. 자식들이 보고 싶고 금방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해 한국에 왔지만, 유신정권은 그녀를 간첩으로 조작했다. 12년간의 옥중생활 중 단 한 명의 면회객도 없었고, 출소 이후 반기는 이도 없었다. 그녀는 이웃집 할머니와 수양딸 삼은 또 한 사람의 귀한 인연을 가족처럼 여기며 살아간다.

간첩죄는 8살의 어린 나이에 빨치산에게 경찰인 아버지가 살해당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그래서 공산주의를 적대시하던 제주 사람 김평강씨에게도 씌워졌다. 살기 위해 자식마저 떼어놓고 일본으로 건너가 11년간 모질게 일만 해 제법 목돈을 챙겨 한국에 돌아왔지만, 1981년 전두환 치하의 대한민국은 그 희망을 빼앗고 그를 7년간 감옥에 가두었다. 그는 억울한 세월을 보냈지만 원망을 버리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화해하는 마음으로 다음 세대가 행복한 제주가 되기를 꿈꾼다.

독학 고졸 노동자로 '선진 노동자의 임무' 문건을 쓴 심진구는 '강철 시리즈'의 김영환을 만난 것이 화근이 돼 안기부의 고문과 회유 끝에 혐의를 자백하고 기자회견까지 했다. 그 대가로 집행유예를 받았지만 안기부 첩자라는 꼬리표가 붙으면서 모두로부터 외면받았다.

그는 그를 고문했던 1986년 당시 안기부 대공수사단장 정형근과 4명의 고문 기술자들의 얼굴을 캐리커처로 그려 고발했다. 하지만 정형근은 발뺌했고, 검찰은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불기소처분을 했다. 결국 그는 2014년 췌장암 진단을 받고 영면했다.

지은이 은유는 온몸이 귀가 되어야 겨우 들리는 아득한 말들이자 말해질 수 없는 말인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경험을 듣고, 폭력과 존엄 사이를 눈물, 연민, 인식, 성찰, 화해, 신의 등으로 채운 묵직한 생애 서사를 기록했다. 그것은 국가폭력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가 아니라 '삶의 질곡을 견디며 살아온 일상 그리고 끝내 무죄를 밝혀내고 존엄을 회복하는 이야기'가 되었다.

국가폭력의 구조와 책임을 생각한다


▲ 1967년 납북 어부 간첩 조작 사건을 다룬 영화 <파도치는 땅> ⓒ 투영2필름

하지만 국가폭력 피해자를 변론하는 변호사인 필자는 국가폭력의 구조와 책임에 더 생각이 머문다.

전쟁과 분단, 국시가 된 반공, 헌법 위에 군림한 국가보안법 그리고 보수가 참칭한 자유민주주의가 이 비극의 원흉이다. 대한민국에 침해할 수 없는 개인의 존엄성과 기본권 보장을 핵심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는 없었다.

훼손된 자유민주주의는 재벌의 자유, 가진 자의 자유가 되어 다시 보통사람들의 자유를 옥죄고 있다. 지난 정부의 모든 것을 부정하려는 현 정부에서 진실규명, 정의, 배상, 재발방지라는 과거청산을 위한 노력이 이어질지 걱정이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에게 공익의 대표자, 기본권 보장의 보루로서 검찰과 법원은 없었다. 진실이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피해자들의 기대와 호소는 무참히 짓밟혔다. 그들은 불법수사와 고문을 방조했고 때로는 적극 가담했다.

재심무죄판결을 받아도 사과, 처벌, 손해배상은 없었다. 공소시효, 소멸시효로 피해가고 잘못 기소하고 오판해도 사실상 법에 없는 검사와 판사의 면책특권을 창설한 판례 뒤로 숨었다. 피해자들이 고통 받는 동안 그들은 승진하고 국회의원이 되고 대법관이 되었다.

법률상 인정되는 재심사유는 제한적이고, 법원은 법적 안정성이라는 명분으로 그 사유를 아주 엄격하게 해석한다. 국가범죄로 존엄성이 훼손된 피해자를 외면하는 법적 안정성이란 결국 인권보다 법원의 권위가 더 중하다는 아집에 불과한 것이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조력자, 그가 전하는 이야기

변상철 '지금여기에' 사무국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폭력과 존엄 사이>는 변 사무국장의 기획에서 시작됐다.

여기에 나오는 인터뷰이 7명은 변 사무국장이 2010년 즈음부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화위) 조사관으로 일할 때 만난 피해자들이다. 그는 진화위조차 발굴하지 못한 증거를 찾아내 재심무죄판결을 이끈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숨은 조력자이다.

수년 전 그가 부산에 있는 필자의 사무실로 납북귀환어부의 사건 기록을 들고 찾아와 재심을 청구하자고 했을 때, 필자는 부끄럽게도 진실화해위원회 결정도 없이 가능하겠냐고 물었다.

당시 그는 된다고 확신에 차서 말했다. 반신반의했지만 그가 발로 뛰며 찾아낸 기록들로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었다.

필자는 그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변호사가 되라고 했지만 그는 책상에 앉아 글만 쓰는 변호사보다 사건과 사람을 만나고 부딪히는 활동가의 삶이 더 좋다고 했다.

그는 오늘도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찾아 강원도에서 제주도까지 전국을 누비고 다니며, <오마이뉴스>에 '납북귀환어부 이야기'(http://omn.kr/1zots)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다. 이 책과 함께 필독을 권한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2년 7월 11일, 월 6:2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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