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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경제
 
'위안부' 49번 심문보고서, 충격적인 실체
[김종성의 히,스토리] 한일 극우세력에 이용된 보고서, 내용 들여다 보니

(서울=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파헤치는 르포영화 <코코순이>가 8월 25일 개봉된다. 미국 전시정보국(Office of War Information)의 심문 보고서를 소재로 하는 영화다.

흔히 '전시정보국 49번 심문 보고서'로 불리는 이 문건은 '일본인 전쟁포로 심문 49번 보고서(Japanese Prisoner of War Interrogation Report NO. 49)'라는 제목으로 작성됐다. 작성자인 알렉스 요리치(Alex Yorichi)는 1944년 8월 10일 버마(미얀마)에서 포로가 된 위안부들을 심문한 뒤 보고서를 만들었다. 이 보고서의 원본은 서울시 서울기록원(https://archives.seoul.go.kr/item/82)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44년 10월 1일 자로 제출된 이 보고서 7쪽 말미에, 심문 대상자인 피해자 20명과 위안소 업자 2명의 인적 사항이 적혀 있다. 이 중에서 14번째 위안부로 거명된 인물이 코코순이(Koko Sunyi)라는 여성이다. 1944년에 21세였던 이 피해자가 이번에 개봉될 영화의 주인공이다. 코코순이에 대한 추적을 통해 위안부 강제동원의 실상을 밝히는 방식으로 영화가 전개된다고 보도되고 있다.

위안부 피해 부정

그런데 지금까지 이 보고서는 위안부 피해를 인정하는 쪽이 아니라 부정하는 쪽에 의해 주로 활용됐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주장은 거짓이고 사기다'라고 주장하는 한·일 양국의 극우세력이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로 사용해왔다. 그런 자료가 이번 르포영화에서 활용되는 것이다.

심문관인 알렉스 요리치는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학 교수의 관점으로 위안부들을 바라봤다. 정확히 말하면, 마크 램지어가 알렉스 요리치의 관점을 차용했다. 보고서 서두에서 알렉스 요리치는 "위안부(comfort girl)는 병사들의 편의를 위해 일본군에 딸린 매춘부 혹은 직업적인 군속(professional camp follower)에 불과하다"라고 규정했다.

그는 일본군이 싸우는 곳에서는 어디서든 위안부들을 발견할 수 있다면서, 이들이 '럭셔리'한 대우를 누렸다고 서술했다. "이들은 다른 곳과 비교하면 버마에서 거의 호화로운(near-luxury) 생활을 했다"라고 말한다.

그는 여성들이 옷·신발·담배·화장품 등을 살 수 있는 돈이 있었고, 병사들이 받은 위문품을 선물로 받기도 했으며, 군인들과 함께 외출도 하고 쇼핑도 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오늘날 이런 내용은 위안부가 성노예였음을 부정하는 핵심 논거로 활용되고 있다.

실제로 위안부들이 받은 것은 군표(점령지에서 군용물품 구입 등에 사용된 긴급 통화)였고 그것은 휴지조각이 됐다. 그리고 사적인 시간을 누리기도 했다는 사실이 그들이 성노예였음을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고대의 노예나 노비들도 근무시간 외에는 사적인 시간을 향유했다. 이런 이치를 무시한 채 한·일 양국의 극우세력들이 49번 보고서 같은 것을 활용해 진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어이없는 내용

그런데 이 보고서의 작성자가 누구인지 살펴보면, 문서의 신빙성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중립적 관점으로 한국인 피해자들의 실상을 기록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는 인물이 심문을 담당하고 보고서를 작성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기관의 책임하에 작성된 보고서이기는 하지만, 보고서를 만든 알렉스 요리치는 일본계 미국인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미국에서는 일본계 주민에 대한 강제수용을 피하고자 미군에 자원 입대하는 일본계 2세가 많았다. 요리치도 그런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보고서의 신빙성을 평가할 때는 요리치의 처지도 감안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국의 적대국인 일본의 혈통을 가진 재미 일본인의 마인드와 한국인을 식민지 주민으로 하대하는 제국주의 일본인의 마인드가 보고서에 투영됐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그럴 가능성은 가능성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보고서에 반영됐다. 요리치가 심문 내용을 공정하게 기록하지 않았다는 점은 보고서 곳곳에서 쉽게 발견된다.

그는 "심문은 평균적인 조선인 위안부들이 약 25세이며, 배우지 못했고 유치하고 엉뚱하며 이기적임을 보여준다"라고 말한다. 심문의 결과로 그런 결론이 도출됐다는 것이다. 유치하고 이기적이라는 평가는 그가 과연 객관적으로 여성들을 바라봤는지를 의심케 한다. 전쟁터에서 포로가 된 민간인 여성들을 보고 연민이 아닌 경멸의 감정을 느끼는 것은 일반적인 인지상정에서 벗어난다.

전쟁통에 미얀마까지 끌려간 여성들이 생존 문제에 집중하다 보면, 오로지 자기 자신만 생각하게 되기 쉽다. 1944년 8월 20일부터 9월 10일까지 3주간이나 집중적으로 심문을 진행한 사람이 그 정도 이해력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요리치가 보고서를 제출한 것은 10월 1일이다. 심문 종료와 보고서 제출 사이에 3주간의 간격이 있었다. 그사이에 판단을 가다듬거나 감정을 배제할 기회가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위안부들에 대해 공정한 시각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 다큐멘터리 <코코순이> ⓒ 커넥트픽쳐스(주)

그가 공정한 심문관의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은 "그녀들은 일본인이나 백인 어느 기준으로 봐도 예쁘지 않다"라는 문장에서도 나타난다. 인격을 의심케 할 만한 이런 서술은 요리치 본인의 문제점보다도 그에게 그런 일을 맡긴 상관의 안목을 의심케 한다.

더 황당한 대목도 있다. "낯선 사람 앞에서 그녀들의 태도는 조용하고 얌전하지만, 그녀들은 여성의 간계(wile)를 알고 있다"라는 문장이다. wile은 엉큼함이나 속임수로도 번역된다. 위안부 여성들이 겉으로는 양순하지만 실제로는 엉큼하고 간계를 부린다고 서술한 것이다. 굳이 쓸 필요도 없는 이런 내용을 그는 보고서에 담았다. 그가 위안부 문제의 공정한 사관(史官)이 될 수 없음은 이런 서술만으로도 잘 드러난다.

공정한 심문관의 자질을 결여했기 때문에 그가 내린 결론에도 당연히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위안부들이 돈도 많고 대우도 융숭하게 받았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그것이 위안부들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은연중에 사실 실토

보고서 7쪽의 인적 사항을 살펴보면, 위안부와 심문관 사이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영화 제목으로 등장한 코코순이도 어느 정도는 그렇지만, 요리치가 상대방의 성명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15번 연무지(Yon Muji), 16번 오푸니(Opu Ni), 19번 오키송(Oki Song), 20번 김겁투고(Kim Guptogo) 등의 인명이 그러하다.

심문관이 가장 기본적인 사항인 포로의 이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은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20명 중에 한두 명이라도 일어를 잘했다면, 그 한둘이 나머지 사람들의 인적 사항을 정확히 전달해줬을 것이다. 요리치 본인도 그 한둘을 통역으로 활용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발음이 불분명한 인명들이 보고서에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미국 상관들이 한국인 인명에 서툴지 않았다면, 그는 보고서를 다시 써야 했을 수도 있다.

포로들과의 대화가 거의 불가능했던 것으로 보이는데도, 요리치는 위안부들에 대해 7쪽이나 되는 보고서를 생산했다. 이는 그가 누군가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들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단서가 보고서 말미에 적혀 있다.

위안부들의 인적 사항을 적은 7쪽 끝부분에, 함께 붙들린 일본인 위안소 업자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38세 된 기타무라 도미코, 41세 된 기타무라 에이분이 그들이다. 성도 같고 주소도 같은 이 두 사람이 모리치의 진짜 심문 대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위안부들이 돈이 많고 대우도 잘 받았다는 진술이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매주 수요시위 현장에 나타나 '위안부는 사기다'라고 주장하는 한국인들과 바다 건너 일본에서 이들을 응원하는 일본 극우세력의 핵심 논거 중 일부는 요리치의 보고서에서 나왔다. 이 점은 한·일 양국에서 위안부 피해를 부정하는 세력과 이들을 지지하는 일본 정부가 얼마나 허술한 토대 위에 놓여 있는지를 드러낸다.

이는 일본 정부와 극우의 훼방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공감대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베를린 같은 데에 소녀상이 세워지는 이유도 알려준다. 위안부 피해를 부정하는 세력이 그처럼 허술한 자료들에 의존하고 있으니, 그들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위안부들에게 불리한 서술을 하는 와중에도 요리치가 이 문제의 실상을 보고서 곳곳에 흘렸다는 점이다. 그의 보고서에서는 피해 여성들이 스스로 위안부를 자원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 은연중에 튀어나오곤 한다.

요리치는 업자들이 여성들을 동원할 때 '위안부로 가게 된다'는 이야기를 해주지 않고 '부상병들을 치료하고 부상병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을 하게 된다'라고 이야기했다고 설명한다. 싱가포르에서 돈을 많이 벌게 해준다는 말도 했었다고 알려준다. 그는 여성들이 이런 말에 속아 버마로 오게 됐노라고 말한다. 오늘날 위안부 문제의 쟁점 중 하나인 '자발적 참여 여부'에 관해 요리치가 적절한 증언을 해준 것이다.

이 대목은 요리치가 피해 여성들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로 폄하한 배경 중 하나를 시사한다. 거짓말에 속아 버마까지 가게 된 여성들이 그의 눈에는 불쌍하게 보이기보다 한심하게 보였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요리치는 위안부들이 일본군의 통제를 받은 사실도 노출했다. 일본군이 가는 곳마다 이들이 있었으며 일본군의 규정이 이들에게도 적용됐다고 설명한다. 아베 신조 전 총리 등이 극구 부인했던 '일본군의 관여' 사실을 요리치가 실토한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49번 보고서는 위안부 피해를 부정하는 쪽이 아니라 긍정하는 쪽에 의해서도 얼마든지 활용될 수 있는 자료다. 신뢰성 낮은 요리치의 태도는 이 자료에 근거한 극우 세력의 주장을 배척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보고서 중간중간에 나오는 사기·기망에 의한 강제연행과 일본군 개입의 실상은 일본의 국가범죄를 입증하는 데도 유용하다. 르포영화 <코코순이>가 일본 극우세력의 무기인 이 보고서를 소재로 진실 규명에 나서는 것은 그런 면에서 의의가 크다고 볼 수 있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2년 7월 19일, 화 5:0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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