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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경제
 
"연세대 그렇게 살지 마라, 내 돈 내놔라!"
[인터뷰] <저주토끼> 부커상 후보 정보라 작가, 대학 상대로 퇴직금 소송 낸 이유


▲ 소설집 <저주토끼>로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던 정보라 작가가 13일 경북 포항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지난 2010년부터 2021년까지 11년 동안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강사로 일한 정 작가는 지난 4월 연세대학교를 상대로 퇴직금 지급 소송을 제기했다. ⓒ 김성욱

"퇴직금과 수당을 주지 않겠다는 것은 비정규직이니까 차별하겠다는 말밖에 되지 않습니다. 소송하지 않으면 대학은 한 푼도 주지 않습니다. 이것이 대한민국 시간강사 비정규직의 현실입니다. 저는 비정규직 철폐, 평등한 대학 사회 건설을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습니다. 투쟁!"

8월 31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앞. 소설집 <저주토끼>로 세계 3대 문학상인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던 정보라(46) 작가가 법정에 들어가기 전 소리쳤다. '민주노총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이 적힌 노조 조끼를 입은 채였다.

정 작가는 2010년 3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11년 동안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강사로 러시아어, 러시아문화, 러시아문학 등을 가르쳤다.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6~9시간 강의했다. 여기에 수업 참고자료 작성, 과제물·시험지 채점과 첨삭, 학생 면담, 성적 입력과 강의 계획서·평가서 제출 등 강의 준비와 관련 행정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실제 주 40시간 이상 일했다고 한다. 6년간 우수 강사로 선정돼 총장상을 받을 만큼 강의 평가도 좋았다.

하지만 연세대는 정 작가가 강단에서 강의한 시간만을 근로시간으로 인정, 주 15시간 미만 근로자인 '초단시간 근로자'라고 주장하며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근로기준법과 근로퇴직자급여보장법에 따르면 주 15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초단시간 근로자는 퇴직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에 정 작가는 지난 4월 11일 연세대를 상대로 퇴직금 및 각종 수당으로 5000만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했다. 부커상 후보(4월 7일)에 오른 직후였다. 8월 31일은 첫 공판이 열린 날이었다.

이미 지난 2003년부터 법원은 대학이 비정규직 대학 강사들에게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례들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강사들은 개별 소송을 하지 않고서는 퇴직금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강사들은 학교와 정규직 교수들 눈밖에 나면 향후 채용이나 교수 임용에 불이익을 받을까 선뜻 소송에 나서지도 못한다. 정 작가는 "이번 소송으로 부디 더 많은 강사들이 정당한 퇴직금을 단 한푼이라도 찾을 수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

연세대에서 강사 퇴직금 소송이 진행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연세대에는 현재 총 2131명의 정규직 교수, 4235명의 비전임·강사 등 비정규직 강사가 있다. 이중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조합원은 정 작가 단 한 명뿐이다. 정 작가를 지난 13일 경북 포항시 모처에서 만났다. 정 작가는 인터뷰 장소에도 노조 조끼를 들고 왔다. 그는 "아무래도 조만간 법정 스릴러를 쓰게 될 것 같다"며 쓰게 웃었다.

"교수와 똑같이 일해도 임금은 10분의 1... 강사는 퇴직금도 못 받나"

- 연세대를 상대로 퇴직금, 연차·주휴 수당 청구 소송을 낸 이유는.

"몇 십 년 강의해도 비정규직 강사라고 퇴직금도 못 받는 현실에 너무 화가 났다. 일반 회사라면 당연히 받을 퇴직금인데, 강사는 학교에 소송을 걸어야 한다. 교수 임용에 불이익이 될 게 뻔하기 때문에 대부분 그마저도 쉽지 않다. 대학은 그걸 알고 이용한다. 그럼에도 2003년부터 선배 강사님들이 하나하나 판례를 쌓아 올린 역사가 있다. 나도 거기에 하나 보태고 싶었다. 연세대에서 퇴직금 소송이 진행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 연세대에서 얼마나 일했나.

"2010년부터 2021년까지 11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24학기를 일했다. 연봉은 1800만원에서 2500만원이었다. 최저임금 수준이다. 11년 전후를 비교해보니 시간급이 3000원 정도 올랐더라. 비정규직 강사들도 수업은 물론 학생 면담, 석사 논문 지도, 심사까지 정규직 교수들이 하는 업무를 똑같이 한다. 교수들 입김에 각종 학술단체, 학회, 프로젝트에까지 동원된다. 그런데 임금은 교수의 10분의 1이다. 그렇게 11년을 일했는데 퇴직금·연차수당·주휴수당·노동절 수당까지 다 합쳐 5000만원 달라는 게 무슨 굉장한 요구인가."

- 연세대는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근로자'라고 주장한다.

"앞뒤 자르고 딱 강의실에 서서 강의한 시간만 따져서 일주일에 6~9시간 일했다는 것이다. 이번에 학교에서 재판부에 제출한 의견서를 봤는데, 나를 너무 환상적으로 묘사했길래 웃음이 다 났다. 제가 너무나 천재적이고 능력이 뛰어나서, 미리 강의 준비를 할 필요가 하나도 없이 강의 시간만 되면 마치 영화 <스타트렉>에 나오는 '빔'처럼 돌연히 나타나 수업에 들어가고, 끝나면 뾰로롱 하고 사라진다는 식이더라. 저도 제가 그런 존재면 참 좋겠는데(웃음).

이번에 소송 준비하며 계산해봤는데 주 6시간짜리 강의 준비에 최소 주 40시간 노동이 들어가더라. 일단 강의를 하려면 강의계획서부터 필요하다. 개강하기 두 달 전에는 제출해야 하는데 1주차부터 16주차까지 과제 목록, 필요한 자료와 교재를 미리 정하고 연구해야 한다. 나 같은 경우 수업을 다 피피티(ppt)로 해서 강의 자료 만드는 시간이 필수적이었고, 평소 러시아 관련 뉴스를 정리해서 학생들에게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면 학생들이 더 재미있어 하니까.

학생들이 낸 과제물이나 중간·기말 시험지도 다 일일이 평가해야 한다. 하나하나 코멘트 하고, 틀린 부분을 표시한다. 학생들이 상담 요청을 하거나 질문을 해오면 답해주고, 성적 입력 같은 행정 업무도 강사 몫이다. 이 모든 일들은 당연히 강의 시간 외에 이뤄진다. 학기 끝나면 강의 후 자체 평가서라는 것도 작성해야 한다. 여기까지 하고 나면 금방 또 다음 학기 강의 계획서를 짜는 사이클이 돌아온다.

비정규직 강사는 과목 선택권도 없다.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수업을 맡는다. 이번에 한 수업을 다음 학기에도 한다는 보장이 없다. 과목이 바뀌면 당연히 강의 준비에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이 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학교는 강의한 시간만 노동 시간이란다."

- 소설집 <저주토끼>로 지난 4월 7일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직후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작년 12월에 그만두면서부터였다. 당연히 이렇게 될 줄 몰랐다. 그 사이 본의 아니게 제가 너무 유명해져 버렸는데, 이 나름대로 다른 강사 선생님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의미가 있었으면 좋겠다. 대학들은 돈이 많기 때문에 대형 로펌도 쓰고 항소도 하지만, 퇴직금 소송은 결국 강사들이 다 승리해왔다. 나는 여기에 이기는 판례를 하나 더 만들고 싶었다. 학교로 다시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에 이것이 동료 강사 분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이다.

소송 소식이 알려지자 이전에 해고되신 강사 선생님들로부터 응원 메시지를 받았다. 너무 속상했다. 저보다 훨씬 더 오래, 20~30년 일한 강사분들이 계신다. 임금이 동결된 채로, 정규직 전환의 희망도 없이 20년 이상 같은 직장에 다녔으면 적어도 퇴직금은 줘야 하는 것 아닌가. 내 판례로 더 많은 강사들이 단 한 푼이라도 정당한 몫을 찾아가실 수 있었으면 한다."

"대학 강사도 노동자... 누군가에게 노조는 마지막 보루더라"


▲ 정보라 작가. ⓒ 김성욱

- 지난 8월 31일 첫 공판이 있었다. 재판 전 기자회견 때 노조 조끼를 입었다.

"알음알음 짐작하셨던 분들은 있었겠지만, 내가 노조 조합원인 걸 내놓고 드러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강사들은 교수들 눈밖에 나면 교수가 될 수 없다는 두려움이 있다. 나는 조합원인 것을 단 한 번도 티 내지 않았다.

노조 조끼 하면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세월호 농성장에서 저와 같이 굉장히 오래 서명을 받았던 언니가 있었다. 매일 오시는 걸로 봐서 직업이 없는 것 같았는데 한참 나중에 알고 보니 기륭전자 부당해고 노동자였다. 세월호 농성장 외에 다른 집회 현장에서도 여러 번 그 언니를 마주쳤는데 이상하게 내가 아무리 반갑게 인사를 해도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러다 하루는 내가 노조 조끼를 입은 채로 언니를 만났다. 그제서야 언니 얼굴이 확 밝아지고 사르르 녹는데, 그걸 보고 너무 미안했다. 10년 넘게 투쟁하며 온갖 일 다 겪은 언니는 정체를 알 수 없이 현장마다 보이는 내가 혹시 프락치 아닐까 하는 생각에 표정이 좋지 않았던 거다. 언니를 무섭게 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그때 느꼈다. 아, 누군가에게는 노조가 굉장히 중요하구나. 그 언니한테 노조는 마지막 보루구나. 이후 현장에 갈 때면 노조 조끼를 꼬박꼬박 입는다. 현실적으로도 노조 조끼는 주머니가 많아서 아주 편하다(웃음)."

-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에 가입한 건 언제인가.

"2015년 7월이었다. 저의 모든 것은 다 세월호 농성장에서 배운 건데, 노조도 마찬가지다. 농성장에서 보니까 비정규직들은 다 언젠가 잘리더라. 그리고 잘리면 다들 고공 농성을 하시더라. '아, 그럼 나도 비정규직이니 언젠가 잘릴 수 있고, 고공 농성을 할 텐데 그럼 밥 올려다 줄 사람이 필요하겠다.' 노조에 가입해야겠더라(웃음)."

- 강사로 일하는 동안 스스로 노동자라는 의식이 강했나.

"수도권 대학으로 갈수록, 소위 유명 대학으로 갈수록 '나는 노동자가 아니다', '나는 비정규직이 아니다', '나는 강사지만 마음은 교수다'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자연히 노조 조직률도 떨어진다. 일종의 특권 의식일 수 있다. 삼성이 노조 없다고 자랑하는 것과 비슷할 거다. 연세대학교 조합원도 저 혼자다.

저라고 딱히 노동자로서 의식이 깨어있던 건 아닌데, 제가 좀 특이했던 건 2008년에 소설 데뷔를 한 이후 출판사들과 계약서를 써본 경험이 있었다는 점이다. 강사들은 학교와 근로계약서가 아닌 강의계약서를 쓰는데 기본적인 근로조건이나 임금조차 명시돼있지 않다. 대신 '품위를 떨어뜨리면 자른다', '강의를 하지 않으면 자른다' 같은 내용만 줄줄이 적혀있다. 어처구니 없는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는 노조가 없나?', '나는 어디 물어볼 데 없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한국비정규교수노조라는 존재 자체를 몰랐었으니까. 그러다 노조에서 세월호 농성장에 동조 단식을 오셨다. 그때 처음 알았다. 아, 나한테도 노조가 있구나."

"교수 임용 과정 보며 학교에 기대 사라져"

- 소설 <문어>를 보면 "강사는 학교의 천민이었다"는 문장이 있다. 비정규직 강사와 정규직 교수간 차별은 무엇인가.

"차별은 굉장히 많다. 우선 교수들은 억대 연봉을 받는 반면 강사들 연봉은 최저임금 수준이다. 거기다 강사는 언제 해고 당할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에 놓여있다. 학교는 무슨 일만 생기면 강사부터 자르고 수업을 줄이는 방식으로 일관해왔다. 2019년 2학기부터 강사법(강사의 교원 지위 인정, 1년 이상 임용, 재임용 절차 3년간 보장 등의 내용이 담긴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시행된다고 하니까 학교는 2018년 2학기에서 2019년 1학기 사이에 강사 숫자를 거의 절반으로 줄였다. 수십 년간 일한 강사들이 억울하게 퇴직 당한 건 물론이고, 수업당 학생수가 늘어나 교육의 질도 떨어져 학생들에게까지 피해가 가고 있다.

교수에겐 개인 연구실이 있지만 강사는 연구실도 없다. 십여 명이 컴퓨터 단 두 대에 프린터 한 대 놓고 쓰는 공동 강사실이라도 있으면 운이 좋은 경우다. 일할 데가 없으니 차가 사무실이 된다. 주차비 내가면서 자기 차에서 작업하고, 학생들 페이퍼가 차에 가득 쌓여있고. 학생들이 면담 요청할 때가 되게 곤란하다. 도서관 앞 벤치나 복도, 카페를 전전한다. 학생들에게는 강사도 교수와 똑같은 선생인데, 적어도 학생들 사생활을 보호하면서 면담할 정도의 환경은 만들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

- 최근 연세대 학생 일부가 학내에서 시위를 한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들을 상대로 고소·고발을 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기도 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은 피부터 다르다는 연세대의 기조대로 학생들도 아주 잘 키우고 있는 것 아니겠나(쓴웃음). 시험 능력 사회로 갈수록 '비정규직은 능력이 없어서 정규직이 못 되는 것'이란 말이 성행하는데, 그건 정말 현실을 모르는 얘기다. 제가 11년 동안 국내 논문을 39개 썼고, 번역을 20권 이상 했고, SCI급(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 해외 논문 2개를 썼다. 이 분야에서 이 정도 하는 사람 별로 없다. 어디 가도 전혀 꿇리지 않는 실적이다. 만약 정말 실력과 능력으로 교수 임용이 이뤄졌다면 저보다 연구 실적 많은 분들은 다 교수가 됐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럼 정규직 교수는 어떻게 되는가? 내가 속했던 연세대 노어노문학과는 교수가 4명, 강사가 11명이었는데 이 4명이 모두 합의를 봐야 누군가 교수가 될 수 있는 구조였다. 강사 입장에서 어느 한 교수와 너무 친해도 안 되고 어느 한 교수에게 밉보여서도 안 된다. 얼마나 하늘의 별따기냐면, 연세대 노어노문학과는 2019년부터 공석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교수 임용을 안 하고 있다. 정말로 그 수많은 지원자들이 모두 하나 같이 실력 없고 능력이 없어서 뽑을 사람이 없었던 걸까? 그냥 교수들이 교수 자리 못 주겠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 놓고 교수 임용 무산을 내 퇴직금 소송 탓으로 돌렸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정말 왜들 그럴까. 이미 학교에 대한 기대는 다 사라졌다. 학교에서 나오길 잘 했다는 생각만 든다."

- 그게 이번에 퇴직을 결정한 이유와 연결되나. 소설 <문어>에는 "나는 가르치고 연구하는 사람이었고 그것이 나의 천직이었다. (중략)나는 학생들을 사랑했고 강단을 사랑했고 교육의 가치를 진심으로 믿었다. 그것이 내 존재의 의미였다"는 대목이 있다.

"그렇다. 그것은 결단이라기보단 절망이었다. 이렇게 합리적인 기준도, 상식도, 체계도 없이 정규직 교수와 비정규직 강사가 갈린다. 그리고 그 사이에 공고한 신분의 장벽이 자리잡는다. 강사는 수십 년 연구하고 아무리 실적 쌓아도 교수가 될 수 없고, 강사법 같은 게 시행되면 하루 아침에 짤리는 처지다. 이러면 도대체 누가 대학원에 가려 할까. 누가 연구를 하려 할까. 학문 후속 세대가 이어질 수가 없다. 미래는 좁아진다. 지금 한국 대학원이 다 말라 죽어가는 이유다."

- 마지막으로 학교 측에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그렇게 살지 마라(웃음). 그리고 내 돈 내놔."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2년 9월 20일, 화 10:09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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