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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생활 에세이
 
시력을 잃고 난 후 생긴 놀라운 능력
[시력 잃고 알게 된 세상] 뇌는 스스로 결점을 보완하고 문제를 해결한다

(서울=오마이뉴스) 김승재 기자 =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는 슈퍼 컴퓨터가 있다. 1초에 천 조 번의 연산을 해 내고, 거의 무한대로 데이터를 저장한다. 그런데 그 컴퓨터 중앙처리장치에 정보를 제공하는, 그것도 70%의 정보 입력을 담당했던 대체 불가능한 장치가 수리도 불가능할 정도로 고장났다.

개인용 컴퓨터 PC를 예로 들자면 대체도 수리도 불가능한 키보드와 마우스가 30%밖에 기능하지 못한다는 것이고, 스마트폰이라면 역시 대체도 수리도 불가능한 화면의 3분의 2 이상이 꺼져 버린 것이다. 그럼 이 슈퍼 컴퓨터나 PC 그리고 스마트폰은 어떻게 될까? 물어보나 마나 뻔하다. 고철 덩어리, 딱 그것이다.

그렇다면 겨우 1.4kg 정도의 조그만 세포 덩어리, 우리 사람의 뇌는 어떨까?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이렇게 다섯 장치를 통해 필요한 정보를 획득하여 수백, 수천의 기관을 무리 없이 유지하고 통제해 왔는데, 그 중 무려 70%의 정보 입력을 담당했던 시각 기관이 고장 났다면? 앞서 예를 든 슈퍼 컴퓨터 중앙 처리 장치와 같은 고물 신세가 되고 말까? 절대 아니다. 우리 뇌는 다르다. 우리의 뇌는 우주의 신비와 비교될 정도로 대단한 존재다.

코로 본 축사

우리 뇌는 스스로 결점을 보완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엄청난 생존 능력을 갖고 있다. 시각이 제공하는 정보를 상실한 뇌는 즉각 대안을 찾는다. 시각을 제외한 나머지 네 기관을 적절히 활용하고 통제해서 가능한 한 전과 같이 우리 몸을 유지하고 생활할 수 있게 해 준다. 물론 전과 완전히 똑같을 수는 없겠지만, 놀라울 정도로 훌륭하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우리 뇌의 엄청난 생존 능력에 관한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다. 하지만, 나라는 중도 시각 장애인이 10여 년간 새로운 세상을 살게 되면서 직접 느끼고 경험한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몇 해 전, 친구 부부와 충청도 한 지방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남쪽 낮게 솟은 언덕 위에는 멋들어진 나무들이 꽤 운치가 있었고, 서쪽 백여 미터 아래에는 커다란 호수가 펼쳐져 있었다.

"와, 여기 경치 진짜 괜찮은데."
"그러게요, 저기가 서쪽이니까 해 질 녘 호수에 펼쳐질 장관이 정말 기대되는데요."

동행한 친구 부부와 내 아내는 앞다투어 경치를 칭찬했고 이런 곳에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즉석에서 부동산 사이트를 열어보기까지 했다. 하지만 난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들로부터 전해 들은 경치는 물론 더할 나위 없었다. 그런데 내 새로운 눈 역할을 담당한 코가 곧바로 경보를 울렸다.

"근데 말이야, 이 바람 속에 냄새가... 이건 아무래도 축사 냄새 같은데?"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 그 바람 속에 분명 축사 냄새가 있었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거나 멈추면 잠시 사라지기도 했지만 분명 근처에 축사가 있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축사? 없는데... 없어. 그리고 무슨 냄새가 난다고."

내 말을 확인하려는지 코까지 킁킁대면서 주변을 살펴보던 아내와 친구 부부는 결국 내가 엉뚱한 소릴 한다고 핀잔을 줬다. 하지만 내 코는 분명 축사를 보고 있었다. 내가 계속 우기자 친구가 스마트폰을 꺼내서 지도 앱을 열었다.

"그래, 어디 확인해 보자. 자, 여기가 그러니까, 우리가 여기 있으니까... 어라! 축사가 있네. 이거, 이거 진짜 축사가 있어."

모두가 탄성을 내질렀다. 직선거리로 5백m 정도 떨어진 곳에 축사가 있었고, 그곳은 내가 가리켰던 바로 그 방향이었다.

근처 식당에서 축사에 관해 물어본 우리들은 그 축사 때문에 장사도 할 수 없을 지경이라는 식당 주인 아주머니의 불만과 분노를 밥 먹는 내내 들어야 했다. 마침 그날 축사가 문을 닫아놔서 냄새가 그 정도지 가끔 축사 문이 열리면 참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했다. 난 밥을 먹는 내내 어쩔 수 없이 힘이 들어가는 목과 어깨를 감추느라 기분 좋은 애를 써야만 했다.

내가 새로운 이 세상에 적응하면서 이런 일은 너무도 많았다. 비가 갠 오후, 탄천을 산책하던 도중 내 코는 짐승 털 비린내를 '보았고', 내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아내는 결국 근처 풀 속에 숨어 있는 오리 가족을 발견했다. 골목길 안쪽에 숨어 있는 막걸릿집을 가장 먼저 찾아냈고, 한여름 친구들과 1박 2일 여행을 다녀온 아들이 장작불을 피고 놀고 왔음도 단번에 알아맞혔다.

물론 내 코가 개코가 됐다는 뜻은 아니다. 볼 수 없어진 만큼 내 후각은 좀 더 예민해졌고, 나머지 감각과 기억을 동원해 내 머릿속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을 보고 있는 듯, 부지런히 이미지를 만들어 준다는 얘기다.

귀로 본 제비

청각도 제대로 두 몫을 한다.

올여름, 우리 부부는 친구의 초대로 부모님과 애들, 모처럼 3대가 함께 강원도 정선군에 놀러 갔다. 즐거운 아침 시간을 보내고, 점심을 먹으려고 임계면의 한 막국수 집을 찾았다.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어서인지, 빈자리가 없었다.

식당 앞에서 자리가 나길 기다리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새로운 눈 역할을 떠맡은 내 귀가 뭔가 이질적인 소리를 '보았다'.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내뱉는 목소리와 가끔 식당 앞을 오가는 차량 소음 사이에서 눈의 역할을 떠맡은 내 귀는 지지배배 지저귀는 작은 새 소리를 '보았다'. 그리고 곧장 내 머리는 그 정보를 바탕으로, 먹이를 달라고 입을 쫙 벌리고 있는 작은 둥지 속 두세 마리의 새끼 제비 이미지를 떠올려 줬다.


▲ 가상의 눈들이 그려준 것과 너무도 닮은 제비 둥지. ⓒ 김승재

"어, 여기 제비 둥지가 있나 본데?"

내 앞에서 서로 장난질을 걸고 있던 딸과 아들이 물었다.

"제비? 날아다니는 제비 말이에요? 어디에?"

아이들뿐 아니라 부모님과 아내 그리고 친구 부부도 내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것 같았다. 멀쩡한 두 눈으로 보고 있다면, 그곳은 제비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기 힘든 곳이었기 때문이다. 난 제비 소리가 나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그곳에는 정말 제비 둥지가 있었다.

"와! 진짜 제비다. 와, 저 제비 새끼들 밥 달라고 입 벌리는 거 봐. 너무 귀여워."

식당 입구 위, 지붕 바로 아래 제비 둥지에는 두 마리의 새끼 제비가 열심히 지지배배 울어대며 입을 벌리고 있었다.

맛있는 막국수를 먹는 동안 창밖에서는 부지런히 먹이를 잡아 오는 어미 제비의 모습이 끊임없이 오가고 있었고, 일행들은 어떻게 거기서 소리로만 제비 둥지의 존재를 알아차렸는지 무척이나 궁금해했다.

이 세상 생활을 하게 되면서 나는 내 귀가 보여준 이미지를 여러 번 경험했다. 작은 산길을 걸으면서 누구도 보지 못한 작은 냇물을 소리로 볼 수 있었고, 멀리 계단 아래에서 모습이 나타나지도 않은 일행의 도착을 누구보다 먼저 안 적도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소머즈의 귀를 갖게 된 건 아니다. 눈으로 볼 수 있었을 때보다 좀 더 예민해진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엄청나게 뛰어난 능력을 갖게 된 건 당연히 아니다.

내가 눈으로 볼 수 있었던 때는, 어떤 냄새를 맡거나 어떤 소리를 들으면 곧바로 눈으로 확인했다. 그런데 시각적 정보를 얻을 수 없는 지금은 코와 귀 그리고 피부나 혀를 통해 들어온 정보를, 기억 속에서 다시 꺼내온 시각적 이미지와 적절히 조합해서 가상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골목길 어디에서 막걸리 냄새가 난다면, 눈으로 볼 수 있었던 때에는 그 냄새의 출처를 찾아 두리번거리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막걸리 냄새를 맡으면 바로 머릿속에서 막걸릿집이 그려진다. 동행한 사람들이 막걸릿집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해주면 난 냄새를 추적해서 골목 안쪽이나 시선이 닿지 않는 어떤 곳의 이미지를 곧바로 떠올린다. 그것이 용케 맞을 수도 있지만 사실 틀리는 경우가 많다.


▲ 멀리서 가상의 눈들이 그려준 계곡도 닮았다. ⓒ 김승재

산길을 걷다 들려온 물 흐르는 소리도 마찬가지다. 보이지 않는 나는 나머지 감각, 그중에서도 청각과 후각에 잔뜩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력에 더 많은 신경을 쓰는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예민해진다. 그리고 내 뇌가 기억 속에서 가져온 계곡의 이미지가 떠올라 그냥 물 흐르는 소리로 표현하지 않고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에 불과하다.

너무 허풍 떠는 거 아니냐고? 으음… 아무래도 이 이야기를 좀 더 해야겠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2년 9월 21일, 수 10:35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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