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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종교
 
우리가 잊고 잃은 초기 교회의 소중한 유산
[탐독의 시간] 앨런 크라이더 <초기 교회와 인내의 발효>

(서울=뉴스앤조이) 전남식 목사(대전 꿈이있는 교회) = 앨런 크라이더의 <초기 교회와 인내의 발효 - 로마제국 안에 뿌리내린 초기 기독교의 성장 비밀>(IVP)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년 전 미국 아나뱁티스트메노나이트성경신학교(AMBS)의 사라 웽어 쉥크(Sara Wenger Shenk) 총장이 한국에 방문했을 때였다. 쉥크 총장은 이 책이 크라이더가 쓴 책 중 최고라며, 꼭 읽어 보라고 강력하게 추천했다.

솔직히 앨런 크라이더는 부담스런 존재였다. 내가 교회를 개척하고 얼마 후 결성된 '아나뱁티즘 읽기' 모임에서 그의 책 <The Change of Conversion and the Origin of Christendo>[<회심의 변질>(대장간)]을 읽고 의기투합해 그 책을 번역·출간 했다. 그런데 그 후로 그의 저서들을 읽을 때마다 교회에 대한 열정이 샘솟는 동시에 열등감, 나아가 죄책감까지 느꼈다. 그의 책이 목회 현장에서 '죽 쑤고' 있던 내 초라한 현실을 비췄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앨런 크라이더를 읽어야 할 이유가 있다.


<초기 교회와 인내의 발효-로마제국 안에 뿌리내린 초기 기독교의 성장 비밀> / 앨런 크라이더 지음 / 김광남 옮김 / IVP 펴냄 / 514쪽 / 2만 6000원

인내: 우리가 놓친 교회의 본질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구호가 유행일 때가 있었다. 그런데 막상 '초대교회는 어떠했는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당혹스럽게도 머릿속이 하얘지곤 한다. 저자가 이 책에서 소개하는 초대교회 모습은 우리가 몰랐던, 그리고 놓치고 있었던 교회의 본질·원형에 대해 큰 힌트를 제공한다. 4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저자는 시종일관 로마제국에서 일어난 교회의 성장의 비밀을 찾는 데 집중한다. 이러한 저자의 시도는, 미국을 비롯한 기독교 선진국에서 위축된 교회의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우리가 잃어버렸던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 확인하고자 함이다.

저자에 따르면, 초대교회의 성장 비결은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마 28:19)라는 선교적 명령이 아니었다. 역사학자인 그는 이 구절을 선교적 명령이 아닌 삼위일체나 세례 시의 신앙고백(baptism formula)으로 이해한다. 실제로 초기 교회는 교회 성장 전략·매뉴얼·논문 따위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더구나 당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곧 "의심스러운 집단"의 회원이 돼 사회적 특권을 박탈당하는 수치를 경험하는 일이었다(30쪽).

그런 상황에서도 교회가 성장한 비결은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삶이었다. 그리고 그 삶을 떠받치는 토대는 '인내'였다. 이것은 로마제국에서 볼 수 있었던 흔한 인내, 곧 자신의 처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아야 했던 인내가 아니라, "폭력과 횡포의 방식"으로부터 돌아서서 산상수훈에 기초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구현(embody)했던 "낯선 인내"였다. 혹시 이것은 니체가 말한 강자에 대한 약자의 분노, 즉 '르상티망(ressentiment)'이 아닐까? 그러나 사회적 약자였던 기독교가 당시 주류 종교나 로마제국을 향한 분노를 사랑이나 자비의 용어로 대체한 것이라는 주장은 저자에게 통하지 않는다. 아무리 약자로 모인 집단이라 하더라도 그 속에는 다시 강자와 약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내는 단순히 르상티망의 억제를 위한 대체적 표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표현하는 원인이었다(44~45쪽).

인내의 발효: 초기 교회의 전통

저자는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아비투스(habitus)' 개념을 통해 초기 교회 전통을 설명한다. 근대사상이 주장하는 객관성, 즉 수학적·논리적 지식만이 참이며 이는 이성을 통해 획득된다는 말은 수학·과학 영역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인격과 공동체 형성에 있어서는 설득력을 잃은 지 오래다. 수학적·논리적으로 참인 명제가 아니라 '내러티브'가 우리의 문화와 공동체를 떠받치기 때문이다.

"아비투스는 이야기들에 의해, 즉 우리의 문화를 떠받치는 큰 이야기들만이 아니라 우리의 가족과 공동체의 작은 이야기들에 의해 강화된다. 아비투스는 모범을 통해, 즉 우리의 삶에 대해 권위를 지니는 부모와 동료와 롤 모델들을 통해 더 많이 형성된다. 무엇보다도 아비투스는 반복에 의해, 즉 어떤 일들을 거듭해서 행함으로써 습관적이고 반사적이고 우리의 몸에 내재되는 순전한 신체성(physicality)에 의해 형성된다." (81쪽)

아비투스는 인간의 몸을 단순히 '연장'으로 취급한 데카르트적 사유를 극복하기 위해 나온 개념이다. 지식은 머리가 아니라 온몸으로 배우는 것이며,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반복적 경험을 통해 형성된다. 이런 반복적 노력은 개별 인간 경험에서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사람에게는 소속감이 필연적이므로 그가 속한 공동체의 아비투스가 개인의 삶과 사고를 형성하기 마련이다. 저자는 이러한 아비투스를 형성하는 데는 '인내'가 필요하며, 인내는 오랜 시간의 숙성을 통해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간다고 말한다. 이것이 '발효'다.

인내의 변질: 우리가 간직해 온 잘못된 유산

발효는 외부적 요인, 즉 성장에 대한 조급증으로 상황을 통제하려는 태도와는 정반대 개념이다. 한국교회의 성장을 주도했던 제자 훈련이 실패한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배웠던 제자 훈련은 스스로 상황을 통제하여(128쪽), 단기간에 부흥(?)을 이루려는 조급증을 보여 왔다. 그 결과 예수님과 초기 교회가 보여 주었던 화해와 환대, 자유와 해방이 아니라 억압과 폭력을 불러왔던 것이 아니었을까. 이는 인내를 토대로 전 생애에 걸친 반복 실천을 통해 신의 성품에 참여하고 그리스도를 닮아 가려는 노력 대신, 단기간에 하나님처럼 되고자 했던 최초의 인간이 저지른 잘못과 동일하다. 저자는 이러한 조급증을 '원죄'로 규정한다(52쪽).

이 책의 3부에서는 초기 교회에서 아비투스를 형성했던 방식으로 교리 교육, 세례, 예배를 제시한다. 이미 언급했듯, 이것들은 지식 전달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대다수 인구가 문맹이었던 당시, 교회의 교리와 가르침은 단순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다고 달달 외우면 그만인 '답정너' 식도 아니었다. 반복적 암송과 예배, 성찬, 기도, 교리 교육 등은 그들이 예수님을 믿기 이전까지 몸담았던 낡은 아비투스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아비투스로 옷 입게 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242쪽). 초기 교회가 형성했던 아비투스에는 성, 원수를 포함한 사랑, 부와 나눔, 인내와 분노, 진실을 말하기 등이 포함됐고, 이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3년 이상의 학습 과정이 필요했다(255쪽).

보이지 않는 누룩이 반죽 전체에 은밀히 영향을 끼치듯, 하나님나라의 위대함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발효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외적 성장을 위한 조급증을 따라가는 대신 성품과 공동체적 아비투스를 형성하는 데 집중했고, 이는 외부인들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콘스탄티누스 시대 이후 기독교는 조급해졌다. 기독교가 공인되고 마침내 제국을 얻게 되자, 다시 잃을 것이 두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아비투스를 형성했던 인내는, 마치 <회심의 변질>에서 회심이 그러했던 것처럼 변질됐다. 체제 유지와 성장·팽창 때문에 조급해졌기 때문이다. 이는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간직해 온 잘못된 유산이기도 하다.
교회의 '처음 행위'를 회복할 절호의 기회

팬데믹 상황에서 교회의 위축이 심상치 않다. 코로나 장기화로 교회들은 휘청거리고 있고, 일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를 교회 탄압으로 규정하고 예배를 강행하다가 집단감염으로 지탄 대상이 되고 말았다. 교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 대다수도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밴드 동물원의 노래 '혜화동'의 가사 일부다. 우리는 그동안 교회가 위축되고 있는 원인을 엉뚱한 데서 찾아 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앨런 크라이더의 이 책은 그동안 우리가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교회의 소중한 유산이 무엇인지 보여 준다. 아울러 우리에게 움켜쥔 손을 펴고 버려야 할 잘못된 유산을 버리라고 통렬하게 조언한다.

이 조언은 부담스럽다. 하지만 교회가 축소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돌아보고 돌이켜, 초기 교회가 보여 준 '처음 행위(아비투스)'를 회복할 절호의 기회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계 2:5) 전염병의 시대, 교회가 무엇을 놓치고 살아왔는지 궁금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본보 제휴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2년 9월 26일, 월 3:41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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