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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경제
 
어이 없는 일본 언론 보도, 윤석열 정부 이건 아니다
[김종성의 히,스토리] 강제징용 대납 방식의 위험성


▲ 23일 일본 <교도통신>은 '한국 재단 대납 방안이 주축, 일한 징용공 해결을 위해 본격 협의'라고 보도했다. ⓒ 야후 재팬

(서울=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 강제징용(강제동원)과 관련해 한일 정부가 본격 합의에 들어갔다는 보도가 나왔다. 23일 일본 <교도통신>에 실린 '한국 재단 대납 방안이 주축, 일한 징용공 해결을 위해 본격 협의'라는 기사는 복수의 외교 소식통을 근거로 한국 측 재단이 배상금을 대신 지급하는 방안이 본격 논의되기 시작됐다고 전했다.

<교도통신>은 두 정부가 11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을 통해 협의를 가속화시킬 것이며 빠르면 연말 안에 결말을 지을 계획을 갖고 있다고 알렸다. 그러면서 "일본 기업에 실해(實害)가 생기지 않도록 한국 정부의 책임 있는 대응을 요구"하는 일본 정부의 입장을 실었다. 관련 보도에 대해 한국 정부는 아직 결정된 게 없다는 입장이다.

보도에 언급된 재단은 행정안전부가 관리하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다. 한국 측이 재단에 기금을 내면 재단이 피해자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는 것이 <교도통신> 보도의 요점이다.

<교도통신>은 '배상금'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사과와 배상을 받고자 하는 피해자들을 달랠 목적으로 이런 명목으로 지급하는 방안이 두 정부 사이에서 고려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가해자인 미쓰비시나 일본제철 등이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법적 제3자인 한국 재단이 배상금 명목의 금전을 지급한다고 해서 가해자가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했거나 이행했다고 볼 수는 없다.

기시다 일본 내각은 윤석열 정부를 상대로 '일본 기업에 실질적 손해가 생기지 않도록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위 방안이 가해 기업과 사실상 무관한 것임을 보여준다. 가해자와 무관하게 지급되는 제3자의 돈을 배상금이라 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위로금이나 지원금으로 불려야 한다. 위의 배상금은 실질적으로 배상금과 무관한 금전이다.

지금 상황이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은 "한국 정부의 책임 있는 대응을 요구"하는 쪽으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다는 위 보도에서도 느낄 수 있다. 가해자가 아닌 법적 제3자의 책임 있는 대응을 관철시키는 쪽으로 진행되고 있으니, 상식을 벗어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런 방식이 관철되면 결국은 한국인들이 배상의 주체가 되는 이상한 모양새가 된다. 한국 기업이 기금을 조성하건 한국 정부가 돈을 보태건 간에, 한국 정부 산하의 재단이 배상금을 지급하게 되면 결국에는 한국인들이 강제징용 전쟁범죄를 저질렀다는 말이 된다. 일본이 저지른 제국주의 침략범죄를 한국이 대신 떠안고 은폐해주는 셈이다.

진실된 사과와 진심 어린 반성 요구하는 피해자들


▲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로 전범기업 상대 소송을 진행 중이던 김옥순 할머니의 안치식이 21일 오전 전북 군산승화원에서 엄수되고 있다. ⓒ 연합뉴스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범죄를 단죄해야 하는 것은 그것이 과거를 청산하는 효과도 있지만 무엇보다 미래의 불행을 예방하는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욱일승천하는 일본 군사력이 향후 또다시 한반도를 향하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일본 침략범죄를 단죄하는 일은 필수적이다.

일본 기업과 정부가 사과하고 배상하는 모습은 일본 내 평화세력의 발언권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이는 극우세력이 일본을 위험한 방향으로 몰고가는 것을 어느 정도 견제하는 효과도 있다. 이런 점을 무시한 채 한국 측이 배상금을 지급하겠다고 나서면, 강제징용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일본의 재침략을 예방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한국 정부나 한국 국민들이 피해자나 유족에게 지원금이나 성금을 지급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한국 정부 산하 재단이 배상금을 지급하는 것은 별개 차원의 문제다. 한국이 배상 책임을 떠안는 것은 제국주의 일본이 잘못한 게 없음을 인정해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대납 방식이 초래하게 될 또 다른 문제점은 피해자들의 한을 강제로 눌러버리는 결과를 초래하리라는 점이다. 지난 16일 93세 나이로 별세한 강제징용 피해자 김옥순 할머니의 양자인 민덕기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진실된 사과와 진심 어린 반성을 강력하게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전범기업 후지코시를 상대로 서울고등법원에서 승소한 김옥순 할머니의 재판은 3년 8개월째 대법원에 묶여 있다. 피해자나 유족들이 시간과 돈을 쓰면서 이런 기나긴 소송을 벌이는 것은 전범기업이 사과하고 배상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다. 민덕기씨의 발언에서도 나타나듯 돈을 받아내는 것이 궁극적 목적은 아니다.

그런데 대납 방식으로 문제를 봉합하게 되면, 전범기업들이 고개를 숙일 일이 없어지게 된다. 피해자들의 한을 풀 기회를 정부가 나서서 막는 모양새가 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덮게 되면, 강제징용 사건을 맡은 재판부들이 위축될 수 있음은 물론이고, 피해자와 국민들이 그동안 진행해온 기나긴 사법투쟁까지 함께 무의미해지게 된다.

2018년에 대법원에서 나온 승소 판결은 1945년 해방 이후로 피해자들이 한일 양국 법원과 정부를 꾸준히 두드린 결과물이다. 한국 국민들과 양심 있는 일본인들이 응원을 보낸 결과이기도 하다. <교도통신>에 보도된 방안은 이런 노력들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지금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일


▲ 윤석열 대통령이 6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이 방안이 어처구니없는 것이라는 점은 졸속 합의라는 평가를 받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와 비교해 봐도 느낄 수 있다. 위안부 합의 때의 위로금은 일본 정부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교도통신>에 보도된 방안대로라면 한국 측이 돈을 지급해야 한다. 설령 지급 명목을 배상금으로 한다 해도, 일본 정부나 일본 기업에서 금전이 나오지 않는다면 2015년 위안부 합의보다 못하다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외국인 피해자들의 사례와 비교해봐도 어처구니없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미쓰비시는 미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는 2015년에 사과했고, 중국인 피해자들에게는 2016년에 사과하고 금전을 지급했다. 또 일본 정부는 대만인 피해자들이 1945년 이전의 명목 화폐가치로 강제징용 월급을 받을 때에 물가상승분을 고려한 웃돈까지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1993년에 총리 명의의 입장 표명을 밝힌 일이 있다.

미국·대만·중국 피해자들에게 이런 자세를 보인 일본 측이 유독 한국인 피해자들만 외면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교도통신>에 보도된 대로 윤석열 정부가 합의해준다면, 한국인 피해자들을 외면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를 한국 정부가 거드는 격이 된다.

지금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일본 측이 한국인 피해자들을 공평하게 대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 전범기업을 뒤로 물린 채 한국 재단을 앞세워 대신 지급하도록 하는 것은 한국 정부가 앞장서서 문제 해결을 가로막는 꼴이 되고 만다.

<교도통신>에 보도된 대로 합의를 해줄 경우에 생기게 될 또 다른 위험성은 이것이 향후 나쁜 선례가 되리라는 점이다. 1965년 한일협정이나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처럼 일본이 면피를 목적으로 두고두고 거론할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1965년 협정은 식민지배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위안부 합의는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그렇지만 일본 정부나 기업은 피해자들이 문제 해결을 촉구할 때마다 이 두 가지를 거론하고 있다. 이것들로 인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문제가 종결됐다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강제징용과 관련해 엉뚱한 합의를 해주게 되면, 앞으로 일본 측은 두고두고 이 일을 거론할 수밖에 없다.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질 때마다 윤석열 정부와의 합의를 거론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런 의미에서도, 한국 재단이 대납하는 방안이 합의돼서는 안 된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2년 10월 25일, 화 10:38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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