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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경제
 
느닷없는 '자유민주주의' 끼워넣기, 이것 때문인가
[아이들은 나의 스승] 보편적인 '민주주의' 지우기... 건국절 앞세운 MB정부 시즌2


▲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지난 9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및 특수교육 교육과정 개정안 행정예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서울=오마이뉴스) 서부원 기자 = 중고등학교의 사회와 한국사 교과서에서 '민주주의' 앞에 '자유'가 수식어처럼 붙게 됐다. 앞으로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로 고쳐 불러야 할 판이다. 나아가 전에 없던 문구까지 추가될 예정이다. 예컨대, 고등학교 한국사 성취기준에 명시된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이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으로 바뀌게 된다.

지난 9일,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가 명시된 헌법 전문과 헌법재판소 결정문, 역대 교육과정의 사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정"이라며 교과서 내용 수정의 취지를 설명했다. 22번이나 '자유'를 외친 대통령의 UN 연설에 대한 교육부의 응답인 셈이다.

"선생님, 대체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차이가 뭐예요?"
"민주주의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식의 정의가 자유민주주의다."

느닷없는 한 아이의 질문에 농담 삼아 대답했다. 지난 6개월간 대통령이 보여준 모습으로 미루어 아예 틀린 말도 아닌 성싶다. 대통령의 인터뷰와 연설 등을 일일이 헤아려보진 않았지만, 전가의 보도처럼 되뇐 '자유'에 견줘 보면 '민주주의'를 언급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민주주의의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무던히도 애써 왔는데, 이를 모르지 않을 교육부는 되레 훼방을 놓는 형국이다. 마치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대립하는 개념인 양 왜곡된 인식이 퍼지고 있다. 교육부는 앞선 아이들의 질문에 뭐라고 답할 텐가.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차이가 뭔가요?"

지금도 민주주의의 반대말이 뭐냐고 물으면, 공산주의라고 답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이는 6.25 전쟁과 분단의 모순이 가져온 완고한 편견일 뿐, 학문적 기준을 떠나 상식적으로도 맞지 않는다. 정치적 개념인 민주주의와 경제적 개념인 공산주의를 동등 비교하는 게 가당키나 한가.

일본을 거쳐 우리말화한 '주의'라는 단어가 혼선을 빚고 있지만,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개념이 등장한 영미권에서는 둘의 차이가 확연하다. 민주주의는 'Democracy'고, 공산주의는 'Communism'이다. 둘을 반대말로 상정하는 건, 마치 '정치'의 반대말을 '반정치'가 아닌, '경제'라고 답하는 것과 같다.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의 공식 명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잖아요. 공산주의 국가가 민주주의 국가인 양 가장하고 있는 거잖아요. 이야말로 민주주의의 반대말이 공산주의라는 방증이 아닐까요?"

아이들로부터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반론을 마주할 때는 아직도 갈 길이 멀구나 싶다. 현재 북한이 민주주의 체제가 아님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공산주의의 반대말이라는 근거가 될 순 없다. 북한은 공산주의를 표방해서가 아니라 권력을 세습하고 주민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독재 체제라서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곧, 민주주의의 반대말을 굳이 대라면 독재 체제라고 해야 옳다. 공산당이 집권하든, 민주주의 정당이 집권하든, 권력이 인권을 보장하지 않고 공권력에 의존해 권위주의적 통치를 일삼는다면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없다. 독재 국가인 북한을 비난하기에 앞서 과연 지금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라고 당당히 부를 수 있는지부터 성찰해야 하지 않을까.

대한민국을 민주주의 국가라고 답하는 건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정의일 뿐이다. 아이들조차 북한을 거울상으로 삼은 탓이다. 우리 정부의 무능을 비판할라치면, 어김없이 '종북 좌파' 운운하며 북한으로 가라고 대꾸한다. '일베'의 막무가내식 대응이 아이들 사이에 가랑비에 옷 젖듯 퍼진 결과다.

자유민주주의 강조한 정부 보며 떠오른 장면 하나


▲ 중견기업인의날 격려사 하는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전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제8회 중견기업인의 날 기념식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뿌리 깊은 분단의 모순 속에 맹목적인 혐오를 극복하기 위해 교사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땀을 흘려 왔다. '민주시민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수업 자료를 개발했고, 자발적 연수를 통해 다른 교사들과 공유했다. 일상생활 속에서 민주주의가 구현될 수 있도록 교육했고 실천했다.

그런데, 정부가 격려는 못 할망정 민주시민교육을 부정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 9월, 교육부의 직제 개편으로 민주시민교육과가 전격 폐지된 것이다. 체육예술교육지원팀과 함께 인성체육예술교육과로 통합됐다. 부서 명칭만 놓고 보면, 정부가 민주시민교육을 인성교육 차원으로 인식하는 듯하다. 결국 지역 교육청에서도 민주시민교육과가 도미노처럼 문을 닫았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정부는 출범 당시부터 '빅 픽처'를 그리고 있었던 셈이다. 민주시민교육과 폐지의 다음 수순이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는 일이었다. 아이들은 지금껏 민주시민교육을 통해 민주주의를 배웠다면, 이제 인성체육예술교육을 통해 자유민주주의를 배우게 됐다.

민주주의의 반대말을 독재 체제라고, 공산주의의 반대말을 자본주의라고 분명하게 답하는 아이들이 시나브로 느는 게 두려웠던 걸까. 굳이 의미조차 모호한 자유민주주의를 교과서에 욱여넣으려는 의도를 당최 모르겠다. 아이들을 볼모로 낡은 이념 갈등을 부추겨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술책이라면 너무 천박하지 않나.

정부가 느닷없이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고 나섰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장면이 하나 있다. 부산항에 정박한 배의 갑판 위에서 환송 나온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앳된 국군 장병들의 모습을 담은 흑백 사진. 그들은 미국의 요청에 따라 전쟁이 한창이었던 베트남의 정글로 떠나는 청년들이었다.

남의 나라 전쟁에 애꿎은 군인들 수만 명을 파병하며 내세운 명분이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였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영원한 우방 미국을 도와 선량한 베트남 국민을 공산주의의 마수에서 벗어나도록 목숨 바쳐 싸우자고 부추겼다. 그것은 우리 국민을 기만한 것이었고, 5천 명이 넘는 청춘들이 타국에서 스러졌다. 물론, 국군에 의해 희생된 베트남 국민도 부지기수다.

우리의 대규모 파병은 '돈' 때문이었고, 베트남 국민 다수가 지지한 공산주의 세력이 끝내 미국을 패퇴시켰다는 건 이제 삼척동자도 아는 바다. 참전군인과 베트남 국민은 엄청난 희생을 치렀고 여전히 전쟁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지만, 당시 정권은 해될 게 없었다. 그로 인해 경제가 성장했고, '반공'이 권력 유지를 위한 전가의 보도로 자리매김했다.

윤석열 정권이 MB 시즌2라 불리는 이유

민주주의를 지우고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운 게 여전히 반공을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삼겠다는 의도라면 억측일까. 얼마 전 대통령은 "북을 따르는 주사파는 반헌법 세력"이라고 규정하며, "협치의 대상이 아니"라고 명토 박았다.

다시 우리 국민을 투철한 반공정신으로 무장시키려면 어릴 적 학교 교육부터 손봐야 한다고 여긴 듯하다. 민주주의라는 보편적인 용어보다, 자연스럽게 반공을 떠올리게 되는 자유민주주의가 교과서에 더 적합하다고 본 걸까. 교육과정 개편, 교육 격차 해소, 대학 교육 개혁 등 그러잖아도 할 일이 태산인 교육부가 총대를 메고 자유민주주의를 부르대는 모습이 처연하다.

이명박 정권 때는 '건국절 논란'으로 역사학계와 학교 교육을 벌집 쑤시듯 해놓더니,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때아닌 '자유민주주의 논란'으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실상 두 논란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 앞에 굳이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이라는 표현을 삽입한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윤석열 정권이 '이명박 정권 시즌 2'라고 불리는 이유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2년 11월 14일, 월 11:19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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