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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경제
 
이태원 생존자의 죽음... 모두 무너져내리는 기분입니다
[이태원 참사 생존자 이야기] 다시 병원으로 간 이유... 괜찮은 척하지만 괜찮지 않은 나날들

(글을 쓴 시민기자는 지난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던 현장에 있었습니다. 참사의 생존자인 그는, 지난 11월 2일 한 포털사이트 커뮤니티에 참사 이후 자신이 받은 상담 기록을 일기와 대화 형태로 정리해 올렸습니다. 기자의 글에서 나오는 '선생님'은 상담자 선생님을 말합니다. 이태원 참사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독자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그 기록을 그대로 옮깁니다. 그간 '水'라는 필명으로 글을 썼으나, 이제는 실명을 밝히고 기사를 연재합니다. 편집자말)


▲ 이태원 압사 참사가 발생한 지 열흘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수많은 시민들이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며 두고 간 국화꽃과 추모 메시지가 놓여있다. ⓒ 유성호

저 스스로를 속여왔습니다

1.

선생님 그간 잘 지내셨나요? 오랜만입니다.

늘 '선생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었는데, 안녕이라는 단어가 낯설 정도로 저는 사실 그간 안녕하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연재글을 쓰고 펜을 내려놓은 지 4주 차에 접어들었어요. 4주간 저는 꽁꽁 숨어 저 스스로를 보호하느라 바빴습니다.

아마도 이 글을 가까운 친구들이 읽으면 멀쩡했는데 왜 저러느냐고 다소 의아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왜냐면 저는 정말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에 돌아온 것처럼 그들을 잘도 속였습니다. 그리고 저 스스로도 잘 속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참사 이후 한 달이 거진 다 돼 가던 즈음에는, 왠지 모르게 내가 계속 힘들어하면 안 될 거 같다는 강박이 생겨버렸습니다. 친구들에게 '내가 얼마나 힘드냐면' 하고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더 하게 된다면 아마 그들을 잃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중생활을 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일상 메시지를 하고, 개그 짤을 보내거나 '오늘 뭐 먹었는데 맛있었더라' '이거 너무 웃기지 않니' 하며 시시콜콜한 잡담을 서로 주고받았고, 그렇게 친구들을 안심시키고 나를 안심시켰습니다.

낮의 생활은 그럭저럭 할 만 했어요. 바깥 구경도 하고, 일도 열심히 했고, 친구들과 대화도 나눴고. 재미있는 것도 보면서 집중할 대상이 있을 때는 일상으로 돌아왔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귀가하는 것부터가 시작이었지요.

선생님, 밤은 왜 이렇게 긴 걸까요. 밤이 너무 길어요. 밤이 너무너무 길어서, 두렵고 무섭습니다. 선생님이 처방해주신 안정제와 잠을 잘 수 있는 약을 복용한 지 3주가 넘었지만, 사실 약이 몸에 받지 않았습니다.

약을 먹어도 잠을 자지 못하고, 약을 먹어도 심장이 빠르게 뛰어 항상 온몸이 긴장 상태인 것이 느껴지며, 손과 발에는 늘 땀이 흥건하게 나서 양말을 두 개씩 챙겨 다닐 정도였어요. 그리고 이명이 심해졌지요.

이때 느낀 바는 딱 하나, 약도 통하지 않는구나. 나의 고통이 약의 효능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너무 컸습니다. 약도 통하지 않는다면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을 수는 있을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닐까. 약에 대한 기대마저 사라져버린 나는, 그렇게 스스로 약을 먹는 일을 중단했습니다.

2.

얼마 전 이런 연락을 받았습니다.

작가 : "초롱님 안녕하세요. OOO방송국의 OOO 프로그램 작가입니다. 이번 주 일요일 보도 예정이라 인터뷰 일정이 촉박해서, 늦은 밤이지만, 이번 주 인터뷰 가능하신지 여쭤봅니다."

나 : "안녕하세요 김초롱입니다. 어떤 내용인지 정확히 감이 안 와서... 내용을 들을 수 있을까요?"

작가 : "선생님께서 연재하시는 글에 심리치료를 받은 경험이 녹아있었는데, 치료를 받으면서 느꼈던 점들,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에게 심리치료가 어떤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는지 등등 치료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자 합니다. 얼굴 나오는 것 원치 않으시면 안 나오게 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나 : "너무 도와드리고 싶은데, 지금 언론 인터뷰 요청과 기고하는 글이 많아서 조금 힘든 상태입니다. 그리고 일요일 방송 전에 스케줄도 어려울 듯도 하고요. 내일부터는 예정된 치료와 상담 일정을 해야 하는 스케줄이 많습니다."

작가 : "네, 요즘 많이 바쁘실 것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저희 기사에서 가장 많은 분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주실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인터뷰 요청을 하게 된 것입니다. 저희가 내일이나 금요일 편하신 장소와 시간에 맞춰 짧게 10분 정도만 인터뷰 진행하는 것도 혹시 힘드실까요? 편하신 장소로 찾아뵙겠습니다."

나 : "네. 어떤 말씀인지 너무 알지만, 제가 조금 힘드네요. 언론 노출이 너무 많은 것이 현재로서 제게 칼이 돼 돌아올까 무서운 마음이 더 큽니다. 지금 제게는 저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 중요한 때인 것 같아요. 서면 인터뷰 정도는 해볼 수 있겠으나, 오디오나 영상 인터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음에 더 좋은 기회가 있다면 그때 만나 뵙겠습니다."

그다음 날 그녀는 서면 인터뷰는 인터뷰 전달력이 떨어져서, 10분 정도만 할애해서 인터뷰를 해달라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다음 날 아침, 그녀는 다시 한 번 인터뷰 요청을 했습니다. 아주 짧게, 성가시지 않게 금방 처리할 테니 제발 인터뷰에 응해달라는 문자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문자를 보고 다시 연락드립니다. 누군가를 취재원으로 다루고 싶을 때는 조금 더 천천히 접근하고 다가와 주셔야 합니다... 작가님의 요청을 문자로 읽으면, '일요일에 보도가 잡혀 있어서 취재를 빨리 해야 하고, 그걸 응해줬으면 좋겠다'라는 식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저를 위하는 게 아니라, 보도가 중요하다고 판단됩니다.

의도는 그렇지 않았다고 하시겠지만, 의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받아들이기에 그렇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제가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을 용기 내어 힘겹게 하나씩 수락하는 이유는, 기자분들과 피디분들이 저보다 더 미안해하며 본인들이 죄인인 것처럼 정성스럽게, 아주 조심히 다가와 주시는 모습이 마음을 울렸기 때문이에요. 저 또한 '저 죄 없는 분들이 내가 뭐라고 저렇게 머리를 숙여 요청하는가'에 대해 생각하기 때문에, 용기 내어 그분들을 돕고 싶었습니다. 이런 식의 접근과 요청은 저를 힘들게 할 뿐만 아니라, 한편으로는 무례하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저는 이 문자를 답장으로 보내고, 이내 곧 후회를 했습니다. 사과 전화를 한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 앳되었고, 짐작건대 프로그램의 막내 작가인 스무살 초반의 사회 초년생 같았어요. 저 또한 방송 일을 해온 터라 막내작가는 그런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너그럽게 대해줘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내가 왜 우는 것일까. 모난 말을 타인에게 한 것이 되려 내게 상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그 참사가 내게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도 겪지 않았을 텐데' 하는 전체적인 후회와, 자괴감, 과거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졌습니다.

제가 왜 이러는 걸까요

3.

약도 먹지 않고, 선생님도 찾아가지 않고 오로지 일만 하며 나를 혹사시켰습니다.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증으로 손발이 다 땀으로 축축히 젖어갈 정도였지만, 잠은 겨우 하루에 두 시간 남짓, 그것도 반은 의식이 깨어있는 상태로 자는 둥 마는 둥.

월드컵이 시작됐고, 월드컵 기운에 열심히 친구들 곁에서 응원도 하고 소리도 지르며 한껏 신나 보이는 듯한 2주를 보냈습니다.

'2002년생인 아이가, 2002년 월드컵도 못보고 그에 버금가게 재밌는 올해 월드컵도
못 봤네요. 우리 아이는 월드컵을 두 번 다 못 봤네요. 올해는 정말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희생자 부모님의 이야기를 전해듣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주변에게 드러내지 않고, 그저 친구들에게 기댔습니다.

몇몇 친구들이 2박 3일간 우리 집에서 같이 자주던 날, 저는 너무 편안하게 정말 오랜만에 즐거운 주말을 보냈지요. 일요일 밤까지 자고 간다던 친구가 갑자기 '그냥 집에 가봐야겠다'며 집에 갈 채비를 하는데, 이제껏 느껴본 적 없는 배신감과 서러움, 서운함, 원망이 동시에 들기 시작했어요.

아주 유치한 어린애가 입이 툭 내밀고 시위를 하듯, 온갖 퉁명스러움과 짜증을 친구에게 다 내다가 '가지마, 응? 안 간다고 그랬잖아. 월요일에 간다며' 하고 붙잡기도 했고요.

선생님, 제가 정말 이런 애가 아니었거든요. 이런 내 모습이 몹시 당황스러웠고, 심지어 친구들이 떠나자 밤새도록 펑펑 울었습니다. 눈물을 훔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어린 아이가 울듯이 끄억끄억 거리며 울었어요.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20년지기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 친구가 말해줬어요.

'초롱아, 친구들이 널 버린 게 아니야. 그냥 모두 집에 돌아간 것뿐이야. 널 버린 게 아니야 그냥 집에 갔어. 괜찮아 친구들은 언제든 또 올 거야. 왜냐하면 버린 게 아니라 집에 간 거니까. 울어도 돼 괜찮아.'

버린 게 아니라 집에 돌아간 것 뿐이라는 말, 아직도, 여전히 가슴 속에서 울렁입니다.

그 사과가 어쩐지 슬펐습니다


▲ 10.29이태원참사 49일 시민추모제가 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출구앞 참사현장 입구 도로에서 유가족과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대통령님께 드리는 6가지 요구사항’이 담긴 서한을 용산 대통령실에 전달하기 위해 행진을 시작한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이종철 대표가 주변에 있는 시민들을 향해 "시민 여러분! 도와주십시오" "저희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를 외치고 있다. ⓒ 권우성

4.

12월 14일,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했던 날, 저는 선생님을 만나러 갔습니다. 10.29 참사 생존자 중 한 명이 하늘로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날이었어요. 이 소식을 뉴스로 접한 후, 저는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을 마주했습니다. 다시 원점입니다. 그간 애쓰고 노력한 것이 모두 무너져내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슬프다'라는 표현으로는 설명할 수 없어요. '아…' 하면서 동시에 제가 힘들게 애써 잡고 있던 마음의 힘이 탁 풀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이것은 혼자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음을 직감했고,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지요.

'지금 마음이 어떠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 친구의 마음을 너무나도 알 것 같아서, 슬프고 힘들어요. 제가 살아있는 이유는 아마도 어른이어서였을 거예요. 외부충격을 버틸 수 있는 세월의 나이테가 있어서. 어린 친구였어요.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이의 죽음을 나의 죽음인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린 친구의 안타까운 기사 밑에 이런 댓글이 달렸습니다.

"이런게 진짜 PTSD지, 진짜 힘들면 내년에 또 이태원에 갈 거라는 개소리는 못 할 거다. 자칭 생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인터뷰에서 그런 소리를 했길래 써봅니다."

난생처음으로 실명을 밝히고, 저의 SNS 아이디를 공개하고 답글을 달았습니다.

"안녕하세요 글쓴이님, 언급하신 인터뷰를 한 당사자입니다. '내년에도 이태원에 갈 것이다'라는 말은 비난받을 내용이 아니기에 직접 이렇게 댓글을 답니다. 자칭 생존자라고 하는 부분은 사실과 다릅니다. '살아남은 제가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어요 선생님, 이런 저도 생존자인가요?'라고 묻는 저의 질문에 '살아남은 우리 모두가 대한민국 생존자입니다'라는 답변의 말을 본따, 제가 연재하기 시작한 글의 제목이 '선생님,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이기 때문입니다.

'내년에도 이태원에 갈 겁니다'라는 말은, 인생을 살면서 어떤 고난이 닥쳐와도 반드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참사의 원인은 이태원과 핼러윈이 아니며, 그들은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모든 비난과 혐오가 이태원 상인들과 핼러윈 파티로 향하는지 아직도 납득할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삶의 터전이자, 일상인 공간입니다. 제가 말하고자 했던 건, 그들의 일상을 지켜주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일상을 지키는 것과 같다는 겁니다.

내년에도 할로윈은 계속 되어야 하고 앞으로도 저는 이태원을, 그리고 할로윈을 더욱 사랑할 겁니다. 짧은 요약기사로 인해 오해하시고 잘못 받아들이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의 댓글은 저를 두 번 죽이고 무척이나 속상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런 고통이 저를 흔들리게 내버려두지 않을 겁니다. 잘 흘려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쓰고 있습니다. 제가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 어떻게 삶을 이어가려고 노력하는지는 연재 중인 글을 한번 읽어봐주시면 이해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더군다나 언급하신 인터뷰 전문의 주제는 '우리 좀 더 다정해지면 안 될까요'였습니다. 글쓴이님께 다정한 안부 인사를 건넵니다. 추운 겨울, 건강하세요."

1시간 뒤, 저는 사과 메시지를 받았고, 그의 진심 어린 사과가 어쩐지 저는 슬펐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세상을, 타인을, 내가 겪지 않은 사건을 단면적으로만 판단하는가. 과연 몇 가지의 글자로, 그 사건을 제대로 느낄 수는 있는 걸까. 그것이 설령 대한민국 최고의 일간지, 주간지, 언론사가 쓰는 글이라 할지라도.

저는 이날부터, 다시 약을 다시 먹기 시작했습니다. 약을 스스로 끊은 지 4주만의 일입니다.


▲ 15일 오후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부근 이태원 입구에 마련된 '10.29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한 조문객이 유가족들이 모셔 놓은 영정사진을 천천히 살펴보고 있다. ⓒ 권우성

5.

선생님, 나는 그들이 그립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그들이 그리운 지는 오래 됐어요. 그리워 할 대상이 없는데 그리운 느낌이 뭔지 아실까요. 그래서 나는 그 대상을 좀 더 선명하고 뚜렷하게 보고 싶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었어요.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들의 지나온 삶을 다 알고 싶었어요.
그렇게 구체적으로 한 명 한 명을 기리고 기억하고 보내고 싶었습니다.
158명이 참사로 한꺼번에 하늘로 간 것이 아니라,
1명이 참사로 하늘로 간 사건이 158번 일어난 것이라고.
우리는 그렇게 158명을 하나하나 마주하고
잘가라고 인사하고, 껴안아 주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참사 희생자들의 이름을 공개하는 것에 갑론을박이 벌어지며 이슈가 되는 것을 보고, 저는 그때 생존자들과 유족들이 그리워졌습니다. 얼마나 외로울까요. 얼마나 고독하실까요.

이 글이 닿을 수만 있다면 전하고 싶어요. 여기에 있습니다.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고 싶어서 그들의 이름을 궁금해하고, 한 명 한 명의 얼굴이 그리워 그들의 살아생전 모습과 역사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여기에 있다고요.

오늘(지난 12월 16일)은 10.29 참사 49재 날입니다. 영혼들이 현실을 떠돌다가 49일째에 정말로 하늘로 간다는 날. 어쩌면 마지막 인사를 하러 가는 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태원에는 49재를 맞아 유가족들이 참사 희생자의 이름과 사진을 모셔둔 분향소를 열었다고 해요. 저는 이 글을 마치고 그곳으로 가볼 생각이에요. '이름을 불러줄 때 비로소 존재가 된다'는 시를 가슴에 품고 출발합니다.

죽은 이를 진짜로 죽게 하는 것은 그 사람을 잊어버리는 것이래요. 잊지 않으면 늘 우리 곁에 있는 것이니 잊지 않고 기일마다, 평소에도 매일 생각해주는 것이 그들을 살게 하는 것이라는 말을 굳게 믿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마도, 그들을 기억해주는 것일 겁니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3년 1월 11일, 수 11:07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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