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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문화
 
BTS만큼 소중한 나의 아이돌, 김진숙
평범한 오늘을 사는 시민들의 여전한 고전, 김진숙 <소금꽃나무>

(서울=오마이뉴스) 최문희 기자 = 일하는 사람의 기록을 담은 책을 소개한다. 송곳이 되어 준 작가의 경험과 필자의 지금을 들여다보아 변방에서 안방으로 자리를 넓혀 먹고사는 오늘의 온도를 1℃ 올리고자 한다. [기자말]

여공 생활로 이십 대를 났을 것이다. 내가 1970년대에 태어났다면. 등록금 고지서를 집에 들고 가지 못했던 고교 시절, 걸핏하면 공공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니체 전집과 이상문학전집, 녹색평론사 책들, 문지시인선을 읽으며 철학과 문학을 공부했지만 취업이 더 급했다. 지오디와 크라잉넛, 자우림의 노래를 들으며 리드미컬하게 고3교실에서 자소서를 외웠다.

책은 잠시 덮어 뒀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일의 긴박함이 피부에 더 와닿았다. 서둘러 우울해지지도 않았다. 일의 기쁨과 슬픔을 두루 겪었다. 동일방직과 YH 노조 사태는 내가 사는 시대와 먼일이지 않았다. 지금부터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천년대의 일이다. '탑골공원' 풍의 이미지가 탄생한 시기보다 훨씬 가까운 일이다. 물론 지금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고.

국내 최초의 여성 용접공, 진숙 언니


▲ 국내 최초의 여성 용접공 김진숙. 1970년 후반, 대한조선공사 조선소(지금의 한진중공업)에는 약 100명의 여성 용접공이 국내 최초로 고용됐다. ⓒ 고정미

퇴근 후의 봄날, 저녁의 가로등 아래서 한 페이지씩 숨죽여 <소금꽃나무>를 읽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가 쓴 문장들은 한 톨의 가벼운 묘사도 없는 땀의 결과였기에 허투루 넘길 수 없었다. 김 위원은 "한진중공업(당시 대한조선공사)의 용접공 생활"을 1981년 7월 1일부터 시작"했다고 밝힌다. 이십 대 초반의 나와 그의 이십 대가 합쳐진다. 스물한 살의 여름, 그는 배에 올라 인생의 새 항로를 개척한다.

그로부터 그가 37년 만에 한진중공업에 복직하고 명퇴한 해가 2022년의 일이다. 입사했던 여름에서 새봄이 오기 직전의 겨울로 김 위원은 세월을 풍덩풍덩 건너왔고 견뎌왔다. 2월 25일 복직되셨으니, 명퇴 일주년이 며칠 채 남지 않았다. 그 사이 그의 이름 끄트머리에 따라붙는 '노동운동가' 직함이 고유명사가 되었고 암으로 생의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1986년, 대한조선공사 노조 대의원에 당선되고 대공분실로 끌려가 숱한 고문을 받은 김 위원은 한진중공업 입사 5년 차인 같은 해에 해고된다. 2007년에 나온 <소금꽃나무>에는 그간의 기록이 쓰여 있다. 그는 일찍이 복직 투쟁을 걸고 동료들을 가슴에 묻고, 크레인 위에서 400명의 정리해고를 철회하라며 309일간의 고공 농성 끝에 노사 합의를 이끈다. 시민들이 탄 희망버스가 부산 영도에 끝없이 닿았지만 정작 자신은 복직 명단에 올리지 않았다.

혹자들은 그를 국내 노동운동의 산역사라고 우선 지칭하지만 나는 '국내 최초의 여성 용접공'이라고 표현할 때 더 기쁘다. 여성이라는 두 음절도 뗀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우리 언니, 국내 몇 없는 기술자였는데, 스웩도 넘친다'고 팬심으로 되짚는다.

1970년 후반, 대한조선공사 조선소(지금의 한진중공업)에는 약 100명의 여성 용접공이 국내 최초로 고용됐다. 언니의 도전의식은 남다른 것이자 남을 이롭게 하는 성질의 것이었다. 언니는 청년의 끄트머리를 사는 한 독자의 가슴에 '시대를 앞서간 기술자'로 기억되고 있다.

소금꽃 이야기는 지금 청년들에게도 유효하다


▲ 책 <소금꽃나무> ⓒ 후마니타스

삼십 대 후반에 이르러 <소금꽃나무>를 다시 펼쳤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청년들은 자신을 몰랐으면 좋겠다"며 자신을 더 이상 거론하지 않는 더 나은 미래를 원한다고 했다.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이 졸속으로 처리되고 청년들이 산업현장에서 여전히 목숨을 잃는 지금도 그의 목소리는 유효하다. 언니께는 죄송하지만 자본의 불공정과 '갑질'로 몸과 정신의 피로를 겪는 친구들에게 <소금꽃읽기>를 계속 권하고 싶다. 이 마음조차 팬심일 수도 있지만.

김 위원은 동료의 등짝에 난 땀들을 '소금꽃'으로 비유한다. 영도의 조선회사에 입사하기 전 유년의 기억과 '거북선(배) 만드는' 동료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는 소금꽃 피우는 존재들을 구체화한다. 그의 오랜 선배인 박창수, 김주익 열사의 추모사를 비롯해 곁을 지켰던 동료들과 그이들의 가족들 목소리도 세밀하게 기록한다. 자신이 노동운동을 지속할 수 있게 옆을 지킨 시민들의 모습도 재현한다.

"사실 내 이름 뒤에 '씨'를 붙여서 불러 준 건 야학에서가 처음이었고 나한테 존댓말을 해 주는 최초의 사람들이 야학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야학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그는 자신의 자존감을 '업'시켜 줬던 야학의 존재와 "내 이름은 공순이가 아니라 미경이다"라고 유서를 남겼던 수많은 미경이, 젊은 여성 노동자들의 존재를 복원해낸다. 하청이라는 말 대신 세 음절이 이뤄진 이름들을 선명히 불러 준다.

김 위원은 <전태일 평전>을 읽고 일의 세계와 타인을 자각했다고 밝힌다. "그들과 난 다르다고 끊임없이 주문을 외우던" 나날을 지샜던 그의 반성과 회사원이 되어 어려운 시절에서 벗어날 거라며 '노동'이라는 말에 거북함을 느꼈던 나의 반성이 다시 포개어진다. 억압이라는 족쇄는 느슨해지고 대신 공감의 자리가 태어난다.

하여 그에게 <전태일 평전>이 정신을 깨우는 도끼였다면 나에게는 <소금꽃나무>가 타인과 노동을 생각하는 나침반이 되었다. 자본이 교묘하게 당신이 불평등을 겪는 이유가 당신 능력의 부재에서 비롯됐다고 설득할 때, 이 책은 그 이면을 바라보라며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보는 시야를 넓히는 명징한 도끼가 되어 준다.

"자본의 발밑에 짓밟혀 파들파들 떨고 있는 민들레를 한 번 더 짓밟는 게 아니라 그 발을 치워 줘야 합니다. 민들레에게 너희도 시험 쳐서 소나무가 되라고 요구할 게 아니라 민들레에게 숨 쉬고 씨앗 흩날릴 영토와 햇빛을 나눠 줘야 합니다. 민들레가 죽어가는 땅에선 어떤 나무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밥그릇 싸움이 같은 밥을 놓고 싸우는 굴레라는 점을 인정할 때, 정규직의 미래가 비정규직이라는 우리 사회의 고용 현실임을 자각할 때, 이 책은 청년에게도 소금과 같은 감각과 '함께'의 통감을 건네준다. <소금꽃나무>는 청계피복 노동자 등 6월 민주항쟁의 주역에 가려진 소외된 노동의 자리를 비춰주는, 평범한 오늘을 사는 시민들의 여전한 고전이다.

외진 마음도 바다의 미래를 꿈꿀 수 있다

고백하건대 한 대학에서 열린 김진숙 위원의 강연에 참여한 적 있다. 모처럼 연차를 낸 평일, 대학 강당의 입구에 그가 나타나자 가슴이 뛰었다. 대학 교정에 가본 일도 처음이었다. 그가 마이크를 들고 강당에 서자 환한 아우라가 가득했다. '나 연예인 본 걸까?' 지금으로 치면 BTS쯤 본 듯한 설렘이 일었던 20대 초반 어느 오후의 일이다.

김진숙 위원의 강연은 열아홉에 일을 시작하고 직장생활 3년 차가 된 한 청년의 가슴에 불을 붙였다. 하지만 당시 옆자리에 앉았던 또래 청년들의 대화를 기억한다. 어디 호프집에서 몇 시까지 만나자, 어디서 미팅할 거냐, 그 교수 어떻더라는 조크가 난무했다. 강연이 시작된 지 십오 분 정도 흘렀는데도 떠드는 분위기에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대학생이 아닌 청년 노동자가 모인 자리에서는 달랐을까.

해맑은 말장난과 웃음소리가 귀에 섞여 들어왔다. 지금이야 그럴 수 있지 할 만큼 마음의 여유가 생겼지만, 당시엔 홀로 '섬'이란 생각을 은연중에 했던 것 같다. 강연에 온 대부분이 대학생으로 짐작되었기 때문이다.

지도하는 교수와 일반인도 더러 있었다. 강연이 시작되고 수십 분이 지나서야 집중하는 분위기로 흘러갔지만 강연자에 대한 예의가 없다는 짐작에 화가 조금 났던 마음이 선명하다. 떠드는 분위기에도 언니는 침착하게 강연을 이어가셨다.

그로부터 풍덩풍덩 세월이 흘러 삼십 대가 되고, 번아웃을 자진모리장단 두드리듯 겪고, 달이 뜬 밤마다 퇴근하는 날들을 흘러보냈다. 어느 휴일 봄날, 수개월이 지나서야 그가 37년 만에 복직하고 명퇴한 2월 25일의 발언 영상을 마주했다. 나는 언니의 복직 기사를 놓쳤다.


▲ 명예 복직 및 퇴직 행사 당시 김진숙 위원의 발언문을 필사한 사진 ⓒ 최문희

옛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정문 문턱을 수십 년 만에 넘은 그가 울울창창하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날 새벽까지 깨어 있었다. 베테랑이 되기엔 어린 스물두 살, 대학생도 아니었던 내게 우상이었던 언니가 화면에서 소금꽃을 참고 있었다.

"여러분들은 미래로 가십시오. 더 이상 울지 않고, 더 이상 죽지 않는 그리고 더 이상 갈라서지 않는 이 단결의 광장이 (중략) 꽉 차는 미래로 거침없이 당당하게 가십시오."

당당하라고 말하는 언니. 목울대에 불꽃이 튀듯이 홧홧해지는데, 마지막 발언 대목 "끝까지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이라고 읊는 대목에선 투명한 눈의 결정이 맺혀서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오래오래 건강하셔야 해요. 미래는 같이 가고요."

2월의 길목에서 언니의 이름을 불러 본다. 그는 나의 아이돌이다. (<코리아위클리> 제휴 <오마이뉴스>)
 
 

올려짐: 2023년 3월 13일, 월 4:35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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