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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
 
한일 정부 꾸짖은 일본 시민단체 "나쁜 결정했다"
[인터뷰] 일본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 대표 히다 유이치


▲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한일 확대 정상회담을 마친 뒤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서울=오마이뉴스) 민병래 기자 = 17일 윤석열 대통령이 한·일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왔다. 우려했던 대로 그는 굴욕외교 그 자체를 선보였다.

'제3자 변제 해법'도 큰 문제인데 일본 기업에 대한 구상권 청구는 없다고 기자회견에서 잘라 말하고 일본이 원하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복원도 약속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 국익은 일본의 국익과 제로섬 관계가 아니다. 저는 윈-윈할 수 있는 국익이라 생각한다"면서 "이번 해법 발표로 인해 양국 관계 정상화되고 발전한다면, 먼저 양국의 안보 위기 문제가 거기 대응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관련기사: 우리 대통령의 말인가 "우리 국익은 일본 국익과 배치되지 않아" https://omn.kr/234bv).

이번 정상회담의 결과를 기시다와 일본의 극우는 흐뭇하게 받아들이고 있을 것이다. 강제징용(강제동원) 문제 해결로 지지율이 오르고,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까지 뜻한 대로 되었으니 겹경사인 셈이다. 내친김에 일본은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과 일본군 위안부 합의 이행 등 다양한 요구를 쏟아내고 있다.

일각에서는 북핵 대처를 구실로 독도 인근에서 자위대의 독자적인 군사 활동을 허용하고 독도 영유권에 관해 제 2의 밀약을 맺지 않았을까 우려하는 상황이다(관련기사: 독도는 과연 무사할까 https://omn.kr/235kq).

"한·일 두 나라, UN 결의 정면 위반"

윤 대통령의 방일에 앞서 지난 3월 6일 일본의 시민단체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이하 네트워크)는 한국 정부의 제3자 변제 결정에 항의하는 성명을 발표해 한국과 일본 정부의 태도를 꾸짖고 올바른 역사 인식과 사죄를 촉구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기시다는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계승조차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또 강제 징용공을 "(구)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로 표현함으로써 강제징용 자체를 부정했다. 이런 일본 정부의 태도를 볼 때 네트워크의 성명은 시의적절했고 의미가 컸다. 이 단체의 대표 히다 유이치를 정상회담 전인 3월 14일 아침 줌으로 만나 성명에 담긴 주요 입장을 들어보았다.


▲ 강제동원진상규명네크워크 대표 히다 유이치. 그는 한일플랫폼 운영위원이기도 하다. ⓒ 히다 유이치 제공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 결정은 한국 사법부가 인정한 개인 위자료 청구권을 부정하는 것이다. 또 일본 기업의 사죄나 배상 없이 오직 돈에만 집착하는 해결책이어서 피해자의 존엄성 회복이나 식민주의 극복과는 거리가 멀다."

히다 유이치의 태도는 분명했다. 2018년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불법이고 전범기업이 강제징용과 강제노동을 시킨 것에 대해 배상하라"는 것인데 이를 "한국 정부가 없던 일로 돌리는 나쁜 결정을 했다"는 것이다.

히다 유이치는 일본의 관서 지방인 고베에서 태어나 1978년 고베대학 농학부에서 석사를 받은 후 주로 일본 제국주의 범죄와 재일 조선인의 인권 문제를 연구하고 이를 일본 사회에 알리는 행동을 해왔다. 1991년에 펴낸 <일제하 조선 농민운동>이나 1990년부터 4년간 해마다 간행한 <조선인·중국인 강제노동자료집>도 그런 일환이었다.

그가 대표로 있는 네트워크는 2005년 7월에 결성되어 사무실을 고베청년학생센터에 두고 있다. 네트워크는 한국에서 2004년 2월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자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돼 그해 11월 '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이하 규명위)가 만들어졌을 때 이를 돕고자 만들어졌다.

일본 전국에서 활동하던 시민운동가와 단체들이 모여 네트워크를 결성했고 한국의 정부 기관을 위해 자료 수집, 피해 사례 조사, 유골 소재 확인 등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시절 규명위가 존폐의 기로에 섰을 때는 청와대에 서한을 보내 규명위 존속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런 공이 높이 평가돼 2014년에는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주는 '임종국 상'을 받았다. 물론 이번 일본제철과 미쓰비시 중공업 관련 민사 소송에서도 많은 힘을 보탰다.


▲ 2014년 강제동원진상네트워크는 민족문제연구소로부터 임종국 상을 받았다. ⓒ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히다 유이치는 또 "2005년 말 UN은 '국제인권법과 국제인도법을 위반해 발생한 피해자에 대해 구제하고 배상할 기본 원칙을 총회 결의로 채택했다. 이는 매우 소중한 가치인데 한·일 두 나라가 이를 정면으로 위반했다"는 점을 중요한 문제로 지적했다.

양금덕 할머니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승소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강제 노동을 당했다는 점, 즉 "국제인권법을 심각하게 위반한 범죄의 피해자"였다는 사실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피해자 김성주 할머니는 "15세의 나이에 미쓰비시 중공업의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에서 작두에 부속을 넣고 작업하다 손가락이 잘려 피가 뚝뚝 흐르는데 공장 감독이 잘린 손가락을 하늘로 던지며 비웃었다"라고 증언했다. 어린 소녀가 참 모진 시련을 겪은 것이다.

사실 강제 연행된 조선인이 당한 고통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네트워크가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만든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과 강제노동> 자료에는 다양한 실상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김순길은) 경상남도 생리학 통제 조합 서기로 일하면서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이었다. 1944년 12월 징용 영장을 받자 숨어지냈다. 다음 해 1월 일본인 경찰과 조선인 고등계 형사에 붙잡혀 부산부청 총력과와 미쓰비시 직원에게 넘겨졌다. 바로 다음 날 부산에서 연락선에 태워져 미쓰비시 나가사키 조선소로 끌려갔다. 나가사키 조선소에서 조선공작부 수상유격반원으로 배치되었다. 숙소는 외부와 차단된 채 해군보초가 순시를 했고 헌병들이 늘 감시와 통제를 했다.

징용자들은 3개월 후부터 정해지는 월급 외에도 가족수당, 개근수당, 잔업수당 등 여러 수당을 지급받도록 되어 있었지만 퇴직적립금, 국민저축 등의 명목으로 공제되어 실제로는 거의 현금을 받지 못했다. 1945년 8월 9일 터널 공작용 철제 운반 작업 중 피폭당했다. 지옥 같은 나가사키를 보고 살아서 돌아갈 결심만 굳게 했다. 동료들과 나가사키를 탈출하여 귀국했다.

- 김순길의 피해배상청구소송 1심 판결문(일본 나카사키 지방재판소 1997.12.2.)

히다 유이치가 언급한 국제인권법과 국제인도법은 이 김순길의 사례처럼 강제와 감시 속에서 인간 이하로 취급당하고 월급마저 받지 못했던 착취에 대해 구제와 배상이 당연하고 이를 통해 피해자의 존엄이 회복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기에 양금덕 할머니의 승소는 당연하고 역사적 의미가 컸는데 한·일 두 정부가 이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 2022년에 열린 한인플랫폼 합동회의. 뒷줄 맨 오른쪽이 히다 유이치 대표다. ⓒ 남소연

한편 히다 유이치는 강제노동과 관련한 중요한 사건으로 '나카츠카와 학살 사건'을 꼽았다. 이 사건은 1922년 니가타현 나카츠카와 상류의 수력발전소 공사 현장에서 조선인 노동자 600명이 중노동에 시달리다 적어도 12명이 사망 혹은 부상 당한 일을 말한다.

주로 경상남도 지방에서 모집되어 온 조선인 노동자의 상태는 비참했다. 새벽 4시부터 저녁 8~9시까지 몸을 씻을 틈도 없이 소나 말처럼 혹사 당했다. 식사 시간을 빼고는 단 1분도 쉬지 못하고 광차 밀기, 땅 파기, 돌 깨기 등 중노동에 시달렸다.

또 일본인의 절반도 안 되는 임금에 위험 수당이나 시간 외 수당도 없었고 이마저도 저금 명목으로 차감되었다. 조금만 실수하면 관리자에게 곤봉으로 맞았고 숙소는 지옥방이라 불린 감금형 합숙소로 식당, 침실, 화장실이 한 곳에 있어 악취가 진동했다.

견디다 못해 탈출하면 거미줄처럼 촘촘한 감시망에 대부분 잡혔고 도망 갔다고 각목으로 얻어맞고 쇠 갈고리에 찔리는 고문을 당했다. 주검이 된 경우는 무거운 돌에 매달려 시노가와 강 계곡에 떠내려가거나 산속에서 썩어들어갔다.

이 실상은 1922년 7월 29일 <요미우리 신문>의 보도로 알려지게 되었는데 놀라운 것은 이 공사 현장을 관할하는 도카마치(十日町) 경찰서의 오와리노(大割野) 주재소 순사들이 회사에 조선인 노동자 취급 방침을 알려주고 회사는 이를 따랐다는 사실이다.

강제노동, 노예노동도 모자라 학살까지 자행된 이 사건의 충격은 너무나 컸다. 서울에서 50명의 위원으로 조사회가 구성되고 <동아일보>는 편집국장 이상협을 파견했다. 도쿄에서도 유학생과 노동자가 모여 조사를 결정했다. 이때 일본 관헌의 감시망을 뚫고 아나키스트 박열도 현지에 몰래 들어가 실상을 파악했다. 그해 9월 7일 동경에서 열린 '니가타현 조선인 노동자 학살 문제 연설회'에는 조선인 500명, 일본인 1500명이 모여 인산인해를 이뤘을 정도였다고 한다.

히다 유이치는 이렇게 나카츠카와에서 학살된 조선인 노동자나 양금덕 할머니 등이 겪은 비애가 모두 일본의 식민 지배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번 제3자 변제 결정은 제국주의 범죄에 면죄부를 준 것이기에 반역사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역사는 되풀이될 것입니다"

히다 유이치는 대학 시절인 1970년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면서 인권과 평화라는 가치에 눈을 떴다. 자연스레 재일조선인의 인권에도 생각이 미쳤다. 마침 고베청년학생센터에서는 1972년부터 '조선사 세미나'가 열렸다.

고베청년학생센터는 1955년에 미국의 남장로교회가 대학생 선교를 위해 만든 그리스도교 학생 센터였다. 10여 년 뒤 센터 운영이 일본으로 넘어가면서 사회참여파 목사들이 주도해 센터를 시민운동과 사회운동의 거점으로 키워나갔다. 센터는 일본 내 재일동포 인권 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히다는 조선사 세미나에서 <강제연행의 기록>을 쓴 박경식을 만나 제자가 되었고 그 외 정경모, 강재언, 가지무라 히데키의 강연을 접했다. 그는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돕기 위해 동일방직노동조합을 지원한 조화순을 만나고 박형규 목사와 같은 민주화 운동 인사들과 교류했다.

재일동포 인권운동을 위해 한글까지 배운 히다 유이치는 그동안 무려 70차례나 한국을 다녀갔다. 그는 한·일 간의 평화와 연대를 간절히 희망한다며 인터뷰 말미에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했다.

"1965년 체결된 한·일조약은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5억 달러라는 유·무상 차관으로 즉, 경제문제로 바꿔치기했습니다. 이번 양금덕 할머니의 강제징용 배상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을 한·일 두 정부가 또다시 제3자 변제라는 돈 문제로 바꿔치기했습니다. 이를 바로 잡지 않으면 역사는 되풀이될 것입니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3년 3월 21일, 화 3:4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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