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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회장의 '소떼 방북'이 남긴 교훈
[리뷰]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서울=오마이뉴스) 이준목 기자 = 아산 정주영(鄭周永, 1915-2001) 현대그룹 초대 회장은 대한민국 기업계의 전설로 통한다. 이병철 삼성그룹 초대 회장과 함께 대표적인 1세대 기업인으로, 밑바닥에서 시작하여 대한민국 최고부자의 자리까지 올라온 자수성가의 아이콘이자, 그의 인생이 곧 대한민국 근현대사 자체이기도 하다. 너무나도 유명한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어록은, 곧 정주영의 인생을 함축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3월 23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1998 회장님의 빅 이벤트 - 이봐, 해봤어?'라는 부제로 정주영 회장의 일대기와 그가 대북사업에 사활을 걸었던 진짜 이유를 조명했다.

'이봐 해보기나 했어?' 정주영의 어록


▲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한 장면. ⓒ SBS

1990년대 현대그룹은 전세계 재계 순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봐 해보기나 했어?'는 정주영 회장이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썼다는 어록이다. 주변에서 무모한 사업도전에 부정적인 반응이 나올 때마다, 정 회장은 항상 무슨 일이든 도전해보지도 않고 지레 단정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뚝심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1970년대만 해도 기술도 돈도 부족했던 한국은, 독자적으로 자동차를 생산한다거나 조선소를 짓는다는 것은 아직 상상도 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차관을 구하기 위하여 영국으로 건너간 정 회장은 어렵게 성사시킨 미팅 자리에서 당시 500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보여주며 "우리는 수백년 전에 철갑선을 만든 나라다. 돈이 없어서 그렇지 배를 만들 능력이 있다"며 관계자들을 설득했다.

영국 정부는 돈을 빌려주는 조건으로 미리 구매자를 섭외해올 것을 요구했다. 정 회장은 그리스의 선박왕 리바노스를 찾아가 선주문으로 배를 구매할 것을 약속받았고, 이를 보증으로 영국 정부로부터 차관을 받아 조선소와 선박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정 회장의 확고한 신념과 추진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일화다.

1980년대 정 회장은 간척 사업에 뛰어들었다. 정 회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라가 잘 살기 위해서는 더 넓은 땅이 필요하다"며 "국토가 수면 위로 올라올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것은 먼 훗날, 우리 후손들에게 움직일 수 없는 큰 재산을 주는 것"이라며 어려운 사업에 뛰어든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간척지 사업은 무척 어려운 공사였다. 현장 직원들은 좀처럼 진전되지 않는 작업에 난색을 표시했으나 정 회장은 직접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안하며 포기하지 않았다.

천수만의 빠르고 강한 조류 때문에 제방 구축에 실패를 거듭하자 주변에서는 손실비용이 눈더미처럼 불어나는데 우려를 표시하며 자포자기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정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정 회장은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물과 바위를 가득 채운 폐선박을 가라앉혀서 13일에 걸친 사투 끝에 결국 물살을 막아내고 제방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온전히 정 회장의 만들어낸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훗날 '정주영 공법'의 시작이 된다. 간척사업이 성공하면서 대한민국은 약 4700만 평에 이르는 새로운 영토를 확보하게 됐다.

그날 이후, 정 회장은 농지로 개척해낸 서산에 농장을 만들고 자식처럼 깊은 애정을 쏟았다. 또한 정 회장은 농장에 농산물만이 아니라 축사를 만들어 소를 키워볼 것을 지시했다. 정 회장은 수시로 서산농장을 찾아가 소들을 둘러보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고 새로운 사업에 대한 영감을 얻기도 했다고.

정 회장이 농장을 각별하게 여긴 데는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이었다. 정 회장은 본래 빈농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농사를 지으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평생 부지런히 일해서 동생들을 뒷바라지하는 농사꾼이 되는 것이 본래 정주영의 운명이었다. 하지만 꿈도 희망도 없는 삶을 원하지 않았던 정주영은, 어느날 소를 판돈 70원을 훔쳐서 가출하여 고향을 떠났다.

정 회장은 훗날 서울로 상경하여 돈을 벌어서 쌀을 들고 다시 고향을 찾았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 정주영을 용서하며 반갑게 맞이했다. 정주영은 회고록에서 '서산농장은 그 옛날 손톱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한뼘씩 농토를 만들어가며 고생하셨던 내 아버님 인생에 꼭 바치고 싶었던 아들의 뒤늦은 선물'이라고 고백하며 '서산농장은 내게 농장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곳은 내가 마음으로, 혼으로 아버님을 만나는 나 혼자만의 성지같은 곳'이라며 애틋한 그리움을 전하기도 했다. 서산농장이 왜 정주영에게 그토록 각별한 의미가 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서산농장에서 길러낸 소는 50마리에서 점점 불고 불어나 어느덧 3500마리에 이르렀다. 직원들은 관리상의 한계를 들어 몇 번이나 소를 판매할 것을 제안했지만 그때마다 정 회장은 단호하게 거부했다. 정 회장이 열심히 소를 키운 데는 숨은 뜻이 있었다.

1990년대 후반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대한민국 정부는 '햇볕정책'을 제시하며 북한과의 평화협력을 추진한다. 김대중 정부는 북한에 대한 투자규모 제한을 폐지하고 기업인의 방북을 허용하는 큰 변화를 단행했다. 경제적 지원으로 북한의 마음을 열고 신뢰를 얻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리고 그 전면에 나선 것이 바로 정주영 회장이었다 그는 지체없이 대북사업에 진출했고, 그 시작으로 소떼를 판문점을 통하여 걸어서 북한으로 몰고가겠다는 '소떼 방북' 이벤트를 제안했다. 남북 대립의 상징이자 군사적 긴장감으로 가득한 판문점을 사람이 소떼를 몰아 지나가겠다는 발상은 이전까지 누구도 상상해보지 못한 파격이었다.

처음에는 남북측 모두 실현 가능성에 비관적이었다. 교착 상태에 빠질뻔했던 상황을 한번에 바꾼 것은 김정일이었다. 정 회장의 소떼 방북 제안을 보고받은 김정일은, "야! 현대가 소를 가지고 와? 황소처림 밀고 들어오는구나"라고 감탄하며 "판문점으로 오시라고 해라"라고 흔쾌히 승낙했다고.

소식을 들은 정주영은 마치 진작에 그럴줄 알고 있었다는 듯, 별표정없이 덤덤하게 반응했다고 한다. 정 회장은 서산농장을 시작할때부터 방북을 염두에 두고 소떼를 키워왔던 것이다. 대규모의 소떼를 배나 비행기로 수송하기 어려운 특성상, 육로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염두에 둔 선택이었다.

소떼를 몰고 방북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현대그룹은 1,2차에서 걸쳐 북으로 보낼 총 1000마리의 소를 선별했다. 당시 현대자동차는 방북 때까지 소를 운반할 수송 트럭 제작에만 몰두해야 했다고. 목부들은 이름까지 붙여주며 정성껏 키운 소들에게 워낭을 달아주며 북한에서 가서 행복하게 지내며 '통일의 씨앗'이 되어주기를 기원했다.

방북 준비가 거의 끝나갈 무렵, 이번에는 구제역 사태라는 돌발상황이 벌어진다. 구제역 확산 위험으로 인하여 소를 태워 북으로 넘어간 차량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에 정 회장은 "그럼 트럭도 북한에 모두 주고 오자"며 통큰 결단을 내렸다.

1998년 6월 15일 밤 11시, 소들을 태운 트럭 50대가 서산 농장을 떠나 260Km 거리에 있는 판문점으로 출발했다. 트럭이 지나는 거리마다 실향민들이 나와서 소들을 배웅하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대신 전하는 애틋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 정 회장도 청운동 자택을 나서서 판문점에 도착했다. 정 회장을 방북을 앞두고 소감문에서 "강원도 통천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청운의 꿈을 안고 가출할 때 아버님의 소판돈 70원을 가지고 집을 나섰다. 그후 긴세월동안 묵묵히 일을 잘하고 참을성있는 소를 성실과 부지런함의 상징으로 삼고 인생을 걸어왔다"고 밝히며 "이제 그 한 마리의 소가 천마리가 되어 꿈에 그리던 고향 산천을 찾아간다"며 먹먹한 심경을 드러냈다. 그에게 소는 농사꾼의 타고난 운명을 거스르고 시작되었던 새로운 운명을 상징하는 존재였던 것.

정주영은 팔순의 노구를 이끌고 마침내 두발로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소감을 묻는 질문에 정 회장은 "우리 고향쪽을 가니까 반갑습니다"라며 설레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소떼를 실은 트럭 역시 군사분계선을 넘어서 무사히 북한에 도착했다. 북한으로 가는 모든 물자를 관리하는 대한적십자사의 이름으로 북한 측과 소떼 인수인계가 마무리됐다. 자신이 간척한 땅에서 피땀흘려 키운 소와 만든 차를 가지고 고향 땅으로 향하는 정주영의 감회는 유독 남달랐을 것이다.

정 회장은 7박 8일의 일정 동안 북한에 머물며 고향 땅을 찾아 옛 친척들을 만나며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정 회장은 방북 다음날 일행을 남겨놓고 혼자만 다시 고향 땅을 찾을만큼 애틋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정 회장에게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버지와 함께하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기분이 아니었을까.

정 회장은 북에서 모든 일정을 마치고 처음 갈때와 마찬가지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돌아왔다. 또한 정 회장은 북한으로부터 금강산 관광개발사업 등의 선물까지 받아오는 성과를 거뒀다.

포기하지 않은 꿈, 정주영의 대북사업


▲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한 장면. ⓒ SBS

이러한 정주영의 대북사업은 어느날 하루아침에 갑자기 이뤄진 일이 아니었다. 정 회장은 이미 9년전에 한국 기업인으로는 최초로 북한을 방문하여 금강산 개발 등에 대한 논의를 언급한 바 있었다. 당시에는 논의만 되고 성사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정주영은 판문점이 열리면 금강산 개발도 가능하다는 확신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정주영은 소떼 방북 이후 약 4개월만인 1998년 10월, 다시 북한을 방문했다. 정 회장은 2차 소떼 방북에서 "천마리는 마침표 같으니 한 마리를 더 보태자"고 제안했고, 501마리를 보내며 남북간의 교류 협력이 '끝이 아닌 시작'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정 회장은 2차 방북에서는 북한 측의 선 제안으로 김정일과 만나기도 했다. 외부 인사를 만나는 일이 극히 드물었던 김정일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고.

그날 이후 금강산 관광사업은 한층 속도가 붙으며 빠르게 진전됐다. 이를 통하여 많은 실향민들이 북한의 고향을 찾을 수 있었다.

또한 개성공단이 설립되며 대한민국의 자본과 기술, 북한이 노동력을 제공하며 협업하는 체제가 구축되기도 했다. 2004년 12월에는 개성공단에서 최초의 시제품으로 만든 '통일냄비'가 국내로 반입되기도 했다. 고향을 향한 정주영 회장의 그리움에서 시작된 꿈과 상상력이, 수많은 이들의 염원을 이뤄준 현실로 구현된 장면이다. 그야말로 온전한 평화와 통일이 눈앞으로 다가온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0여년의 시간이 흘러, 금의 남북관계는 다시 평화에서 조금씩 멀어졌다. 조짐은 이미 소떼방북 이벤트로부터 불과 3개월 뒤부터 벌어졌다. 북측에서는 통지문을 보내 소떼들이 돌연 대거 폐사했다고 추궁하며 이를 남측의 책임이라고 비판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전수조사 결과, 이는 소들이 이동과정에서 발생한 수송열로 인한 스트레스, 낯설고 열악한 북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이유 등으로 드러났다.

금강산 관광 역시 2008년 박왕자씨 총격 사건이 발생한 이후 전격 중단됐다. 2016년에는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남북관계의 마지막 보루이던 개성공단마저 가동을 멈췄다. 남북관계가 언제든 한순간에 틀어질 수 있는 불안한 모래성임을 보여준 장면이다.

정주영 회장은 2001년 85세의 나이로 통일의 꿈이 이뤄지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2023년 현재까지도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는 아직 오지못했다.

소떼 방북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남겼을까. 불과 20여 년 전이지만 정치적 상황과 별개로 이런 일이 가능했던 시절도 있었다는 것은, 독특한 역사적 사건으로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제가는 이뤄질 수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정주영 회장의 소떼 방북이 남긴 진정한 교훈이 아닐까.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3년 3월 26일, 일 9:26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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