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6시 34분] 아빠 기일마다 음식 싣고 온 '엄마 애인' 셋째딸, 야무졌던 고 김미정씨

10월 29일 토요일 오후 6시 34분 경찰에 첫 신고가 들어왔다. "압사당할 거 같다." 공권력이 제대로 대응만 했다면 15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이태원 참사의 비극을 막을 수 있었다. <오마이뉴스>는 매주 토요일 오후 6시 34분 이태원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태원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편집자말]
이태원참사 희생자 고 김미정씨 모습.

(서울=오마이뉴스) 조혜지 기자 = 2022년 10월 29일 그날, 미정씨는 친한 후배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이태원 해밀톤 호텔 인근을 지나던 중이었다. 미정씨는 식사 내내 들떠 있었다. 코앞으로 다가온 11월, 베트남 나트랑 가족 여행의 총무를 자처한 미정씨는 가족 커플티셔츠를 맞출 거라며 신나했다.

그런 딸이었다. 소꼬리를 사다가 한솥 푸짐하게 찜을 만들어 놔 모두를 놀라게 하고, 설 명절엔 '세뱃돈 뽑기'를 준비해 왁자하게 웃게 했던 사남매 집 셋째 딸. 미정씨의 어머니 박랑주씨(60)는 지난 19일 전라북도 전주시 자택에서 인터뷰하는 내내 딸의 흔적을 짚어줬다. 전주 엄마집을 새집처럼 꾸미는 데 직접 나섰던 미정씨. 대학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조경을 전공한 딸은 만능 인테리어 기술자였던 아버지의 야문 손끝을 빼닮았었다.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던 경찰 전화

'만약에, 혹시라도 둘 중 한 명만 나간다면 우리 엄마 좀 부탁해.'

이태원참사 희생자인 고 김미정(1993년생)씨는 꽉 막힌 인파 속에서, 불현듯 곁에 있던 후배에게 이 말을 전했다고 했다. 역시 크게 다쳐 입원한 후배는 박씨에게 "언니가 예견이라도 한 듯이" 남겼다는 말을 힘겹게 꺼냈다. 다른 가족들에게도 이런저런 말을 남겼다고 했다. "어찌 그런 말을 혔을까..." 엄마는 전화를 붙잡고 미정씨의 후배와 함께 울었다. 숨도 쉬기 힘든 상황에서 가족 걱정을 먼저 했다는 말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참사 다음날인 10월 30일 오전까지 박씨는 딸의 사고 소식을 알지 못했다. 문중 시제를 위해 시골로 가던 차 안, 막내아들과 시동생이 이태원 참사 뉴스를 이야기하기에 '무슨 사고가 그렇게 났대' 하던 차였다. 그때 경찰로부터 전화가 왔다. 딸이 서울 노원구의 한 요양병원 장례식장에 있으니 '가보시라'는 말.

보이스피싱이라고 생각했다. 미정씨의 주민등록번호 앞자리를 물었다. 이름이 비슷한 다른 사람을 착각한 것은 아닐까. 전주 집 주소의 지번까지 확인한 후에, 엄마는 탄식하듯 "맞아요..."라고 말했다. 5년 전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남편을 보내고 갑작스럽게 맞은 황망한 이별. 미정씨의 두 언니들이 시집을 간 뒤 "내 애인이고, 가장이었던 딸"이 하루 아침에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변사자가 됐다.

믿을 수 없는 소식에 휘청이는 사이, 황당한 전화가 다시 걸려왔다. 또 경찰이었다. 부검 여부를 묻는 말이었다. 곧바로 대답했다. "무슨 부검을 해요?" 발신인의 대답 없이 전화는 종료됐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은 그 이후까지 계속 이어졌다.

시신 인계 당시 옷이 다 벗겨진 채 맨몸으로 누워있던 미정씨. 병원 검안서에 적힌 사인은 '두개골 골절 및 압박에 의한 질식사 추정'이었다. 귀와 머리에서 출혈도 확인했다고 기록돼 있다. 함께 간 후배의 말로는 한 가방에 보관해뒀다는 소지품들이 뿔뿔이 다른 날짜에 도착한 것도 의아했다. 박씨는 "압사로 두개골이 다친 것이 보이는데 왜 옷을 벗기고, 가방 한 군데 넣은 짐도 왜 세 차례에 걸쳐 따로따로 받았는지 이런 것들이 이상하다"고 했다. 의문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싸랑해 랑주씨~"

딸은 '박여사' '랑주씨'라는 애교 가득한 호칭으로 엄마를 불렀다. 지난해 10월 26일의 메신저 메시지에서도 그랬다. 원래 10월 29일 토요일 그날, 전주 집으로 오기로 했던 딸은 그 주 업무가 생겨 한 주 더 있다가 가겠다고 했다. "그래 바쁘나 보다~" 엄마의 대답을 끝으로 메시지는 더 이어지지 않았다.

또 다른 유가족의 쪽지, 새로운 가족을 만났다

아버지 기일에 맞춰 전주로 내려오던 딸. 터져버린 큰 캐리어를 안아 들고 선 미정씨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엄마, 나 좀 봐."

기일은 8월 한 여름, 딸은 땀을 뻘뻘 흘리며 서울에서부터 아버지 제사상에 올릴 음식 재료를 늘 이고 지고 왔다. 무게를 못 이긴 캐리어가 어느 날 터져버리기까지 했다. 허리디스크와 무릎 수술로 장보기가 힘든 엄마를 생각해 명절과 기일을 앞두고 제수 준비 목록을 미리 적어 보내던 딸. "엄마가 할게~" 딸의 수고를 만류했지만 "아니야~"라는 답이 돌아왔다.

솜씨 좋은 기술자이자, '가족 바라기'였던 아버지는 남매를 위해 직접 큰 어항을 제작하고, 아이들의 침대와 책상을 뚝딱 만들어내던 사람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찾아온 암. 미정씨는 언니들과 함께 서울에서 투병한 아버지를 들여다보고, 전주에서 엄마가 올라올 때마다 배웅을 도맡았다. 딸은 엄마를 "온실 속 화초"로 생각했다. 엄마가 행여 기차를 잘못 탈까 싶어 출발 직전 좌석까지 모셔다 드린 후, 후다닥 내려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들던 딸.

직장생활부터 경제관념까지. 손끝만 야무진 게 아니었다. 대학원 1학년 때 정원 조경 대회에서 상을 탄 뒤 스물여섯에 첫 취업을 했고, 고민 끝에 상경했다. 조경업무 6년 차 커리어우먼, 미정씨의 꿈은 아름다운 정원을 갖는 것이었다. 월급을 받으면 생활비를 매달 보내고, 엄마와 막둥이 남동생을 데리고 시내에 나가 맛있는 음식을 샀다. 남동생의 청약 통장 첫 입금도 미정씨가 해줬다. '서울로 올라올 것'을 대비한 누나의 선물이었다.

능력을 인정받아 이직한 후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참사가 일어났다. 장례식에서 쪽잠을 자며 끝까지 장례를 도운 직장 동료들은 미정씨를 "야무지게 다 해결하는 사람"으로 기억했다. 엄마는 딸이 골라 선물해준 카키색 옷을 입고, 미정씨가 집에 올 때마다 누웠던 매트리스에 팔을 괴고 누웠다. "미정이 냄새가 나는 것 같다"는 말끝에 눈물이 배어 있었다.

엄마는 수술한 무릎에 보호대를 차고 거리로 나갔다

"나는 다리가 아프니까 (진상규명 특별조사위원회 설치 법안 동의 유인물을) 권하지는 못하고, 피켓을 들고 서 있었지. 너무 서 있으니까 더 힘들더라고. 무릎 두 군데 보호대를 하고 섰는데, 저녁에 집에 오니까 다리가 부어서..."

엄마를 아꼈던 딸을 위해 박씨는 집을 나섰다. 특조위 설치를 위한 법안 발의 국민동의 청원 5만 명 달성을 위해 진실버스를 타고 부산, 진주, 광주, 대전 전국을 다녔다. 주말이면 전주 시민분향소로 나가 지킴이로 희생자들의 영정을 지킨다.

미정씨를 추모 공원에 모신 날, 분향소에 함께 있는 다른 희생자의 유가족이 남겨 놓은 쪽지는 박씨가 다른 가족들과 이어질 수 있는 끈이 됐다. 혹시나 만나게 되면 전해달라는 쪽지에는 연락처와 함께 아이들의 49재 등 함께 논의하고 싶은 말들이 적혀 있었다.

"도움이 많이 되죠. 더 (분향소에) 가고 싶고. (지킴이를 하는) 일요일이 기다려지고. 다들 진짜 좋으세요. 긍께 가족이다, 보면 돼요.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고 봐야지요."

공식 사과와 면담 요청에도 묵묵부답인 대통령과, 참사를 왜곡하는 뉴스를 볼 때마다 꽉 막힌 답답함을 느끼다가도, 진실버스를 타고 피켓을 들며 목소리를 전달할 때만큼은 그래도 힘이 생긴다. 박씨는 "청원이 달성 됐다해도 (법안이) 통과가 돼야하잖아요. 그거만이라도 되면 (진상규명이) 좀 쉽지는 않을까 생각해서 버스를 타고 했는데... 전 정치는 몰라요"라고 말했다.

박씨는 인터뷰 중간중간 '사랑'이라는 단어를 자주 썼다. 자식에게 사랑 쏟는 일이 전부였던 엄마였다. 딸과의 메신저 속에도 이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미정씨의 마지막 당부를 전한 후배에게도 "고맙고 사랑한다"라고 말했다. 인터뷰 전 손글씨로 꾹꾹 써 전달한 편지 속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인터뷰에 응한 이유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미정이 기록을 남기고... 어떤 스님이 말씀하셨는데요, 담 생까지는 만날 수 있다고. 그래서 이승에선 원수를 지지 말라고 그랬거든요... 미정이를 다시 만나면 '엄마가 널 위해서 할 수 있는 거, 잘하지는 못했지만 이 정도는 하고 왔다. 그러니 엄마 좀 사랑해주라'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인터뷰 이틀 뒤인 지난 4월 21일은 미정씨의 서른 한 번째 생일이었다. 엄마는 편지 끝에 덧붙인 말에서 "사랑하는 내 딸, 생일 축하해"라고 남겼다.

<엄마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

사랑스럽고 금쪽같은 내 막내딸 미정이에게

사랑스러 내 딸 미정아. 너무 많이 보고 싶다. 엄마도 이렇게 내 딸이 보고 싶은데. 밤이면 밤마다 생각이 나... 내 딸도 엄마가 얼마나 보고 싶을까. 엄마 품에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는 길을, 이유도 모른 채 눈 깜짝한 사이 들어서버린 너의 마음도 얼마나 아프겠니...

금쪽같은 내 딸 미정아! 정말 보고 싶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보석 같은 내 딸이 하늘나라 별이 되어 버렸어. 예쁜 내 딸 엄마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지금 당장이라도 내 딸 있는 곳에 가고도 싶지만, 여기서 엄마도 해야할 일들이 너무 많다. 너희 억울함을 해결하고 가야지.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됐을 때 떳떳하게 이야기하면서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고 말할게. 미정아! 많이 많이 보고 싶다.

우리에게 소중했던 미정이. 가족 행사나 명절, 아빠 기일이 다가오면 엄마 힘들다고 2주 전부터 필요한 목록 적어 보내달라던 내 딸. 딸도 힘드니 엄마가 천천히 조금씩 준비한다 해도 기꺼이 하겠다고 캐리어 한 가득 끌고 항상 준비해왔던 딸이 너무 보고 싶구나. 한 번은 너무 많이 준비해오다가 캐리어 바퀴가 떨어져 안고 온 적도 있었지. 엄마는 미안하고 고마웠어. 준비해온 재료로 음식 한다고 전 부치고 맛있는 잡채도 항상 엄마를 도와 동생이랑 같이 했었지. 내 딸 미정아 사랑해!

내 딸이 힘들게 떠나면서도 엄마, 동생, 언니들 우리 가족 걱정까지 했다던 말을 듣고 엄마 가슴이 미어져 터져 버릴 것만 같았어. 저도 힘들고 아픈데 같이 간 후배 동생이 전해준 말.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 엄마가 제일 걱정되니 엄마를 부탁하고, 가족들 해외여행 가기로 했는데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우리 가족 해외여행 다녀오라고 부탁했다는 말에 엄마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어. 금쪽같은 내 딸 정말 보고싶다.

엄마하고 동생 걱정만 했던 짐 다 내려놓고 이젠 엄마가 동생 보살 필테니 하늘나라에서는 고생도 하지 말고 너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세계여행도 하면서 재미있게 잘 지내렴. 조금 긴 세월이 되겠지만, 아빠 만나 잘 지내고 있다가 언젠가 엄마 만나게 되면 웃으면서 엄마 한 번 안아줄래? 엄마 사랑한다고.

짧은 생에나마 엄마의 예쁜 딸로 태어나줘서 고마웠어. 우리 가족에게 많은 기쁨을 주고 간 딸 미정아! 한 번 더 기회가 있다면... 엄마 딸로 다시 태어나주라. 그땐 엄마가 더 많은 사랑 듬뿍 주고 안전하게 잘 지켜줄게. 금쪽같은 내 딸 보고 싶다. 눈물이 자꾸만 흐르고 있어. 내 딸 보고 싶은 마음은 엄마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거야. 그동안 너무 고마웠어. 미정아! 잊지 않고 기억할게.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엄마랑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지내. 사랑해 미정아!

* 금쪽같은 내 셋째 딸 미정아, 31번째 생일이 돌아오는데... 같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4월 21일 금요일 날 너 생일이야. 사랑하는 딸, 생일 축하해. 엄마가 생일날 절에 가서 기도하고 축하해줄게... 사랑해 내 딸 미정아! 하늘나라에서도 꼭 행복해야해. 보고싶다. 내 딸 미정아. 목소리도 듣고 싶어. 눈물만 흐르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