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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종교
 
[교회를 떠나 교회가 되다] ①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중)
화려한 서초 예배당과 어두운 강남 예배당의 대비…믿었던 목회자들에게 느낀 절망감

<뉴스앤조이> 연중 기획 '교회를 떠나 교회가 되다'는, 교회 분쟁이나 목회자와의 갈등으로 기존 교회를 떠나 새로운 공동체를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아직 분쟁 중에 있는 상태라 표면적으로는 그 교회에 속해 있어도, 그 실질은 이미 교회를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포함합니다. 분쟁과 갈등의 양상보다는, 목회자의 비행 때문에 겪은 교인들의 아픔과 이후 회복의 과정 등을 담고자 노력했습니다.

첫 번째는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 이야기입니다. (상), (중), (하) 3편으로 나눠 매주 월요일 발행합니다. - 기자 주


▲ 오정현 목사의 박사 학위논문 표절 사태의 여진이 계속되던 2013년 11월 24일, 사랑의교회는 서초 예배당에 입당하며 성대한 이벤트를 치렀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서울=뉴스앤조이) 구권효 기자

5.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사랑의교회 서초 예배당 본당에 있는 대형 스크린에 멋들어진 캘리그래피가 떴다. 본당 6500석을 가득 메운 교인들은 박수를 보내며 환호했다. 넓고 큰 무대에 전 연령대로 구성된 교인 100여 명이 빨간색 목도리를 두르고 올라와 있었고, 오정현 목사는 중심에 자리했다.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 교인들과 함께 찬양을 부르는 그의 얼굴은 황홀감에 젖어 있었다. 사랑의교회는 2013년 11월 24일 일요일 서초역 앞 신축 예배당으로 예배 장소를 옮겼다. 일주일 뒤 진행된 '입당 예배' 때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찬사가 쏟아졌다. 그야말로 성대한 이벤트였다.

오정현 목사 부임 후 사랑의교회가 교계와 사회의 비판을 받은 때가 몇 번 있었다. 2007년 이랜드 파업 때(이랜드 박성수 회장이 당시 사랑의교회 장로였다), 2008년 오정현 목사가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대운하 공약을 지지하는 칼럼을 썼을 때, 광우병 시위에 대해 "죽은 사람 하나 없는데"라고 폄하했을 때, 그리고 2009년 서초역 앞에 초대형 예배당을 신축하겠다고 발표했을 때다. 이런 일들이 오 목사에 대한 신뢰를 조금씩 갉아먹었다 해도, 아니 오 목사의 실체를 조금씩 드러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예배당 신축'에 대한 생각은 교인들마다 분분했다. 현재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 중에도 그때는 건축에 찬성했던 사람이 많았다. 강남 예배당 크기에 비해 교인이 너무 많고 시설이 노후해서 아이들이 위험하다는 나름의 명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천문학적 비용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대출을 받더라도 교회가 받느니 내가 받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서정식 집사도 그랬다. 그래서 건축 헌금도 힘에 지나게 했다. 부담스러운 금액이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오정현 목사도 한창 "무임승차하지 말라"고 강조하던 때였다. 그렇게 모인 돈으로 오 목사가 불법을 저지르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유혜경 씨(48)는 고 옥한흠 목사의 건축 헌금 독려 영상을 보고 "마음이 요동쳐" 헌금을 작정했다. 그 역시 자신에게 과한 액수를 헌금했다. 폐암을 앓고 있던 옥 목사가 세상을 떠나기 열 달 전 힘든 육신을 일으켜 찍은 영상이었다. 교인들의 마음은 크게 움직였다. 옥한흠 목사 또한 사랑의교회에 새 예배당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긍정했으나, 그의 사후 밝혀진 내용들을 보면 그가 결코 지금과 같은 예배당 건축을 찬성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 유혜경 씨를 비롯한 사랑의교회 교인들은 이를 알 수 없었다.

사랑의교회가 서초 예배당으로 이전하고 나서부터 갈등은 더 심해졌다. 마당 기도회를 하던 사람들은 심정적으로 도저히 서초 예배당에 갈 수가 없었다. 새 예배당이 크게 지어졌다고 해서 오정현 목사의 거짓이 덮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늘 그랬듯 강남 예배당에 모였고 자연스럽게 마당에서 기도회를 시작했다. 오정현 목사 측은 마당 기도회를 적극적으로 방해하기 시작했다. 하루는 '리모델링'이라는 명목으로 마당에 건축 폐기물을 잔뜩 쌓아 놔 기도회를 할 수 없게 했다. 교인들이 폐기물을 치우고 기도회를 계속하자, 이번에는 예배당 전체를 펜스로 두르고 입구에 강철판을 덧대 아예 출입할 수 없도록 용접해 버렸다. 교인들이 철판을 뚫고 들어가자 교회는 교인들에게 소송을 걸었다.

그해 성탄절 예배는 초창기부터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에 함께한 교인들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2013년 12월 25일 강남 예배당은 또다시 펜스와 합판, 용접으로 굳게 닫힌 상태였다. 교인들은 이를 하나씩 제거해 가며 어렵게 본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 대문을 사용할 수 없어 옆으로 난 작은 문으로 들어가면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을, 종탑 건물에 있는 좁은 계단을 통해 한 사람씩 줄을 지어 한 발 한 발 지하 예배당으로 들어갈 때는 로마제국의 압제를 받아 지하에 굴을 파서 예배했던 '카타콤'을 떠올렸다. 예배는 몇 시간이나 지체됐지만 교인들은 자발적으로 찬양을 부르면서 기다렸다. 오정현 목사 측은 전기도 난방도 모두 차단했다. 교인 2300여 명이 지하 본당에서 서로의 체온에 기대 휴대폰 불빛의 도움을 받아 예배를 드렸다.

으리으리하게 지어진 화려한 서초 예배당과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강남 예배당의 대비는 극적이었다. 교인들은 예배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다.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환경에서 평생 신앙생활 해 온 교인들에게 예배란 목사가 주재하고 준비된 공간에서 집전되는 것이었다. 항상 최상의, 최고의 것을 드려야 한다고 목사들에게 배워 왔다. 성탄절 예배라면 오케스트라 반주와 100명에 달하는 성가대원의 쩌렁쩌렁한 칸타타가 울려 퍼지는 게 당연한 환경에서 수십 년간 지내 왔다. 펜스와 합판을 뚫고 들어간 어둡고 추운 공간에는 준비된 것이 별로 없었다. 반주자의 손은 시렸고 피아노 소리는 처량했다.


▲ 2013년 12월 25일 사랑의교회 강남 예배당에서의 성탄 예배. 사진 제공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

"너무너무 좋았어. 내 평생 잊을 수가 없어." 김근수 집사에게도 그때 기억은 강렬하게 남아 있다. 20여 년간 강남 한복판에 있는 대형 교회를 다니며 편하게 신앙생활을 해 왔는데, 그 추위와 어둠 속의 성탄절 예배가 그의 인생에서 가장 감격스러운 예배 경험이었다. 전율을 불러일으키는 성가대의 찬양도, 유명 목사의 설교도, 그 어떤 화려한 이벤트도 없었다. 김 집사는 그제야 예수님도 보잘것없는 마굿간에서 태어나셨다는 사실을, 성탄절은 낮은 곳으로 오신 그분을 기억하는 날임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는 예배를 마치고 사랑넷 인터넷 카페에 이렇게 썼다.

"요즘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씩 알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모두 고난을 친구 삼아 남은 생을 주님을 위해 살아 봅시다."

6.

투쟁은 길었다. 이후로 수년간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 교인들은 매주 일요일 강남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린 후, 서초 예배당 건너편에서 피켓 시위를 했다. 금요일 밤에는 서초 예배당 앞에서 마당 기도회를 열었다. 오정현 목사 측은 물리적으로, 법적으로 계속해서 압박했다. 서초 예배당 앞에서 기도회와 시위를 할 때면 오 목사를 지지하는 부목사들과 교인들의 비난과 욕설을 들어야 했다. 매주 금요일과 일요일, 서초역 앞에 경찰이 출동하는 건 다반사였다.

유혜경 씨는 처음부터 마당 기도회에 참석하지는 않았다. 교회에 등록은 했지만 내부 일에 크게 관심이 없던 그는, 마당에 모이는 교인들을 일부러 피해 다니는 사람이었다. 서초 예배당으로 이전하기 전, 안수집사들이 오정현 목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회보를 만들어 돌려도 일부러 받지 않으려 했다. 그때는 주일성수 하고 주변 사람들과 관계만 좋으면 그만이었다. 복잡한 내용은 알지 못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 시절, 오정현 목사를 지지하는 교인이 유인물을 배포하는 마당 기도회 교인을 폭행하고 도주한 일도 직접 목격했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오정현 목사가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 교회에 등록한 유혜경 씨는 오 목사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이 별로 없었다. 설교가 미흡하다는 것은 느끼고 있었지만 찬양하는 시간은 좋았기 때문에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오 목사의 논문 표절과 관련한 일련의 사태에도 관심 없었다. 2013년 11월 교회가 서초 예배당으로 이전했을 때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따라갔다. 오히려 마당 기도회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교회가 이전하기로 했으면 다 같이 가야지, 왜 저렇게 한 마음을 품지 않고 반대하는지 의문이었다. 마당 기도회 사람들이 '어둠의 무리'라고 생각했을 때도 있었다.

"보디발의 아내 그 미친 X이."

유혜경 씨가 돌아선 것은 설교 시간 오정현 목사의 입에서 이 말이 나왔을 때였다. 다른 교인들을 보니 그냥 웃어 넘기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농담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아, 이 사람은 정말 목사라는 게 맞지 않는 사람이구나.' 그 주에 오정현 목사의 설교를 방송하는 기독교 방송사의 설교 영상을 찾아 다시 들어 봤다. 그 부분만 쏙 빠져 있었다. 유혜경 씨는 그제야 자신이 왜 서초 예배당에 와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됐다. 서초 예배당 앞에서 매주 시위를 하고 있는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 사람들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는 어느 날 예배를 마치고 나와, 시위하고 있는 갱신공동체 교인들에게 가서 물었다.

"혹시 아직 강남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건가요?"
"그럼요."

다른 교회에 가는 것보다는 제2의 고향 같은 사랑의교회에 남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갱신공동체 교인들의 진심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들은 정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서초 예배당 앞에 모여서 기도회를 하고 피켓 시위를 했다. 당시만 해도 30대였던 그는 나이 많은 어른들이 저렇게 진심으로 기도하는 모습이 진기했다. 날씨가 궂은 날이면 우산을 쓰고 방한복을 입고 손을 호호 불어 가며 기도하는 모습에 마음이 착잡하기도 했지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서서히 이들의 신앙을 닮아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신앙인으로서 내가 가야 할 길은 이런 모습이겠구나.'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에 소속한다는 건 상당한 불이익을 감수하는 일이었다. 오정현 목사를 지지하는 교인들과 부목사들에게 비방과 욕설, 감시와 채증을 당했다. 사회 법적으로는 교회로부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하고, 교단법적으로는 출교를 당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한 법적 다툼에 시간과 돈을 써야 했다. 수십 년간 다닌 교회는 단순히 신앙생활만 하는 장소가 아니다. 대부분의 인간관계망이 교회에서 형성돼 있다. 갱신공동체로 간다는 건 그 망을 포기하는 일이었다. 당장 경조사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자면, 서초 예배당에 가지 않기로 결정하더라도 강남 예배당보다는 차라리 다른 교회에 가는 편이 낫다.

그럼에도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를 선택한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이렇게 말하는 게 좀 뭐하긴 한데… 저는 좀 비겁하다고 생각했어요." 김성만 집사는 이런 이유로 마당 기도회를 떠나지 못했다. 그렇다고 사랑의교회를 떠난 사람들을 비겁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그는 오히려 관계 혹은 비즈니스 때문에 서초 예배당으로 간 사람들도 일면 이해하는 편이다. 그들에 대한 원망은 없다. 그저 자신에게 적용되는 잣대일 뿐이다. 또 한 가지, 그에게는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다'라는 시구처럼 '내 아이들을 키운 건 8할이 사랑의교회다'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 교회를 두고 떠난다는 것이 그에게는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김성만 집사에게 강남 예배당을 떠날 이유는 없었다. 비록 사랑의교회는 서초 예배당으로 옮겨 갔지만, 사랑의교회의 정통성은 강남 예배당에 남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김성만 집사의 지인이 그에게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사랑의교회는 오정현 목사님이 저쪽으로 나가신 거 아닌가요?" 김성만 집사는 그 말이 정확하다고 생각했다.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환경에서 신앙생활을 해 왔던 그가, 담임목사 없이 예배를 드리는 것에 부담을 느끼지 않았던 이유다.


▲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 김성만 집사. 뉴스앤조이 구권효

초창기부터 마당 기도회를 주도했던 김근수 집사에게는 사랑의교회 본질 회복 운동이 곧 사랑의교회에서 배운 대로 행동하는 것이었다.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야말로 제자 훈련의 산물이라고 믿었다. 오정현 목사를 지지하는 교인들이 훨씬 더 많은 상황 자체가 '옥한흠 목사의 제자 훈련이 실패한 것'이라 진단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 말이 맞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옥한흠 목사님이 가르친 제자 훈련의 결과 중 하나가 우리이기도 해요. 정말 배운 대로 실천하는 건 우리라고 생각해요."

2013년 12월 6일 저녁 8시,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가 서초 예배당에서 마당 기도회를 하려 할 때 오정현 목사를 지지하는 교인들과 격한 충돌이 있었다. 갱신공동체 교인들은 마당으로 들어가려다 저지당해 길바닥에서 기도회를 했고, 오정현 목사를 지지하는 교인들은 저들끼리 찬양과 기도를 하면서 마당 기도회를 방해했다. 양측 각각의 스피커에서 나오는 찬양과 기도는 누가 더 큰 소리를 내는지 겨루는 듯했다. 야유와 비난, 채증이 난무했다. 지나가는 시민들은 물론이거니와 출동한 경찰들도 생경한 광경에 혀를 찼다. 오정현 목사 비호에 앞장섰던 주연종 부목사는 당시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저들과 다른 점은 교역자의 말에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자 훈련 할 때 말합니다. '아무리 여러분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마지막에는 교역자의 말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크게 빗나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교역자의 말을 거절하고 교역자를 폄하합니다."

"난 그런 '히에라르키(Hierarchie·피라미드식 상하 서열·위계를 갖춘 조직)' 체제를 인정할 수가 없어요." 김근수 집사는 말했다. 옥한흠 목사뿐 아니라 옥 목사에게 배운 부목사들도 교인들에게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역자라고 했어요. 우리는 역할만 다를 뿐 동일한 동역자라고. 목사고 집사고 그런 직분은 차이가 없다고. '작은 목사'라고 했어, 우리한테. 당시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돌이켜보면 그게 맞는 말이죠. 다 같은 제사장이잖아요. 옥한흠 목사님 따라서 그렇게 가르쳐 놓고, 지금은 담임목사·목회자를 중심으로 히에라르키를 형성한다? 저는 그런 사랑의교회는 인정할 수 없어요."

7.

사랑의교회 사태에서 가장 중요한 소송은 세 가지라고 할 수 있다. 회계장부 열람 소송, 오정현 목사의 자격과 관련한 소송, 서초 예배당 도로점용 소송. 이 세 소송에서 사랑의교회와 오정현 목사는 모두 졌다. 수년에 걸친 소송 과정에서 드러난 것은, 오정현 목사와 사랑의교회의 방만한 재정 사용, 오정현 목사의 불투명하고 불법적인 이력, 서초 예배당의 불법 도로점용이었다. 이는 곧 오정현 목사의 그릇된 욕망과 그것을 덮고 옹호하는 이들의 왜곡된 신앙 상태를 세상에 드러낸 일이었다.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 입장에서는 승리라고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깊은 상처를 받는 일이기도 했다. 한때 신뢰와 존경의 대상이었던 오정현 목사가 정말 이 정도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라고 하잖아요. 이전에는 목사라면 신앙적으로나 인격적으로나 다 갖춘 분인 줄 알았어요." 유혜경 씨는 오정현 목사의 실체를 확인해 가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지금은 목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아니 목사의 탈을 쓰고 더 도둑질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요. 목사들이 제일 부자일 수 있겠구나 싶어, 특히 대형 교회 목사들은."

임현희 권사는 비교적 늦게 신앙생활을 시작한 남편 및 자녀와 함께 사랑의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 왔다. 오정현 목사의 자질은 남편과 자녀가 먼저 알아봤다. 그들은 오정현 목사가 좀 이상하다고 느끼고 사랑의교회에 가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다. 임현희 권사는 순장이었기 때문에 매번 그들을 설득해야 했다. "남편과 아들이 지적할 때마다 저는 가능한 좋게 이야기하려고 했어요. 목회자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이 생기면 신앙생활 하기가 힘들잖아요. 그러다 보니 저 스스로도 굳이 단점들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저 스스로를 세뇌한 거죠."

오정현 목사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은 임현희 권사에게도 아픈 일이었다. "그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60년간 의심하지 않았던 목회자에 대한 존경과 신뢰가 금이 가다 못해 와장창 깨져 버리는 일은 생각보다 고통스러웠다. '이런 건가? 정말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이런 건가?' 실망과 절망의 경험은 그의 생각을 크게 바꿔 놓았다. "좋게 말하면 목사들도 분별해야 한다는 생각이 생긴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목사들을 신뢰하지 못하게 된 거죠. 그런 슬픈 일이 지금 저에게 동시에 일어나고 있어요."

실망과 절망의 대상은 오정현 목사뿐만이 아니었다. 부교역자들의 모습 또한 목회자에 대한 신뢰를 깨뜨렸다. 사랑의교회 사태를 지나오면서 100명이 넘는 사랑의교회 부교역자 중 오정현 목사에게 바른 소리를 한 사람은 1명도 없었다. 부교역자들은 오히려 오정현 목사를 감싸고 교인들을 단속하기 바빴다. 물론 오정현 목사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들은 그저 조용히 교회를 떠날 뿐이었다. 서정식 집사는 마당 기도회가 한창이던 때 집으로까지 찾아온 한 부목사를 잊지 못한다.

"집사님, 왜 마당 기도회에 나가십니까."
"목사님은 정말 오정현 목사님에게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지금 밤 12시가 다 돼 갑니다. 다음에 얘기하시죠."
"집사님, 기도하려면 제발 집에서, 저희 눈에 안 보이게 해 주세요."

그 부목사는 저녁 8시부터 몇 시간째 같은 말을 반복했다. 결국 서정식 집사에게 마당 기도회에 나가지 말라고, 계속 갈 거면 순장직을 내려놓으라고 말하기 위해 집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결국 서정식 집사는 7년 여간 헌신해 온 순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까지 함께 신앙생활 하며 교제했던 부교역자들에 대한 배신감도 오정현 목사에게 느낀 것 못지않았다. 서정식 집사 또한 이전까지 목회자는 거룩한 소명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직장이었구나, 밥벌이였구나… 그때 너무 리얼하게 알아 버렸어요."


▲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 서정식 집사. 뉴스앤조이 구권효

목회자에 대한 실망은 역설적으로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 교인들에게 '회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교인들 또한 '그런 목회자들'을 만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자각이었다. 그래서 마당 기도회에서는 사랑의교회 본질 회복을 위한 기도와 함께 회개 기도를 참 많이도 했다. 김성만 집사는 '결국 이게 사랑의교회 모습이구나'라는 생각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 그에게는 사랑의교회 교인이라는 것에 자부심이 있었다. 오정현 목사의 실체가 한 겹씩 벗겨질 때마다 그 자부심도 조금씩 떨어져 나갔다. 소위 '잘나가는' 교회에 다닌다는 자부심은 그저 교만일 뿐이었다고 하나님이 질책하시는 것 같았다.

또 한 가지 그가 깨달은 것은 교인들이 목회자를 대하는 태도였다. "목회자를 하나님의 종, 주의종이라고 표현하지만, 사실은 교회의 모든 권력이 목사에게 집중돼 있잖아요. 그리고 실제 성도들도 자기는 못 먹어도 목사님에게는 좋은 걸 대접하려고 노력하고요. '그게 나쁜 것이냐'는 두 번째 문제고요.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런 것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 것이 아니라, 실은 목사님들을 잘못된 길로 가게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저 스스로도 조심하려고 노력해요. 어떤 목사님을 뵐 때 존경과 대접은 해야겠지만, 그분이 오해할 정도로 해서는 안 되겠다고."(계속) (본보 제휴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3년 5월 22일, 월 2:32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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