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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종교
 
일하며 겪는 착취와 소외, 고민하는 기독교인에게 권한다
[탐독의 시간] 미로슬라브 볼프 <일과 성령>(IVP)…일은 목적인가, 도구인가?

(서울=뉴스앤조이) 이춘성 목사(광교산울교회) = <배제와 포용>으로 세계적인 신학자가 된 크로아티아 출신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는 사실 카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의 노동 이론을 신학적으로 비판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와 교수 자격을 취득하였다. 그런 그의 초기 연구는 일과 노동에 대한 경제•사회학적 분석과 이를 신학으로 풀어내는 작업에 집중되어 있다. 그 결과물 중 일부인 <노동의 미래―미래의 노동>이 1993년 이미 한국에 번역 소개되었지만, 현상에 대한 분석과 비판 중심이어서 신학적인 성찰과 대안이 충분하지 못하였다. 이번에 IVP를 통해 번역 소개된 <일과 성령>(IVP)은 일과 노동에 대한 사회•경제학적 분석만이 아닌 신학적으로도 완성도 높은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책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 볼프의 일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통찰은 이후에 그가 전개하였던 공공신학의 든든한 기반이었다. 이제부터 그의 일에 대한 분석과 주장을 살펴보면서, 부족하지만 나의 인상평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일과 성령 - 새 창조와 성령론적 일 신학> / 미로슬라브 볼프 지음 / 백지윤 옮김 / 박득훈 해설 / IVP 펴냄 / 360쪽 / 1만 7000원



1. 인간과 일

일에 관한 많은 책이 있지만, 다수의 책은 어떤 일을 선택해야 할지, 직장에서 다른 동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지, 어떻게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지 등 How에 관해서 쓰고 있다. 신문과 방송 등의 매체에서는 매일 정부의 실업 대책과 정책에 대한 평가와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 또 How를 주제로 토론하고 이야기한다. 카페에 들어가면 다수의 청장년은 구직을 위한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언어와 상식, 법 등을 공부하고, 정보를 나누고 있다. 명절에 모인 친척들은 어린이에게는 "너의 꿈이 무엇이니?" 하고 묻고, 청소년에게는 어떤 대학과 학과를 가려는지, 대학생에게는 어느 회사나 관공서에 시험을 보려는지 묻는다. 꿈은 직업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누구도 꿈을 묻는 말에 '좋은 사람', '좋은 부모', '좋은 성도'가 되거나 '사랑 많고, 타인을 환영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답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떻게'(How)가 '무엇'(What)을 압도하는 시절을 살고 있다.

'어떻게'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어떻게'와 '무엇'은 일에 있어 동전의 양면과 같다. 사람은 살아 있고 활동하는 존재다. 정적으로 그 자리에 멈춰 있는 화석이나 동상이 아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예술품인 것은 예술품을 창조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뜻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일이란 단순하지 않다. 인간은 어떤(What) 일을 하는지와 그 일을 어떻게(How) 일하는지를 통해 규정된다.

2. 인간의 구원, 일의 구원

일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이미 오래전부터 모든 인간 안에 내재한 의문이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일에서 고된 노동을 제거한 후 사색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추구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일에서 노동을 제거한 것을 '여가'(schole)라 불렀다. '여가'는 단순히 일하지 않는 게으름의 상태가 아닌 사색의 일을 위한 시간을 가리킨다. 후에 '여가'의 일은 '학자'(scholar), '학교'(schule)의 일로 발전하였다. 이와 같은 그리스인들의 사고방식은 교회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중세 교회는 하나님과 관련된 거룩한 영적인 삶을 '오티움'(otium)이라 불렀다. 이는 현대의 '레저'(leisure), '여가'와 동의어다. 중세 수도원에서는 물질적 삶을 줄이고 영적으로 바쁜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여 '매우 바쁜 여가'(negotiosissimum otium)의 삶을 격려하고 이를 추구하였다. 그 결과, 일은 분열적 결과를 낳고 인간을 정신 분열의 위기로 몰고 갔다.

영적인 일과 육체노동은 분리되었고, 육체노동은 정신적인 일을 위한 도구가 되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은 인간의 전 존재에 대한 정의다. 영혼만을 위한 수식어도 육체만을 위한 수식어도 아니며, 영혼과 육체, 정신과 몸 모두를 통합하는 것이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의 바른 의미다. 그렇기에 인간은 명상과 육체노동 중 어느 하나만으로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만약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한다면 인간은 본래의 창조 정체성을 상실한 분열된 존재로서 스스로 인간이 아닌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이는 윤리와 도덕의 파괴이며, 인간 폐지를 의미한다. 이러한 중세의 인간 폐지의 위기 속에서 인간을 구원하고 일을 구원한 한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위대한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다.

루터는 구원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 영역이기에 더 많은 종교적 활동이 구원의 온전함을 담보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루터는 구원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보이는 영적 활동만이 아닌 비-영적인 활동 모두에 하나님의 부르심(calling), 소명(vocation)의 지위를 부여하였다. 인간의 선한 모든 활동을 영적인 것으로 격상시킨 것이다. 루터는 내적 소명과 외적 소명을 나누었지만, 과거에 영혼 구원과 종교적인 일에만 사용하던 소명이란 용어를 가정•국가•사회 속에서 사람이 하는 일에도 적용하여 하나님의 주권 영역을 확장한 장본인이 되었다. 이후에 칼뱅(Jean Calvin)을 비롯한 개혁주의자들도 루터의 소명론을 이어받았으며,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는 직업소명론이 서구 사회의 전제 왕권 붕괴와 자본주의 발전에 이바지했다고 평가하였다.

3. 도전받는 직업소명론

그렇지만 직업소명론은 19세기 후반부터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였다. 근대 자본주의는 일을 위해서 인간을 기계의 부품과 같은 존재로 전락시켜 소모되게 하는 심각한 인간 소외 현상을 불러왔다. 이에 대해서 <자본론>을 쓴 카를 마르크스는 일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였다. 인간을 소외시키지 않는 인간적인 일에 대한 뿌리 질문을 사회에 던진 것이다. 이와 반대편에 서 있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인간적인 일을 찾겠다는 낭만적인 생각에 젖어 있기에는 인간 생존을 위한 재화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하였다. 충분히 쓸 수 있는 재화를 확보한 후에야 낭만적인 생각을 할 여유가 생긴다는 것이다. 스미스는 소외 현상을 인정하였지만, 인간의 필요를 우선으로 두었다. 이 과정에서 어느 정도 인간의 소외는 불가피한 과정, 필요악이라는 것이 스미스의 생각이었다.

우선순위가 다를지라도 인간 소외는 마르크스와 스미스 모두에게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그러나 당시 직업소명론은 인간 소외를 가중하는 도구, 혹은 필요의 문제가 해결되면 폐기해야 할 임시방편으로 격하되면서 도전받고 있었다. 직업소명론은 노동자들이 일을 신성시하게 만들어 이들이 다른 직업으로 이직하고자 하는 의지를 꺾었고, 새로운 계급사회를 만드는 논리로 사용되었다. 하나님이 부르신 일을 떠나거나 바꾸는 것은 신성모독이었다. 그 때문에 노동자들은 자신을 소외시키는 노동을 거부할 수 없었으며, 인간은 더욱더 공장 기계의 부속품처럼 취급되었다.

4. 일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새 창조와 성령)

볼프의 <일과 성령>은 바로 이러한 서구의 일과 노동, 인간 소외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볼프는 서구 자본주의와 산업화를 견인하였던 기독교의 직업소명론이 좌와 우를 대표하는 경제학자인 마르크스와 스미스가 예상한 인간 소외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불충분하며, 이제 시효가 다 지났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인간을 소외하지 않는 일이 무엇인가에 관한 질문과 탐색, 그리고 타락한 세상이 지니는 필요의 요구 등, 이 양 진영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동시에 이들을 통합할 수 있는 신학적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바로 새 창조의 종말론과 이를 성취하는 성령의 일이다. 달리 말해 일은 성령의 새 창조의 일이라는 큰 그림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새 창조는 창조와 타락, 종말이라는 세 가지 의미를 동시에 함축하고 있다. 볼프는 일에는 창조와 타락이라는 두 측면이 있다고 주장한다. 창조의 측면에서 인간과 일은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분리할 수 없으며, 소외 현상도 일어나지 않는다.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과 인간 자신을 모두 만족시켰다. 창조 속에서 일은 언제나 인간적이었다. 그러나 죄와 타락은 인간과 일을 분리하였고, 인간은 필요를 위해서 일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종말의 새 창조는 필요를 충족시키며, 동시에 인간적이며 신성한 일의 회복을 의미한다. 성령은 새 창조의 주체이시다.

이러한 이유로 볼프는 세상을 완전히 멸하지 않고 원래 창조의 회복, 그러나 완전히 새롭게 된 창조인 새 창조의 일을 수행하시는 성령의 관점으로 일을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볼프는 타락과 필요를 무시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나 환경론자들처럼 산업주의자들이나 개발론자들을 적대적이거나, 급진적인 계획경제를 주장하지 않는다. 이는 아마도 그가 공산국가에서 태어나 자라고 교육받으면서, 급진적인 이상주의의 폐해가 무엇인지 경험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볼프의 분명한 지향점은 인간적인 일의 회복에 있다. 비록 필요의 문제가 걸림돌인 것은 분명하지만 성령의 일하심을 믿는 기독교인이라면, 인간적이며 신적인 일의 회복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령의 일을 믿지 않는 비기독교인들에게도 인간적인 일이 가능할까? 볼프는 그렇다고 답한다. 새 창조의 영이신 성령은 신자가 아닌 비신자들을 통해서도 새 창조의 일을 수행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지구와 우주가 창조의 결과이고 또한 새 창조가 이루어질 터전이라면 성령의 우주적인 사역은 비신자들의 손을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봐야 한다.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이 비인간적인 일로 소모되는 것을 성령은 절대로 원하시지 않을 것이다. 모든 인간이 인간다운 삶과 일을 하게 하는 것이 성령의 원함 아니겠는가? 문제는 인간 스스로가 인간다운 일을 거부하고 오직 필요에 따라 사는 비인간적인 삶 속으로 자꾸 기어들어 가는 것일 것이다.

5. 무엇이 인간적인 일인가?

마지막으로 볼프가 말하는 인간적인 일이란 무엇일까? 인간적인 일의 조건 속에는 개인의 만족, 경제적인 필요의 충족, 일의 안정감 등 여러 요소가 있다. 볼프는 이러한 주관적인 요소들을 긍정한다. 하지만 그는 "소외를 야기하지 않는 일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일을 목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힌다. "소외의 부재가 일을 즐기는 것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일이 즐길 수 있고 인간적이기 위해서는 인간 본성에 부합할 뿐 아니라 개인의 재능과 성향에도 부합해야 한다."(314쪽) 인간적인 일은 반드시 하나님 뜻에 부합하고 윤리적이어야 하며 동시에 주관적 만족도 무시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볼프는 개인보다 이웃과 공동체의 유익을 우선시하는 직업소명론의 약점을 지적한다. 하지만 볼프의 주장처럼 누구나 윤리적이면서 동시에 주관적인 만족을 주는 인간적인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개인의 만족과 이웃 사랑과 성경에서 말하는 윤리 사이에서 선택해야 할 순간이 많다. 가족과 교회,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혹은 윤리적으로 더 가치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 주관적인 만족을 접어 두어야 할 때가 있다. 이때 볼프의 논리에 따르면 우리는 좀 덜 비인간적인 일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주관적인 만족을 포기하고 자신의 사람을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신 일(요 13:1)을 택하신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예수님이 조금 덜 비인간적이지만 결국 비인간적인 일을 선택하신 것인가? 난 예수님의 선택은 온전히 인간적인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상이 아닌 완전히 타락한 전적 타락의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전쟁터의 군인에게도 각자의 재능과 만족에 따른 보직이 나뉘고 그 일을 수행할 기회가 주어진다. 그러나 전쟁에서 가장 군인다운 것은 생명을 걸고 가족과 친구를 지키며, 전우를 위해 생명을 거는 것이다. 주관적 만족을 위해 군인의 덕을 희생시키는 것은 군인이라 할 수 없다. 이렇듯 우리 신자가 살아가는 세상도 한편으로는 영적인 전쟁터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도로시 세이어즈(Dorothy Sayers)가 말한 것처럼 예수는 우주에서 가장 탁월한 일꾼이었으며, 갈릴리 최고의 목수였다. 그는 일을 소외시킨 적이 없었다.1) 그러나 단 한 번 세상을 위해 일을 소외시키고 십자가에서 자신을 죽였다. 평상시 자신의 재능을 고려하지 말고 남 돕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하라는 말이 아니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해야 할 때, 용기 있게 자신의 일을 소외시키는 것, 혹은 일로부터 소외되어 자신이 기계의 부속물처럼 도구화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때, 그는 그 누구보다 더 인간적이며 신성한 일을 하는 것이다.




6. 더 생각해야 할 것들

일의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볼프의 성령론적 관점이 모든 것을 명쾌하게 설명해 주지 못하며, 루터의 직업소명론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볼프가 제시하는 신학이 더 탁월한 것도 아니다. 볼프는 루터의 직업소명론을 후기 루터파 신학의 관점을 통해 비판하였다. 같은 비판을 칼빈주의 신학자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가 1892년에 발표하였다.2) 이후 바빙크와 그의 제자들인 신칼빈주의자(Neo-Calvinist)들은 일반은총론을 통해 창조세계 속에 있는 일 자체의 의미를 성령의 일로 이해하였다. 더하여 이들은 종말의 새 창조 개념을 통해 일의 연속성도 강조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리 하디(Lee Hardy)는 볼프의 주장이 신칼빈주의와 거의 차이가 없다고 분석하였다.3)

하지만 비록 볼프가 제시한 신학적 분석이나 비판, 제안이 신선한 것은 아닐지라도 그의 작업은 그 자체로 이전과 다른 매우 큰 의미와 성과를 지니고 있다. 한 시대를 주름잡았고 공산당 혁명의 이론적 토대였으며, 수많은 청년을 교회에서 떠나게 했던 마르크스의 노동 소외 이론을 기독교 신학을 통해 정면으로 분석하고 비판한 것은 대단한 성과라 하겠다. 그리고 교회와 신자들이 일의 소외 현상에 관심을 가지고,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이론적이며 실천적인 대안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도 볼프의 작업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비록 읽기에 녹록하지 않을지라도 볼프의 <일과 성령>은 앞으로 일의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신자와 목회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다. (*이춘성 / 광교산울교회 대학청년부 목사, 고신대 일반대학원 기독교윤리학 박사과정 수료, 전 국제라브리 회원) (본보 제휴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3년 9월 02일, 토 5:33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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