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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문화
 
한국 정부의 일본 외교, 조지 오웰 경고가 떠오른다
<조지 오웰: 지식인에 관한 한 보고서>, 제국주의 '평등 없는 친밀성' 간파

(서울=오마이뉴스) 정승주 기자 =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 방류 문제로 뜨겁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금의 제3자 변제, 동해영토수호 훈련 축소, 욱일기 자위대함 부산 입항에 이어 오염수 방류에 이르기까지 일본과의 외교적 논란들을 보면서 내가 떠올린 단어는 생경함과 당혹감이었다. 생경함이야 과거사의 아픔을 어루만지면서 미래로 나아가려는 역대 정부와는 사뭇 다른 데서 오는 감정이겠지만, 당혹감은 뭔가 찜찜하다.


▲ 고세훈 지음, <조지 오웰 - 지식인에 관한 한 보고서>, 한길사, 2012 ⓒ 정승주

이런저런 생각에 심란해하다 문득 10년 전 <조지 오웰: 지식인에 관한 한 보고서> (고세훈 지음, 한길사, 2012)에서 마주했던 '평등 없는 친밀성'이라는 어구가 떠올랐다. 왜 그것이 뇌리에 스쳤는지 궁금해 자연스레 책을 다시 집게 되었다.

조지 오웰의 도덕적 힘

<조지 오웰: 지식인에 관한 한 보고서>는 정치학자 고세훈이 쓴 평전 형식의 책이다. 우리에게 오웰은 <동물농장>, <1984>, <카탈로니아 찬가>를 쓴 정치작가로 익숙하지만, 영국 안에서는 에세이, 칼럼, 평론, 보도기사 등을 쓴 에세이스트와 칼럼니스트로도 명성이 높았다고 한다. 오랜 세월 영국의 정치와 사회를 연구해온 저자는 오웰이 직접 쓴 방대한 자료를 기반으로 그의 삶과 글쓰기, 그리고 결과물인 사상의 자취와 맥락을 꼼꼼하게 짚고 있다.

저자는 46세의 짧은 삶을 산 사회주의자 오웰이 엄청난 양의 글을 쏟아낼 수 있었던 데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도덕적 힘에서 나온 것으로 보았다. 식민지 버마에서 영국의 제국경찰로 복무하며 시작된 피해자에 대한 연민, 가해자로서의 수치와 죄의식은 오웰이 평생 갚아나가는 실천의 삶을 살게 한 힘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오웰의 생애를 '속죄'와 '해원'으로 표현한 것이 이해할 만하다.

하여 오웰에게 있어 글은 속죄와 해원의 강력한 수단인 셈이다.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걸 염원했던 그가 정치와 사회체제 그리고 체제에 복무하는 지식인에 대한 고발과 비판에 전념한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숙명이다. 저자가 오웰의 삶과 저술의 의미, 책의 성격을 밝히고 있는 대목에서 이 점은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오웰의 저술은 고발과 비판의 기록에 가깝다. 그것은 가난과 사회체제와 제국주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좌우 전체주의와 전쟁, 그리고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로 인해 독자의 의식을 흔들고 양심을 파고든다. 무엇보다 오웰의 고발과 비판은 권력(자), 가해(자)를 향해 치열하게 열려 있고, 권력과 가해의 주변에는 늘 지식인이 서성댔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은 권력 언저리에서 킁킁대며 안일과 위선과 표변을 일삼는 지식인에 대한 보고서일지 모른다." (33쪽)

"글쓰기를 포함한 오웰의 삶의 행적이 권력의 속성에 대한 폭로와 경고 그리고 권력자에 대한 저항의 기록이라면, 이 책 역시 스스로 권력자이며 권력을 탐하고 추종하는 지식인들에 대한, 오웰의 눈과 입을 빌린, 하나의 긴 보고서일 것이다." (39쪽)

글머리에서 말한 '평등 없는 친밀성(intimacy without equality)' 개념은 오웰이 버마에서 제국의 경찰로 '백인의 책무'를 수행하다 얻은 경험과 인식의 소산이다. '백인의 책무'는 지배자(영국인)가 현지인(버마인)과의 관계에서 친밀성을 유지하되 인종과 계급에서 기인한 신분적 불평등은 잊지 마라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오웰은 <저자 존 플로리를 꾸짖는 글>에서 백인은 현지인에게 베풀고 공정하게 대해야 하고 현지인 여성과 사귈 수도 있지만 동등해지게 하는 결혼은 절대 안 된다고 묘사함으로써 그 요체를 드러내 보였다.

결국 제국주의는 지배자와 피지배자 간의 친밀성 위에 구축됐다는 것이고, 오웰은 "친밀함이 관계의 주된 내용이 아니라 오히려 관계의 본질을 은폐하는 도구"(130쪽)임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제국인과 식민지인 사이의 근원적 불평등은 인종이라는, 인위적으로 어쩔 수 없는 요인에서 기인한다. 반면에 친밀성은 인위적으로 구축된 - 많은 경우 필요, 특히 경제적 수탈의 필요에 따른 - 하나의 방편이며, 그로 인해 착취의 혹독함은 완화되거나 은폐된다. 영국인과 현지인과의 '친밀한 회합'이 왕왕 완벽한 우호의 분위기 속에서 진행될 수 있는 것은 서로가 상대의 내밀한 동기를, 그리하여 상대가 궁극적으로 적(敵)이라는 점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131쪽)

"제국주의적 상황에서 '평등 없는 친밀성'이 지니는 본래적 비극성은 '평등 없음'의 불가피성에 있다. 지배자가 현지인에게 베풀 수 있는 친밀성이란 원래부터 '낯선' 친밀성, 곧 그 자체가 형용모순의 허구였다." (138쪽)

'친밀'은 허용해도 '평등'은 허용 않는다?

우리와의 외교에서 일본은 혹여나 과거의 제국주의적 영광을 되새김질하며 조지 오웰이 버마 시절에 겪었던 '평등 없는 친밀성'에 기대어 온 것은 아닐까? 우리를 존중하고 우방국 대하듯 하다 느닷없이 돌변하여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수출규제 조치를 하거나 잊을만하면 독도 영유권이나 일제 강제동원 부인 등의 주장을 되풀이하는 걸 보면 그렇다.

꼭 우리와의 관계에서 '친선(친밀)'은 허용해도 '평등'은 허용하지 않을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과거(강제동원 제3자 변제)와 현재(원전 오염수 방류)를 담보로 일본의 선의에만 기대어 외교정책을 꾸려가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조지 오웰이 가르쳐준 대로 그 결과의 끝은 평등 없는 관계로 이어질 것이다. 이는 국가 간의 호혜와 동등성이 아닌 불평등 관계로의 전환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지금 되돌리지 않는다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노력과 비용을 부담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이제라도 일본의 '평등 없는 친밀성'에 기대거나 우리가 잘해주면 성의를 보이겠지 하는 막연한 희망 고문 회로를 돌리지 말고 '평등 있고 친밀한' 외교를 모색해 주길 간절하게 바랄 뿐이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3년 9월 05일, 화 6:35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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