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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경제
 
일본 꾸짖은 재판부의 소신, 새로운 시련의 시작
[김종성의 히,스토리]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항소심 승소에 낙관할 수만은 없는 이유


▲ 23일 오후 서울고법 민사합의33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청구를 인용하고 위자료 지급을 명령했다. 재판이 끝난 후 위안부 피해자 중 한 명인 이용수 할머니가 기뻐하며 만세를 부르고 있다. ⓒ 이정민

(서울=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 위안부 피해자들이 승리를 거뒀다. 23일 서울고등법원 민사33부(구회근•황성미•허익수 부장판사)는 이용수 할머니와 고 곽예남•김복동 할머니 유족 등 16명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일본 정부는 2억원 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소송을 제기한 할머니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95세 이용수 할머니는 이날 크게 만세를 불렀다. 휠체어를 타고 법원 문을 나서면서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반면, 일본 정부는 "극히 유감"이라고 밝혔다.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는 오카노 마사타카 사무차관이 윤덕민 주일대사를 초치해 "이 판결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력히 항의했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과 2015년 위안부합의에 의해 이 문제가 완전하고 최종적이며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면서 윤석열 정부에 메시지를 보냈다. "한국 정부에 대해 국제법 위반을 시정하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강구할 것을 재차 강하게 요구합니다"라고 주문했다.

이번 사건의 1심 법원인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15부(민성철 부장판사)는 대한민국 법정에 세울 수 없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돼 소송요건이 결여됐다는 이유로 2021년 4월 21일 본안 심리 없이 사건을 각하했다. 1심 법원은 '주권국가는 타국 법정에서 재판받을 수 없다'는 국가면제 또는 주권면제이론에 따라 원고의 주장에 대한 심리 자체를 거부했다.

국가면제이론은 확립된 법률 원칙이 아니다. 국가행위 중에서 일부에만 인정해주는 국제 관행이 있을 뿐이다. 정상적인 국가행위가 아닌 전쟁범죄 같은 것에 대해서는 이 이론을 배제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강제징용소송인 2004년 루이지 페리니 사건에서 이탈리아 대법원은 '국제강행규범을 위반한 범죄행위에는 국가면제가 적용되지 않는다'며 독일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인류 보편의 규범을 어긴 독일은 '국가는 열외다'라고 주장할 수 없으므로 이탈리아 법정에 피고로 서야 하고 배상책임도 져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 뒤 이탈리아 헌법재판소도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국가면제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1943년 7월 독일 잠수함 U-177에 격침된 어선 선원의 유족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브라질 연방대법원은 "헌법상 국제관계에서 인권이 우선하므로 인권침해에 해당하는 외국의 불법행위는 주권면제를 누릴 수 없다"는 판례를 2021년 8월 23일에 남겼다.

우리 사회에 큰 힘이 되는 판결


▲ 이용수 할머니와 정의기억연대 회원들, 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변 대회의실에서 열린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들의 일본국 상대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 선고 결과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이정민

일본 정부는 자국은 열외라며 위안부 재판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이 나라 역시 필요할 때는 국가면제의 예외를 주장하고 있다. 일본 법률인 '외국 등에 대한 우리나라의 민사재판권에 관한 법률' 제10조는 인명이나 유체물을 손상시키는 외국 국가행위가 일본 내에서 벌어진 경우에는 외국 정부를 일본 법정에 세울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이처럼 일본은 외국 정부가 자국민의 물건을 손상시킨 경우에도 국가면제의 예외를 인정한다. 그런 나라가 한국인들의 인권을 침해해 놓고 국가면제를 요구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렇게 일본조차도 필요할 때는 국가면제를 배제하는데도 이번 사건 1심 재판부는 국가면제를 내세우며 위안부 할머니들을 울렸다. 국제적 추세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몰인정하고 비인간적이기까지 한 일이었다.

그해 1월 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김정곤 부장판사)는 이옥선 할머니와 고 배춘희 할머니 등이 제기한 소송에서 "이 사건 행위는 일본제국에 의해 계획적•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행위로서 국제 강행규범을 위반한 것"이라며 국가면제를 부정하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런 판결이 나온 지 4개월 만에 이번 사건의 1심 판단이 나왔기에 실망과 충격이 한층 크게 느껴졌다.

이번 항소심 판결에서 서울고법은 "피해자들은 최소한의 자유조차 억압당한 채 매일 수십 명의 일본 군인들과 원치 않는 성행위를 강요당했고, 그 결과 무수한 상해를 입거나 임신•죽음의 위험까지 감수해야 했으며, 종전 이후에도 정상적인 범주의 사회생활에 적응할 수 없는 손해를 입었다"며 일본의 유죄를 인정했다. 인류를 상대로 죄를 범한 이 나라를 상대로 '일본 너희도 법정에 서야 한다'고 꾸짖은 셈이다.

작년부터 역사문제가 크게 퇴행했다. 강제징용 배상책임을 한국 정부가 떠안기로 하는 제3자 변제안 채택이 대표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판결이 나왔다. 우리 사회에 큰 힘이 되는 판결이 나온 것이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헌법 제103조)고 하지만, 법관들이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하려면 사회 분위기도 뒷받침돼야 한다. 작년 7월 26일에 윤석열 정부가 대법원에 의견서를 보내 강제징용 판결의 집행을 견제한 데서도 나타나듯이, 법관들이 역사문제에 대해 소신 있는 판결을 내놓기 힘든 것이 지금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번 판결이 나온 것은 우리 국민들의 역사의식이 재판부의 판단에 어느 정도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재판부가 행정부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소신 있게 판결한 것은 국민들을 믿고 법과 양심대로 재판에 임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윤석열•기시다의 반역사적 태도와 바이든의 모순된 태도


▲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코니센터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 회동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렇지만 낙관은 이르다. 한미일 3국의 연합이 군사문제뿐 아니라 식민지배 같은 역사문제에 대해서도 작동하고 있다. 미국은 점점 노골적으로 한일 역사문제에 개입하고 있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뿐 아니라 람 이매뉴얼 주일미국대사도 드러내놓고 일본 편을 든다.

이매뉴엘 대사는 2021년 10월 20일 인사청문회에서 "20세기가 21세기의 기회를 뺏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한일 역사문제 봉합에 의욕을 표시했다. 이처럼 취임 전부터 한국 국민들을 겨냥한 그는 부임 후에 미일 사무뿐 아니라 한일 역사문제에도 깊이 개입하고 있다.

한일 두 정부가 역사문제를 봉합하고 미국이 응원하는 양상은 한미일 3국의 공식 문서에도 반영되고 있다. 지난 8월 18일 채택된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 공동성명에 "바이든 대통령은 한일관계를 변화시킨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용기 있는 리더십을 평가했다"는 문구가 들어갔다.

식민지배 문제의 해결을 막은 것이 한일관계를 변화시킨 용기 있는 행동으로 평가되고 미국 대통령이 이를 칭송한다는 내용이 3국 공식 문서에 반영됐다. 이날 바이든은 정상회의 모두발언에서도 "여러분을 여기까지 오게 한 여러분의 정치적 용기에 사의를 표하고 싶습니다"라며 역사문제를 정치적으로 왜곡시킨 두 정상의 행동을 정치적 용기의 발현으로 치켜세웠다.

미국 에머슨대학이 이달 22일 공개한 여론조사에서는 상황이 좀 달라진 것으로 나타났지만, 그동안 바이든 대통령은 여성•유색인종•청년층의 지지를 받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자국 내에서는 이처럼 진보적 태도를 취하는 바이든은 한일 역사문제에서만큼은 양국 극우세력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윤석열•기시다의 반역사적 태도와 더불어 바이든의 모순된 태도 역시 한국의 역사정의를 짓밟고 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이번 2심 승소는 새로운 시련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일본 국가는 한국 법정에 서지 않는다'는 오만함을 보이며 위안부 재판에 얼굴조차 내비치지 않은 일본 정부가 이번 판결에 불복해 상고를 제기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래서 이번 판결이 이대로 확정될 가능성이 있지만, 한미일 3국이 향후 새로운 공세를 가할 것이 뻔하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다 이긴 강제징용 재판이 집행 단계에서 오래도록 멈춰 서 있다. 이는 이번 소송에 대해서도 낙관을 자제하게 만든다. 판결이 확정돼도 일본 정부가 1인당 2억씩 내놓을 가능성은 사실상 전무하다. 한국 내의 일본 정부 재산에 대한 강제집행에 대해서도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지금 단계에서는 일본 정부의 재산을 피해배상금으로 바꾸는 일이 힘들어 보인다.

유일한 희망은 국민들의 행동뿐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정부 재산을 배상금으로 바꿔 피해자들의 손에 가게 하려면, 국민들이 직접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보인다.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3년 12월 02일, 토 9:5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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