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생활 이야기]

(올랜도=코리아위클리) 송석춘(올랜도 독자) = 내주가 할멈 기일이라 할멈 산소가 있는 우드론 공원묘지에 가서 새조화로 바꿔놓고 왔다.

공원묘지에 있는 무궁화 동산 묘지에 자리잡은 어느 동포의 묘지에는 작은 태극기가 꽂혀있다. 태극기를 조상 묘지에 가져다 놓은 것은 틀림없이 망자의 후손일 것이다. 나는 그들의 애국심에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나는 오랜 군대생활을 하면서 지휘관들이 이위임사에서 수도 없이 '유비무환'을 말한 것을 들었다. 준비를 미리 해두면 근심걱정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많은 이민자들이 한번쯤은 이 사자성어를 마음 속 깊이 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신문에서 장례를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유가족이 고통한다는 내용의 글을 읽고 더욱 그런 생각을 가졌다.

내가 우리 부부 장례비 선불 할부금을 내기 시작하였을 때가 내 나이 56세였다. 사실 죽기도 전에 장례비를 냈다고 자랑할 수도 없어 가까이 지내던 사람에게 장례비 선불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가족 중에서도 큰 딸만 알고 지냈다.

나는 3D 노동에다 당시 술과 담배를 했기 때문에 할멈보다 먼저 죽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죽고 나서 할멈 혼자 짊어질 큰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기 위해 5년간 할부금을 완불했다. 그러나 할멈은 나이 80세에 저 세상으로 떠났다.

먼저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은 지금 만 87세가 됐다. 그리고 밥 잘먹고 잠 잘자고 독서도 많이 하면서 지내고 있다. 무엇보다 마음이 편하다. 이 모든 것이 이민생활을 하면서 유비무환을 열심히 실천하려 노력을 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처음에는 우드론 묘지에 갈때마다 내 이름이 있는 스톤 헤드를 보고 마음이 이상해지곤 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모든 것이 자연의 법칙을 비켜 나갈 수 없음을 깨달은 나이가 되니 묘자리에 있는 내 이름을 보고도 무덤덤하다. 무감각해졌다고나 할까.

유족들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으려면 장례비 선불 계획을 생각해 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할멈이 죽고 나서 공원묘지 측의 장례절차를 지켜보았다. 이틀간 진행된 모든 과정이 별다른 차질 없이 끝났다.

장례를 치르며 내가 이민생활의 고달픈 삶의 와중에 유비무환을 실천한 것 중에 가장 제일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