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나 칼럼]

(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어지니교회) = 어제는 손자와 함께 버섯농장을 다녀왔다. 녀석은 버섯을 좋아한다. 어제가 네 번째 방문이었다. 세 살짜리 아이가 버섯을 좋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곳을 방문하는 유치원 아이들도 다시 그곳을 오는 경우는 없다고 했다. 녀석은 마트에서도 버섯을 발견하면 좋아한다. 웬만한 버섯의 이름은 다 안다. 뿐만 아니라 버섯 채취 유튜브를 통해 버섯을 채취하는 방법까지 알고 있다. 나와 보라매공원엘 가도 버섯 포인트를 찾아보자는 말을 한다.

녀석은 머리가 좋아 보인다. 손자가 천재 아닌 경우가 없다고 하지만 녀석의 경우는 위 버섯의 경우만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인정을 받을만한 다른 경우들이 제법 있다. 녀석을 가르치는 영어 선생님은 녀석에게 언어에 소질이 있다면서 따로 녀석을 가르치고 싶다는 말도 했다. 녀석은 나이 또래답지 않게 관심의 영역이 넓을 뿐만 아니라 학습능력이 탁월하다.

그런 녀석이 나는 걱정스럽다. 사람들은 머리가 좋으면 아무런 생각 없이 그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내 경우는 다르다. 다른 아이들보다 머리가 나쁘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너무 좋은 것도 우려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나는 녀석이 엘리트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내가 이상한 할아버지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세상을 지탱하는 두 기둥이 능력주의와 이기주의임을 잘 알고 있다. 능력주의를 견인하는 것이 엘리트주의다. 사람들은 엘리트가 되기를 원하고 엘리트임을 자랑한다.

미제레올이라는 원조단체가 있다. 지금도 전 세계 가난한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희망을 전하면서 참 살림을 증거 하는 대표적인 기관이다. 40년도 훨씬 더 전에 미제레올의 한 독일인 대표가 안동교구 지역에 있는 학교들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한 교장 선생님이 학교 현황을 소개하면서, 졸업생이 몇 명인데 그들 중 몇 명은 어디에 취직했고 또 몇 명은 어느 학교에 진학했다면서 자랑스러워했다. 졸업생 가운데 특별히 뛰어난 학생들에 관해서 말할 때는 누구는 소위 일류대학이라는 어디에 입학했고, 누구는 무슨 공으로 어떤 상을 받았다며 그들의 고향과 부모의 사회적 지위를 소개하기까지 하였다.

이야기를 듣던 독일 분은 곰곰 생각하며 묵묵히 앉아 있더니 한참 후에 입을 열어 물었다. “우등생 말고 학교를 겨우겨우 졸업하는 좀 뒤떨어진 학생들은 어디에 취직하며 무엇을 하는가요?” 그렇게 설명을 잘 하던 교장 선생님은 이 물음에 대답을 잘 못하였다. 그러자 미제레올에서 온 그 독일인 대표는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듯 웃음을 지으면서도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우등생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머리가 좋고 똑똑하니까, 또 유능하니까 세상을 쉽게 이겨나갈 수 있고 언젠가는 출세할 것입니다. 하나 머리가 그리 좋지 못하고 남에게 뒤떨어지는 졸업생들은 그렇지 못할 테니 오히려 우리는 그 애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요?”

특히 우리나라는 경쟁이 심하다. 내가 학생이던 시절에는 일류 중학교, 일류 고등학교가 있었다. 그런 학교를 다니면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나는 지방의 학교를 다녔다. 그 지방에서는 일류라고 할 수 있는 학교였다. 그때는 통행금지라는 것이 있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교복을 입고 통행금지를 위반해도 잡아가지 않았다. 단속을 하는 사람들은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아도, “공부하느라 늦었구나. 통행금지 시간이니 내가 집까지 데려다 주마.”라고 하면서 오히려 집까지 에스코트를 해주었다. 내가 들은 경기를 다니던 학생들의 경우는 이보다 훨씬 더한 대접을 받았다.

내가 그런 경기를 나오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나를 낮추신 것으로 이해한다. 주님은 나를 낮추셨다. 경기뿐만이 아니라 경쟁에서 이기고 성공할 수 있는 모든 길들을 원천봉쇄하셨다. 지금은 그런 주님의 손길이 내게 주어진 은총이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만일 내게 그런 주님의 손길이 없었다면 나는 온갖 호사를 누리며 사는 지옥행 일 순위 후보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내 생각을 잘난 척 하는 것으로 알아듣거나 내 인생을 합리화하는 것으로 여긴다. 나는 우수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던 내 과거가 부끄럽다.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까지 무시했다.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고도 그들만큼 성적이 좋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는 존재 자체로 다른 아이들에게 열등감을 심어주는 나쁜 아이였다.

실제로 나는 그런 사회분위기에 편승하여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삶을 살았다. 한 번도 고의로 그랬다거나 그러려고 했던 적은 없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그런 삶을 살았다. 지금은 그때 그렇게 무례하게 대했던 사람들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하고 싶다. 생각할수록 엘리트주의에 참몰되어 있던 내 과거는 회개해야 할 삶이었으며 그런 나로 인해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미안한 정도가 아니라 사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나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미제레올 대표처럼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세상의 대인이 되지 못하도록 막아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내 손자도 뛰어난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 것이다. 나는 녀석이 평범했으면 좋겠다. 평범하지 않고 뛰어나다면 자신도 모르게 엘리트가 된다는 것을 내 인생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물론 엘리트가 되어 비능력을 삶의 방식으로 택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신앙이란 것은 참람한 실패라는 혹독한 과정을 지나야 하기에 그런 모진 삶을 살지 않기를 바라는 할아버지가 될 수밖에 없다. 래리 크랩과 같은 사람처럼 자신의 손자 손녀들이 좌절한 삶을 살기를 기도할 만큼 나는 모질지는 못하다. 하지만 나도 래리 크랩처럼 기도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엘리트가 되어 비능력을 실천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런 처절한 좌절과 실패를 전재로 한다. 나 역시 그런 과정을 겪어 오늘에 이르렀다. 결국 완전히 실패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서야 주님의 부르심을 받는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비능력을 배우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미제레올의 대표처럼 머리가 좋지 못하고 남에게 뒤떨어지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처럼 능력을 가지고도 그 능력을 사용하지 않기란 어렵다. 오히려 능력이 없는 것이 능력을 사용하지 않을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상태다. 하나님은 비능력을 실천하는 능력자나, 능력이 없는 비능력자나 차별이 없이 사랑하신다. 비능력을 실천하는 능력자가 되기는 어렵다. 오히려 능력이 없는 비능력자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가 더 쉽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내 손자가 평범하기를 바란다.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능력주의와 개인주의가 지탱하고 있는 세상을 전복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세상의 선봉이 되어 능력주의와 개인주의를 추구한다. 적어도 내가 아는 개신교는 완전히 그렇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능멸하면서 자신들이 하나님 나라와 확장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는 어림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는 확장이 목표가 아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가루 서말에 부은 누룩처럼 보이지 않게 이루어진다. 더구나 그 일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이제 그리스도교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 자기 교회를 확장시키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로버트 슐러의 수정교회를 보라. 자랑스럽던 그 교회의 말로가 어떤 것인가를 보라. 로버트 슐러 목사의 말로를 보라. 로버트 슐러 목사와 수정교회를 부러워했던 한국의 대형교회들 역시 말로가 그들과 같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관심은 온통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 쏠려야 한다. 미제레올 대표처럼 말이다. 나는 미제레올 대표와 같은 사고를 지닌 그리스도인들을 한국에서도 보고 싶다. 그러려면 반드시 능력(엘리트)주의와 개인주의로부터 벗어나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제레올 대표는 참 고마운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