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목회자 멘토링 컨퍼런스] 깨진 조각들로 화해의 십자가 만드는 김성환 목수
(2024년 8월 19일, ‘목회자 멘토링 컨퍼런스’가 LA <선한청지기교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LA 컨퍼런스는 8월 19일에서 21일까지 열리며, NY 컨퍼런스는 8월 26일에서 28일까지 열립니다. 김성환 목사님 강의를 싣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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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목회자멘토링컨퍼런스에서 강의 중인 김성환 목수 ⓒ 미주뉴스앤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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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미주뉴스앤조이) 김성환 목수
"내 인생의 화양연화, 신대원 학생 시절"
역사를 공부했다. 졸업 논문 제목이 ‘김교신의 무교회주의’였다. 한때 김교신의 사상에 심취했었다. 그리고 풀러신학교를 들어갔다. 고민이 생겼다. ‘목회를 할 것인가, 신학을 할 것인가?’ 다시 프린스턴신학교에 진학했다. 이유는 설교학을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내 생각에는, 한국교회의 위기가 설교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설교를 잘 하고 싶었다. 프린스턴신학교에 가게 된 이유도 설교학을 가장 잘 가르치는 신학교가 ‘프린스턴’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학교 생활은 너무나 행복했다. 내 인생의 화양연화였다. 학교가 너무 좋았고, 넘 아름다웠고, 선생님의 수업도 좋았고, 학생들도 좋았다. 미국 서부와는 분위기도 완전히 달랐다. 매일 아침 학교에 갈 때, 아인슈타인의 생가를 지나갔다. 열심히 공부했고, 수석으로 졸업했다.
졸업 후, 대학 교수님이 제안을 하셨다. 뉴욕에 있는 유명 신학교에서 설교학 강의를 해보지 않겠냐고 했다. 3S에 대해서 배웠다. 세미너리(Seminary)는 신학교를 의미하며, 생추어리(Sanctuary)는 교회를 의미하며, 스트리트(Street)는 현장을 의미한다. 나는 신학교에서 교회로 가고 싶었다. 신학교는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예수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느꼈고, 이제는 교회에 가서 일반 사람들을 상대로 목회를 해보자 싶었다.
"한 손에 성경을, 한 손에 수박을"
캘리포니아 가디나(Gardena)에 있는 장로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2차세계대전 전쟁 후에 일본인들이 많이 살던 지역이다. 일본인들은 정원사로 일을 많이 했다. 정원사를 일본식 발음으로 하면, ‘가디나’가 된다. 그래서 이 지역의 도시 이름도 ‘가디나’(Gardena)로 정해졌다.
<가디나장로교회>는 교인 수가 150여 명이고, 교인들의 평균 연령은 74세쯤 되었다. 그래도 부푼 기대를 안고, 2011년 첫째 주일에 가서 부임 설교를 하였다. 그런데 예배가 끝난 후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나는 모든 교인들이 서로 인사를 하며 반겨주리라 기대했다. 웬걸, 담임목사가 처음 왔는데도 불구하고, 교인들은 인사도 하지 않고 모두 뿔뿔이 흩어져 집으로 돌아갔다. 이게 뭐지? 난 매우 뻘쭘하고 무안했다.
교인들의 절반 이상이 70대였다. 이분들은 예배가 끝나자마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교회 주변을 둘러 보았다. 잠시 앉아서 쉴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 흔한 벤치 하나 없었다. 대부분이 노인분들인데 편하게 앉을 수 있는 의자 하나가 없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
나는 곧바로 교인들과 함께 작업에 착수했다. 교회 곳곳에 벤치를 만들어서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서로 둘러 앉아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평상도 만들었다. 노인분들은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와 반대로 하나 둘씩 집에서 뭔가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어느 분은 장기판을 가져오고, 바둑판을 가져오고, 수박을 가져오고, 딸기를 가져 왔다. 예배가 끝나고 나면, 교회 밖 곳곳에서 교인들이 모여 서로서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
논쟁이 생기기도 했다. 교회 안에서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바둑판은 되지만, 장기판은 안 된다. 수박은 되지만, 비싼 과일은 안 된다, 등등. 그래서 내친김에 교회 텃밭을 일구고, 실과 나무를 심었다. 젊은 부부와 아이들을 위해서는 닭도 키우고, 토끼도 키우고, 강아지와 도마뱀도 키웠다. 닭들이 알을 낳았다. 주중에는 교역자들이 먹고, 주일에는 교회에 일찍 오는 교인들이 먹었다.
모든 교인들이 함께 만들고 같이 가꾸었다. 교인들은 교회 공간에 대해서 너무나 큰 애착을 가지게 되었다. 수박을 심어서 자라나는 과정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탁구공만한 게 점점 커져가는 과정을 보면서 너무나 신기해 했다. 100여 명의 교인들이 모여서, 한 손에 수박을 한 손에 성경을 들고 성찬식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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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목의 십자가를 만든 김성환 목수 @ 미주뉴스앤조이ⓒ 미주뉴스앤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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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북한에 마음이 많다. 남과 북이 화목하게 되기 위해서는 교회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예언자 에스겔에게 두 나무 조각을 주고, 그 나무들이 하나로 합쳐지는 퍼포먼스를 하라고 명령했다. 남유다 왕국과 북이스라엘이 하나가 되는 것을 상징하는 하나님의 열망이었다.
나무 조각들을 모아서 ‘화목의 십자가’를 만들었다. 깨지고 으스러진 조각들을 함께 모아서, 원목보다 더 단단하게 빚어냈다. 버려진 잡목을 가지고 만든 ‘단단한’ 십자가를 만들었다. 이 나무는 나를 상징한다. 조각조각이 난 잡목 같은 내 마음을 모은 것이다. 허물 많은 모습, 먼지가 쌓여 있는 모습, 사방으로 찢겨 있는 모습, 고집스러운 모습, 등등이 모두 모여 있는 ‘나’다. 그런 나를 하나님께서 감싸 안고 있는 형상을 표현했다.
이 십자가 작품을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표시해 주었다. ‘나도 만들어 주세요’ 하는 분들이 많았다. 목사를 그만두었는데도, 여전히 십자가를 팔아서 먹고 사는 목수가 되었다. 허물 많은 나를 하나님이 품어 주시는 것으로 형상화했지만, 사람들은 다양하게 자신의 느낌을 표현했다. 어떤 분은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했고, 어떤 분은 엄마의 품이라고 말했고, 어떤 분은 나와 아이들 같다고 말했다. 십자가는 사람들마다 각자의 의미와 느낌 대로 표현되고 있었다.
백두산은 80퍼센트 이상이 자작나무로 뒤덮여 있다. 자작나무는 매우 단단하다. 고집스럽고 악한 사람의 모습을 닮아 있다. 북한의 ‘주체’ 이념을 닮아 있는 듯하다. 이에 비해 한라산의 삼나무는 너무나 쉽게 썩는 나무다. 톱으로 잘라 보면 속이 다 썩어 있다. 얼마나 부패하기 쉬운 나무인지 모른다. 남한의 ‘극우’ 기득권 세력을 닮아 있다. 이 두 나무로 십자가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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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려진 벽난로를 모자이크로 다시 만든 김성환 목수 ⓒ 미주뉴스앤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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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간 파이프가 교회의 음악이라면, 조각난 모자이크는 교회의 미술이라고 생각한다. 깨지고 모나고 서로 찌르는 조각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 '교회'가 아닐까? 이들이 모여서 이룬 형상을 보라. 얼마나 아름답지 않은가?
북한에는 고아원이 많다. 90년대 고난의 대행진 기간에 200만 명 이상이 굶어 죽었다. 이때 많은 아이들이 고아가 되었다. 북한의 겨울은 너무나 춥다. 아이들은 대부분 동상에 걸려서 발가락이 거의 짤려 있다. 북한의 아이들은 거친 길이 나오면 신발을 벗고 걷는다. 그러다가 평지가 나오면 다시 신발을 싣는다. 일반 사람들과 정반대로 하는 행동이다. 그만큼 신발이 귀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발보다 신발을 더 아끼는 거다.
신발 공장을 만드는 사역을 시작했다. 펀드를 모으기 위해 큰 행사를 준비했다.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행사였다. 북한과 남한에서 모두 허락을 받았다. 그런데 갑자기 큰 변수가 생겼다. 2015년, 북한을 여행하던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Otto Warmbier)가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토록 열심히 준비했던 행사를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교회 안에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생추어리'에서 '스트리트'로"
북한 아이들에게 신발 보내는 사역을 하고 싶었다. 어떤 장로가 강력하게 항의했다. 그 아이들은 동상이 걸려서 발리 짤리게 그냥 두어야 한다고 항변했다. 아이들이 크면 인민군이 될 것이고, 어차피 그들은 죽여야 하는 아이들일 뿐이다. 일찍 죽이는 게 더 낫다고 말했다.
그 장로는 나를 많이 아끼던 분이셨다. 깊은 절망감이 찾아 왔다. 내가 5년 동안 설교한 것이 무슨 소용이 있지? 평생 동안 신앙 생활을 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이지? 교회 생활은 그냥 취미였나, 복음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목사라는 직분은 하나의 기능에 불과하단 말인가?
이제 Sanctury(교회)에서 Street(거리)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회의감이 밀려 왔다. 내 설교가 왜 이렇게 막연하지. 내가 왜 이렇게 무감각하지. 내가 왜 이렇게 노련해지고 있지. 교인들 감정을 움직이는 ‘렉토릭’에 익숙해지고, 기도할 때도 상투적인 표현들이 너무나 잘 나왔다. 모든 것들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졌다. 교인들에게 진심으로 귀 기울이며 대화를 나누고, 말을 들어주었는데, 이제는 많이 귀찮아지고 무감각해졌다.
목사들은 말을 많이 한다. 어디를 가든 주인공이 되고싶어 한다. 건강한 교회가 되려면 목회자가 건강해야 한다. 건강은 전인적인 것이다. 육체, 정신, 영성, 모두 건강해야 한다. 예수님은 목수이셨다. 초기 사람들도 예수가 목수라는 사실이 부끄러웠나 보다. 헬라어로 ‘테크톤’이라고 번역해 놓았다. 그런에 이 말은 목수의 뜻이 아니라 ‘건축가’를 의미한다.
목수의 하루 일과는 결과가 그날 바로 나온다. 설교는 무슨 결과가 나오는지 잘 모른다. 목회 현장은 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목수 현장은 말할 기회가 별로 없다. 많이 외롭다. 지금은 하루에 영어 한마디쯤 한다. 노인들 아파트에 가면, 자녀들 자랑을 많이 한다. 그러나 찾아오는 자녀들은 본 적이 별로 없다. 그게 삶의 현장이다.
"그만 두세요, 아니 그만 두면 안 됩니다"
어제 강의 준비를 해야 하는데, 무슨 말을 해야할 지가 정리되지 않았다. 하루 종일 작업하다 보면, 내일 와서 무슨 일을 마무리하고, 어떤 도구를 사용해야 할 지만 생각이 났다.
마치 탈북자가 식당에 들어갔는데 지도원 동무를 맞닥뜨린 심정이다. 가슴이 벌렁거리고 먹먹하다. 내가 목회자들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목회 안수를 앞둔 분도 계시고, 이제 막 교회 개쳑을 하신 분들도 있다.
목회 현장을 떠난 사람으로서, 실패한 목회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무슨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여러분, 목회 현장에서 나와 보십시오.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이렇게 말해야 하나. 아니면, 여러분 목회 현장을 나왔더니 너무 힘들어요. 잘 버티셔야 합니다. 이렇게 말해야 하나.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나는 이제 '목사'라고 불리는게 부담스럽다. 지난 8년 동안 12번이나 청빙 제안이 있었다. 단호하게 거절했다. 목회 현장으로 돌아갈 마음은 한 치도 없다. 설교는 간간이 한다. 소망이 있다면, 내가 인도하지 않는 작은 성경 공부 모임이 있으면 좋겠다. 목사가 아닌 모두가 똑같은 사람들이 모이는 공동체가 있으면 좋겠다.
(*김성환 목사는 UCLA에서 역사학을 공부했고, 프린스톤신학교에서 설교학 석사를 마쳤다. 여러 교회에서 부목사와 담임목사 사역을 하였다. 현재는 가나공방을 운영하며, 순회 설교자로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본보 제휴 <미주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