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경 목사, 목회자들에게 희망을 주다

(뉴욕=미주뉴스앤조이) 정준경 목사(우면동 교회)

"목사가 행복해야 교인들도 행복하다"

우리는 왜 신학교에 갔는가? 예수님을 만나고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이 너무나 행복해서 신학대학원에 갔다. 그리고 힘들지만 즐겁게 신대원을 다녔다. 지금 목회가 행복한가? 많은 목회자들이 자신있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신대원을 졸업하고 목사가 되면서부터, 신앙 생활과 사역 활동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영적인 공급은 끊어지고 부담스럽고 힘겨운 사역만 남았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섬기는 것이 행복해서 신학대학원에 가고 목사가 되었는데, 어느 순간 행복은 사라지고 괴롭고 힘든 것만 남게 되었다. 목사가 행복하지 않는데, 그 교회를 다니는 성도들이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행복한 목사가 될 수 있을까?

동네 조기축구를 해본 적이 있는가? 조기축구는 후원자도 없고 관중도 없다. 무슨 열정으로 축구를 열심히 할 수 있을까? 전도사 시절 수련회에 가서 경험한 일이다. 한낮에 축구 경기를 하게 되었다. 선생님팀과 학생팀이 겨루는 경기였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여름이었고,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든 날씨였다.

고등부 교사 중에 상구(가명)이라는 청년이 있었다. 선생님팀이 속절없이 당하고 있었다. 나는 골대 앞에서 수비를 하고 있는 상구 형제에게 말했다. "상구야, 너라도 좀 열심히 뛰어라.” 그러나 상구는 나의 잔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냥 어슬렁거리기만 할 뿐 열심히 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후반전이 되자마자 상구는 웃통을 벗어던지더니 그야말로 날라 다녔다. ‘이게 뭐지?’ 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멀리 나무 그늘 아래에서 축구 경기를 관람하고 있는 두 자매가 있었는데, 그 중에 한 자매를 상구가 좋아하고 있었다.

나는 그 날 깨달았다. 우리 인생도 많은 관중들이 응원하고 방송으로 중계하는 국가 대표 선수들의 축구와 같은 인생이 있고,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조기축구와 같은 인생이 있다. 목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대부분 목회자들은 조기축구와 같은 목회를 한다.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열매도 없는 사역에서 버티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런데 하나님이 지금 내 축구를 보고 계신다. 그렇다면 우리는 웃통을 벗고 열심히 뛸 수 있다. 하나님이 주목하고 계시는데, 어떻게 행복하지 않을 수 있는가?

처음에는 내가 교만하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개척을 하고 거의 매일 전도를 나갔다. 그런데 열매가 없었다. 어느 해인가는 1년 동안 단 한 명의 열매도 얻지 못했다. 돈이 없어서 아이를 유치원에 보낼 수 없었다. 나 때문에 가족과 교우들을 고생시키는 것 같아서 괴로웠고, 그럴수록 더 열심히 전도를 했다. 그런데 열매가 없었다.

어느 날 <스가랴> 4장 6절 말씀을 읽다가 깨달았다. “그가 내게 이렇게 말해 주었다. 이것은 주님께서 스룹바벨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힘으로도 되지 않고, 권력으로도 되지 않으며, 오직 나의 영으로 될 것이다.’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나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를 쓰고 전도를 하고 열심히 목회를 했지만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그때 철저하게 나 자신이 부서지고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었다. 훗날에 깨달았다. 만약 그때 내가 순조롭게 목회를 했다면, 결국에는 내 자랑만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오직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오랜 후에 깨닫게 되었다. 이것은 ‘빨리 깨달을수록 좋다!’

"나중에 갈게요. 지금은 성경을 공부해야 해서요"

내 목회의 터닝포인트가 찾아왔다. 어느 날 큐티를 하다가 <여호수아> 1장 8절 말씀이 마음에 박혔다.

“이 율법책의 말씀을 늘 읽고 밤낮으로 그것을 공부하여, 이 율법책에 씌어진 대로, 모든 것을 성심껏 실천하여라. 그리하면 네가 가는 길이 순조로울 것이며, 네가 성공할 것이다.”

모세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족속과 싸워야 하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그때 여호수아는 얼마나 막막하고 두려웠을까? 그때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율법책을 가까이하고 순종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이때부터 나의 생각이 달라졌다. 교회 자립에 대한 생각을 내려 놓고, 말씀 연구하는 것을 최우선 순위에 두기 시작했다. 매일 나가던 전도를 일주일에 하루로 줄였다. 지하 예배당에서 하루 종일 성경을 공부했다. 빛이 한 방울도 들어오지 않으니, '밤낮으로'가 아니라 '밤밤으로' 성경을 공부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목사들이 성경의 중요성을 안다. 그러나 신학교를 졸업하고 전임 사역이 시작되면 성경을 연구할 시간이 없다. 개척을 하면 할 일이 더 많아진다.

책을 살 돈이 없었다. <목회와 신학> 부록으로 나오는 '그 말씀' 책을 사고 싶어서 두란노서원을 방문했다. 과월호를 싼 가격에 모두 사왔다. 신학교 구내 서점을 돌아다니면서 교수님들의 강의안 노트를 구입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 공부를 병행했다. 개인 성경노트를 만들었고,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한 구절 한 구절 공부하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성경 말씀을 공급 받으면서, 나는 행복했다. 그리고 말씀 앞에 서니 내 죄가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얼마나 악하고 추한 죄인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나는 나 스스로를 속이고 교우들을 속이고 있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섬긴다는 말로 포장된 내 무의식 속에 있었던 성공의 욕구를 보게 되었다. 말씀의 검 앞에서 관절과 골수가 분리되고, 내 속의 생각과 뜻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는 교활하기 그지 없었던 내 죄를 뼛속까지 토해내며 회개했다.

주변의 동료들이 나를 돕기 위해서 방문했다. 교회 성장을 위해서는 전문적인 훈련이나 프로그램 과정을 통해서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비용까지 준비해서 가지고 왔다. 나는그 돈을 받을 수 없었다. '나중에 갈게요, 지금은 성경을 공부해야 해서요.'

시간이 지나면서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결국 교회 성장 프로그램을 갈 필요가 없어졌다. 내가 공부한 성경 말씀을 교우들과 함께 나누는 성경 공부반을 시작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교우들과 성경 본문을 함께 나누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목사님, 요즘 사업 잘 되세요?"

나의 목회에 새로운 터닝포인트가 찾아왔다.

2014년 2월, 송파구 석촌동의 단독 주택 지하 1층에서 ‘세 모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마지막 집세 70만원 그리고 '죄송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어머니와 두 딸이 세상을 떠났다. 이 사건은 나에게 너무나 큰 충격을 주었다. 어디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었다. 그때 나는 만약 내가 사는 동네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난 더이상 목회를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가 이렇게 많은데 왜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죽음에서 건져내지 못할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 교회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사건은 나에게 동네 목회를 사명으로 삼도록 하였다.

나는 주민센터를 찾아갔다. 그 후에 주민센터 복지과 선생님들과 교우들이 정기적으로 교회당에서 마을의 어려운 이웃들을 돕기 위한 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 우리 교회가 세 들어 살던 건물주 사장님은 항상 이렇게 인사했다. "목사님, 요즘 사업 잘 되세요?"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분에게 달리 설명하기도 힘들어서 "예, 덕분에요"라고 대답하곤 했다. 그날도 그분이 인사를 했다. 그런데 목양실로 들어서는 순간 깨달았다. '그래, 나도 사업하는 것이 맛다!' 유통업이었다, 복음 유통업! 교우들에게 물었다. 복음 유통업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교우들은 설교를 잘 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나는 아니라고 했다. 사람들이 교회당에 와서 설교를 듣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 교우들에게, 여러분이 'made in church'라고 말했다. 여러분이 동네에서 착하게 살아야, 우리 교회의 유통업이 잘 될 것이라고 했다.

교우들과 함께 <마태복음> 25장 40절 말씀을 자주 나누었다.
“임금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할 것이다.”

목사에게 잘 하려고 하지 마라. 동네 어려운 이웃들에게 잘 하기 위해 노력하자.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동네교회'가 되자. 교회의 소금이 되지 말고, 세상의 소금이 되자. 교회의 빛이 되지 말고, 세상의 빛이 되자. 우리가 어떻게 하면 동네 이웃들을 섬길 수 있을까 고민하자.

여전도회가 조직된 첫 해에, 여전도회 회장님이 찾아왔다. 목사님 생일이라고 해서 회비를 만 원씩 거두었다는 것이다. 나는 화를 내면서 당장 그 돈을 돌려주라고 했다. 앞으로 절대로 목사 생일을 챙기지 말라고 했다. 그 돈으로 외롭게 홀로 사는 교우들과 동네 이웃들을 챙기라고 했다. 명절이면 목사에게 선물하지 말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선물을 하라고 가르쳤다.

새가족들에게 어떻게 지하 교회를 찾아왔느냐고 물으면, 동네에 있는 미용실 원장님과 복덕방 사장님이 소개해 주었다는 분들이 많았다. 교회를 다니지도 않는 분들이 "거기 좋은 교회에요. 거기 나가세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동네 사람이 동네 이웃을 살리다"

한번은 주일 오후에 어떤 분이 전화를 했다. 나는 심방을 가는 중이었다. 교회당으로 다시 돌아갔다. 사연인즉 이러했다. 남편이 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감옥에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은 말기암 판정을 받았다. 대학생인 아들은 알콜 중독이었고, 자해를 여러차례 시도했었다. 고등학교 일학 년인 딸은 지각과 결석을 많이 해서 퇴학을 당할 처지에 놓여 있었다. 그날도 아들은 자해를 했고, 응급실에 다녀온 엄마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다. 그런데 예전에 옆집 아줌마가 해줬던 말이 생각났다. '거기 동네교회에 가서 그 목사님을 한번 만나보라고.' 그 아줌마는 교회를 다니는 분이 아니었다.

나는 딸을 만났다. '지금 엄마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 왜 지각과 결석을 하느냐'고 물었다. 늦잠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마침 그 학교에 아는 선생님이 있어서, 퇴학만은 시키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선생님들은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더이상 결석만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셨다.

다음 날부터 등교 시간에 맞추어 집 앞에서 기다렸다. 한 학기 반동안 교회 차로 등교를 함께 했다. 버스를 타고 등교를 하면 1시간이 걸렸지만 차로는 10분 정도의 거리였다. 그 아이는 너무나 기뻐했다. 어떤 날은 30분을 기다렸고, 1시간을 기다린 적도 있었다. 나는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그들의 사정을 잘 알기 때문이다. 늘 안쓰러운 마음으로 기도하며, 그 시간을 행복하게 기다릴 수 있었다.

그 아이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인사를 건네면 언제나 짧게 '네'라고만 대답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말이 점점 늘어났다.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노래를 하고싶다고 했다. 노래 학원을 보내주었다. 아이는 점점 밝아졌다. 한 학기가 지나자, 이제 스스로 등교하겠다고 말했다.

아들을 만났다. 그를 설득해서 다시 학교에 다니도록 도와주었다. 가끔 술을 먹고 문제를 일으켜서 경찰서에 다녀오고 했지만, 점점 나아졌다. 그렇게 한 가정이 살아났다. '동네 이웃이 동네 사람을 살렸다.'

(*정준경 목사는 고려대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총신대 신대원에서 석사를 마쳤다. 현재 <우면동교회> 담임목사를 맡고 있다.) (본보 제휴 <미주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