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나칼럼]

(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어지니교회) = 인간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도모한다. 그것은 인간이 가만히 있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가만히 있지 않으면 하나님을 알 수 없다. 성서는 그것을 이렇게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너희는 멈추고 내가 하느님인 줄 알아라. 세상 만민이 나를 높이 받들어 섬기리라.”

앞 문장을 대우명제로 생각해보자.

“내가 하나님인줄 모른다면 너희는 멈출 필요가 없다.”

나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전도사 시절 내가 속했던 교회의 담임목사는 소속 교역자들에게 교회 안에서는 뛰지 않더라도 종종걸음이라도 걸으라는 말을 밥 먹듯이 했다. 성가대 지휘자였던 내게도 찬송가를 빠르게 부르라는 말을 수시로 했다.

왜 그랬을까?

그 목사는 교인들을 천천히 걷게 놔두면 교인들이 엉뚱한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빠른 걸음걸이는 물론 교인들을 이런저런 프로그램으로 정신없게 만들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것이 영적인 일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무언가를 끊임없이 행하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행하는 일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는다. 개신교의 경우 특별새벽기도회와 총동원주일 같은 것이 기본이다. 그리스도인에게 무슨 특별 기도가 있는가? 그것은 욕망을 합리화하는 통로임과 동시에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무언의 주장이다. 사람들은 특별새벽기도회에 은혜를 많이 받는다. 그러나 그것은 은혜가 아니라 자아도취이다. 눈 감고 아웅 식의 그런 자아도취가 영적으로 거룩한 것이 되는 순간이다.

내가 대우명제를 생각해보라는 의미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모른다. 그래서 무언가를 해야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하나님 이해이다.

이제 세 살이 되어가는 손자를 통해 나는 사랑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손자는 그냥 내 기쁨이다. 손자가 무언가를 할 때도 예쁜 것이 사실이지만 나는 손자가 잠을 잘 때 가장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자고 있는 녀석의 손을 사알짝 잡아볼 때 나는 나도 모르게 행복해진다.

나는 이런 손자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생각한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그런 하나님이 언제 나를 가장 예뻐하실까?

그것은 내가 멈추고(가만히 있어) 하나님이 하나님이신 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몸소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이렛날에 하나님이 창조하시던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으므로, 하나님은 그 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

이렛날은 안식일이 되었다. 우리는 안식일의 위력을 유대인들을 통해 볼 수 있다. 그들은 생명을 다해 안식일을 준수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가? 그들은 무려 1900년을 유랑하다 이스라엘을 건설했다. 그래서 유대인들 자신은 물론 유대인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등장했다.

“유대인이 안식일을 지킨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유대인을 지켰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 역시 행위로 들어서는 곤란하다. 유대인들이 안식을 지켰다는 사실에 주목하면 안 된다. 그들이 안식일을 통해 멈추는 시간을 가졌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을 알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물론 작금의 가자지구에서의 전쟁을 보면 그들의 그런 깨달음이 무의미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이다. 인간은 언제든 모순일 수 있다. 그리고 작금의 이스라엘이 그렇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전쟁을 그치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하나님을 다시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우리가 창세기의 기사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신 것이 일이 아니라 시간이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 사실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리스도인들도 이 사실을 마치 아는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을 잘 살펴보면 그들은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디지 못하거나 자신이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런 면이 없지 않았다. 나는 파산을 경험하고 교회가 풍비박산이 난 후 오랫동안 무언가를 해내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그때도 나에게 그런 일을 경험하게 하신 하나님이 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내게 가르쳐주시려는 것이 무언가를 끊임없이 생각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내가 어떤 일도 할 수 없게 만들었고,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던 나는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고 무시를 당하고 잊혀 갔다. 그 시간을 지나고 나니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nothing)이 되었다. 그러나 내가 낫씽(nothing)이 된 것은 은혜였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의 내가 되었습니다. 나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헛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사도들 가운데 어느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 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는 이제 바울 사도의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다. 일에 경도된 사람들은 바울의 이 말을 들으면서 바울이 한 수많은 일들에 주목한다. 그러나 나는 이 말씀을 통해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바울 사도를 생각한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 자체가 거룩해진 것이다.

그것을 가장 실감나게 보여주는 사람이 바로 로렌스 수사이다.

로렌스 수사의 주된 일상은 신발을 수선하는 일이다. 그 일을 하다가 시간이 되면 주방에서 일을 한다. 청소도 한다. 그가 하는 일은 우리가 생각하기에 하찮은 일들뿐이다. 맞다. 하찮은 일들뿐이다. 그러나 그런 하찮은 일을 하는 로렌스 수사가 가장 영적인 사람이 되었다. 그가 속해 있던 수도원의 수도원장이 아니다. 수행에 있어 정진한 수사가 아니다. 그는 하찮은 잡역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그가 가장 위대한 영적인 거장이 되었다. 그의 모든 일상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일이 아니라 시간이다. 며칠 전에도 나는 그것을 실감했다. 신림 역에서 내렸을 때 나는 구세군 자선냄비를 발견했다. 에스컬레이터를 올랐을 때 한 걸인이 통을 놓고 구걸하는 것을 보았다. 시장에 가는 길이었기에 돌아오는 길에 그 통과 자선냄비에 돈을 넣을 생각을 했다. 오만 원짜리 돈을 두 곳에 다 넣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시장에서 현금을 사용하고 두 곳에 돈을 넣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걸인은 사라지고 없었다. 기회를 놓친 것이다. 사실 나는 이런 경험이 많다. 망설이는 순간 기회는 사라진다. 일은 언제든 다시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라진 시간, 사라진 기회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시간에 주목할 때 우리는 하나님처럼 거룩해질 수 있다. 우리가 매 순간 로렌스 수사처럼 하나님의 임재 속에 살아갈 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자유가 무엇인지를 알고 누리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멈출 수 있을 때 가능해진다. 그러나 실상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며, 바울 사도처럼 어느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 나는 어떤 일을 하기 위해 노심초사하지 않는다. 내게 주어진 시간에 어떤 일(설거지든 농사든)이 주어지든 그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럴 때 내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