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가 만든 반전의 기회... 생태계 회복의 중요한 전환점 되나

(올랜도=코리아위클리) 김명곤 기자 = 지난해 12월 플로리다 나폴리 외곽의 피카윤 스트랜드 주립삼림에서 이안 바르토섹 생물학자와 그의 팀은 여느 때처럼 버마비단뱀을 추적하러 들어갔다. 그들의 목표는 수컷 비단뱀 ‘로키(Loki)’였다. 길이 13피트, 무게 24킬로그램에 달하는 로키는 이들이 6년간 추적해온 ‘정찰 뱀’ 중 하나로, 번식기마다 대형 암컷들을 찾아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이날 상황은 달랐다. 늘처럼 여러 마리의 비단뱀이 모여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로키는 혼자였고, 움직이지 않았다. 몸은 소나무 잎 아래 반쯤 묻혀 있었고, 목과 머리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씹힌 상태였다. 바르토섹은 당시 상황을 <선 센티널>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CSI 현장 수사 모드로 전환할 만큼 비정상적이었다”고 전했다.

로키는 단순한 연구 대상이 아니었다. 플로리다 남서부 보전기관이 운영하는 이 프로그램에서 그는 가장 유능한 정찰 뱀이었다. 2013년부터 40여 마리의 수컷 뱀에 송신기를 달아 암컷을 찾고, 그 암컷을 제거함으로써 생태계 내 개체 수를 조절하는 전략은 지금껏 수천 킬로그램에 달하는 비단뱀을 제거하는 데 기여해왔다. 바르토섹은 “로키는 우리 팀의 MVP였다. 그를 잃은 건 전력 상실과도 같다”라고 신문에 말했다.

체급을 뛰어넘은 포식…보브캣의 공격 확인

현장에서의 흔적은 고양잇과 동물의 '캐시(cache)' 행동을 연상케 했다. 이는 사냥한 먹이를 땅에 일부 묻어두고 다시 찾는 습성으로, 팬서나 보브캣이 자주 보이는 행동이다. 문제는 이 지역엔 멸종 위기종인 플로리다 팬서와 보브캣이 공존한다는 점이다.

바르토섹은 플로리다 팬서 복원 프로그램을 이끄는 야생동물 전문가 데이브 신들과 함께 사건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현장에 트레일 캠을 설치했고, 다음 날 놀라운 영상을 확인했다. 화면에는 약 11킬로그램으로 추정되는 보브캣 한 마리가 로키의 시신을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보브캣은 사람의 흔적을 의식한 듯 경계하며, 시신 주변을 맴돌다 조심스럽게 냄새를 맡았다. 이는 명백한 포식자이자 캐셔의 행동이었다. 바르토섹은 "이렇게 큰 비단뱀을 보브캣이 쓰러뜨렸다는 건 놀라운 일"이라며 "자기 체급보다 훨씬 큰 상대에 도전한 점에서 인상 깊다"고 <선센티널>에 평가했다.

보통 로키처럼 큰 비단뱀은 보브캣을 포식한다. 실제로 보전기관의 부검 결과, 뱀 뱃속에서 보브캣 발톱과 잔해가 자주 발견된다. 또 15피트짜리 비단뱀이 35킬로그램짜리 사슴을 삼킨 사례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반대로 보브캣이 거대한 뱀을 사냥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추위가 만든 기회, 토착 동물의 반격 신호

로키가 보브캣의 먹잇감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추위였다. 사건 며칠 전 기온이 급강하하면서 뱀은 '콜드 스턴(cold-stunned)' 상태에 빠진 것으로 추정된다. 냉혈동물인 비단뱀은 기온이 떨어지면 움직임이 둔해지고 방어 능력을 잃는다. 바르토섹은 “그냥 타이밍이 절묘했다. 보브캣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번 사례는 플로리다 생태계가 비단뱀의 침공에 대해 반격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현재 플로리다 전역에 확산된 외래종 버마비단뱀은 197080년대 애완동물로 들여왔다가 유기되며 야생에서 번식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일부 지역에서는 토착 포유류의 개체 수가 8099%까지 급감했다.

하지만 보브캣의 이례적 사냥 사례는 변화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2021년에는 한 보브캣이 52킬로그램의 대형 암컷 비단뱀이 비운 둥지를 침입해 알을 훔쳐먹고 둥지를 캐시하는 모습이 관찰되기도 했다. 어미 뱀과 대치하며 공격하는 장면도 포착됐다.

보전기관은 정찰 뱀의 10%가량을 매년 잃는다. 일부는 악어에게, 일부는 송신기만 남긴 채 사라진다. 올해 초에는 또 다른 정찰 뱀 '파치노'(11피트, 16킬로그램)가 추위 후 사라졌다. 이후 거의 완전히 먹힌 채 발견됐고, 현장에는 곰의 흔적이 의심될 만한 냄새와 잔해가 남아 있었다.

바르토섹은 신문에 "토착 포식자들이 추위에 기절한 비단뱀을 사냥하는 패턴이 반복된다면, 이는 생태계 회복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로키의 죽음은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자연이 스스로 균형을 찾기 시작한 긍정적인 신호로 볼 수 있다"라며 말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