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시대의 약자들과 함께 서는 도덕적 주체로 이끌 수 있을까?

(뉴욕=미주뉴스앤조이) 편집부 = 새 교황 ‘레오 14세’ 이름의 의미가 심상찮다. 교리를 교회현장에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적용하자는 것을 가톨릭에서는 ‘사회적 교리’라고 부르는데 레오 14세라는 이름이 가톨릭 사회적 교리의 뿌리로 돌아가려는 역사적 암시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2025년 5월 8일, 바티칸은 미국 출신의 로버트 프레보스트 추기경을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했다. 미국의 가톨릭 신자들에게 그는 밥(Bob)신부이며 페루신자들에게는 로베르토다. 그는 새 교황명으로‘레오 14세’를 선택하며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 신선한 파장을 일으켰다. 단순한 숫자의 계승이 아니다. 그 이름은 지난 세기 교황청의 진보적 전환을 이끈 레오 13세와의 역사적, 사상적 연결을 명확히 의도한 것이기 때문이다.

레오 13세는 가톨릭 사회교리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1891년 회칙 레룸 노바룸(Rerum Novarum)을 통해 자본과 노동의 관계 속에서 인간의 존엄과 노동자의 권리를 처음으로 신학적 언어로 정리했고, 이는 이후 가톨릭의 사회 참여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닌 제3의 길, 공동선과 연대를 강조한 윤리적 시선이 그 중심에 있었다.

이번에 선출된 레오 14세 역시, 그 유산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1980년대 중반부터 약 13년간 페루에서 선교활동을 펼쳤으며, 빈곤과 폭력, 불평등으로 고통받는 지역 사회 안에서 신뢰받는 지도자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교황청 행정관과 주교를 거쳐 교황직에 오른 그는, 단지 목회자로서가 아니라 세계 정세와 외교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행정가로서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가 ‘레오’라는 이름을 선택한 것 자체가 일종의 선언처럼 다가온다. 단지 과거에 머물겠다는 뜻이 아니라, 오늘날 세계 질서 속에서 교회가 다시 도덕적 나침반으로 설 수 있기를 바라는 의지의 표명이다.

레오 13세가 그랬듯, 오늘날의 교황 역시 초강대국의 정치적 압력과 이데올로기의 물결 속에서 교회의 독립성과 도덕적 권위를 지킬 과제를 안고 있다. 특히 1898년의 미서전쟁을 전후해 미국의 제국주의적 확장에 신중하게 대처했던 전임 레오의 사례는, 오늘날 미국 출신 교황이 어떤 균형과 분별력을 보여줄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더 흥미로운 것은 교황 선출일이 성 미카엘 대천사의 축일이라는 점이다. 악에 맞서 싸우는 천사, 교황 레오 13세가 환상 후에 작곡했다는 ‘성 미카엘 기도’의 주인공, 그리고 새 교황이 첫 연설에서 인용한 듯한 상징이 겹친다. "하느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시며, 악은 승리하지 못할 것입니다!"라는 외침은 단순한 수사 이상으로 들린다.

레오 14세의 시대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이름이 던지는 울림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새 교황은 과연 이름이 암시하는 길을 따를 것인가? 그는 다시금 교회를 시대의 약자들과 함께 서는 도덕적 주체로 이끌 수 있을까?

‘레오’라는 이름이 다시 세상 속에서 빛을 발할 수 있을지, 전 세계 신자들의 기대가 그에게로 향하고 있다. 레오 13세의 업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레오 13세는 25년 재위 기간 동안 무려 85개의 회칙을 발표했다. 회칙 「애테르니 파트리스」("[기독교 철학의 회복에 관하여]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명성을 회복시켰고, 아퀴나스의 신학과 철학은 현대 가톨릭 사상의 시금석이자 새로운 척도가 되었다. 토마니즘이 공식적으로 격상되고 승인되면서 교회는 [노예제], 과학적 혁신, 노사 관계 [등] 많은 사회적 딜레마에 대한 유연한 해석의 열쇠가 되는 방대한 지혜를 다시 얻게 되었다.

1888년, 레오 13세는 브라질의 주교들에게 노예제도를 완전히 폐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감동적인 회칙 '[다수 가운데서]를 발표했다. 그는 노예제도를 죄의 결과로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누려야 할 평등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교회가 노예제 폐지론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한 최초의 사건이었습니다. (브라질은 그해 공식적으로 노예제를 폐지했다.)

바티칸이 지리적 입지를 잃게 되자 레오 13세는 교회 고유의 분쟁 중재 능력을 활용하기 위해 공정성을 제도화했다. 개신교 신자였던 독일 수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레오에게 독일과 스페인 사이의 캐롤라인 제도 분쟁을 중재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분쟁은 1885년 교황의 도움으로 우호적으로 해결되었다.

이듬해 중국 황제는 직접 외교 관계 수립에 관심을 보이며 교황에게 손을 내밀었다. 프랑스가 개입해 관계가 틀어지긴 했지만, 당시 중국 신문에 실린 한 논평은 바티칸의 매력을 잘 보여준다. . "교황은 군대도 영토도 없고 달라이 라마의 일종에 불과하기 때문에 중국이 그와 직접 관계를 맺는다고 해서 위험할 것이 없다. 정치적 함정에 대한 두려움도 없으므로 선교사 문제를 공개적이고 솔직하게 처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레오 14세는 미중의 관세 분쟁에 어떤 입장을 낼 것인가도 관전 포인트다.

교황청에 대표를 두고 있던 러시아의 차르 니콜라스 2세도 1898년 헤이그 평화 회의에 교황청에 도움을 요청했다. 레오 13세는 미국과 세계 패권을 향한 미국의 행보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898년 카리브해와 아시아에서 벌어진 스페인-미국 전쟁에서 미국은 거의 400년에 걸친 스페인의 지배를 종식시켰다. 미국은 괌, 푸에르토리코, 필리핀을 장악하고 쿠바에 보호령을 수립했다.

따라서 가톨릭이 다수인 국가들에서 미국의 군사력은 교회 지도자, 재산, 학교, 종교 단체와 직접적으로 맞닥뜨렸다. 미국의 확장은 반가톨릭적인 측면이 강했다. 레오는 바티칸에서 당시 필리핀 주재 미국 총독이자 장차 대통령이 될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와 직접 만나 가톨릭 수도회의 토지를 매입하려는 미국의 요청을 거부했다.

레오 13세의 교황직은 바티칸이 고국에서 멀리 떨어진 미군의 침략에 반대하고 고뇌하는 시작을 알린다. 그의 후계자이자 이름을 딴 교황 레오 14세는 비슷한 도전에 어떻게 대처할까? (본보 제휴 <미주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