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나 칼럼]

(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어지니교회) = 아주 오래 전 일이다. 나는 서울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렸을 때 자원봉사를 했다. 통역과 안내를 맞는 일이었다. 감동은 마지막 폐막식에서였다. 폐막식에서 모든 선수들과 자원봉사자들을 포함하여 그 장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강강수월래”에 맞추어 손을 잡고 빙빙 돌았다. 그것은 화합의 시간이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인종과 종교, 그리고 性(성)과 신분을 초월한 하나 됨의 시간이었다. 둥글게 원을 그리는 그 시간이 나는 언제나 기억에 생생하다.

그런데 모두가 잡은 손이 끊어지는 지점이 있었다. 당시 이란과 이라크는 전쟁 중이었고, 서로에 대한 증오심이 하늘을 찌르던 때였다. 모든 선수들이 손을 잡았지만 이들은 손을 잡지 않았다. 손을 잡고 둥글게 돌며 추던 춤은 그렇게 어느 한 구석에서 끊어지고 말았다.

강강수월래가 그런 힘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전에는 알지 못했다. 그것은 정말 엄청난 “a circle dance”였다. 그것이 내 인생의 복선이었다는 사실을 최근 번역한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어쩌면 그것은 내 마지막 번역이었는지도 모른다. 더 이상 번역 의뢰가 들어오지 않았고, 사실 AI의 등장으로 더 이상 번역이라는 것이 무의미해졌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번역이 필요하겠지만 예전에 비해 엄청나게 간단해지고 쉬워진 것은 사실이다.

<작정하고 시작하는 그리스도인 공동체>로 제목이 설정된 그 책에서 나는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 περιχώρησις)라는 단어에 매료되었다. 페리코레시스는 삼위일체 신학에서 사용되는 개념으로, 삼위(성부, 성자, 성령)가 서로 안에 거하며 상호 내재하는 관계를 의미한다. 이 개념은 삼위일체의 본질적 일치와 관계성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공동체로 존재하신다. 성부, 성자, 성령 세 인격이 그 어떤 분리나 단절도 없이 존재함은 물론 하나로 작동한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이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 존재의 방식이나 관계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아니 그것이야말로 복음의 알짬이다.

“나는 이 사람들을 위해서만 비는 것이 아니고, 이 사람들의 말을 듣고 나를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어서 우리 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여 주십시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인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은,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요 17:20-23)

나는 예수님의 이 기도야말로 온 우주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하시려는 하나님의 경륜의 실현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당신의 존재 안으로 초대하신다. 그 부르심이 바로 복음의 본질이다. 하나님은 하나로 존재하시는 삼위의 존재 방식 안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부르신다.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 그 하나 됨은 단순히 한 인간과 그리스도와의 하나 됨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다른 그리스도인들과도 하나가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공동체가 된다.

여기서 나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의미를 재정의한다. 그것은 단순히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이나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의 통일을 상징한다.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곧 하나 됨의 비밀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상징함은 물론 그리스도인들의 존재방식을 정의한다. 그러므로 공동체가 아닌 교회는 교회로서의 의미가 없다. 그리고 오늘날 교회가 정확하게 그렇게 되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를 아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D day(개시의날) 와 V day(승리의 날)의 의미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리스도인들이 페리코레시스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아니 노골적으로 무시한다. 더 이상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전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자신들의 정체성이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 페리코레시스로 초대되었다는 부르심의 의미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맞다. 하나님 나라는 D day와 V day 사이에 있다. 완성된 하나님 나라는 아직 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완벽하지 않은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

“많은 신도가 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서,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사람들은 모두 큰 은혜를 받았다. 그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팔아서, 그 판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고, 사도들은 각 사람에게 필요에 따라 나누어주었다.”(행 4:32-35)

이 모습을 페리코레시스를 생각하며 읽어보라. 얼마나 당연한가. 하지만 초기교회의 이 모습은 완벽한 하나님 나라는 아니다. D day와 V day 사이에 있는 불완전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다.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각자의 주어진 상황 속에서 바로 이런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그것을 세상에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자신들만의 삶의 방식이 아니라 세상의 어두움을 드러내고, 더 나은 세상, 더 완벽한 세상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신들의 존재 방식인 공동체의 모습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날 잘못된 선교의 방식을 분명하게 볼 수 있다. 복음은 말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된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다가와 자신들도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할 때, 그들에게 복음을 가르치고, 복음의 삶을 훈련시켜 공동체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하는 것이 바로 선교의 본령이다. 공동체의 실종은 단순히 공동체의 실종이 아니라 모든 것을 왜곡시키고 복음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는 오늘날 그리스도교에서 확인하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영성은 이처럼 공동체의 존재여부에 의해 가려진다. 공동체가 없는 개인적인 영성 훈련은 약간의 유익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그리스도교의 영성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오늘날 뉴에이지운동이나 명상과 같은 것이 유행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리스도교 영성은 오직 공동체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고, 가르칠 수 있다.

생각해보면 오늘날 세상이 극단적인 개인주의로 흐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작금의 선거 국면을 잘 보라. 얼마나 세상이 사나워졌는가. 무정해졌는가. 노골적이 되었는가. 그야말로 그것은 공동체를 의미 없게 만드는 개인주의의 결과라 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염원과 아쉬움은 매 주일마다 도지는 내 지병이다. 오늘도 사람들은 공동체의 의미를 알지도 못하는 교회로 달려가 엄숙하고 경건하게 미사와 예배를 드린다. 모두 헛일이다. 그것은 생명 없는 종교놀이에 지나지 않는다.

만일 교회가 정말 교회라면 그 안에서 D day와 V day 사이에 이루어져야 할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곳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에 이끌려 “a circle dance”를 추며 자신이 페리코레시스 안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게 될 것이다. “완벽한 교회는 없다”는 주장은 이 하나님의 초대를 거절하는 개인주의에 함몰된 인간들의 합리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