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민주주의 근간 흔든 권력 남용" 비판

(올랜도=코리아위클리) 최정희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비상사태를 연달아 선언하며 권력을 집중시키자, 미국 내 헌법 전문가들과 법조계는 "법적 근거가 빈약한 위기 조작"이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행보가 헌법의 삼권분립 원칙을 훼손하고, 미국 민주주의의 핵심 질서를 뒤흔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로스앤젤레스에서 발생한 시위를 ‘이민자 침략’이라고 규정하며 캘리포니아 주 방위군을 연방화해 투입했다. 이에 대해 캘리포니아 주 정부는 "해당 사안은 연방법이 규정한 연방화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개빈 뉴섬 주지사는 "이는 명백한 권한 남용이며, 연방화 사유인 침략이나 반란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한 1798년 제정된 '적국 국민 추방법'(Alien Enemies Act)를 근거로 베네수엘라 갱단 '트렌 데 아라과(Tren de Aragua)'를 외국의 침입세력으로 규정하고 강제추방을 단행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연방 판사 앨빈 헬러스타인은 “이들은 미 영토를 점령하거나 연방정부 권한을 침해하려는 시도가 없으며, 단순 범죄 집단에 불과하다”며 대통령의 주장을 기각했다.

법적 근거보다 정치적 전략... "제국적 대통령제 현실화"

트럼프는 외국산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서도 "경제 안보에 대한 위협"이라는 이유로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이에 대해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가 반복적으로 위기를 조작해 대통령의 권한을 확대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며, 이는 "전통적인 삼권분립 질서를 약화시키는 위험한 전략"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조치는 대부분 하급심에서 기각됐다. 지난 3월, 연방 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외국 경제 행위를 '국가비상사태'로 규정하며 부과한 관세 조치에 대해 "법적 근거가 불충분하다"라고 판시했다.

헌법학자 프랭크 O. 보먼 미주리대 교수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의회가 부여한 유연한 권한은 선의에 따른 신속한 대응을 전제로 한 것이며, 지금처럼 남용된다면 대통령제는 독재로 기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일리야 소민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위기를 꾸며내 시민 자유를 제한하고 헌법적 통제를 회피하려 한다"라며 "이는 헌법 정신의 명백한 훼손"이라고 밝혔다.

프린스턴대 헌법학자 킴 레인 셰펠레 교수는 < NPR >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방식의 권한 확대는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하는 중대한 조짐"이라며 "의회와 사법부가 견제하지 않으면 미국 민주주의는 후퇴할 수밖에 없다"라고 경고했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의 비상사태 남발은 단순한 정치 전략을 넘어 헌법적 권한 분산 원칙에 근본적인 도전을 가하고 있다. 향후 연방 대법원의 판단이 이 사안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