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나 칼럼]

(서울) 최태선 목사 = 포천에 있는 보성교회의 이야기를 기사에서 보았다. 방글라데시 이주 노동자 아지트를 돕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아지트는 농기계 공업사에서 그라인딩 작업을 하던 외국인 노동자였다. 그곳에서 그는 '간질성 폐질환'에 걸렸다. 하지만 산재를 인정받을 수는 없었다. 고용주는 욕설과 함께 협박을 반복했고, 그는 속절없이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 그를 보듬어 안은 것이 보성교회다. 보성교회는 갈 곳도, 살 곳도 없는 그를 교회에서 살게 했다. 그리고 그의 산재 소송을 돕고 있다. 병원이든 법원이든 보성교회 교인들이 함께 했다. 그를 위해 기도도 하고, 그에게 성서공부도 돕고 있다.

보성교회 목사는 이주 노동자들을 섬겨야 한다면서 이들이 왜 고통 받게 되는지를 근원적으로 살피고, 그 원인인 사회 구조의 문제를 살펴야 한다면서 그런 일이야말로 교회가 당연히 앞장 서야 하는 일이라고 했다. 나는 그런 보성교회의 존재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환대와 돌봄이 선교의 본령이 되어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도 소중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귀한 깨달음이 존재의 변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일 중심의 사고에서 멈추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그들이 예수의 제자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서로 사랑하는 것은 일이 중심이 아니라 관계가 중심이며, 그것은 존재의 변화로 이어진다.

나는 복음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이 복음의 알짬인 하나님 나라에 이르지 못하고 일에 함몰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일이 올무가 되어 관계 중심, 존재의 변화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은 비극이다.

"내가 사람의 모든 말과 천사의 말을 할 수 있을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이나 요란한 꽹과리가 될 뿐입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내 모든 소유를 나누어줄지라도, 내가 자랑삼아 내 몸을 넘겨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는 아무런 이로움이 없습니다."(고전 13:1-3)

사람들은 이 말씀에 담겨 있는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바로 일에 함몰된 사랑의 실패들이다.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아는 것도, 산을 옮길 만한 믿음도 일이라는 의미다. 일은 사랑이 낳는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야 한다. 사랑 이외의 그 어떤 것도 복음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와 교회는 이미 오래 전에 일에 함몰되었다. 그것은 콘스탄티누스의 신앙의 자유와 함께 시작되었다. 신앙의 자유로 로마의 종교가 된 그리스도교의 최고 사제는 콘스탄티누스였다. 로마의 황제는 로마의 모든 종교의 최고 사제였고, 로마로부터 신앙의 자유를 허락받은 그리스도교 역시 로마의 종교가 되어 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는 당연직으로 그리스도교의 최고 사제가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이 사실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는 이들은 없다. 누구도 콘스탄티누스를 그리스도교의 수장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콘스탄티누스가 그리스도교를 대표하여 한 일을 그리스도교와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한 일은 그리스도교의 최고 사제로서 한 일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동시에 그가 한 일이 어떻게 그리스도교와 복음을 변질시켰는지도 반드시 알아야 한다.

그가 한 일 가운데 빈민구제가 있다. 그는 빈민구제소를 설치하고 로마의 재정을 투입하여 빈민을 구제하였다. 사람들은 단순히 그가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좋은 면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당연한 일을 그가 실천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그 일을 한 이유는 "사랑"이 아니다. 위에 인용한 말씀에서 지적하고 있는 사랑이 없기에 아무런 이로움이 없는 일이지만 그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그런 일을 교회의 사명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이후로 그리스도교는 자연스럽게 일을 사명으로 여기는 곳이 됨으로써 사랑을 망각하게 되었다.

내가 보성교회의 소중한 깨달음과 실천에도 불구하고 아쉽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들은 사랑이 아니라 일을 사명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이 하는 일이 사회 운동이나 시민운동은 될 수 있지만 하나님 나라 운동이 될 수는 없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보성교회의 일이 될 수밖에 없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짠 맛을 되찾게 하겠느냐? 짠 맛을 잃은 소금은 아무데도 쓸 데가 없으므로, 바깥에 내버려서 사람들이 짓밟을 뿐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세운 마을은 숨길 수 없다. 또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다 내려놓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다 놓아둔다. 그래야 등불이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환히 비친다.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마 5:13-16)

교회는 "산 위에 새운 마을"이 되어야 한다. "산 위에 세운 마을"은 세상을 밝히는 빛으로 작동한다. 그 빛은 보성교회에서 말하는 근원적인 문제인 사회의 구조를 드러낸다. 세상 사람들 스스로 그것이 문제라는 사실을 볼 수 있게 해준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잘못된 세상을 고치려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잘못된 세상과 완전히 반대인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그런 하나님 나라를 보면 하나님 나라를 향해 다가올 수밖에 없다. 보고 깨닫게 하여 자발적으로 결정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나는 순간 세상의 어둠인 구조적인 사회문제가 동시에 해결된다. 이것이 복음이 제시하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핵심은 교회가 "산 위에 세운 마을"이 되는 것이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초기교회의 모습이 바로 그런 마을이다. 그 마을을 보고 사람들은 교회로 다가왔고, 그것은 로마의 박해라는 죽음의 난관을 극복하고 초기 그리스도교가 성장했던 오직 유일한 이유였다.

나는 "산 위에 세운 마을"의 요체를 담아 "소유를 나누는 사랑의 공동체"로 그것을 재정의 했다. 그것이 서로 사랑하면 이루어지는 제자들의 사회이며 그들이 사는 모습이다. 교회가 어떤 일을 하기 전에 그런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산 위에 세운 마을"이 되자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하는 일은 다른 일들이 아니라 그런 공동체가 되어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파악하고, 거기에 창조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대안으로서의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보성교회에서 하는 모든 일들이 아무런 이로움도 없게 될 것이다.

사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현명하다. 그래서 성서는 "그러나 놀랄 것은 없습니다. 사탄도 빛의 천사로 가장합니다."(고후 11:14)라고 말한다. 빛의 천사로 가장한 사탄은 오늘도 그리스도인들에게 돈으로(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부추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