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나 칼럼]

(서울) 최태선 목사(어지니교회) = 나는 주님께 받은 여러 은혜 가운데 가난하게 해주신 것에 대해 가장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이런 내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 누구도 가난을 사모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람들은 가난을 멀리하기 위해 일하고 살아간다. 가난은 수도자들의 덕목일 뿐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도 가난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없거나 기껏 가난을 추구한다 해도 "하나님 이외에는 아무런 소망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사치하지 않은 수준을 추구한다. 그 수준은 아무리 낮추어 잡아도 중상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성서 가운데 잠언을 좋아하지 않는다.

"주님께 두 가지 간청을 드리니, 제가 죽기 전에 그것을 이루어 주십시오. 허위와 거짓말을 저에게서 멀리하여 주시고,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오직 저에게 필요한 양식만을 주십시오."(잠 30:7-8)

내가 가난에 대해 이야기하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잠언의 이 말씀을 근거로 들며 지나친 가난이 불행임을 역설한다. 지혜자가 하는 말답게 이 말씀에는 지혜가 담겨 있다. 나도 그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경제가 아니라 하나님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마 6:33)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이 경제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의 선포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경제를 능가하신다. 하나님은 인간의 필요를 아시고, 인간의 작은 신음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신다. 예수의 제자들은 그것을 믿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더 나아가 예수의 제자들은 하나님을 믿고 경제를 미워하고 업신여길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여기서 내가 말하는 경제란 돈, 즉 맘몬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누구나 알고 있고, 그 의미 역시 너무도 분명하다. 하지만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이 말씀을 믿고 경제를 무시하는 이들은 없다. 그래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성서가 이야기하는 가난의 의미인 "하나님 이외에는 아무런 소망이 없는 상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가난을 추구하는 이들은 더더욱 없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 가난은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누구도 가난해지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적당히 사치하지 않은 수준에 머물면서 자선을 베풀며 살려는 생각은 경제가 만들어낸 유혹이다.

가난해진 내가 깨달아 알게 된 가난의 유익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하지만 아무리 내가 그것을 설명한다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 역시 없다. 그들은 모두 "너나 잘해"라고 생각하고 입을 다문다. 그래서 오늘날 그리스도교에는 하나님 나라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

나는 그리스도인들이 '종'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 역시 가난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무도 가난해지지 않고 가난해지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누구도 종이 되지 못한다. 당연히 종들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낯선 세계일 따름이다. 그들은 궁극적으로 자신들이 하나님이 아니라 돈을 주인으로 선택했다는 사실을 모름과 동시에 인정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종들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가 임하지 못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곁에 불러 놓고 말씀하셨다. "너희가 아는 대로, 이방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을 마구 내리누르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서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너희 가운데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몸값으로 치러 주려고 왔다."(마 20:25-28)

제자들은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기 전에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그 나라에서 누가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를 놓고 서로 다투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선포하시는 장소 역시 의미심장하다. 황제의 도시인 가이사랴 빌립보다. 당연히 그곳에서는 높은 황제가 중심이다. 황제의 도시 한복판에서 예수님은 완전히 거꾸로 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는 것이다.

위 말씀에서 보듯이 하나님 나라는 종들의 나라다. 세상과는 완전히 반대인 나라다. 이 나라를 이해하지 못하고 상상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위 말씀에서 "너희"라는 단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너희", 다시 말해 예수의 제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위 말씀은 무의미하다. 완전 무의미하다. 아니 말도 안 되는 어깃장이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라면 위 말씀을 명심해야 한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 가운데 위대하게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또 으뜸이 되고자 하지 않는 사람 또한 없다. 그러니까 예수의 제자들은 예외 없이 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예수의 제자들은 종이 되어 섬기는 사람들이다. 그런 예수의 제자들이 모여 서로 사랑할 때 그들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

세상에서는 종들이 비참한 존재들이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종들이 가장 위대하게 되고, 으뜸이 된다. 그 본을 보여주시기 위해 예수님은 섬기러 오셔서 자기 목숨을 몸값으로 치러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런 예수의 제자들의 정체성을 재삼재사 강조하시기 위해 마지막 만찬의 자리에서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교에는 황제가 존재한다. 오늘날 그리스도교가 가이샤라 빌립보가 된 것이다. 교황이라니, 추기경이라니, 대주교라니, 주교라니, 주임사제라니, 총회장이라니, 담임목사라니, … . 억장이 무너진다. 그들은 마구 내리누르고, 세도를 부린다. 그들은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허투루 듣는다. 마구 내리누르며 세도를 부리는 이들도, 내리누름과 세도 부림을 당하는 이들도 함께 진지하게 성사를 거행하고, 예배를 드린다.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그런 그들에게 예수는 누구인가.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내 말을 황당하게 여길 것이다. "네가 감히 누구라고, 네가 감히 어디서"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내 말은 황당한 것도, 급진적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 그리스도교가 가이사랴 빌립보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첨병이 된 것이다. 경제의 종이 된 것이다. 맘몬의 종이 좋은 것은 누구도 종을 종이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누리고 부리며 산 대가는 지옥이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종들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은 그 나라를 우리에게 주신 주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따라 우리 모두 종들이 되십시다. 종들로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섬길 때 우리 가운데 모두가 평등하고, 누구도 가난하지 않은 평화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가 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