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나 칼럼]

(서울) 최태선 목사(어지니교회) =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에겐 추석이 공포다. 아무리 추석 선물을 하지 않으려 해도 받고 가만있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그래서 해마다 추석과 같은 명절엔 선물을 주고받게 된다. 어쨌든 이것은 전형적인 세상의 방식이다.

이 사실을 반추해보라. 세상에서는 주면 받을 수 있는 사람에게 선물을 보낸다. 물론 전혀 받을 생각 없이 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받고서 아무것도 다시 보내지 않는다면 그런 관계는 오래 유지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세상의 관계는 주고받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철저히 “되받을 수 없는 사람에게 베푸는 것”을 하나님 나라의 원칙으로 세웠다.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만 너희가 사랑하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세리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자매들에게만 인사를 하면서 지내면, 남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냐? 이방 사람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마 5:45-46)

잘 생각해보면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 말씀을 현실에서 실천하기란 불가능하다. 가족의 울타리라는 것은 생각보다 견고하다. 그리고 그런 가족의 울타리를 넘는 것은 엄청난 노력과 결단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야 한다. 나는 악인일수록 가족의 울타리가 높고 견고하다는 사실을 거듭 발견한다.

실제 본 것이 아니라 드라마에서 본 것이지만 사람을 죽이고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 싸이코패스 연쇄 살인범도 자신의 아들을 끔찍하게 사랑한다. 어떤 위협도 통하지 않는 그에게 아들은 아킬레스건이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절대적이었다.

목회를 하면서 나는 그렇게 자기 가족을 철저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았고,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들에 관해 무관심했다. 복음의 실천은 그래서 반복되는 훈련을 필요로 한다. 그런 훈련을 잘 제공하는 것 역시 목회의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목회의 현장에서는 그런 훈련을 제공하기는커녕 그런 훈련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경우가 더 많았다.

내가 목사가 되기 전 다니던 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는 늘 내가 아는 고아원에서 생일잔치를 했다. 우리가 외식할 때 드는 돈에 약간만 더 하면 고아원의 백 명 넘는 아이들과 선생님들과 함께 불고기 파티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잘 아는 사람들과 식사를 같이 하게 되는 경우 그곳에서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 번은 내가 지휘자로 있던 성가대에서 회식을 하기로 했다. 나는 고아원 이야기를 하고 그곳에서 회식을 하지는 안을 냈다. 내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했다. 그런데 한 권사님이 내게 다가와 성가대가 고아원에 가서 회식 한다는 것을 목사님에게 말씀드리고 허락을 받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걸 왜 목사님의 허락을 받아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권사님은 전에도 비슷한 경우로 문제가 생겼던 일이 있었다면서 재차 허락을 받을 것을 권유하였다. 그리고 회식은 인근 식당에서 하기로 했다. 그 인근 식당은 같은 교회에 다니는 분이 하는 곳이었다.

나중에 권사님은 그런 일을 개인적으로 하면 헌금이 줄어들기 때문에 목사님의 관심사항이라는 해설을 들려주었다. 참으로 억장이 무너지는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것이 개인적인 것이든 집단적인 것이든 목사가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이야기하는 것이 특별한 것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교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교회에서도 나는 되받을 수 없는 사람에게 베푸는 하나님 나라의 관계를 설교하는 교회를 본 적이 없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자비를 닮으라는 곳을 보지 못했다. 물론 자선을 행하라는 곳은 보았지만 그런 곳 역시 매우 드물었다.

위 말씀에서 보듯이 서로 주고받는 일은 세리나 이방 사람들이 하는 짓(!!!)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야 한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가족의 울타리를 넘는 사랑의 실천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덕목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처럼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됨으로써 하나님처럼 완전해져야 한다.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족의 울타리를 넘는 사랑”을 강조하고 요구한다.

하지만 이 과제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가족조차도 외면하는 시대가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돈이 하는 일에 주목해야 한다. 돈은 난공불락처럼 보이는 가족의 울타리마저 손쉽게 허문다. 우리가 그런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가족의 울타리를 허물지 않는 것만으로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야 한다. 악하거나 선하거나 의롭거나 불의하거나 간에 하나님은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비를 내리신다. 이런 하나님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하나님의 완전성은 되갚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베푸는 사랑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처럼 완전한 사람이 된다.

우리 주변에는 되갚을 수 없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것도 아주 많다. 그런 사람에게 선물을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신앙의 실천이다. 물론 가족도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가족 가운데 되갚을 수 없는 상태의 가족이 있다면 그 사람도 똑같이 선물을 주어야 하는 사랑의 대상이다. 하지만 이 일은 매우 제한적이고 절제되어야 한다. 손이 안으로 굽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 일은 완전과는 거리가 먼 사랑의 불랙홀이 될 수 있다.

나는 다가오는 추석에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실천을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란다. 관계는 멀수록 좋다. 노숙자나 구걸하는 분들, 혹은 길거리에서 폐지를 줍는 분들과 같은 사람들은 가장 좋은 대상이다. 그런 분들에게 드리는 선물은 물건보다는 돈이 좋다. 그분들에게 명절빔을 살 수 있는 금액의 돈을 드려보자. 아프리카나, 가자지구, 우크라이나 등등의 극한 가난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게도 마음이 있었지만 보내지 못했던 구호금을 전달해보자.

하나님의 사랑은 스며드는 것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거저 받았을 때보다, 우리가 누구에겐가 거저 주었을 때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스며들 때의 기쁨은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다른 기쁨과 같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기쁨은 평화, 혹은 평안의 가장 강력한 요소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스며들 때 우리는 하나님처럼 완전해질 뿐만 아니라 우리의 존재 자체가 사랑으로 변해간다. 그리고 마침내 의지적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랑이 흘러나오게 된다.

이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늘 부끄럽다. 하지만 이 부끄러움이 나를 사랑으로 이끈다. 그래서 나는 약간의 돈을 절약하고 있다. 아무도 모르게 모르는 분들에게 드릴 추석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