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마이애미 아파트서 자연사…장례식은 뉴욕서

(마이애미) 김명곤 기자 =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씨가 29일 마이애미의 아파트에서 타계했다. 백씨는 이날 오후 8시경 부인 구보타 시게코(69)와 간호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74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백씨의 사인은 자연사로 알려졌다.

뉴욕과 독일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고인은 1996년 6월 뇌졸중으로 쓰러져 몸의 좌측 신경이 마비되고 당뇨와 백내장 등을 앓아 왔다. 백씨는 최근까지도 마지막 비디오 아트를 남기기 위한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백씨의 장례식은 뉴욕 맨해튼 메디슨 애비뉴의 프랭크 켐벨 장례식장에서 치룰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1932년 서울에서 태창방직을 운영하던 유복한가정의 막내로 태어나 일본 도쿄대학 미문학부와 독일 헨의 루드비히막시밀리안 대학에서 공부한뒤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예술활동을 벌여 왔다.

고인은 TV에 예술을 접합시키며 비디오 아트 라는 장르를 창시해 뒤샹의 레디메이드 와 더불어 20세기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불려 왔다. 1960년 `피아노포르테를 위한 연습곡'을 발표할 당시 그는 무대 아래로 뛰어내려넥타이를 자르는 등 관객에 대한 행위를 무대 밖으로까지 넓히는 파격적인 모습으로 예술계를 놀라게 했다.

1984년에는 파리와 뉴욕을 통신위성으로 연결하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기획, 지휘하기도 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 로 불린 고인은 한국의 명성을 세계에 떨쳤으면서도 조국을 내세우지는 않았다. 한국을 선전하는 길은 내가 잘되면 저절로 이뤄진다. 한국에서는 말을 앞세우는 국수적인 애국자가 늘 이기는 것 같다 고 말해왔다.

백씨는 1996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몸의 왼쪽 신경이 마비됐음에도 불구, 독일 비디오조각전(1997), 바젤국제아트페어(스위스 바젤, 1997), 98서울판화미술제(예술의전당 미술관, 1998), 40년 회고전(미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 박물관, 2000) 등 왕성한 활동을 계속했다.

이 밖에 2000년 1월 새천년을 맞이해 제작한 생방송 프로그램 호랑이는 살아 있다 , 2000년 2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7월 서울 호암갤러리와 로댕갤러리에서 전시된 백남준의 세계 를 통해 예술적 성취와 미술사적 위상을 재차 확인시켰다. 2004년에는 옆사람 모자에 물감을 칠하고 피아노를 밀어버리는 퍼포먼스 존 케이지에게 바침 을 펼치기도 했다.

이같은 활동으로 1996년 독일 포쿠스 지가 선정한 올해의 100대 예술가 에 뽑혔고, 1997년 8월에는 독일 카피탈 이 선정한 세계의 작가 100인 가운데 8위에 오르기도 했다. 현대예술과 비디오를 접목하는 데 기여한 공로로 98년 교토상 , 2000년에는 금관문화훈장도 받았다.

비 사교적인 성격의 백씨의 곁에는 역시 비디오 예술가이자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고 밀어준 일본인 아내 구보타 시게코가 있었다.

백씨와 구보타의 첫 만남은 63년 도쿄에서 열린 백남준의 공연장이었다고 한다. 구보타는 이미 유명해진 예술가로서 공연장에서 백씨를 처음 본 뒤 결혼을 결심하고 오랫동안 백남준을 쫓아다니며 구애를 벌였다. 예술가로 자유로워야 한다며 결혼을 거부하던 고인은 1977년 결국 구보타와 결혼한다.

하지만 구보타는 예술세계에서 만큼은 백남준에게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 경쟁자였다. 각자의 아이디어가 들킬까 봐 서로의 작업실을 감추고 조수도 따로 썼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구보타는 1996년 고인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그의 회복을 위해 헌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