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사관 전면 부인...미국, 베네주엘라 대사관 직원 보복 추방

(마이애미) 안태형 기자 = 베네주엘라 휴고 차베스 대통령이 지난 2일 카라카스 주재 미 대사관의 한 미해군 무관을 스파이 혐의로 추방하면서 미국과 베네주엘라 사이의 관계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이 추방은 베네주엘라가 미국외교관에게 취한 최초의 것이며, 존 네그로폰테 미국 국가정보부 장관이 “베네주엘라가 남미의 미국 이해관계에 가장 심각한 위협이며 베네수엘라는 북한, 이란 등과 더욱 더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려고 한다”고 말한 바로 그 날 발생했다.

집권 7년째를 기념하기 위한 전국방송 연설에서 차베스는 카라카스 소재 미 대사관의 존 꼬레아 해군중령을 '기피인물'로 선언하고 베네주엘라를 즉각 떠날 것을 명령했다고 발표했다.

차베스는 더욱 많은 추방령이 내려질 수 있다고 경고했으나 카라카스의 미 대사관은 스파이 행위를 전면 부인했다. 윌리엄 브라운필드 미대사는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베네주엘라 정부로부터 받은 문건에는 꼬레아가 국제협약에 위배되는 행위를 한 것으로만 적혀 있으며 더 구체적인 사유에 대해서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편 부시행정부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지난 3일 워싱턴 주재 베네주엘라 대사 비서실장인 제니 피게레도를 추방했다.

베네주엘라 언론, 스페인 군용기 구입정보 누출로 생긴일

베네주엘라 언론들은 이번 사건이 차베스가 스페인으로부터 구입하려던 군용기에 대한 정보를 담은 CD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이 CD는 현재 플로리다 주 올랜도에 거주중인 베네주엘라의 퇴역대령 호세 이그나시오 플라사가 그의 장인인 카라카스의 한 치과의사에게 전해준 것이다. 이 치과의사는 현재 베네주엘라 당국에 체포된 상태이다.

카라카스 검찰은 6명의 베네주엘라 해군장교들을 미국을 위한 스파이 행위로 고소하고 계속 수사를 진행중이다. 차베스는 꼬레아 중령이 자신을 제거하기 위한 미국의 침공을 도울 목적으로 베네주엘라 해군장교들을 포섭하려 했다고 말했다.

차베스는 스스로 공언한 '사회주의 혁명'을 추구하는 베네주엘라의 좌파 대통령으로, 부시 미 대통령을 '미스터 데인저'(Mr. Danger) 라고 부르며 미국을 '제국'이라고 비난한다. 더 나아가 그는 미국이 자신을 제거하기 위해 2002년 쿠데타를 지원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은 그 쿠데타 개입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으며 오히려 차베스가 국내에서는 독재정치를 하면서 남미에서는 좌파들을 지원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네그로폰테 미 국가정보부 장관은 상원 정보위원회에서 “차베스가 동맹을 맺기 위해 석유를 싼 값으로 공급하고, 자신의 목적달성을 위해 언론매체를 이용하며, 몇몇 국가에서는 특정 선거후보자들을 지원하면서 내정간섭을 일삼는 등 남미 외교정책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만약 차베스가 올해 말 있을 선거에서 재선된다면 “야당을 탄압하고, 언론자유를 축소시키며, 합법을 빙자해 민주주의를 억압하면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차베스가 카스트로와의 유대를 더욱 강화할 것이며 이란이나 북한과 보다 긴밀한 경제적, 군사적, 외교적 유대를 맺기 희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럼스펠드 국방장관, '차베스는 아돌프 히틀러' 비유

한편 도날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차베스를 합법적으로 선출된 후 권력을 강화했던 아돌프 히틀러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는 차베스가 쿠바의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미국은 이로 인해 걱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달 부시 행정부는 베네주엘라의 무기구매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베네주엘라가 스페인으로부터 구매하려고 했던 12대의 군용기 도입을 저지했다. 스페인은 6억 달러에 달하는 거래가 미국에 의해 성사되지 못하자 미국의 정책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한편, 차베스는 미국이 베네주엘라가 보유중인 미제 F-16 전투기 부품에 대한 추가 공급을 방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 전투기들은 1980년대에 베네주엘라가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 중 하나였을 때 미국으로부터 구입한 것들이다.

베네주엘라는 미국에 대한 석유수출국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국가이며 매일 120만 배럴의 석유를 미국에 공급하고 있다. 차베스는 2004년 타우나 육군기지의 미군장교들과 미국마약단속요원들을 스파이 혐의로 추방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