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 순천방송국 기자가 채터누가에서 겪은 일 -

(본 기사는 본국 KBS순천방송국 정병준 기자가 최근 테네시 채터누가를 방문하여 겪은 일을 지난 10일 본보에 보내온 기고문입니다. 본보는 기사내용과 관련하여 후속 취재를 할 계획입니다. - 편집자 -)

내가 일하는 KBS순천방송국 근처에 광양(光陽)이 있다. 광양이라는 지명보다 광양제철소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이 광양제철소 주변에 공장이 들어서면서 공해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KBS 취재진 3명은 공해 해결의 방법을 찾기 위해 ‘공해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도시’ 채터누가를 찾았다.

취재를 준비하면서, 애틀랜타 총영사관을 통해 채터누가 한인회 전 회장인 J모씨를 소개받았다. J모 회장은 다시 C모씨를 소개해, C씨의 도움으로 사전 준비를 해 나갔다. 취재 대상 기관 섭외와 통역, 차량 등 현지 취재에 필요한 사항들에 대해 협조를 요청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잘되고 있다는 연락에 깊이 감사했다.

그러나 6월 25일 현지에 도착했을 때, 나는 취재스케줄이 상당히 부실하다는 사실에 적이 당황했다. C씨가 소개한 통역은, 취재 첫날인 월요일 오전은 스케줄이 없으니 관광이나 하라고 했다. 게다가 프로그램의 특성상 옛날 채터누가 모습을 담은 화면이 꼭 필요한데, 시청에서 구했다는 DVD에는 그런 모습이 한 컷도 없었다. 아뿔싸! 그렇지만 호의로 준비해 준 상대들에게 불평을 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방송 전문가가 아니었고, 모든 책임은 내가 질 수 밖에 없었다.

통역 약속 교민, 약속한 비용 두 배 요구에 취재계획 훼방까지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이틀 째 취재가 끝나가던 화요일 저녁에 일어났다. C씨가 소개한 통역이 C씨와 약속했던 수고비의 2배 가까운 금액을 요구한 것이다. 그녀는 그 요금을 주지 않으면 일을 계속하지 않겠다고 했다. 당장 통역이 없을 경우, 취재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는 우리 상황을 악용한 터무니없는 요구였다. 한 마디로 ‘잘못 걸린 것’이다.

이런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영사관을 통해 사람을 소개 받은 것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길게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통역의 요구가 지나쳐서 준비해 간 예산을 초과한데다, 일을 계속한다면 또 어떤 요구를 더 해 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취재 사흘째 되는 날, 우리는 채터누가의 유일한 한국식당인 <물레방아>를 찾아가 급히 새로운 통역을 구해 줄 것을 부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처음엔 새로운 통역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해고된 통역이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녀는 우리가 자기 수고비를 한 푼도 주지 않는다느니, 우리가 호텔비를 내지 않고 도망을 나왔다느니 하는, 터무니없는, 그리고 금방 탄로 날 거짓말을 쉴 새 없이 하는 특이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이 통역은 또 우리가 교통사고가 나서 취재를 할 수 없다고 거짓말을 해, 나머지 이틀 동안 예약된 취재일정을 모두 취소해 버렸다. 취소해 버린 일정 속에는 채터누가 시장과의 인터뷰도 포함돼 있다.

이 어려움 속에서 우리는 손중삼 사장 부부를 만났다. 지난 해 까지 교민회 부회장을 지냈다는 손 사장은 우리가 처한 상황을 듣고 대단히 분개했다. 그는 통역이 저지른 일을 마치 자기의 잘못인 양 미안해 했다. 새 통역이 되어준 손 사장 부인은 취소된 스케줄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스케줄을 다시 잡기 위해, 통역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 일은, 같은 한국인의 입장에서 참으로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손 사장 부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요일 오후로 예정됐던 채터누가 시장의 인터뷰는 끝내 성사되지 못했다.

그래도 '돕는 손'은 있었다..."한국인들 신뢰 잃지 않았을까" 걱정

그 어려운 과정 속에서도 손중삼 사장 부부는 난생 처음 만난 우리를 위해 진심으로 애써 주었다. 그는 부당함에 분노했고, 진정으로 한국인을 걱정했다. 그 손 사장께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하고 싶은 것이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가장 큰 이유이다.

나는 이번 취재 여행을 떠나면서, 마음을 담은 선물 하나를 준비했다. 유명작가가 ‘독도’를 디자인 한 타이스 링이다. ‘조국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교민을 만나면 주리라’던 그 타이스 링을 기쁜 마음으로 손 사장께 전했다. 물건이 주인을 만난 것이다.

돈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하는 하류인생들, 그런 불쌍한 인생들은 여기에도 또는 거기에도 있다. 운 없이 그런 부류를 만나 고생을 하긴 했지만, 손사장이라는 좋은 분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나는 그 보상을 톡톡히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든 우리의 취재과정에서 생긴 일로 시장을 비롯한 채터누가의 주요 인사들로부터 ‘한국인들이 신뢰를 잃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총영사관이나 교민회 등 관계자들이 이 부분에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 주시기를 당부 드리고 싶은 것이 내가 이 글을 쓴 두 번째 이유이다. / 정병준 (KBS순천 방송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