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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기고
 
[내 젊음을 바친 군대 6] 좀도둑 잡던 육사 출신, 큰 도둑 되다
생도 훈육, 군에만 맡겨선 안 된다

필자가 사관학교에 다닌 1950년대 후반에는 군부대에 부정부패가 창궐해 있었다. 이를 척결하기 위해 당국은 4년제 사관학교 출신들을 십분 활용했다.

그래서일까. 선배들은 취사장 근방에 숨어 있다가 쌀가마니를 훔쳐 가는 부사관이나 중대장을 혼내준 이야기, 식당에서 사병들의 밥을 저울로 달아본 뒤 정량이 아닐 경우 취사반장을 때려준 이야기, 경례 안 하고 지나가는 고참 부사관을 불러 '엎드려뻗쳐'를 시킨 이야기 등을 무용담처럼 전했다.


▲ 생도 시절 해양 훈련 모습(앞줄 맨 왼쪽이 필자).

당시 사관학교 출신 장교가 부대에 배치되면, 그 부대원들은 산천초목이 떨 정도로 긴장했다. 부조리와 타협하지 않으며 원칙을 지킨다고 소문이 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대대급 이하 간부들이 겁을 먹었다.

사관학교 출신들은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군기를 바로 세우며 부대 쇄신의 선봉에 서 있다는 자부심을 지니고 열심히 근무했다. 국민들의 칭송도 자자했다.

그러나 사실 그런 정직성이나 원칙 준수 등은 웬만한 가정교육을 받은 보통 사람이면 누구나 지키고 행하며 살아가는 상식적인 내용이다. 국가와 민족, 역사 앞에서 정의인지 아니면 불의인지 판단하는 철학과 신념, 도덕적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대아(大我)와,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고결한 꿈을 내면화해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수준은 아니었다.

나라도 훔치고 장물도 나누고... 부끄러운 사관학교 출신 장교들

사관학교 출신들 중엔 여건이 변하면 이해득실에 따라 쉽게 방향성을 잃고 굴절하기 쉬운 취약성을 지닌 이들이 있었다. 생도 훈육 과정에서 눈앞에 보이는 수단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도록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난 이처럼 일부 간부들이 거대권력과 금력의 유혹에 쉽게 흔들리고 허물어져 변절한 것도, 민족혼과 민족적 양심에 따른 도덕적 용기를 심어주지 못한 육사 훈육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생계형 좀도둑을 잡는 데 집착했던 사관학교 출신 장교들 가운데, 훗날 나라를 통째로 삼켜 온갖 불의를 저지른 큰 도둑떼가 되거나 그들과 장물을 나눠먹으며 한패거리가 된 사람들이 나온 것도 그 때문이다.

친일 앞잡이들은 훈육 과정에서 생도들에게 스며들지 못하도록 민족혼을 차단하는 데 주력했다. 자신들과 운명을 같이 할 공범자로 만들어 자신들을 끝까지 보호하는 방패막이로 나서도록 생도들을 세뇌하는 데 혈안이 됐다. 출세주의에 함몰하도록 길들이고, 권력의 단맛과 자본의 위력에 정신 팔리도록 만든 것이다.

그러한 의도는 적중했다. 육사 출신 장교 중 상당수는 국가 권력을 강탈한 5·16쿠데타가 성공할 수 있도록 적극 협력했다. 그 후 대를 이어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키고 광주학살을 자행하며 민주주의를 짓밟는 공범자로 변신한 장교들도 있었다. 그들은 그 대가로 부귀영화를 한껏 누렸고, 배부른 기득권 반열에 올랐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자신들이 저지른 해악이 부끄러운 짓임을 아직도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난 민주화 이후 역사적 심판이 내려진 지 오래임에도, 친일주구와 독재세력의 해악이 아직도 유령처럼 떠다니며 적지 않은 육사 출신 장교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한다.

사관학교는 군대에 필요한 소대장을 충당하기 위한 기관이 아니다. 조국과 민족을 뜨겁게 사랑하고 민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자 하는 역사의식을 지닌 모범적인 대들보를 육성하는 곳이다.

훈육 과정뿐 아니라 극단적인 경쟁심만 조장하는 간부평가 제도 등 다른 문제도 있다. 수십년 동안 군에서 복무하면서 난 안타깝게도 사관학교 출신들 가운데 출신이 다른 장교들에 대해 이유 없는 우월감을 지닌 사람들이 많다고 느꼈다. 그러나 실제 군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사관학교 출신은 학군단출신 장교와 학사출신 장교, 3사관학교 출신 장교와 별반 다르지 않다.

사관학교 출신들 중엔 진급 경쟁 때문에 영향력 있는 육사 출신 선배들에게 잘 보이는 일에 물불을 가리지 않으며 동창회 일이라면 다른 일을 제쳐두는 사람도 있다. 동기생들 사이에서 자기 평판을 좋게 만드는 일을 기본 업무보다 더 중시한다는 말도 나온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민족의식 지운 훈육, 김구와 5·18 비하한 극우주의자 낳다

일부 사관학교 출신 예비역 간부들의 모습을 보면 생도 시절 훈육에 잘못된 점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육사 출신 중에는 김구 선생을 비하하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은 광주민주화운동을 '빨갱이들의 사주에 놀아난 짓'이라고 막말하며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색깔론으로 엄포를 놓는 등 극우 선동을 일삼아 국민들의 빈축을 샀다. 그때 내가 만나본 육사 출신 예비역들 사이엔 그를 높게 평가하는 사람도 있었다.

2004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장군 진급비리 사건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것처럼 장군 계급장이 군 생활의 목적, 더 나아가 인생의 목적인 양 꼴사납게 사생결단의 이전투구를 벌인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진급에서 떨어지면 인생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린 낙오자로 전락한 것처럼 온 가족과 함께 통곡한다.

이는 바로 잘못된 육사 훈육에서 비롯된 필연적 결과다. 민족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고결한 가치관을 심어줬다면 저급한 욕구를 억누르고 행동을 자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민족'이라는 주제는 훈육 과정에서 완전히 사라졌고, 사관학교 출신 장교들 가운데 추한 모습을 보인 사람들이 생겨났다.

사관생도는 국가 안보의 희망이다. 이들을 훈육하는 일을 군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국민적 관심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광복군·독립군 선배들의 위대한 정신과 신흥무관학교의 거룩한 혼을 이어받았다는 자부심을 불어넣어 국민의 애정 어린 갈채를 되찾을 수 있게 생도 훈육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 표명열 기자 (예비역 준장) (오마이뉴스)
 
 

올려짐: 2006년 12월 26일, 화 10:30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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