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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기고
 
[내 젊음을 바친 군대 10] 상식에 어긋난 '참호'가 병사들 구했다
북베트남군과 최초로 겨룬 두코 전투

두코 전투는 한국군 전투부대가 북베트남 정규군과 일전을 겨룬 최초의 전투다. 두코 지역은 캄보디아 국경 가까이 있는 밀림 지대로, 북베트남 정규군이 캄보디아를 거쳐 남베트남으로 몰래 들어오는 통로였다.

기갑연대 제3대대는 이곳으로 들어오는 북베트남 정규군을 차단하는 임무를 띠고 두코 지역으로 왔다.


▲ 퀴논에서

그 중 우리 11중대는 캄보디아 국경에 가장 가까운 전초기지에 투입됐다. 적의 침입을 조기에 알리고 침입한 적을 섬멸하는 게 우리 임무였다.

전 중대원이 적을 찾아 종일 조심조심 정글을 헤치며 정찰하다가 저녁이 되면 숙영지로 돌아오는 일과가 반복됐다.

미군 전차 1개 반(전차 4대)이 우리 중대 기지를 에워싸고 있었다. 적의 야간 기습공격에서 우리를 지켜주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판초우의로 얼기설기 하늘을 가려 밤이슬을 대충 막고 밤을 지새웠다. 다음날 아침이 되면 다시 정글을 뒤지고 다녔다.

전투정찰 임무를 수행하던 우리 중대는 상부의 명령에 따라 9중대와 임무를 교대하고, 적이 공격할 위협이 거의 없는 안전한 대대본부 근처에 배치되어 예비대 임무를 맡았다.

9중대장은 우리 중대와 임무를 교대하기 위해 함께 근무할 때, 모든 진지를 유개호(有蓋壕, 덮개가 있는 진지)로 만들었다. 진지에서 적을 맞아 싸우는 '진지전'이 아니라 이동하면서 적을 발견하고 공격해야 하는 '기동전'이었기 때문에, 이런 진지를 구축한다는 것은 전술원칙에 맞지 않는 엉터리 조치로 보였다. 미군들도 입을 삐죽이며 '호랑이(맹호부대)가 이빨이 다 빠져 두더지처럼 땅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짓'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전선 없이 펼쳐야 하는 기동전에서는 적이 우리가 집결한 장소를 알 수 없도록 수시로 숙영지를 옮겨야 한다. 그런데 주위에 있던 통나무로 틀을 만들고 거기에 흙을 두껍게 덮어, 포탄이 떨어져도 끄떡없는 진지를 만들겠다는 건 군대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핀잔 들은 상식을 어긴 '참호'

그러나 9중대장의 이런 엉뚱한 조치가 북베트남 정규군 1개 대대를 무력화시키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나중에 들은 내막은 이렇다.

며칠 동안 정찰도 하지 않고 중대장실, 소대장실 등을 만드는 동안 중대기지가 적에게 노출됐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적이 한국군을 공격하도록 유도한 셈.

어느 날 9중대원들이 정찰을 마치고 피곤한 몸으로 돌아와 취침을 하려던 참이었다. 그때 1소대장이던 이춘식 소위는 1분대장에게서 땅을 파는 것 같은 이상한 소리가 전방에서 들린다는 보고를 받았다. 1소대장은 즉시 미군 전차 반에 연락해 전차의 전조등을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비추게 했다.

아뿔싸! 경계 철조망 근처에 적이 새까맣게 몰려와 있었다. 대(對)전차 무기까지 갖춘 북베트남 정규군 1개 대대가 돌격 개시 선상에서 호를 파다가(적 전술에는 돌격선상에서 호를 파도록 돼 있었다) 발각된 것.

불꽃 튀기는 접전이 벌어졌다. 밀려오는 적을 향해 총을 너무 많이 쏜 탓에 총신이 벌겋게 달아올라 엿가락처럼 늘어질 정도였다. 이춘근 대위와 교대하기 위해 진지에 와 있던 신임 중대장은 진지 밖으로 뛰어나오다가 그 자리에서 전사했다. 참호를 오가며 분대장들을 격려하던 1소대장도 적탄에 맞아 피를 흘리며 헐떡였다.

적이 경계철조망을 넘어오기 시작했다. 중대가 전멸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다른 선택지가 없던 아군은 마지막 방법으로 포격을 요청했다. VT신관(포탄이 땅에 떨어지기 전 공중에서 파편이 되도록 설계된 포탄)으로 진내사격(아군과 적군이 뒤섞여 구분할 수 없을 때 적을 제압하기 위해 아군 진지에 포격하는 것)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성공했다. 그런데 이 작전을 실행할 수 있던 건 '유개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엉터리'처럼 보였던 9중대장의 진지 덕분에 북베트남 정규군 1개 대대를 섬멸한 셈이다. 진두지휘하다 쓰러진 1소대장은, 용감한 미군 위생병이 없었다면, 병원에 후송되기 전에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숨을 거뒀을 것이다.

미군 위생병은 총탄을 헤치고 뛰어다니며 1소대장을 비롯한 부상자들에게 응급처치를 했다. 우리 병사들이 적이 오는 줄 알고 쏠까봐 미군 위생병은 "에이드맨(Aidman)(위생병이다)! 에이드맨!"하고 소리치며 뛰어다녔다.

전투가 끝난 후 그 위생병에게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나왔느냐"고 묻자 위생병은 대수롭지 않은 듯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아니, 내 책임을 수행했을 뿐이다. 부상자가 생기면 응급처치를 하는 건 내 임무다."

시신에서 찾아낸 주머니칼

우리 11중대는 캄보디아 국경 쪽으로 야간에 이동해 적의 퇴로를 차단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정글을 헤치며 밤중에 기동하라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결정이었다. 그러나 대대본부 참모들이나 대대장은 부하들이 죽을 수 있다는 위험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 같았다.

다행히, 미군 비행기가 하늘을 돌며 낙하산 조명탄을 밤새도록 투하해 우리가 이동하는 데 큰 불편은 없었다. 날이 환하게 밝아올 즈음, 우리 중대는 작전 지역에 도착했다.

그곳은 폭약 냄새와 피비린내로 가득했다. 차마 눈뜨고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처절한 모습이었다. 붕대를 감다가 눈을 빤히 뜨고 토막 난 시체, 포탄에 작살난 시체, 걸레 조각처럼 찢기고 짓이겨진 시체가 참호 곁에 널려 있었다.

우리는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 그쪽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가 축 처져 온몸이 늘어진 상태로 앉아 있었다.

그러나 미군 전차병들은 달랐다. 그들은 희색이 만면한 얼굴로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167구의 시체를 하나하나 뒤적이며 호주머니 검사까지 하고 있었다.

어떤 미군 병사는 북베트남군 시체의 호주머니에서 빼낸 주머니칼을 우리에게 자랑삼아 보여주며 애인에게 선물할 거라고 자랑했다. 중대전투교범에는 그렇게 하도록 규정돼 있었다. 첩보자료 수집을 위해서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그대로 주저앉아 있었다.

웨스트모렌 주월 미군사령관이 헬기를 타고 왔다. 우리는 복장을 가다듬고 정렬하느라 법석을 부렸다. 그러나 미군들은 쉬는 자세를 그대로 유지했다. 누운 채로 "하이! 웨스트모렌!"하며 손만 흔드는 병사도 있었다. 우리도 자유 시간엔 설령 4성 장군이 오더라도 자유스런 분위기를 유지하는 군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위에 널려 있던 북베트남 정규군의 시체를 본 웨스트모렌 사령관은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사병이건 장군이건, 미군들은 적의 시체를 보며 즐거워했다.

웨스트모렌 사령관이 돌아간 후 미군은 전차에 달린 도저로 시신 조각들을 한 곳으로 밀었다. 미군은 그렇게 모은 시신 조각들 위에 흙을 덮어 커다란 분묘를 만들어줬다. 그들은 장난기 서린 표정으로 나뭇가지로 만든 십자가도 세웠다.

물론 미군은 미라이 학살 등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베트남에서 자행했다. 그렇지만 이처럼 적군의 시신을 모아 십자가를 세워주는 등 한국군과 다른 모습을 보인 경우도 있다. 매우 인상적이었다.

국군 형이 인민군 아우 감싸는 동상은 안 된다?

그로부터 약 30년이 지났을 때, 난 이 일을 다시 떠올려야 했다. 서울 용산의 전쟁기념관 광장에 있는 '형제의 상'이라는 동상 때문이다.


▲ 형제상.

형인 국군이 인민군 패잔병인 아우를 감싸주는 모습을 한 이 동상을 제작하자는 아이디어를 낸 건 나다. 당시 난 예편하고 민간인 신분으로 국방부 전쟁기념사업회에서 일했다. 완성되기 전에 전쟁기념사업회 일을 그만둔 난 얼마 후 국방부를 찾았다가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청와대(김영삼 대통령이 재직할 때였다) 관계자가 이 동상을 두고 '어떻게 국군이 인민군을 감쌀 수 있단 말인가, 사상이 의심스러운 자가 착안한 것임이 틀림없다'고 국방부에 전해왔다고 한다.

냉전이 한창이던 약 30년 전 미군의 모습을 떠올린 난, 적이었지만 한 핏줄이기에 느낄 수밖에 없는 형제애를 담은 동상조차 이념의 잣대로 재단하던 탈냉전 시기 한국의 현실을 접하며 황당하고 서글펐다.

우리 군에선 그동안 '주적론'이니 '대북 적개심'이니 하는 말이 횡행했다. 그러나 이런 말들은 실상 군인정신이나 전투정신과 아무 상관없다. 그 본질은 정치적 목적으로 쓰이는 수사일 따름이다. 아직도 우리 장병들에게 냉전적인 사고를 주입하려는 정치교육(정훈교육)이 실시되고 있다고 한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조금 전까지 서로 목숨을 노리던 적이었더라도, 승리하고 난 다음엔 죽은 자들의 명복을 빌어주는 군대가 진정 멋있는 군대의 모습 아니겠는가.

한국군과 미군의 고급간부들은 전투에 임하는 자세에서도 다른 모습을 보였다. 미군이 여단 규모로 수색작전을 펼칠 때 여단장(별 하나)도 직접 M-16 소총을 들고 나왔다. 난 미군 여단장이 장병들과 같은 대열에 서서 개활지를 횡단하는 모습을 보면서 경탄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우리 대대장 이상 간부 대부분은 예비 중대들에 둘러싸여 안전한 산꼭대기 지휘소에 앉아서 큰소리만 치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이 어디 군대에만 있는 일이었겠는가! 그동안 이 나라의 이른바 지도층이라는 분들의 진면목이 아니겠는가! 이들 중 군에서는 장군까지 지내고, 전역 후엔 군사주권인 전시작전통제권 조기 환수를 반대하는 분들도 있는 듯하다. 부끄러운 일이다. / 표 명 열 예비역 준장(오마이뉴스)
 
 

올려짐: 2007년 3월 16일, 금 9:59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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