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기가 막힙니다. 한없이 가슴이 먹먹하고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아마도 세계 구석구석에서 우리의 국보1호가 타들어가는 것을 본 한인들 모두가 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차라리 꿈이었으면, 그저 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이었으면 하는 바램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숭례문이 불탄것은 돌이킬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고, 감출 수 없는 현실이었지요. 청천하늘에 날벼락처럼 600년이상 지켜온 국민의 역사가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했어요.

도대체 어떻게 이런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인지요? 어찌 그렇게 무모하고 어리석은 짓을 했을까요? 문화재 관리 담당자는, CCTV 감시자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화재경보가 울리자마자 출동한 소방관들은 어떻게 건물지붕이 다 무너져내리도록 불을 끄지 못했을까요?

국보1호 숭례문! 조선왕조의 궁궐이 불타 없어질때도, 동족상잔의 전쟁에도 소실되지 않았던 우리의 보물이 한 개인의 감정으로 사정없이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국만리 머나먼 이곳 플로리다에서 인터넷으로 화재 소식을 접하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답답하고 화가 나서 더이상 볼수가 없었어요. 어떤 변명으로, 무슨 설명으로 잃어버린 우리의 자존심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참혹하게 입은 상처를 치유할수 있을까요?

복원을 하겠다고요? 성금을 모으겠다고요? 그렇지만 아직은 아무것도 귀에 안들립니다. 오직 시커멓게 타버린 숭례문을 보면서 왜 이런일이 일어났을까 하는 생각밖에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반만년 이어진 얼을 잃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 기꺼이 독립운동하던 수많은 독립투사들을 사살한 사람도 외국인이 아닌 같은 동포의 손이고, 정말 귀하고 소중하게 목숨을 걸고 간직해야할 우리의 문화재들도 갚싼 고물로 팔아치운 장본인도 다름아닌 내부의 손입니다.

우리의 전통과 얼을 심어주자고 학교마다 세운 단군상을 부수는가 하면, 종교를 위해서는 죽을수 있어도 나라를 위한 국방의 의무는 싫다는 사람들. 국민의 안전보다는 개인의 치적을 과시하기에 바쁜 사람들. 그런데 이제는 개인의 오판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을 저지른 사람으로 인해 국민들의 마음이 타들어갔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누가 어루만지고, 우리의 분노와 절망의 통곡소리를 어떻게 치유하고, 국보 1 호조차 제대로 보존하지 못한 책임을 과연 누가 질까요? 숭례문 지붕이 무너져 내릴때, 이로 인해 전 세계 한민족 가슴의 억장이 무너져 내릴때 광란을 저지른 장본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하늘이 무너져도, 세상의 종말이 와도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는 것을 아마도 범인은 더 잘 알겁니다.

본인 소유의 땅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요? 창경궁 방화사건때 선고받은 추징금이 억울해서라고요? 인명피해가 없고 경비시스템이 느슨한 숭례문을 택했다고요? 범인은 과거에 철학관까지 운영했었다구요? 한심한 사상과 철학으로 건전한 사람들을 오염시키지는 않았는지요?

범인을 보면서 우리 모두는 느낀 바가 많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급속한 경제성장에만 골몰했을뿐 진정한 삶의 가치와 인격성숙에는 등한시 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조만간 숨이 끊어지고 사람구실을 할 수 없는 사람에게 별문제 없다고 반창고를 붙여 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600년 역사의 잿더미를 보며 온갖 절망스런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한편으로는 현실을 함께 아파하며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처참하게 무너진 잿더미 앞에 무릎꿇고 제대로 지키지 못함을 사죄하며 하얀국화 한송이 헌화하려고 이어지는 사람들, 아품과 분노와 슬픔을 삼키며 묵묵히 깨끗하게 청소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래도 우리 사회가 바르게 설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을 통해 정말 소외당하고 외로운 이웃을 다시 돌아보고 범인처럼 피해망상으로 병든 사람을 치유할수 있도록 우리 모두 힘을 모으기를 기원해 봅니다. 다시는 이런 가슴아픈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 이종명 (올랜도 거주 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