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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문화
 
문학으로 되살아난 '억울한 죽음들'
김원일 연작소설 <푸른혼>, 인혁당 사건 진상 파헤쳐

"인혁당은 애초부터 이 땅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군사독재 정치의 연장을 위해 조작되었기에 나는 무죄하다. 그러므로 나를 비롯한 이 사건의 연루자들은 오직 그 희생양으로 선택되었을 뿐이다.

이 나라의 참다운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뜻이 맞는 동지들과 함께 고뇌해 왔다는 것이 죄가 된다면 달게 받겠지만, 나를 북측 지령을 받고 공산주의 폭력혁명을 선동한 간첩으로 몰아 극형에 처함은 천만부당하다."(315쪽)

지금으로부터 꼭 30년 전인 1975년 4월 9일, 박정희 군사정권이 강요하는 복종의 자유와는 다른 자유를 꿈꿔 온 서도원, 도예종, 송상진, 우홍선, 하재완, 이수병, 김용원, 여정남은 군사독재로부터 국가전복세력이자 인민혁명당의 수괴로 '지목'되어 교수형에 처해졌다.

최소한의 인권조차 유린하며 단심만으로 판결 하루만에 속결로 진행된 이들의 사형 집행은 세계의 법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제네바 국제법학자협회는 이날을 '사법 사상 치욕의 날'로 선포했다.

끊임없이 조작시비, 고문시비가 벌어지던 이 사건은 이제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우선 조사대상으로 선정해 30년만에 조사에 착수했다.

이러한 상황에 때맞추어 분단문학의 중진인 김원일씨가 이 사건을 문학으로 기록해 출간했다.

'인혁당 사건' 정면으로 다룬 <푸른혼>

<푸른혼>은 담담한 필체로 풀어나가는 소설이다. 그러나 작가의 태도에서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식의 당참이 보인다. 따라서 작가는 우회의 방법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간접적이고 암시적인 은유와 상징의 방법을 사용하기보다는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선다.

여섯 편의 연작으로 구성된 이 소설집은 희생자들의 삶을 유년부터 청년기의 활동, 동무의 우정, 고문의 고통, 사형수의 절망, 유족의 회상 등 다양한 측면에서 그려내고 있다.

즉 '지금보다 더 좋은 세상'을 꿈꾼 이들의 삶과 고뇌, 그리고 어딘가로 끌려가서 가혹한 고문을 받다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과정을 여러 형식과 다양한 측면에 초점을 두고 담아낸 것이다.

고 송상진의 삶을 다룬 <팔공산>은 팔공산 자락을 떠도는 송상진의 죽은 넋이 자신의 삶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그렸다. 이어 고 이수병, 고 김용원의 삶을 다룬 <두 동무>는 둘의 '운명 같은 우정'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가장 젊은 나이인 29살로 희생당한 고 여정남의 삶을 다룬 <여의남 평전>은 열정적인 민주투사의 삶과 고뇌를 복원한다.

<청맹과니>에서는 고 서도원의 삶을 그리고, <투명한 푸른 얼굴>은 처형의 순간을 앞둔 사형수의 내면적인 고통과 절망을 세심히 묘사한다. 마지막으로 <임을 위한 진혼곡>은 희생자의 아내가 남편(고 하재완)에게 쓰는 편지 형식을 통해 재판 과정의 부당함을 옮겼다.

억울한 자들의 '씻김', 다양한 측면서 그려내

이렇게 연작소설은 작품마다 각기 형식과 내용의 중심을 달리 하고 있다. <팔공산>은 회고 형식, <여의남 평전> <청맹과니>는 일대기 형식, <임을 위한 진혼곡>은 편지 형식이다. 각 작품마다 내용의 중심도 각기 다른데, 특히 <투명한 푸른 얼굴>은 사형수의 고통스런 심정을 세심히 묘사해 빅토르 위고의 <사형수 최후의 날>을 연상시킨다.

또 이 작품은 환상소설기법을 이용해 희생자들이 혼령이 되어 만나고 회포를 푸는 장면을 그려낸다. 이들은 자신들을 왜 그렇게 급하게 사형시킬 수밖에 없었는지 시국을 토론하기도 하고, 서로의 억울한 죽음을 위로해준다. 이로서 이들은 각자의 응어리를 조금이나마 풀어내고 '씻김'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소설집은 전체적으로 일대기를 중심으로 하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과정에는 역사적 사실들과 시대가 함께 녹아들어 무게가 느껴진다. 배경도 박정희 시대에 국한되지 않는다. 즉 주인공들의 아버지 세대부터 주인공의 어린 시절, 일제시대, 해방공간, 한국전쟁, 이승만정권, 60년 4월항쟁 등 한국 근현대사의 큰 그림을 그려낸다.

예를 들어 <팔공산>의 경우, 작가는 고 송상진이 자라나고 묻힌 팔공산을 "해방 전후부터 여태껏 죄 없는 무수한 넋을 품에 안았으되 침묵 속에 장엄하게 버텨선 넉넉한 산"(90쪽)으로 그려낸다.

4월 9일, 그들의 영전에 이 책을 바친다

이 작품은 작가 김원일의 개인적 씻김굿이기도 하다. 인혁당 희생자 8명 중 4명이 대구가 연고이며 그들은 대구 팔공산 자락에 묻혀 있는데, 작가 김원일의 연고지도 대구다. 작가는 서문에서 이렇게 밝힌다.

"나는 민청학력 사건에 연루되어 당국이 조작한 인혁당 사건으로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사형당한 여덟 분 중 대부분이 내가 청소년기를 보낸 대구가 연고지였고, 그분들이 자주 만나 회포를 풀었던 약전골 일대가 우리 가족이 전쟁 후 한 세월을 힘들게 넘겼던 동네여서 옛 기억을 떠올리는 한편, 그분들의 고난을 생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꿈속에서나마 그분들의 설움에 찬 얼굴을 대면했고, 그분들이 그제야 고백하는 진정한 목소리를 들었고, 그분들이 당했던 고난을 간접으로나마 체험해온 나날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박정희 군사정권 아래 인권이 철저히 유린당한 대표적 사례가 1975년 인혁당사건"이며, "이 사건이야말로 군사정권이 저지른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죄악"이라고 지적한다.

희생자들은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의 연장을 위해 간첩으로 '지목'되었고, 그들은 꿈꿀 자유마저 빼앗겨 죽어서야 자유로운 '푸른혼'이 되었다. 제명대로 살지 못한 이들의 억울한 영혼은 지금도 팔공산 자락을 떠돌며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 서상일 기자 (오마이 뉴스)
 
 

올려짐: 2005년 4월 11일, 월 5:2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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