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 89] 되살아난 피델 카스트로, 쿠바는 어디로? [print]

혁명 계승한 동생 라울 , 중국식 개방모델 암암리 모색

(올랜도) 김명곤 기자 =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1년여에 걸친 투병끝에 기적같이 병석에서 일어나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면서 쿠바 정정에 대한 세계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13일 쿠바를 깜짝방문한 베네수엘라 휴고 차베스 대통령은 "피델은 자신의 90마일 속구를 회복했다, 그러나 게임에 임하기 전에 워밍업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차베스의 이같은 언급은 젊은 시절 투수로 활약한 카스트로가 빠르게 건강한 모습을 되ㅤㅊㅏㅊ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차베스는 이날 출입이 통제된 방에서 천연가스 정제 공장 설립계획 등을 논의한 것을 비롯, 피델과 6시간 동안이나 좌담을 즐겼다고 전하기도 했다.


▲ 지난 4일 운동복 차림의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농 둑 만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을 포옹하고 있는 모습을 방영한 쿠바 텔레비전.

이에 앞서 지난 5일 쿠바의 텔레비전은 카스트로가 전보다 건강해진 모습으로 여유있게 말을 이어가는 모습을 비쳐 주었다. 그의 수염은 예전처럼 잘 다듬어져 있었으며 더이상 지난해 병석에 누워있던 당시의 초췌한 모습이 아니었다.

하루 전에도 쿠바 텔레비전은 카스트로가 운동복 차림으로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을 맞이하는 장면을 비쳐 주었다. 카스트로는 인터뷰에서 과거 베트남을 방문했던 일과 사흘전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농 둑 만을 만났던 일을 되뇌이며 어떤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예전처럼 팔을 흔들거나 손가락을 세워 말하기도 했다.

<에이피> 통신은 카스트로가 과거 연설장면에서 보여준 것처럼 집중력이 강한 듯 보였고 주제를 자주 옮겨가며 말을 이었으며, 활기차고 건강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 같다고 보도했다. 카스트로는 지난주 발표한 글에서 “부시는 오로지 카스트로가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비웃으며 건강에 자신감을 표현했다.

이처럼 카스트로가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는 소식이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카스트로는 정치무대의 전면에 나설 뜻이 없음을 재차 언명해 관심을 끌고 있다.

카스트로는 수일전 발표한 기고문에서 공식 사진 촬영을 위해 머리를 깎고 수염을 가지런히 정리해야만 했던 것에 불만을 토로했으며, 자신은 칼럼니스트와 원로 정객의 역활로도 행복하며 대통령직 복귀에 관심이 없음을 밝혔다. 그는 5일 인터뷰에서도 예상되던 국제문제에 대한 언급뿐 아니라 권력 복귀에 대한 언질도 일체 하지 않았다.

미국 언론과 쿠바 전문가들은 카스트로가 건강이 빠르게 회복되고 있기는 하지만, 병세와 치료과정이 베일에 가려져 온 것 만큼이나 그의 건강이 '풀 게임'을 뛸 만한 상태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 또한 평생 동지이자 친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75)가 자신의 유산을 잘 이어 가고 있는데, 건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굳이 권력에 복귀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혁명 계승한 라울 "문제가 무엇인지 두려움 없이 토론하라"

현재 세계인들의 관심은 50여년간 지속되어온 피델 카스트로의 공산주의 혁명 유산이 어떻게 유지될 것인지, 전문가들의 예측대로 쿠바에 변화의 바람이 분다면 어느 방향으로 향하게 될 것인지에 쏠려 있다. 또는 일부의 희망 반, 우려 반 예측처럼 어느 순간 급속하게 쿠바의 체제가 붕괴될 것인지도 관심거리다.

지난 1월 피델 카스트로의 병세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소식에 미국 남단 플로리다에 집중 거주하고 있는 약 70만명의 쿠바인들은 마이애미 남단의 오렌지 보울 풋볼장에서 조만간 '카스트로의 사망 축하 잔치'를 열겠다고 발표했다. 망명 쿠바인들 가운데서는 카스트로가 사망하면 쿠바가 붕괴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귀국 꿈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카스트로의 건강이 회복되고 있으며, 설령 가까운 시일내에 사망한다고 해도 쿠바가 쉽게 붕괴될 것이라는 예측은 단순한 희망 사항에 불과한 듯 보인다. 50여년간 뿌리내린 카스트로의 공산주의 혁명의 에너지가 아직은 쿠바를 뒤덮고 있으며, 혁명 계승자로 권력의 전면에 등장한 라울과 그의 추종 세력들이 강고한 터전을 형성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 국방정보국(DIA)장 마이클 매이플스 중장은 지난 1월 <에이피> 통신에 라울 카스트로가 군부의 폭넓은 존경과 지지를 확보하고 있으며, 당분간 그를 권좌에서 몰아내고자 하는 어떤 움직임도 저지할 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 라울 카스트로.

워싱턴의 쿠바 관측통들은 라울이 피델 카스트로에게 보여온 충성심은 계속될 것이며, 정국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7월 정권을 물려 받은 라울이 획기적인 정책 변화를 초래하는 행보를 보이지 않고 조용히 정국을 이끌어 온 점을 들어 당분간 피델이 추진해온 어떤 정책도 폐기하거나 거슬러 올라가는 모습은 보여지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카리스마와 성격, 리더십의 특징 등에 있어 피델과 큰 차이가 있는 라울에 의해 이끌려질 쿠바정국의 변모는 필연적이며,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체제를 향해 수순을 밟아가고 있다는 지적들이 흘러 나오고 있다.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 역사학자 루이스 페레즈 교수는 “라울 치하에서는 정부가 한 개인의 카리스마에 의해 움직이기 보다는 절차와 규정에 의해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면서 “라울은 대중 연설과 텔레비전에 등장하기 보다는 간부들과 함께 또는 이들을 통해서 일하기를 즐겨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익명의 한 쿠바 보안군도 지난 5일 <에이피> 통신에 “라울은 오랫동안 준비해 온 ‘넘버 2’ 맨이고 충분히 준비된 사람이다”면서 “결국 한 사람의 리더에 의해 쿠바가 이끌려지기 보다는 시스탬이 오랫동안 쿠바를 지탱하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혁명의 전위에 서서 쿠바를 하나로 연합시키는 기관인 공산당 만이 존엄스런 (혁명의) 계승자가 될 것이다”고 덧붙였다.

미 CIA의 고위 쿠바 분석가인 브라이언 라텔은 지난 2월 <에이피>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라울은 대학생들을 포함한 쿠바인들에게 국가의 문제가 무엇인지 두려움 없이 토론에 임하라고 권유하는 등 예상외로 대담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라울이 권력을 분담하려는 의지가 있고 비판에도 귀를 열어 놓고 있다는 것이다. 라울은 지난해 12월 “무장 군인을 만드는 첫번째 원칙은 독자적인 지휘체계이긴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토론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한 적도 있다.

라울의 리더십의 특징에 대한 이같은 평가는 쿠바 정부 안에서도 흘러 나왔다.

1961년 미국이 침투시킨 망명객 색출 부대 관계자였던 호세 라몬 페르난데즈 부통령은 지난해 공산당 일간지 <그랜마>에 “라울은 신중하면서도 단호한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아이디어 집약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해왔다”면서 “라울은 집무 스타일과 리더십에서 체계적인 면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라울은 중대 결정을 내려할 교차로에 닥아가고 있다"

결국, 라울 체재 아래서 제한된 가운데나마 아이디어 집약적인 토론정치가 펼쳐지게 될 것이며, 이같은 분위기는 필연적으로 쿠바 사회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쿠바 전문가들은 라울이 중대 결정을 내려할 교차로에 점점 닥아가고 있으며, 시기와 완급이 문제일뿐 글로벌 시대에 발맞춘 경제개혁과 함께 사회적 불만 계층을 다독이는 정책을 펼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 쿠바인들은 주거와 식량 등에 거의 돈을 들이지 않고 살고 있으며, 의료와 교육은 무료로 제공된다. 그러나 정부 최저임금은 월 12불이 약간 넘는 정도이며 대중교통 등 사회 간접시스탬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팽배해 있는 상태이다.

라울 정부는 피델 카스트로가 투병 생활을 하는 동안 경제개혁을 연기해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일반 쿠바인들은 언젠가는 자영업에 대한 제한을 완화하는 것과 같은 온건한 경제 개혁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쿠바 정부는 이전부터 사회주의 제도 아래서 국영기업과 사유재산 제도를 동시에 허용하는 방안을 연구하는 별도의 위원회를 만들어 운영해 왔으며, 라울은 이미 자유무역을 일부 허용할 뜻을 비쳐 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일련의 움직임은 일당 지배하에서 부분적으로 자본주의를 도입한 중국식 개방모델에 라울이 이미 눈을 돌리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까지 라울은 이같은 의도를 노골적으로 표출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 징후는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쿠바 노동장관 알프레도 모래일스는 최근 국영기업들이 성취도를 기준으로한 성과급을 정하고, 직장들이 생계비에 합당한 임금을 지불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월에는 직장에 지각하는 사람들에게 벌을 내리는 규정을 두는 등 라울 정부는 노동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당근과 채찍 사용, 변화 위해 워밍업 하고 있는 라울의 쿠바

라울은 경제정책에서 유연성을 보이고 있는 것과 비례하여 정치적으로도 슬며시 유화정책을 펼치고 있다.

쿠바 당국은 정부 비판세력들을 여전히 억누르고 있으나 예전과는 다른 전향적인 조치를 취해 왔다. 최근 쿠바내에 구금자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지만 이들중 상당수는 체포된지 수시간 만에 석방되고 있으며, 국제 인권그룹들이 양심수로 지목하고 있는 수감자들 가운데 형기가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을 미리 석방했다.


▲ 지난 1월 카스트로의 병세가 악화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는 마이애미 쿠바인들의 모습을 CNN이 담았다.

라울은 피델의 영향력과 라울을 떠받히고 있는 군부 세력을 뒷배경으로 정국의 안정을 꾀하는 한편,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국제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정치, 경제,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당근과 채찍 전략을 구사하면서 조심스럽게 변화를 추구할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현재 쿠바 사회주의 혁명의 대부 피델은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워밍업을 하고 있지만, 라울은 새 시대에 발맞춘 변화를 향해 워밍업을 하고 있다.
올려짐: 2012년 3월 16일, 금 7:12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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