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 과정에서 만난 50년 인연, 이 책에 담았죠" [print]

[인터뷰] 책 '인연' 펴낸 인권운동가 고상만씨

(서울=오마이뉴스) 김성수 기자 = 인간의 삶은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는 '인연'의 연속이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속담처럼 어떤 친구를 가졌는가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인간은 '끼리끼리' 모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1970년 생으로 인권운동가 고상만씨가 지난 50년 간 살아오면서 만난,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가 만난 사람들 중엔 인권변호사 노무현과 문재인도 있고,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아래 의문사위)에서 기록으로 만난 장준하 선생도 있으며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도 있다.

필자는 노무현 정부 시절 저자를 의문사위에서 '직장동료'로 만나 소중한 '인연'을 맺었다. 저자가 살아온 치열한 삶의 행적은 개인적으로 필자에게 자극과 영감 그리고 정신적 영양분을 제공해줬다. 지난 11월 3일부터 16일까지 저자와 이 책에 대해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하여 싣는다.


▲ 고상만 <인연> ⓒ 여문책

- 최근 <인연>이라는 에세이를 냈다. 그간 내온 책들과는 이번 책 느낌이 많이 다른 듯하다.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이나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 또는 <고상만의 수사반장> 같은 사건을 중심으로 진실을 추적하는 책이 아니라 이번엔 휴먼에세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인연이라는 주제로 책을 내게 된 이유는?
"<인연>을 출간하는 데 준비한 시간이 대략 10년 정도라도 할 수 있다. 그 10년 동안 틈틈이 써온 책이다. 이 책에 실린 첫 번째 글, <전두환과 평생 동지였던 아버지, 사랑합니다>를 처음 쓴 때가 2011년이기 때문이다.

당시 오마이뉴스에서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제주도 왕복비행기 여행권 여섯 장을 내걸고 불효자 공모전을 했는데 그때 이 글로 대상을 받았다. 그리고 이후 틈틈이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과 이번에 새로 쓴 글 절반을 함께 버무려 출간한 책이다. 인권운동 과정에서 내가 만나온 어떤 사람들과의 인연을 따뜻한 시선으로 나누고 싶어 쓰게 된 휴먼 에세이다."

"역사가 부르는 대로 살아야" 이소선 여사 말씀 인상적

- 책 프롤로그에 '인연 3가지' 소개가 인상적이다. 특히 올해로 분신 산화한 지 50년 되는 전태일 열사의 모친 이소선 어머니와의 저자 인연 소개가 흥미로웠다.
"이소선 어머니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된 때는 1993년의 일이었다. 그때 전국민주화운동 유가족협의회(약칭, 유가협) 상근 간사로 일하면서 알게 된 이소선 어머니와 있었던 1999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의 일화를 되살려 프롤로그로 썼다. 그때 이소선 어머니가 나에게 '역사가 부르는 대로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주신 것이 인상적으로 남았다.

지금도 마석 모란공원에 가면 이소선 어머니 묘역에 손을 얹으며 안부를 여쭙고는 하는데 참 다정했고 고마웠던 분이다. 1996년에는 쌍문동의 아파트를 방문하여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나에게 '인터뷰를 참 잘 한다며, 지금까지 만난 어느 기자보다 낫다'는 칭찬을 주셔서 당시에 얼마나 기분이 좋고 행복했는지 잊을 수가 없다."

- 책 프롤로그 세 번째 인연 소개에서 어머니에 대한 사연도 가슴 뭉클하다.
"어머니가 5년여 전부터 많이 편찮으셨다. 지난해 11월부터는 병세가 더욱 좋지 않아 요양병원에 입원을 하고 계셨는데 누구나 그렇듯 코로나19로 인해 올 한해 내내 면회도 금지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찾아뵙지는 못하고 거의 매일 전화로 안부를 여쭙고는 했는데 어머니에게 뭔가 희망을 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에 내는 책에는 우리 어머니 이야기를 쓰려고 하니 곧 보여 드리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책이 나오기 한 달 전인 지난 10월 1일 추석 명절 새벽에 갑작스럽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래서 애초에는 '병상에 계시는 어머니에게 작은 희망을 드리고 싶어 이 책을 썼다'는 프롤로그를 출판 직전에 '이젠 어머니의 영전에 이 책을 바친다'는 문장으로 바꿔야 했다.

책이 나온 후 어머니의 묘소에 찾아가 대신 헌정했다. 어머니에게 이 문장을 읽어드리지 못한 것이 내내 가슴이 아팠다. 다음 생애가 있다면 어머니에게 더 잘하는, 또 다른 인연으로 만나고 싶다."


▲ 저자 ⓒ 고상만

"운동권 동지를 의문사로 잃었다"
- 첫 번째 글이 아버지와 관련한 글인데 두 번째 글은 장인어른에 대한 회고다. 제목이 <장인 어른이 남겨주신 유산, 50만 원>인데 어떤 사연인가?
"1989년 대학 입학 후 학생운동을 하게 되었다. '전두환과 평생동지'였던 아버지에 대한 부끄러움, 그래서 그 아버지를 대신하여 역사의 죄 닦음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학생운동 과정에서 1990년 운동권 동지를 의문사로 잃었다. 지금 내가 의문사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가 그 일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농성 중에 한 여학생의 아버지가 점거 농성 중인 건물로 딸을 찾아와 우연히 마주하게 되었는데, 훗날 그 분이 내 장인어른이 되었다. 참 좋은 분이었고 우직한 농부의 길을 걸어가신 분이었다.

그분과 또 다른 아버지인 장인어른으로, 그리고 또 다른 아들인 사위로서 맺게 된 인연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장인어른은 청렴하게 살아가셔서 남기신 재산이 없으셨다. 그래서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뜻밖에 받게 된 돈 50만 원이 있었다. 그 돈이 나에게는 그 어느 재벌이 준 50억 원보다 더 값지고 귀하게 느껴졌다. 그 50만 원을 잘 쓰고 싶었는데 책에 그 사연을 담았다."

- 모두 14개의 주제에 다양한 사연이 담겨 있는 것이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하는 것 같다.
"14개 꼭지의 목차에 각각 세 가지 사연을 담아 썼으니 전체적으로 42가지 이야기가 책 속에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사연 하나 하나가 특색 있는 이야기라서 혹시 작문한 것 아닐까 의심하기도 한다. (웃음) 그런데 작문은 절대 아니다. 실제로 있었던 사실 그대로 썼고 훗날 다시 읽어도 부끄럽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읽어보시면 이해하실 거다."

- 책을 쓰면서 특별히 애정이 가는 글이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내가 살아온 지난 50년간의 삶을 쓴 에세이다. 그러니 무엇보다 가족이야기가 가슴에 많이 남는다. 특히 학생운동권 선, 후배로 처음 만나 오늘까지 함께하고 있는 아내 이야기는 내 인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애틋함을 담고 있다. 그다음엔 장준하 선생님의 의문사 조사 과정에서 뵌 법정 스님과 김대중 전 대통령님에 대한 기억을 잊을 수 없다.

법정 스님의 사연은 이 책을 쓰면서 새롭게 알게 된 부분이 많다. 요즘 많은 분들에게 꼭 알려드리고 싶은 슬픈 사연으로 글을 쓰며 몇 번이나 북받치는 슬픔에 일어나 서성거려야 했다. 책을 쓴다는 것은 생각해 보면 참 행복한 일이 아닌가 싶다. 글을 쓰면 새로 배우고 깨닫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이 책을 쓰며 더 많은 배움과 깨우침이 있었다. 고마운 일이다."

20대 시절에 만난 노무현과 문재인 변호사

- 코로나19 이후 출판 시장이 많이 위축되었다고 한다. 책은 좋지만 결국 독자가 많이 읽어야 의미가 있는데 사정은 어떠한가?
"책을 내면서 많이 걱정했다. 사실 이번 책이 개인적으로는 여덟 번째 출간하는 책인데 책을 낼 때마다 늘 고민이다. 이 책이 정말 독자에게 필요한 책인지, 그리고 출판사에 피해 주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다행히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도와주시는 분들 덕분에 순조롭게 입소문이 나고 있는 듯하다.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분이 책을 읽다가 눈물이 쏟아져 혼났다는 후일담을 보내왔다. 어느 기자 분은 자기가 평소 존경하던 분들의 이야기가 많아 흥미진진하게 읽고 있다는 문자도 보내주기도 했다. 이런 글들이 저자 입장에서는 고맙고 영광스러운 기분이다.

특히 '내가 만난 인권변호사가 대통령이 되다'의 글에서는 20대 시절에 우연히 만나게 된 노무현, 문재인 두 대통령님에 대한 인연을 다루는데 그 글을 보고 많은 분들이 흥미를 보여줬다. 좋은 분들을 20대 청춘에 지근거리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이 참 복이 아닐까 싶다. 고맙다."


▲ 전국연합 인권위 당시 5.18 특별법 제정투쟁(1995년) ⓒ 고상만

- 이 책을 어떤 독자가 읽기를 원하나.
"나는 89학번으로 대학을 다녔다. 처음 입학하여 제일 먼저 배운 노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었다. 그 노래를 부르며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그다음에는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었다.

지난 20대 청춘을 누구보다 뜨겁게 보냈다고 나는 자부한다. 그래서 80년대와 90년대 학생운동을 하며 자신의 청춘을 바친 40, 50대 분들이 이 책을 많이 읽어주시면 좋겠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같이 살아갈 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따스한 시간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나는 이 책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무엇보다 주변에 좋은 분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는 것만으로도 공감이 될 수 있게 열심히 썼다. 코로나19로 더 힘들고 외로워진 우리 모두에게 응원과 힘을 보낸다. 그런 마음으로 독자에게 작은 위로와 희망으로 읽히기를 소망한다."

* 고상만은 1989년 대학에 입학해 학생운동을 시작했고 그 후 인권운동가의 길을 걸어왔다. 1992년 '유서대필 강기훈 무죄석방 공대위'를 시작으로 '전국민족민주 유가족협의회', '전국연합 인권위', '천주교 인권위' 등에서 활동가로 일해 왔다. 2002년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와 2006년 '대통령소속 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에서 조사관으로 일했다. 이후 서울과 경기도교육청에서 시민감사관으로 일하며 교육비리 근절을 위해 노력했고 2016년에는 '대한변협 인권위원회 재심법률지원소위' 부위원장으로 억울하게 구속된 이들의 권리 구제를 위해 노력했다.

저서로는 <젊은 인권운동가가 들려주는 인권현장 이야기-니가 뭔데>, <그날 공동경비구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 <다시, 사람이다>, <고상만의 수사반장>, <이등병의 아빠> 등이 있다. 2014년 국민라디오 〈고상만의 수사반장〉을 진행했고 다수의 공중파 방송과 팟캐스트에 출연했다.

또한 <오마이뉴스>에서 '올해의 뉴스 게릴라상' 등 다수의 기자상을 받았으며, 2017년 군의문사를 주제로 한 연극 〈이등병의 엄마〉를 제작하기도 했다. 2018년 현재는 장준하100년위원회 집행위원, KBS '진실과 미래위원회' 부위원장, 국방부 적폐청산위원회 및 국방개혁 자문위 간사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상지대학교 법대 외래교수로 '사회와 인권'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0년 11월 27일, 금 5:29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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