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선교사의 눈으로 본 조선의 '마지막'은 이랬다 [print]

[서평] 제임스 S. 게일의 책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

(서울=오마이뉴스) 김규종 기자 = 캐나다 토론토 대학 출신의 선교사 제임스 게일(1863-1937)은 1888년 25세 나이로 조선에 입국한다. 그는 만 9년 동안 조선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보고 들은 것을 1898년 <조선 스케치 Korean Sketches>라는 제목으로 캐나다와 미국, 영국에서 출간한다.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은 영어로 출간된 이 책을 다시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 - 1888~1897, 제임스 S. 게일 (지은이) ⓒ 책비

이사벨라 버드 비숍(1831-1904)이 1894년부터 1897년까지 조선과 동북아를 여행하고 남긴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을 펴낸 것도 1898년의 일이다. 여행자이되 놀라운 관찰자였던 원숙한 비숍의 시선을 청년 게일의 관점과 비교해보는 일도 의미 있어 보인다. 망해가는 조선을 바라보는 외국인들의 형안을 살피는 것은 흥미롭되 괴로운 작업이다.

게일은 유능한 선교사로 많은 조선인을 기독교도로 개종한다. 동시에 그는 한국학자로 뜻깊은 여러 서책을 번역-출간한 인물이기도 하다. 1890년에 최초로 <한영사전>을 출간했고, 1895년에는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을 번역하여 한글로 펴낸다. 1922년에는 김만중의 <구운몽>을 으로 영국에서 출간한다.

상놈에 대하여

1811년 순조의 관노비 해방, 1861년 러시아 알렉산드르 2세의 농노해방, 1865년 미국의 노예해방. 역사적 순차성만 본다면 조선은 상당히 이른 시기에 노비를 해방한 셈이다. 하지만 19세기 말까지도 조선은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다. 게일은 8년 동안 매번 다른 계절에 다른 경로로 조선을 12번 종횡하며 상놈들과 만나면서 그들을 이해하게 된다.

"상놈은 온갖 욕구와 쾌락에서 해탈한, 살아있는 가장 완벽한 증거다. 국수 한 그릇이나, 세상의 종말이 아닌 다음에는 어떤 것도 그들의 관심을 끌거나 긴장하게 만들 수 없었다.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엄청난 부담이 그들을 짓누르고 있지만, 상놈들은 이 나라의 주인이다. 그들은 도시의 성문과 골목 구석구석을 빛내는 보석이다." (69~70쪽)

거리에 무리를 지어 앉아 곰방대나 빨면서 무기력하게 앉아 있던 상놈을 조선의 주인이라고 단정하는 게일. 그는 상놈에게서 무기력이 아닌 평온함을 읽어낸다. 돌싸움(석전)이 상놈의 생기를 불러일으키는 유일한 것이라고 게일은 주장한다. 문맹이지만 조선의 전통문화를 간직한 유일한 계층이 상놈이었다. 상놈의 극단적인 양면성을 보자.

"상놈의 종교는 조상을 모시는 것과 관청의 벼슬아치들을 증오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풍습에 따라 그들은 좋은 일이 생기면 조상님의 은덕이라 생각하고, 나쁜 일이 생기면 탐관오리들이 썩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벼슬아치들에게 증오를 표출하면서도 임금에게 품고 있는 충성심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86~87쪽)

가혹한 노동과 끝없는 수탈에도 꿋꿋하게 생명력을 지켜나가는 상놈에게서 게일은 조선의 빛이자 전부를 포착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상놈을 존경한다고 단언한다.

진화의 갈라파고스 양반

양반을 바라보는 게일의 시선은 분열되어 있다. 공자와 유교의 전통에 따라 박제 수준으로 전락한 양반과 경탄할만한 고결함을 보여주는 양반의 상반된 모습. 약 2만 자에 달하는 한자를 이리저리 꿰맞추는 데 평생을 할애함으로써 영혼까지도 꼬여버린 양반. 돈을 주고 족보를 사서 양반이 된 자들이 보여주는 극단적인 물질적 쾌락 추구.

"양반은 예를 방해하는 것은 모두 피해야 했다. 그래서 양반은 육체노동을 하지 않았다. 직접 하는 일이 없다 보니 손은 비단 같았고, 손톱은 길게 자라 있었다. 항상 앉아 있어서 뼈가 무너져내린 듯했고, 중년이 되기도 전에 연체동물 같은 상태가 되었다." (237쪽)

양반을 이토록 통렬하게 묘사하는 대목은 연암 박지원의 <양반전>이나 <호질>에도 나오지 않는다. 노동하는 일상과 완벽하게 차단된 양반의 몰골이 손에 잡힐 듯 그려지고 있다. 그러함에도 양반이 보여주는 절제와 중용, 기품과 친절, 학문적인 성취를 높이 평가하면서 게일은 시대에 뒤져서 표류하는 양반의 모습을 '쓸모없음'이라 규정한다.

"양반은 우리 인류의 수수께끼이자 강렬한 관심을 끄는 존재가 되었다." (250쪽)

당대 조선의 문제들

1805년에 현동 정동유가 펴낸 <주영편>에 나오는 대목이 여기서도 반복된다.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다름 아닌 수레에 관한 것이다. '조선에 없는 졸렬한 풍속 세 가지'를 지적하면서 정동유는 양과 수레, 바늘을 거명한다.

순조 치세(1800-1834)에 유씨 부인이 쓴 <조침문>이 그것을 입증한다. 시삼촌이 동지상사가 되어 북경을 다녀오면서 전해준 바늘을 여러 사람과 나눠 쓴 정황이 나온다. 수레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사실도 여기서 되풀이된다.

게일은 당대 조선에 '독립'이나 '사랑'을 뜻하는 단어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이 다른 존재들로부터 분리된 자신을 생각하지 않아서, 독립은 전혀 새로운 개념이자 어휘였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아침저녁으로 사용하는 '사랑'을 뜻하는 단어조차 조선에서 찾지 못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일을 시키면 느려터지게 하면서도 빨리하라는 뜻의 말은 많다고 게일은 지적한다.

"어서, 급해, 얼른, 속히, 빨리, 바삐, 즉시, 날래, 냉큼." (103쪽)

우리는 "빨리빨리" 문화가 산업화의 산물인 줄 알았는데, 어쩌면 우리 혈관 속에 빨리빨리 문화가 흐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선의 부패한 양반 관료들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은 읽고 싶지 않고 읽기도 힘들다. 조선 왕조 518년 역사에서 세 번째 닥친 국난(임진왜란, 병자호란, 국권피탈)의 직전 시기를 담고 있어서다. 1894년 갑오농민전쟁과 청일전쟁, 1895년 을미사변, 그 이듬해에 발생한 고종의 아관파천까지 게일은 생생하게 그려낸다. 그는 무너져가는 조선을 이야기하듯 담담하게 기술한다.

아관파천 직전인 1895년 11월 28일에 있었던 '춘생문사건'은 우리를 프랑스대혁명 당시 마리 앙투아네트와 루이 16세의 파리 탈출 장면과 만나게 한다. 차이가 있다면, 프랑스는 국왕 내외를 처형하고 공화정을 이루었지만, 조선은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런 와중에도 양반과 관료들의 매국적인 행태는 지금도 눈살이 절로 찌푸려진다.

"나라의 병폐라고 일컬어지는 서울의 지체 높으신 양반들은 외국 바람에 깊이 빠져 흥청망청 돈을 써대고 있었다. 증기선부터 시작해서 전등, 기관총, 손목시계, 벽시계, 사랑방용 장식품까지 서방세계의 가능한 모든 물품을 사 모으는 것이 특히 젊은 관료들 사이에서 이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281~282쪽)

읽다가 잠시 숨을 골랐다가 다시 읽기를 되풀이해야 마지막까지 읽을 수 있는 서책이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이다. 책을 읽노라면 여러 역사적인 인물과 조선의 갖가지 풍물과 정황도 떠오른다. 하지만 1910년 8월 29일 식민지 전락 이후 광복을 위해 자신은 물론 온 가족이 독립운동에 뛰어든 선열들이 무엇보다 눈에 밟히는 것이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1년 3월 26일, 금 3:2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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