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심만 남겨놓고 떠나간 다섯마리의 병아리를 그리며 -


아들이 영화를 찍는다고 하더니 이른 봄부터 병아리를 찾는다. 영화에 병아리 장사가 등장하는데, 제 외조부를 허름한 병아리 행상역으로 내세우고도 모자라 이제 그 어미에게 때 이른 병아리를 내놓으라고 졸라댄다.

간혹 초등학교 앞에서 라면 박스에 병아리를 담아 놓고, 아이들 넋을 빼는 걸 본 적은 있지만 그것도 약에 쓰려니 눈에 띄지 않는다. 우연히 어느 초등학교 앞에 한 마리 오백원에 병아리를 파는 노파를 대했다. 어찌나 아이들이 만져댔는지, 손독이 올라 스르르 봄바람에도 반쯤 눈을 감은 병아리들이 카메라 앞까지 살아갈지 걱정스러워 이내 빈손으로 자리를 뜨고 말았다.

어린 시절, 학교 앞에서 봄 병아리 한 마리쯤은 사게 마련이고, 며칠 못 가 그 연약한 울음이 이내 그치어 꽃나무 밑에 묻은 안타까운 기억이 어디 나 혼자뿐이랴. 며칠 가지 못할 목숨을 구하다가 그 주검을 묻어야 하는 참담함을 맛보아야 하는 기억이 선뜻 병아리들을 사지 못하게 했다.

그래도 자식 생각하는 어미 마음에서야 나중 걱정이야 뒤로 밀쳐지게 마련인가 보다. 며칠 지나, 집에 와 보니 온통 재잘거리는 병아리 소리로 가득하다. 박스 안에 담겨진 물경 서른 마리의 작은 생명들이 오글거리는 걸 넋을 놓고 지켜 보았다.

장사치 말로는, 혼자서는 추위를 견디지 못하지만 이렇게 여러 마리가 되면 서로 몸을 맞대어 체온을 유지하여 오래 산단다. 그러고 보니, 서른 마리의 병아리들은 한 무더기로 몸을 맞대고 서로 안쪽으로 기어들려고 필사적이다.

행여 아들의 카메라 앞에 이르기 전에 탈이 날까 싶어, 아내는 병아리들을 방안에 들여 놓고 신주단지 모시듯 살핀다. 그런 정성 때문인지, 일주일이 지나도록 병아리들은 한 마리도 실수함이 없이 건강하다.

무사히 영화 촬영을 끝내고 돌아온 저녁, 라면 박스 안에서 오글거리는 서른 마리의 병아리들을 지켜보며, 이제는 저것이 장차 서른 마리의 닭이 되면 어찌 해야 할까를 걱정하게 되었다. 여름에 백숙으로 보신하면 되겠다는 아내의 말에 선뜻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일주일을 넘어, 열흘이 가까워지면서 멀쩡히 지내던 병아리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싸늘한 주검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물을 주지 않은 탓일까, 물을 너무 준 탓일까. 먹이도 주고, 물도 주고, 먹이를 줄이고, 물그릇도 치워 보고, 아침마다 두세 마리씩 주검으로 쓰러진 병아리들을 안타깝게 지켜보며, 별의별 방편을 동원해 보았지만 결국 서른 마리의 작은 생명들은 아홉 마리만 남게 되었다.

자세히 살피니, 엉덩이에 마른 똥이 덕지덕지 말라붙어 있어, 손으로 그것을 떼어 놓기도 했지만 하룻밤을 넘기지 못했다. 아무래도 소화기 계통의 돌림병이라 여겨졌다. 아침마다 몇 마리씩 죽어나는 작은 생명들을 묻는 일도 여간 고통스럽지 않아, 제법 따스해진 봄볕이라도 쬐게 할 양으로 마당에 풀어 놓았다.

어미가 곁에 있어 가르친 것도 아닌데, 놓여난 병아리들은 분주히 마당의 무언가를 연한 발가락으로 버리적거리며, 기어다니는 깨알 같은 개미들을 재빨리 쪼아댄다. 제법 두 날개를 펼치고 홰를 치는 모습이 앙증맞다. 그렇게 아침에 내어 놓고, 저녁이면 들여놓기를 반복하는데 신통하게도 아홉 마리의 병아리들은 밤새 무사하였다.

그제서야 닭이 모래를 먹이와 함께 먹어야 소화가 된다는 말이 머리를 스쳤다. 모래 주머니라는 걸 몸 속에 따로 지녔다는 사실로 미루어 그럴 듯하다.

이후로 아침마다 마당에 풀어 놓고 틈만 나면 들여다 보는데, 마침 봄바람에 만개한 벚꽃이 산개하여 마당에 하얗게 떨어지니, 노란 병아리들이 삐약거리며 꽃잎들을 입에 물고, 조르르 달려가거나, 서로 빼앗으려는 몸짓이 참으로 볼 만하였다. 따스한 봄볕에 도도한 꽃들이 눈발처럼 낙화하는 풍경이 모처럼 봄날의 한가로움을 더해 주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도 궁금하여 주변을 살피니, 한 마리도 뵈지 않던 병아리들이 마루 밑에서, 장독 뒤에서 일제히 조르르 달려 나와 반기는 품이 영락없는 제 애비나 다름없다. 다른 사람을 보면 그러지 않다가도 나만 졸졸 따라다니며 조잘대는 병아리가 대견스럽게 느껴지는 한편, 장차 저것들이 탈없이 자라 어엿한 닭이 될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걱정이 되었다.

내다 파는 병아리란 것이 암수를 감별하여, 알을 얻지 못하는 수컷들을 내기 십상이니, 가뜩이나 거위며, 기러기며, 큰 닭이 십여 마리를 넘는 집안에, 아홉의 수탉들을 그 위에 어찌 감당할 수 있으랴. 그렇다고 저렇게 내 발소리만 들어도 조르르 달려나오는 저 어린 생명들을 어찌 복날 삼계탕으로 삼는단 말인가.

그렇게 아직 오지도 않은 날을 미리 걱정하며 며칠을 보냈다. 그리고 오랜만에 내린 비로 해갈이 된 다음 날, 행여 비에 감기라도 걸릴까 온종일 집안에 가둬둔 병아리 아홉 형제들을 일찌감치 마당에 풀어 놓은 채 일터로 갔다.
그리고 퇴근하여 돌아오니, 조르르 달려 나와 재잘거릴 병아리들이 조용하다. 뒤뜰로 돌아가니, 나무 그늘에 몸을 숨긴 한 마리의 몸놀림이 여의치 않다.

나를 보고도 달려오기보다 몸을 숨기기 바쁘다. 언제나 몰려다니던 녀석들이 혼자 있는 것도 예사롭지 않아 가만히 귀를 기울이니, 광 쪽에서 가냘픈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낮에도 어둠침침한 광에 두 마리가 벽에 몸을 붙인 채 불안한 눈으로 삐약거린다. 그렇게 구석구석을 뒤져 찾아내니 모두 네 마리뿐이다. 나머지 다섯 마리는 집 주변을 몇 번이고 둘러보고, 마루 밑에 엎드려 암탉소리를 내 보아도 반응이 없다. 내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대번에 달려나오던 병아리들이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며칠이 지나도 끝내 돌아오지 않는 병아리들을 안타까워 하면서, 비로소 나는 집 주변을 맴돌던 도둑고양이며, 온종일 하늘에서 맴돌던 솔개며, 잣나무를 오르내리던 청솔모를 기억해냈다. 아니, 어쩌면 나는 그것들을 일찌감치 알고 있으면서도 짐짓 모른 척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주체하지 못하는 생명들을 거느리는 것을 무거워 하면서 은연 중에 그 가냘픈 어린 생명들을 그런 천적들 가운데로 밀어낸 뒤 하늘의 운에 맡긴 것은 아닐까. 또 남의 손을 빌어 구워내는 닭요리에는 가벼이 손을 내면서도, 알량한 정을 내세워 제 손의 살생을 피하려는 짓도 따지고 보면 이기심의 또다른 그늘이 아니던가.

거느림에 대한 무게도 그러하다. 암탉을 거느리는 부담은 달걀이라는 쓸모의 꾸러미를 가늠하면서도 그것이 수탉이 되리라는 이유만으로 꺼려하는 마음 씀씀이도 얄팍하기만 하다. 결국 내 다섯 마리의 병아리들은, 알량한 정과 기피심 그리고 몇 꾸러미로 맞바꿀 효용가치라는 주판알에 튕겨져 그 생명을 내놓은 셈이다.

마당을 하얗게 덮었던 봄꽃도 엊그제 내린 봄비에 어디론가 떠내려가고, 하롱거리는 꽃잎들을 희롱하며 조잘대던 병아리들도 상심만 남겨 놓고 사라졌다. 지금 박스 안에서는 네 마리의 병아리들이 제법 날개짓을 하며, 밖으로 내보내 달라고 아우성치고 있다. / 이형덕 (오마이뉴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