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200여명, 북녘의 심장을 달리다

오마이뉴스 평양-남포 통일마라톤 대회(이하 평양마라톤 대회)가 열린 평양 광복거리에는 평양시민들의 웃음 띤 격려가 이어졌다. 사상 처음으로 평양 땅을 달리는 남측 참가단 144명도 평양 시민들에게 "반갑습니다"며 손을 흔들었다. 남측 참가단은 마라톤보다 평양 시민들과의 짧은 대화를 더 즐기는 모습이었다.



24일 오전 10시께. 역사상 처음으로 남과 북이 공동으로 개최한 평양마라톤대회의 시작은 남북 참가자 200여명의 환호소리와 함께 시작됐다. 북쪽 참가자들은 배번호 100번 대, 남쪽 참가자들은 300~400번 대를 부여받았다. 평양 서산축구경기장 입구에 마련된 출발선에 뒤섞인 남북 참가자들은 출발 총성이 울리자 "와!"라고 외치며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50여명의 여성 참가자들이 먼저 출발했고, 남성 참가자들이 뒤를 이었다.

"와!" 함성과 함께 시작된 역사적인 마라톤

이날 평양 시내에는 새벽부터 10m 앞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안개가 자욱해 "참가자들이 뛰다가 길을 잃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대회가 시작될 무렵에는 안개가 모두 걷히고 화창한 날씨가 이어졌다. 날씨 때문에 걱정을 했던 남북 대회 관계자들은 서로에게 "날씨도 마음대로 조정하나 봅니다"라는 덕담을 건네기도 했다.

처음 평양 거리를 달리는 사람들은 모두 "감개가 무량하다"며 입을 모았다. 평양마라톤대회 200여 참가자 중 105kg으로 가장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이종은(45)씨는 "내가 평양 거리를 달리며 땀을 흘릴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연신 거리에 나온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학교와 일터로 향하며 마라톤대회를 지켜본 평양 시민들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손을 흔들며 참가자들을 격려했다. 이들은 마라톤대회에 참여한 남측 사람들을 알아보며 "우리 민족끼리 통일합시다", "힘내시라요", "고조, 좋은 운동화 신고 고것밖에 못 달립네까, 힘차게 달리시라요" 등을 외치며 박수쳤다.

한 평양 여성시민은 "남쪽 참가자들의 얼굴이 좀 봐줄만하게 생겼습니까?"라는 한 남쪽 참가자의 웃음 섞인 질문에 "같은 민족이라서 그런지 모두 훤하게 잘났습니다"라고 소리쳐 폭소를 나아내기도 했다.

자전거를 이용해 일터로 향하는 한 평양시민은 대회참가자들과 보조를 맞추며 "나 한번 따라와 보시라요"라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일부 참가자들은 이런 평양시민들에게 태워달라고 소리쳤지만 평양 시민의 자전거 뒷좌석에 앉는 행운을 누린 사람은 없었다.

평양시민들의 격려 "고조, 좋은 운동화 신고 고것밖에 못 달립네까"

이날 북측은 안전 사고를 대비해 구급차 1대와 의사 6명을 현장에 배치해 참가자들의 건강을 살폈다. 북측은 고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탔던 무개차 3대의 차량을 기자들에게 제공해 취재를 지원했다.

또한 버스 4대를 마라톤 코스 곳곳에 배치해 힘겨워 하는 참가자들을 태웠다. 그러나 버스를 타고 결승점에 들어온 사람은 없었다.

일부 남쪽 참가들은 북측 참가자와 손을 잡은 채 "조국통일"을 함께 외치며 결승선에 들어왔다. 남쪽 참가자 윤병국(43)씨와 함께 결승선에 들어선 북쪽 참가자 허명길(36)씨는 "윤씨의 도움이 없었으면 중간에 포기할 뻔했다"며 윤씨와 포옹했다.

이에 윤씨도 "평양 시민들이 응원해주고 옆에서 허명길씨가 달리니까 하나도 힘이 들지 않았다"며 "너무도 감격스러운 시간이었다"고 환하게 웃었다. 이들은 기념 촬영을 하며 내년 통일마라톤대회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50여명의 북쪽 참가자들은 모두 "형제나 다름없는 같은 민족끼리 달리니 참 좋았다"며 "이 참에 통일을 향해 달려나가자"고 입을 모았다.

남녀 1·2위 모두 북쪽, 3위는 남쪽

이날 대회의 남녀 1·2위는 모두 북쪽 참가들이, 3위는 남쪽 참가자들이 차지했다.

남자 부문은 북쪽의 윤원성(1시간9분56초)·성병호(1시간10분9초)씨가 각각 1·2위를, 남쪽 참가자 원동철(1시간10분24초, 한국전력 직원)씨가 3위를 차지했다.

처음 열리는 평양마라톤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윤원성씨는 "평소 아침마다 운동을 한 것이 우승의 원동력이 된 것 같다"며 "서울에서도 통일마라톤이 열리면 꼭 참가하고 싶다"는 소감을 밝혔다.

여성부문은 북쪽의 장선옥(1시간29분19초)·임명옥(1시간29분37초)씨가 1·2위를, 남쪽의 육해숙씨가 3위를 차지했다.

1위를 차지한 장선옥씨는 "계속 북과 남이 함께 달릴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3위를 차지한 남쪽의 육해숙씨는 "평양 거리를 달리는 동안 너무 감격스러워 눈물을 흘리며 달렸다"며 "빨리 통일 돼서 아이들과 함께 손을 잡고 다시 평양을 달리고 싶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는 대회 폐막 인사말을 통해 "평양에서 남과 북이 함께 뛰어 더이상 나뉘어 살 수 없는 한 형제요, 한 겨레임을 확인했다"며 "하루 빨리 통일이 되도록 함께 힘을 모으자"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북측 김영남 마라톤 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이 "북과 남의 각 계층 마라톤 애호가들이 오늘 대회에서 달린 모습은 6.15 공동선언으로 마련된 통일시대의 또 하나의 가슴벅찬 화폭이었다"며 "백두산과 제주도에서 달려온 우리의 통일마라톤 대오가 통일의 광장에서 얼싸 안을 그날을 확신한다"고 폐막을 선언하자 200여 참가들의 큰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남북 참가자들은 서로 악수를 나누고 기념촬영을 하며 "내년 통일마라톤 대회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고 발길을 돌렸다. (오마이뉴스 축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