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나 칼럼]

(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 = 내가 만나 본 많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영적인 체험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누구나 자신이 어떤 영적인 체험을 했다는 사실을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자신이 추호도 틀림없는 그리스도인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체험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줄 수 있을까? 그것으로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 생각하는 것이 올바른 생각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영적인 실체는 있다. 영적인 능력도 있다. 그리스도교는 물론 모든 종교가 그렇다. 그러므로 영적인 능력이나 그것을 통해 일어나는 기적을 통해 그리스도교를 입증하려는 모든 노력은 무의미하다. 그리스도교는 어떤 영적인 능력이나 기적을 통해 입증될 수 없다.

그래서 예수님도 기적을 통해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방식을 거절하셨다. 그것은 오히려 예수님에게 유혹이었다. 광야의 시험을 통해 예수님은 그 유혹을 거절하시고 오직 하나님의 통치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셨다. 예수님이 ‘몸소 하나님 나라’인 것은 그분이 기적, 다시 말해 영적인 능력을 거절하셨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교에서는 여전히 영적인 능력이 그리스도교 부흥의 단초가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영적인 능력으로 부흥되는 그리스도교는 사실상 그리스도교가 되지 못했다는 것이 그리스도교 역사이다. 그럼에도 영적인 능력을 사모하는 이들이 여전히 그리스도교 안에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사도행전에 나오는 시몬의 기사를 살펴보자.

그 성에 시몬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마술을 부려서 사마리아 사람들을 놀라게 하며, 스스로 큰 인물인 체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낮은 사람으로부터 높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사람이야말로 이른바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의 소유자이다" 하고 말하면서, 그를 따랐다. … 그런데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한 기쁜 소식을 전하니, 남자나 여자나 다 그의 말을 믿고서 세례를 받았다. 시몬도 믿게 되었고, 세례를 받은 뒤에 항상 빌립을 따라다녔는데, 그는 빌립이 표징과 큰 기적을 잇따라 행하는 것을 보면서 놀랐다. …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손을 얹으니,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 시몬은 사도들이 손을 얹어서 성령을 받게 하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돈을 내고서, 말하기를 "내가 손을 얹는 사람마다, 성령을 받도록 내게도 그런 권능을 주십시오" 하니, 베드로가 그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사려고 생각하였으니, 그대는 그 돈과 함께 망할 것이오. 그대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우리의 일에 그대가 차지할 자리도 몫도 없소. 그러므로 그대는 이 악한 생각을 회개하고, 주님께 기도하시오. 그러면 행여나 그대는 그대 마음 속의 나쁜 생각을 용서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오. 내가 보니, 그대는 악의가 가득하며, 불의에 얽매여 있소." 시몬이 대답하였다. "여러분들이 말한 것이 조금도 내게 미치지 않도록, 나를 위하여 주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이 기사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이 기사에서도 보듯이 사람들은 기적을 행하는 사람을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의 소유자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시몬이 행하는 기적은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아니었다. 세례를 받은 시몬은 빌립을 따라다니며 빌립이 행하는 기적들을 보았다. 그런데 그 기적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성령이었고,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할 때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사모하여 돈을 주고 성령이 내리게 할 수 있는 권능을 사려고 하였다.

여기까지만 생각해보자. 시몬의 의도는 잘못된 것인가? 그가 성령을 내리게 할 수 있는 능력을 돈을 주고 사려고 했기 때문에 그것이 잘못된 것이었는가? 나는 단순히 시몬이 기적을 사모하고 기적의 원동력인 성령을 내리게 할 수 있는 능력을 단순히 돈을 주고 사려 했기 때문에 시몬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기적을 행하던 사람으로서 시몬의 잘못은 성령을 자신의 능력으로 삼고자 했고, 그것을 지배의 수단과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상의 신인 맘몬의 영은 단순히 기적과 돈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사람들을 지배한다!!!

만일 시몬이 돈으로 성령을 샀다면 시몬 역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들을 지배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세상을 견인하는 두 기둥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을 견인하는 두 기둥, 다시 말해 맘몬이 통치하는 세상의 가장 현저한 특징은 개인주의와 능력주의다. 시몬이 성령을 살 수 있었다면 그는 개인주의와 능력주의에 따라 사람들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 나라와 정 반대의 길을 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베드로는 시몬의 그러한 의도를 나쁜 생각이라고 하였으며 그것이 악의가 가득하며, 불의에 얽매여 있는 모습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의 두 기둥인 개인주의와 능력주의를 거절한다. 그것이 세상의 방식에 따라 누가 높으냐고 서로 따지고 싸우는 제자들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을 곁에 불러 놓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아는 대로, 이방 사람들을 다스린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백성들을 마구 내리누르고, 고관들은 백성들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치를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다."

하나님 나라의 가장 큰 특징은 지배하고 다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능력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지배하거나 다스리지 않고 섬기는 사람이 된다. 시몬처럼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이 오히려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는 나라이다. 엘륄은 이 사실을 가장 잘 이해한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엘륄이 중요하게 여긴 건 비非능력(non puissance)이다. 기독교는 언제나 권력과 가까이 있었다. 복음서에서 말하는 예수는 전능(tout puissant)했다. 하지만 능력을 실행하지는 않았다. 사탄이 기적을 행해 보라고 했지만 하지 않았고, 도망갈 수 있었지만 도망가지 않았다. 피할 수 있었지만 스스로 고난의 길을 택했다.”

엘륄의 전문가인 호농과 엘륄의 조카인 제롬이 한국을 찾았을 때 인터뷰한 내용이다. 선각자로서 엘륄은 복음의 정수를 잘 파악했다. 그것이 바로 비능력이다. 하나님 나라는 능력주의가 발을 디딜 곳이 없다. 예수의 제자들은 비능력을 실천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제자들의 비능력을 통해 개인주의 역시 완전히 종식되는 곳이 하나님 나라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마술사 시몬처럼 그리스도교 안의 큰 무당이 되고자 하는가? 또 그런 사람을 찾고 있는가?

비능력이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복음의 정수(精髓)다. 누구든 능력이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능력으로 다른 사람들을 섬겨야 한다. 가장 비천한 종이 되어 자신이 지닌 모든 능력으로 다른 사람, 특히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예수님을 대하듯이 극진히 섬겨야 하며 예수님처럼 자신의 목숨을 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비능력으로 세상의 개인주의와 능력주의를 극복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사실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