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메시지 금지" 내세운 플로리다주, 예고 없이 색 지워…유족·시민 강력 반발

(올랜도) 김명곤 기자 = 올랜도 '펄스' 나이트클럽 앞에 설치됐던 레인보우(무지개색) 횡단보도가 8월 21일 새벽, 예고 없이 철거됐다. 이 횡단보도는 2016년 총기 난사로 49명이 숨진 LGBTQ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설치됐으며, 지역 사회의 상징으로 자리잡아왔다.

철거는 주와 연방 교통 당국의 '정치적 배너 제거' 지침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으나, 시 당국은 사전 통보를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올랜도 센티널>에 따르면, 플로리다주 교통부(FDOT)는 정치적·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도로 표식을 제한하는 지침을 근거로 이 같은 조치를 내린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해당 부처는 이번 철거와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올랜도 시의원 패티 시언은 "우리는 법을 지켰고, 기준에 맞게 설치했다"며 "플로리다 교통부가 이렇게 신속히 움직인 적은 없다"고 말했다. 버디 다이어 올랜도 시장은 철거 사실을 확인하며 "이는 단순한 안전 문제나 기준 적용이 아닌, 정치적 의도가 담긴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기억까지 지우려는가"…시민들 거리에서 항의 시위

<올랜도 센티널>은 철거 당일, 시의원과 시민들이 현장에 모여 분필로 무지개를 다시 그리는 퍼포먼스를 벌였다고 보도했다. 현장에는 150명 이상이 모였고, 일부는 프라이드 깃발과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플로리다주 상원의원 카를로스 기예르모 스미스는 "추모의 상징을 이렇게 몰래 지운 건 피해자 가족과 생존자에 대한 모욕"이라고 말했다. 그는 펄스 총격 사건 희생자 다수가 LGBTQ 유색인이라는 점에서 이 횡단보도의 상징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휴먼 라이츠 캠페인'의 대변인 브랜던 울프는 "이건 단순한 횡단보도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연대 선언이었다"며 "추모의 장소를 몰래 훼손한 행위는 기억까지 지우려는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편, 남부 플로리다의 델레이비치시는 유사한 레인보우 교차로를 유지하며 플로리다주와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 해당 도시의 부시장은 "이번 철거는 안전이 아닌 정치적 메시지를 보여주려는 행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