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님과 성경을 읽다 시험에 든 이야기

교회 개척을 시작하기 전, 제 나이 갓 서른에 목사 안수를 받고 선교 단체에서 조금 일을 하다가 서울 방배동의 어느 교회에 담임 목사로 청빙받아 1년간 섬기던 때의 일입니다.

선교사역을 접고 갓 부임한 젊은 목사답게, 게다가 한국에선 처녀목회라 한번 잘해보겠다는 열정과 열심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모릅니다.

20년이 다 되도록 분열과 분쟁의 와중에 젊은이들이 다 떠나고 대부분 오십은 훌쩍 넘기신 분들 30여명만이 덩그라니 널찍한 예배실을 지키고 있는 이 교회도 마른나무에도 싹이 나고 고목에도 꽃이 피듯 달라 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교회의 체질을 한번 바꾸어 보고 싶었습니다. 아무도 나오지 않는 새벽시간, 강단에서 무릎을 꿇을 때마다 비장의 각오를 다져가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설교 시간에는 성경을 모두 같이 찾아가면서 한 목소리로 읽도록 했습니다.때로는 돌아가면서, 때로는 인도자인 저와 한 절씩 교독으로 읽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 저녁이었습니다. 성경 말씀에 능력이 있었던지 한 사람씩 저녁예배 참석자가 늘어가더니 평소에 저녁 예배 참석을 전혀 않던 K여집사님까지 자리에 계신 것입니다.

아, 이제 교회에 새 바람(?)이 부는가 보구나...

저는 여느 때처럼 성경 본문을 교독했고, 설교를 시작했는데 앞자리에 앉은 K여집사님이 연신 눈물을 훔치는 것이 아닙니까? 옳거니...은혜를 받으시는가보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더욱 용기를 내어 설교를 했는데, K 여집사님은 예배를 마치고도 한참을 그렇게 울고 가셨습니다. 그러더니 그 다음 주일부터 교회를 안나오는 것입니다.

어? 그렇게 은혜를 받으시던 분이 왜? 어디 편찮으신가?

몇 주일 째 결석을 하던 즈음 박 권사님이 슬쩍 귀띔을 해 줍니다.

"아무래도 K집사가 시험이 든 모양이니, 목사님께서 심방을 좀 해 보세요"

그래서 심방을 했습니다. K여집사님은 그래도 목사가 왔다고 문을 열어주고, 방석을 꺼내며 아랫목에 앉으라고 자리를 내줍니다.

"집사님, 무슨 힘든 일 있으세요?"

나의 물음에 입술을 움찔움찔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한참을 뜸을 들이던 집사님은 마침내 입을 열었습니다.

"목사님, 그러시는 거 아닙니다. 너무 섭합니다
"예? 저한테 섭섭하시다구요? 뭐가요?"

"아니, 내가 무식한 년이라고 사람을 무시해도 어느 정도지... 그래요, 나 한글 모르는 까막눈이유 까막눈! 나보고 성경을 읽으라고 꼭 그렇게 여러사람 앞에서 망신을 주셔야 속이 시원하시겠습니까? 내 그날 얼마나 서럽고 분하든지 울 엄니 돌아가실 때 보담 더 많이 울었습니다.
"하하... 집사님, 그 눈물이 그 눈물이었어요? 난 또... 맨 앞자리에서 은혜 많이 받으시느라 눈물 흘리신 줄 알았지요. 집사님, 젊은 목사가 잘 몰라서 그런거니까 이해하시고 맘 푸세요. 그리고 글 모르면 입만 벙긋벙긋하시지 그러셨어요? 어차피 같이 읽는 건데요"

결국 K여집사님은 마음이 풀어지시긴 했는데 이 일을 계기로 제 마음속에는 목회가 쉬운 일이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고, 정신이 번쩍 나고 얼마나 식은땀이 났는지 모릅니다. 시험이 들려니까 성경을 읽으면서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성경 교독하거나 할 때는 혹시 글을 모르시는 분을 위해서 "글씨가 잘 안보이시는 분들은 잘 듣기만 하셔도 됩니다."하면서 편하게 말씀을 드립니다. / 황 대 연 (한가족 교회 목사)